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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요즘 여기 저기 돈 벌고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군요. 글만 쓸 때는 편했는데
하여간 달리겠습니다!
“전군 나를 따르라.”
설장군의 명령을 따라서 온달도 만 삼천 장병들과 함께 말을 몰면서 달렸다.
1각 정도 필사적으로 달린 그들은 다른 도하점에서 토호진수를 돌파하고 유성으로 진격하는 5만 명 돌궐 2군과 마주쳤다. 둘 다 숲이 울창한 좁은 길에서 일자진으로 가다가 길목에서 만난 상황이었다.
밤의 어둠 가운데에서 서로 적의 갑작스러운 출연에 고구려와 돌궐의 병사들은 당황하였다.
“하앗.”
모두가 당황했던 이때 설무도는 직접 칼을 들고는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와아아. 장군님 뛰어들으셨다. 우리도 따르자!”
그 모습을 본 고구려군은 장군의 용맹에 사기가 올라서 아까 전에 전투에서 쌓인 피로를 잇고 바로 돌궐군에 달려들었다. 좁은 길에서 설무도의 의기 충전한 돌격에 돌궐군은 초반 기세를 잃고 말았다. 온달이 소속된 을지무발 당대는 적장 토곤처리 때문에 상당한 시간을 지체해서 일직진에서 중간 쪽에서 위치하였다. 그래서 온달은 2군과의 전쟁에서 싸우지는 못했지만 뒤에서 모든 당대원과 함께 소리를 질러서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을 응원하고 돌궐군에게는 두려움을 주려하였다.
“와아아아!!!”
“한 번 더 고함을!!”
후방에 대기하고 있던 을지무발당주가 당대원들에게 명령하자 온달은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돌궐기병 2군 지휘관은 자신의 부대가 병력이 더 많음에도 밀리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지만 싸우려는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초반 기세를 읽어버리자 돌궐 2군은 통제 불능에 상태로 빠졌다. 결국 돌궐 2군은 후퇴를 시작했지만 좁은 길목에 막혀서 기동력을 활용 못하고 그대로 밀고 들어오는 고구려자랑인 중갑기병에 짓밟히고 있었다. 밤이 지나고 해가 뜨자 돌궐 2군들은 샛길로 도망치기는 했지만 부대를 유지 못하고 토호진수를 다시 건너 요해로 도망쳤다. 설무도가 계속 추격을 하지 못한 것은 아직 부대가 하나가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 3의 도하점으로 달려가니 그 곳은 이미 돌궐 3군은 거란족과 치열한 격전을 피었다. 제3도하점 고구려군 견제 병력은 도하점을 포기하고 거란족 예비대 만 명이 있는 매복지로 돌궐 3군을 유인했다. 함정에 걸린 돌궐기병은 후방으로 일시후퇴하고 진을 재편해서 거란족에게 학익진을 짜서 포위하려던 중이었다.
그런데 돌궐 3군의 학익진에 목 하나가 굴러 들어왔다.
“응?”
돌궐기병들은 측면에서 출현한 새로운 고구려군이 던진 그 목을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
“토곤 추장님...”
요서 진격군 최고 사령관이 5만여 명의 돌궐 3군 앞에 도착한 셈이다.
문제는 목만 왔다는 것이었다.
“으악-”
돌궐 3군이 사령관의 목을 보고 대혼란에 빠지자 이 순간을 고구려군이 놓칠지가 없었다. 설무도는 학익진 측면에서 밀고 들왔고 정면에서 싸우던 거란족들도 돌궐군에게 일제공세를 가했다. 양공을 당한 돌궐군은 후퇴하려고 했지만 좌우로 포진한 학익진은 도망칠 때는 불리한 진이었다. 그 목을 적진에 던졌던 을지무발은 지휘부의 명령대로 ‘돌격 앞으로’를 소리쳤고 온달은 9명의 부하들을 이끌고 그대로 적진으로 달려갔다.
설무도의 고구려군에 맹공을 받은 돌궐3군은 삼일동안 저항했지만 결국 패전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9월 30일 돌궐군은 4만을 웃도는 사상자를 남기고 요해로 모두 철수했다.
토호진수전투에서 돌궐군 4만 3천명이 죽거나 부대를 이탈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고구려군 사상자는 이천을 밑돌았다. 병술년에 돌궐군은 7개월간에 고구려군이 안수와 고흘장군의 패배와 부여공방전으로 7만 명을 잃었으나 설무도 장군은 단 7일 만에 전투로 5배의 적을 상대로 돌궐군에게 그만큼에 대손실을 입혔다. 이때 부여전역에서 돌궐군의 손실이 3만에 달했으니 이 때까지 고구려군 7만명과 동률로 돌궐군 7만 명을 상실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돌궐의 장군급이 6명이나 죽었고 특히 돌궐서부 실점밀야브구의 심복 토곤이 죽은 것은 뼈아픈 일격이었다. 병력이 많은 돌궐군은 집중의 법칙으로 어기고 스스로 분산시켰고 오히려 병력이 적은 고구려군은 집중을 시켜서 전세를 뒤바꿨다. 게다가 잇따른 승리에 방심하던 돌궐군과 달리 고구려군은 사생결단으로 달려들었다. 만약 돌궐 3개 군 하나만이라도 끝가지 저항으로 했다면 다른 두개 군단이 고구려군의 배후를 기습할 수 있었지만 다른 군단이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부대를 해산하고 후퇴해버린 것이었다.
돌궐 3군의 2만여 구의 시신이 너부러져 있는 설무도 장군이 3만 명의 부하 앞에서 자신의 대도를 쳐들었다. 전쟁터에서 특유에 무표정한 얼굴에 순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묻어있는 적들의 붉은 피가 그를 강한 전사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태왕폐하 만세. 대 고구려 만만세”
장군의 모습을 바로 밑에 있던 온달은 아무생각 없이 열광적인 만세를 질렀다. 3만여명의 병사들은 온달을 따라 만세를 외쳤다. 잇따른 패전에 허우적대던 고구려는 오랜만에 북방전선에서 대승을 하였다. 이로써 돌궐은 요서에서 상당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었고 이계찰대의 대전략인 부여포위전은 무위로 돌아갔다.
이때 설무도는 부하들의 함성을 들으며 승전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지만 속으로 이번 전투에 이계찰대가 없었다는 것에 큰 불안감으로 느꼈다. 솔직히 그는 고흘장군님마저 패배시킨 그라면 내가 이길 수 있었을 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패배를 기뻐한 사람이 돌궐에 몇 명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계찰대였다.
이번 토호진수전투에 최대의 피해자인 돌궐서부의 지배자 실점밀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5만 명의 손실이 거의 다 돌궐서부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장수급 전사자은 6명중 5명이 자신의 휘하에 돌궐서부의 장군들이다.
“설무도의 용기와 책략은 고흘을 능가하는 구려....”
막심한 피해에 실점밀은 이 전쟁에 회의를 느꼈다. 자신이 아무리 고구려를 멸망시켜도 목간대칸과 이계찰대의 속국이 되지 자신의 속국이 되지는 않는가라는 생각에 약탈품을 챙기는 것이 주력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아주 그는 내년에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이번 겨울이 끝나면 서역으로 떠나겠다고 선언을 했다. 목간대칸은 자신에 숙부의 패배에는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사실 돌궐의 대칸이자 돌궐동부의 지배자인 그로써는 최근 돌궐서부의 독립움직임을 막을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는데 이정도 피해를 입었으니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돌궐의 대칸으로써 5만마리의 늑대를 죽인 설무도를 내비려 둘 수는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요서공략을 반대한 이계찰대를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이 고구려를 격파할 수 있는 장수였다. 요해까지 끌고 온 황금게르 안에서 목간대칸은 이계찰대에게 명을 내렸다.
“당장! 이계찰대 설무도의 목을 가져와라.”
“.....분부 받들겠습니다.”
이계찰대는 목간대칸이 부여로의 진격을 아직 생각하지 않으신다는 것에 실망했지만 어쨌든 다시 10만대군의 총지휘관으로 복귀했다.
“설무도 장군님 돌궐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10월 14일 새벽 설무도는 막사에서 자는 도중에 장군의 친위대인 을지무발 당대소속 자위 온달에게서 급보를 들었다. 아직 요해일대에 남아있는 반 돌궐 거란족들에 의한 정보를 들은 설무도는 이마를 잡고서는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온달은 설무도장군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처음으로 괴로움을 읽었다.
‘이번은 쉽지가 않겠구먼.’
“이계찰대가 나섰다고?”
고구려의 진중은 이계찰대의 이름을 듣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고구려군인이라면 최고의 명장을 고흘을 패퇴시킨 전략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더욱 문제는 그들의 행군로였다. 그는 6만 대군을 토호진수 상류로 죽 남서쪽으로 우회해서 유성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3만 명이라는 적은 병력이란 약점을 토호진수을 이용해 메우던 고구려군으로써는 최악의 전개였다. 게다가 4만이 토호진수 하류쪽 즉 동북쪽으로 가서 서요하강쪽에서 도하를 노리니 강에 그쪽 방면에 병력을 배치 안 할 수도 없었다.
“정말 대책이 없을까?”
을지무발 당대에 장교들은 당주의 막사에 모여서 대응방법을 생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야 온달 생각해둔 것 없어!”
오도는 온달이 옛날에 이계찰대의 수를 읽은 것을 떠올리고 물어보았다.
“저라도 이렇게 병력차가 나는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할 수가!”
온달도 고개를 설래 흔들면서 말하였다. 소수의 병력을 가지고 대수의 병력을 이긴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대수의 병력이 보급이나 훈련, 사기, 지형파악이 충실이 되어있다면 큰 실수를 하지 않는 이상 소수의 병력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이다. 돌궐군은 지난번의 패배로 위축이 되어있지만 보급이 충실한데다가 무엇보다도 요서일대의 지형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
“일단 성으로 들어가는 것이 났지 않을까요?”
부하들의 말에 얼굴을 찌그리며 을지무발은 이렇게 답했다.
“성이 어디 있는가? 다 무너져가는 뿐인데”
사실 요서지역은 고구려와 북제간의 완충지대였기 때문에 고구려에 가까운 요하지역이나 북제의 장성일대를 제외하고는 축성은 양국 모두 자제했었다. 가장 최근 쌓은 성인 북위가 축성한 것은 문자명왕과 안장태왕때 고구려군과 그 휘하의 거란족들에 의한 지속적인 공략으로 거의 파괴가 되었고 그 이전에 쌓은 성은 관리가 안 되어서 무너져 버렸다.
온달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 막사에 설연이 들어왔다.
“당주님 설무도 장군님이 오시랍니다.”
“무슨 일인가?
“제나라(북제)에서 밀사가 왔다고 합니다.”
을지무발은 엉뚱하게 북제라니 무슨 소리인가 반문했다.
“뭐라고?”
“제나라 왕족이자 영주자사의 심복 보녕이 왔다고 합니다.”
“보녕?”
온달은 보녕의 이름을 되뇌면서 무슨 일인지 생각을 했다.
설연이 그 이상 말을 못하자 을지무발은 그냥 몸을 일으키려다가 온달을 보고.
“온달 너도 따라와!”
“아....예.”
온달이 당주를 따라가는 모습을 본 오도와 자영은.
“저 녀석 장군들과 인연이 깊어! 맨날 지휘부에 들락날락하자나.....”
“요즘 지휘부로 가서 설장군과 이야기 나누는 저놈 보면 밥맛이 떨어진다니까요.”
자영의 불만에 동기생인 설연과 마위는 순간 얼굴에 미묘한 감정이 퍼져나갔다. 그런 것을 오도가 알아챘다.
“야! 너희 둘은 동기인 온달이 저렇게 관심 받는데도 자존심 안상하냐?”
오도가 말을 하였지만 둘을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 설연과 마위의 모습을 보고는 자영이 말을 이었다.
“제가 볼 때는 저 둘은 평생 온달 졸따구가 될 것 같습니다.”
을지무발과 온달이 들어오자 눈앞에는 자신들의 말객급(연대장) 직속상관인 약간 멍한 눈빛에 연치가 있었다.
“어 온달 또 온 것인가?”
“아... 설무도 장군님께서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온달을 데리고 오라 하셨습니다.”
을지무발 당주는 좀 민망한지 상급자인 연치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설무도장군은 안치보다 하급자인 을지무발을 더욱 총예했기 때문에 연치의 입장이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고작 자위밖에 안 되는 온달까지라니. 연치는 온달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바로 온달은 고개를 잠시 숙었다.
그때 연치와 모든 막사사람들이 갑자기 눈을 막사 입구로 돌렸다.
영주자사의 밀사인 북제 왕족 보녕이 들어온 것이었다.
설무도는 사신이 왕족임에도 그냥 의자에 앉아있었다. 사실 고구려와 북제관계는 사신은 가끔 왔다 갔다 했지만 관계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국내의 반란군, 신라, 백제, 돌궐과 싸운 신미년전쟁을 넘긴 때 다음해 임신년(壬申 양원태왕8년)에 발생한 일 때문이었다. 그 해 고구려는 북제사신 최유라는 작자가 하도 애걸복걸해서 황하로 돌아가기를 원해하는 북위유민 5천호를 내준 일이 있었다. 당시 돌궐, 백제, 신라등 온통 적들에게 둘러싸인 고구려는 북제만큼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가 대세였다. 그런데 그 다음해인 계유년(癸酉)에 북제는 고구려의 은혜를 까맣게 잊고 고구려의 속민이었던 거란을 기습 공격했다.
그 당시 북제주인이었던 고양은 황하지역 통일을 위해서 배후에 세력을 약화시킬 목적으로 거란과 요서를 공격한 것이었다. 최유라는 작자가 왔다간 것도 고구려산하에 거란와의 전쟁으로 고구려와의 관계가 악화되기 전에 북위유민을 빼돌린 작전이었다. 그 때 고구려는 북제의 행동을 보고 기가 막혔다. 고구려와 돌궐과의 치열한 전쟁을 틈타서 북제는 이런 작당을 꾸민 것이었다. 고구려는 결국 상당한 군사들을 고흘장군에게 맡기어서 요해로 출동시켰다. 물론 북제는 고구려군과 거란족랑 좀 싸우다가 돌궐이 쳐들어온다고 해서 부랴부랴 도망 쳤지만 고구려는 돌궐과의 힘든 전쟁 중에 또 다른 곳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 돌궐군은 신미년패전으로 고구려에 입은 손실을 회복하고 또 요해와 요동을 공격한 것이었다.
그 때부터 고구려는 북제하면 악질사기꾼이라는 생각했다. 하지만 고구려와 북제 둘 다 각자에 사정이 있어서 관계를 끊지는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사신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당시 돌궐은 북제보다는 좀 더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후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북제와는 마찰을 자주 일으켰다. 그래서인지 고구려와 북제는 뒤에서 은밀하게 서로를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 믿음은 전혀 안가지만..
한 20대로 보이는 젊은 북제 왕족인 보녕은 설무도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잠시 천정을 보더니 체념한 듯이 말을 했다.
“저는 영주자사 휘하에 있는 고보녕이라고 합니다.”
순간 설무도 휘하 장교들은 술렁였다. 고씨는 고구려의 왕족 성씨기 때문에 북제왕의 성씨가 고씨라고 해도 인정을 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했다. 고구려군의 진중에 있던 보녕은 결국 성을 빼고 다시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동부대인 발안휘하에 위두대형 설무도라고 하나. 고구려말이 유창하고만?”
“어쩔 수 없지요! 영주에서 살면 고구려말도 배워두는 것이 좋을 듯해서...”
온달은 북제 왕족인 고보녕이 이상하게 끌렸다. 그는 수염이 깔끔하지만 눈매가 아주 날카로웠고 단단한 코에 두꺼운 입술을 가져서 전체적으로 투쟁적으로 생기었다.
“뭐라고? 영주자사가 돌궐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이계찰대의 명령에 따라 3일 뒤면 동쪽해안을 따라 올라와서 유성을 공격할 것입니다.”
보녕은 북제의 서쪽 영주일대 세력들이 거의 친돌궐파이기 때문에 이계찰대의 명을 어길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북제 조정에서도 허락한 일이라고 했다. 사실 돌궐의 목간대칸은 북제와 후주를 남방에 말 잘 듣는 아들들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 대로였다. 이 당시 국제 질서에서 열세였던 북제와 후주는 돌궐에게 비단같은 재물과 미녀 심지어는 왕실의 곱게 자란 공주들까지 말 그대로 퍼다 주고 있었다.
순간 설무도휘하 장교들은 북제가 돌궐에게 협력하고 있는 말을 겉으로는 담담하게 들었지만 속으로는 이제는 도저히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나라는 이런 사실을 왜 알려주지?”
설무도의 반문에 북제 왕족인 보녕은.
“알려주어서 나쁠 게 우리에게 있습니까? 어차피 돌궐이 이긴다고 해서 영주(요서)가 우리땅이 되지도 않지 않습니까?”
사실 돌궐군이 이쪽으로 진공한다면 영주 내에 북제 호족들도 날아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고보녕같은 영주 호족들은 친 돌궐파였지만 고구려가 상당히 저항해주기를 은근히 원했다.
하지만 설무도장군은 고보녕을 다른 막사로 보낸 다음에는 모든 당주이상급 장교들이 모이자 바로 요서에서 총퇴각을 명령했다. 몇몇 장교들은 상부의 명령이 두 달 정도 버티라는 것이었으니 방어전을 주장했지만 설무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조정에서 무슨 명령이 와도 그는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절망적인 저항을 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미 이계찰대는 싸우지도 않고 이길 수 있는 수를 잡았다.
“만약 우리가 여기서 머뭇거리면 이계찰대 6만과 서요하를 도하한 돌궐군 4만 그리고 제나라의 군사로 삼면으로 포위되어 궤멸당하는 수도 있다.”
무표정으로 설무도는 오늘밤에 즉시 퇴각 할 것을 명령했다. 그는 이 정도라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였다.
“돌궐군는 약탈품을 챙기기 위해서 유성을 거치고 올 것이니 우리가 후퇴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제의 움직임이 돌궐에게는 혼란이 되어서 우리한데는 좋을 수도 있다. 우리가 요하를 건너서 요동을 갈 때는 눈앞에 4만 병력만 돌파하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요서를 잃은 모든 책임은 위두대형 설무도 내가 질것이다.”
순간 온달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순간 말았다.
‘이계찰대가 유성을 거치고 온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 날 오후 을지무발은 북제 왕족인 보녕을 유성 밖까지 호송했는데 그는 자주 온달을 쳐다보았다. 온달은 그를 보내기 전에 왜 쳐다보느냐고 물었다.
“우리가 재수 없지 않은가?”
“예?”
“아니면 됐고.”
고보녕은 이런 식으로 고구려에 정보를 알리고 방관하는 북제가 어쩠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하지만 온달은 북제가 아군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수가 없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꼭 살아남께. 언제 다시 한 번 보세나.”
보녕은 온달에게 그런 말을 한 뒤에 손을 흔들며 북제 영향력의 지역으로 갔다. 온달은 자신이 손을 흔들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지만 막판에 같이 손을 흔들었다. 가만있는 좀 그래서.
‘뭐야 저놈 혼자서 말다하고 자기가 끝나고?’
솔직히 온달은 그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먼 훗날 온달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고보녕을 다시 만나게 된다.
4일 뒤인 10월 19일 유성을 출발한 설무도군은 요하를 건너기까지 절반정도의 길을 왔다. 역시 3만 명의 고구려군과 고구려계 거란군은 요동에서의 지원을 은근히 기대를 하였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요동에서 군사적 지원이 용의할 것이고 설무도의 3만 명은 안전한 철수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 설무도의 군대는 세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무려라성이 함락되었다고!”
요서의 푸른 초원에서 군 회의 중이던 설무도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지만 휘하 장교들은 놀라움에 경악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온달도 충격을 받아서 탄탄한 얼굴이 하얗게 되었다. 사실 막사 안에 모든 사람들이 얼굴이 하얘졌다. 무려라성은 요하 근처에 있는 요서일대의 성으로 요동방어선의 입구에 위치한 고구려 성이었다.
사건의 시발은 친 돌궐 거란족들 때문이었다. 친고구려계 거란족 15만 명이 요동으로 이동하면서 그 일대 방어 책임자들은 거란족들에 대한 방비가 허술해졌다. 그런 틈을 타서 친돌궐 거란 부족 군사들이 친 고구려거란족에 섞어 있다가 무려라성을 함락시킨 것이었다. 요동지역에서는 거란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는데 그 바람에 요동의 구원군이 올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나쁜 소식은 한순간에 찾아온다고 하던가? 바로 돌궐군에 관한 두 가지 소식이 날아들었다.
“타스리가 이끄는 돌궐 2군 4만이 서요하 도하에 성공하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6만 이계찰대군사가 유성을 거치지 않고 곧장 이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결국 온달의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이계찰대는 유성을 거치지 않고 곧장 설무도부대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그 소식을 듣고 설무도는 말없이 의자에 앉고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야 이거 야단났네! 요동에서는 지원군이 오지 못하고 북에는 타스리 4만이 남에는 이계찰대 6만이 포위하고 있고 동쪽에 무려라성은 거란족 반란군이 점령하고 있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북제가 고구려군을 쫓아오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장교들이 격론을 펼쳤지만 별로 뾰족한 대책은 안 나왔다.
온달은 사실상 안전한 후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요동성을 가는 것은 포기하고 남동쪽인 요하 하구쪽으로 내려가서 요택(요하하구일대에 지대로 당시는 늪지대였다)을 건너서 안시성이나 건안성으로 후퇴해야겠습니다.”
설무도는 을지무발의 말에 그 답지 않게 얼굴이 찌그러졌다. 사실 그는 요하 하구가 아닌 최단거리인 유성에서 무려라 성을 거쳐서 요동성이나 신성으로 후퇴할 생각이었다. 요하 하구로 향한다면 돌궐군에게 추격에 시간을 주는 셈인데다가 요택은 광활한 갯벌지대뿐만이 아니라 요하도 넓고 지류도 3개가 되어서 도하에 어려움이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을지무발의 의견을 안 따를 수가 없었다. 적의 포위망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온달은 막사에 나와서 행군 준비를 하자 설연과 마위가 급하게 다가왔다.
“어떻게 될 것 같나?”
그들도 앞으로 일이 궁금했나보다. 온달은 뭉툭한 한 눈 쪽을 감으며 말을 했다.
“한 판 성대하게 붙을 것 같아.”
2일 뒤인 10월 21일 설무도의 3만 군대는 안시성에서 서쪽으로 150리 지점에서 결국 타스리의 4만에게 따라 잡혔다.
6년 전
단기 2893년 서기 560년 평원태왕 1년 경진(庚辰)년 3월 요동성
돌궐군은 양원태왕 서거를 기회를 잡고 요해와 요동일대에 10만 대군으로 대규모 침공을 했다. 하지만 상승의 명장 고흘장군과 그 심복 연명안과 안수, 설무도 3인방에 의해서 3만의 사상자를 남기고 폐퇴하였다. 이에 총사령관 고흘은 이번전쟁에 공이 있는 장군과 장교들 요동에 있는 성주들을 모아놓고 승전을 축하는 연회를 요동성에서 성대히 열었다.
이번 전쟁에 공으로 대로로 승진이 확실시 되는 안수는 기쁘기는커녕 우울하였다. 그의 가장 친한 동료인 설무도가 고흘장군에 의해 파직 당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람아! 왜 우울한 표정을 지어 이번 전쟁에서 맹렬한 추격전을 펼쳐서 적장의 목을 3개나 딴 사람이.”
안수가 뒤를 돌아보니 이번에 자신이 구상해온 중리부를 조직하고 그 대장인 중리위두대형으로 승차한 연명안장군이 서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이 고구려 최고의 정보장교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아 형님!”
둘이 술잔을 기울이다 보니 안수에 우울한 표정에 이유가 있었다.
“고흘장군님은 정말 너무 하십니다. 왜 이렇게 설무도를 싫어하는 것입니까?”
“말을 가려서 하게나. 술 챘다고 못하는 말이 없는가!”
바로 연명안은 수염이 얼굴의 반을 덮을 정도로 수염이 많은 안수에게 주의를 주었다.
“설무도는 막북까지 적을 추격해서 우리군 포로 만명과 양민 2만명을 대리고 왔습니다. 건국이후 수많은 영웅이 있지만 그 정도로 설무도의 용맹은 그 분들 못지않습니다.”
안수가 전우인 설무도에 파직의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옆에 연명안도 솔직히 고흘장군의 뜻을 모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고흘은 요동일대 성주들과 만찬을 주제 하면서 만찬장의 한쪽 구석에서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연명안과 안수의 얼굴을 보았다.
연회가 끝나자 고흘은 연명안과 안수를 불러 들였다.
“연명안! 아들의 바둑실력이 너를 능가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야!”
고흘의 말에 연명안은 무슨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하다가.
“아! 자유 말씀이십니까?”
하급군인가문출신이지만 뛰어난 정보공작과 계략으로 돌궐에게 붉은 여우라고 불리는 연명안에게는 12살 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자유였는데 태학에서 한 번도 수석을 놓치지 않아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평판이 자자했다.
그런데 연자유에게는 엄청난 경쟁자가 있기로 유명했는데 신미년때 돌궐과의 전쟁에서 적장을 셋의 목을 배고 전사하여 공신으로 책봉된 소형 아무의 장자 강이식이었다. 아무는 하급군인가문이었는데 태자 양성이 그의 공을 높이 사서 강씨성을 그 가문에 하사하였다. 따라서 강이식은 가문의 장자로써 처음 강씨성을 가진 남자였다. 태학의 명석한 두 천재 연자유와 강이식의 수석 경쟁은 평양에서도 유명해서 막 즉위한 태왕 양성께서도 두 자제를 주목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아들에게 바둑을 질꼬! 나에게 한수 배워야 겠구만!!”
긴 흰 수염을 가진 고흘은 서있는 두 장교를 탁자에 앉을 것을 명했다.
이리하여 고흘과 연명안은 바둑을 두게 되었다. 그 옆에 앉은 안수가 약간 우울한 얼굴로 둘의 바둑을 보았다. 한참 있다가 연자유는 좌변에 있는 고흘의 흰 집을 주목하였다.
좌변에 작지만 공을 들여서 쌓은 그 집
그렇지만 그 집에는 두 수만에 제압당하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연명안은 함정인가 생각을 했지만 후에 몇 십수를 생각해도 도저히 함정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장군님의 실수! 그럼 놓치지 않겠다.’
연명안은 좌변에 흰 집의 급소를 놓았다. 다음 그가 수를 둔 다면 집은 죽을 것이다.
“아이고 이것을 생각을 못했구먼. 쯧쯧”
고흘장군의 말을 들으면서 안수는 장군님은 좌변의 집을 당연히 포기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흘은 이번 수를 좌변의 죽어가는 집에 흰 돌을 두었다. 만약 다른 곳에 두었다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
연명안은 순간 고흘장군님께서 이길 생각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것을 확인 해겠다는 생각에 그는 좌변의 집에 쇄기를 박았다.
고흘은 바로 죽은 좌변에 또 돌을 두었다. 그러자 연명안은 바로 바둑돌을 놓았다. 안수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고흘장군님의 얼굴을 보았다.
“왜 안 두느냐?”
고흘의 말에 연명안은 눈을 잠시 돌리더니 말을 올렸다.
“장군님께서 두신 바둑판에는 저희에게 깨우쳐주시려는 뜻이 담기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 두고 가서 편히 자거라.”
고흘장군은 좌변에 또 흰 돌을 올려놓았다.
“장군님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연자유는 바로 장군의 즉답을 원했다. 안수 또한 50년 동안 전쟁에서 달련된 강철 같은 얼굴을 가진 고흘장군의 입을 쳐다보았다. 고흘은 바둑돌을 놓으며 천정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하였다.
“설무도의 병법과 지략은 국상 명립답부를 능가한다.”
신대왕때 명립답부는 후한대군을 좌원에서 전멸시킨 고구려 최고의 무장이시었다. 그런 분을 설무도가 능가하다고 평하시니 이보다 높은 평가가 없었다. 그럼에도 고흘장군의 입에는 설무도의 칭찬이 계속 이어졌다. 장군의 말이 끝나자 성격 급한 안수는 못 참고 말을 하였다.
“장군님 그렇게 설무도를 높이 평가하시면서 왜 그를 파직하셨습니까?”
“그러나 그가 전쟁을 주도하면 이 바둑판처럼 되기 때문이다.”
고흘장군님의 말씀에 연자유와 안수는 서로를 쳐다보고는 의야 해 하였다. 하여간 고흘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아무리 바둑을 잘 두어도 모든 돌을 살릴 수는 없다. 가슴에 아픔을 묻고 죽이는 돌도 있어야 승리를 할 때도 있는 것이야!”
그제야 연명안와 안수는 장군님의 뜻을 알아차렸다. 사실 설무도는 군 지휘관으로써 너무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하지만 설무도는 아무리 질책을 해도 모든 돌을 살리려 한다. 아무리 병법이 하늘을 통하고 땅을 울린다고 하여도 그것을 절대 불가능하다.”
설무도의 이야기를 하면서 고흘의 얼굴에는 침통함에 슬픔이 가득 찼다.
“연명안 안수 설무도 셋은 군대에서 내가 직접 골라 훈육시킨 자식들이다. 그 자식중에 가장 귀여워한 막내를 버렸으니 나의 슬픔이 어찌 적겠느냐?”
고흘은 너무 예통한 나머지 탁자를 과악 잡더니 결국 의자에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설무도는 평양으로 소환되어서 다시는 군을 지휘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의 귀에는 설무도의 원망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설무도가 다시 군으로 돌아온다면 부하들을 자기 손으로 다 죽이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고흘은 두 눈을 감았다.
그 후 연명안 장군은 고흘장군을 대대로로 선출하려다가 개혁파의 동지인 고흘의 셋째 고주가 의문사 하는 고통을 겪다가 주씨가문과 4부 귀족들에게 귀향을 가게 되었고
안수는 돌궐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여 제 3관등인 주부까지 올랐으나 이계찰대의 계략에 빠져 죽음을 당했고
설무도는 3년 뒤에 다시 군에 복귀해 야전을 전전하다가 안수의 죽음으로 다시 고흘장군의 부름을 받았다.
다시 6년 후
단기 2899년 서기 566년 영강(永康) 2년 평원태왕 8년 병술(丙戌)년 10월 21일
요하부근 요서
설무도는 돌궐 타스리의 병력을 보고 알 수 없는 흥분감과 분노에 달아올랐다.
“저기 위류장군의 부대이다!”
온달은 순간 병사들의 소리를 듣고 놀라서 뒤따라오는 돌궐군들을 보았다. 위류장군과 2만 병력은 고흘장군님의 후퇴를 돕기 위해서 42만 돌궐군과 가한정에서 격돌하여서 전멸당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온달은 뒤를 보고는 병사들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런 개자식들!”
타르시 4만명의 선봉은 고구려군 위류장군의 포로 그리고 시신, 만 삼천명이었다. 그들은 서로 줄로 꽁꽁 뭇기 어서 돌궐군의 강요로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행군을 거부하면 돌궐군은 바로 참수하였다. 죽임을 당한 시신들은 그대로 동료들과 묶긴 체 땅바닥에 질질 끌려갔다. 그런 식으로 막북에서 4천리를 맨발로 행군해야 되었기 때문에 시신은 피부가 다 벗기어지고 뼈들은 달아서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물론 생존자들도 인간이 아니다. 배고픔과 역병 속에 이미 걸어 다니는 시신이었다. 지옥에 행군을 하면서 그들은 설무도의 부대로 행해 가면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잘려진 시신 조각과 피 그리고 끝없는 고통에 자신을 죽여 달라는 간절한 기원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설무도의 고구려군은 모두 분노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포로들을 구원할 수는 없었다. 오늘내로 요하에 도착하지 않으면 그들은 남에서 올라오는 이계찰대와 북쪽에 타르시에게 포위당해서 전멸을 당할 것이다. 가능한 고구려군은 빨리 요택과 요하를 도하하여 안시성으로 후퇴해야 됐다. 장교들은 분노하는 사병들을 제재시키고 후퇴하라고 하였다. 설무도는 아침에 돌궐군이 어떤 도발에도 행군을 멈추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설무도는 자신의 명령을 이 자리에서 취소하였다.
“전군 행군을 멈추고 진을 펼쳐라! 진은 학익진이다.”
모두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양식적인 설무도장군이 패배가 확실한 싸움을 할 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즉시 설무도 장군을 측근에서 보호하던 을지무발은 장군의 명령에 불복했다.
“장군님 자살행위입니다.”
“을지무발 지금 나에게 항명을 하겠다는 것이냐?”
설무도는 조용한 말투를 언제나 유지했고 남이 있건 소탈하게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온달은 감정적인 장군님의 모습에 지금 그분이 무엇인가에 홀려있는 듯하다 느낌이 너무 들었다.
“장군님!”
“다시 항명의 말을 하면 너의 목을 베고 가겠다.”
설무도는 무표정에 탈을 벗고 분노의 얼굴을 지었다. 그곳에 같이 있었던 온달과 설연은 장군의 본마음을 본 것 같았다. 하지만 을지무발은 장군이 지금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비참한 포로들을 보고 난후에 장군의 머릿속은 지금 이성이 존재치 않았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을지무발은 예전에 냉정한 설무도 장군으로 돌려야 되었다.
“무도야 아직도 고흘장군님께서 너를 버렸는지 모르냐?”
을지무발은 상급자가 아닌 친구로서 그를 불렀다. 설무도는 순간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고흘장군님이 떠올랐다. 위험을 무릅쓰고 포로들을 구출하고는 그에게 돌아온 것은 파직 그리고 방황에 세월이었다. 아버지와 같았던 고흘장군님은 연명안과 안수 둘과 달리 한 번도 자신을 치하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흘장군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도야 제발 전사로써 생각하지 말고 군인으로써 3만 명의 지휘관인 장군으로써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로써 생각해라!”
친구의 말에 분노의 본모습을 다시 감춘 무도는 차분한 눈길로 무발을 바라보고 말을 했다.
“15년에 이 나라가 한수와 동예사람들에게 했던 것처럼?”
설무도의 말을 듣고는 온달은 순간 5살 때 고구려에게 버림받았던 시절이 생각났다. 돌궐과 내란으로 대혼란에 빠져 있던 고구려는 결국 한수와 동예사람들을 모두 신라에 팔아버렸다.
고구려를 위해서
“무발아! 그 때 남기어져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설무도의 말을 들으면서 온달은 옛 기억이 떠올랐다.
“15년 전 나 설무도는 설연을 안고서 홀로 군영을 도망쳤다!”
삼촌의 말에 설연은 고개를 땅으로 떨어뜨렸다. 그때 4살이던 설연 자신은 집에 신라군들이 들이 닥치자 울기 시작하였다. 설무도는 울음소리를 듣고 형님이신 설요고의 집으로 들어가서 조카인 설연을 구했다. 어린 설연은 무서워서 살려달라고 삼촌에게 매달렸다. 조카의 눈물을 보고 설무도는 조카를 안고 형님과 부하들을 버리고 그대로 한수이북으로 도망쳤다. 설연은 그 때부터 삼촌의 명예를 빼앗은 죄인이었다.
“나는 보았다. 신라를 섬긴 아들이 이 나라 고구려를 섬긴 아버지 죽이는 지옥을. 고구려에 충성한 대가는 낙인이고 곧 죽음이라는 것을.........”
장군의 비명을 들은 온달은 순간 얼굴에는 엄청난 슬픔이 가득했다. 15년 전에 어린 시절 부모님들이 고구려에 충성하다가 나라에 버림받고 울면서 추모성왕께 향해서 외친 비명으로 기억났기 때문이었다. 온달의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신라에 저항했던 설요고장군의 부대에 사병으로 있었다. 결국 온달의 어머니는 신라에 충성을 하지 않은 반역자의 아내라는 이유로 끌러 나와서 눈을 잃었다. 그 때 어머니의 울부짖음을 온달은 잇을 수가 없었다. 고구려의 안녕을 위해서 그 것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고 해도 그 것은 절대로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오명이다.
수많은 고통의 세월을 보낸 설무도 장군.
고구려 귀족들은 모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며 백성들을 버린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탐욕에 물들지 않고 그때의 치욕과 비극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귀족들도 있었다.
“나는 다시 버리지 않을 것이야! 저들을 버리고 또 도망가지 않을 것이야.”
을지무발은 여린 얼굴에 설무도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꽉 잡았다.
자신도 백성들 버리고 도망친 사람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문덕아 나의 무운도 여기까지인 것 같다. 꼭 나라에 보탬이 되는 자가 되어라.’
을지무발은 자신의 9살 난 외아들에게 마음속으로 유언을 하였다. 그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들었는지 후일 고구려에 최고의 영웅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장군의 말을 듣고 감동한 고구려의 3만 용사들은 결연히 돌궐군과 맞아 싸우기로 하였다. 솔직히 전우들이 돌궐군에게 저런 대접을 받고 있으니 참고 지나가면 정말 고구려사람들이 아니다. 사실 이 상황을 냉정하게 대처해야 될 장군이 먼저 판단력을 지평선 밖으로 던졌으니 부하들이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에 설무도의 고구려군은 학익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병력은 소수이지만 타르시의 선봉인 위류장군의 포로들을 다치게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병력이나 전력에서 뒤진 쪽이 학익진을 피는 것은 모든 싸움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때 뒤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후방 이계찰대의 8만기병 출현했습니다.”
이계찰대는 역시 유성을 거치지 않고 이곳을 달려 온 것이었다. 순식간에 3만 고구려군은 동쪽으로는 4만의 타르시 서쪽으로는 8만의 이계찰대에게 양쪽으로 막혔다.
순간 고구려군은 당황했지만 설무도의 추상같은 질책에 마음을 가라 안쳤다.
“각개 격파할 것이다. 타르시의 부대를 먼저 공격하고 이계찰대를 상대한다. 전군 진을 갖추어라!!”
진을 갖추는 동안 온달과 설연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서로 말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비극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탄탄한 얼굴과 달리 슬픔이 가득한 표정을 진 온달이 먼저 말을 했다.
“설연아 내 아버지는 너의 아버님이신 설요고장군님의 사병이었다.”
“알고 있어!”
설연의 냉정한 얼굴에는 비장함이 흘렀다. 한수를 위해서 설요고 장군의 오천 용사는 주씨가문의 퇴각명령을 거절하고 오천병사와 함께 신라군에 맞아 싸우다가 전멸 당했다. 하지만 설요고와 오천 용사는 주씨가문에 의해 고구려에서 역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훗날인 지금 역적의 아들들이 죽음의 땅에 서있었다.
“나와 나의 아버지처럼 사나이답게 죽자!”
온달의 말에 설연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 옆에 마위도 있었다.
“가자!!”
마위의 외침에 셋은 서로의 결심을 확인했다.
곧 온달과 설연 마위는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돌궐군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설무도의 3만 고구려군은 모두 미친 불나방처럼 불속으로 가고 있었다.
타르시는 이계찰대의 지시대로 설무도의 부대가 접근하자 위류장군휘하의 포로들은 풀어주었다. 이로써 만여명의 포로들은 설무도 3만 고구려군과 합류하였다. 설무도의 부대는 포로들의 줄을 풀어주고 서로 얼싸안으면서 기뻐했다. 그리고는 고구려군은 자신의 남는 무기를 주어서 함께 타르시의 부대로 달려갔다.
“포로들은 어찌 풀어주셨습니까?”
부관인 부유르가 8만 대군을 이끄는 사령관인 이계찰대에게 물어보았다.
“다 죽어가는 데 가치가 있는가!”
흰 색갑옷을 입은 이계찰대는 자신이 타고 있는 백마를 쓰다듬으며 냉정한 말을 했다.
부유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궐군이 보기에는 죽은 위류장군의 부대는 이미 노예로 팔기에는 값을 낼 수가 없었다. 즉 돌궐군의 학대에 반쯤 죽은 그들은 상품가치가 없었다.
“추장님 그럼 명을 내려주십시오.”
사령관인 이계찰대는 채찍을 들고는 조용히 명을 내렸다.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서 요서에 죽은 돌궐에 자랑스러운 늑대의 원혼을 달래주라!”
설무도군은 필사적으로 타르시의 부대로 달려들었지만 병력숫자에 밀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곧 이계찰대의 10만 대군은 4만 설무도의 고구려군을 완벽히 포위하였다.
다다음주 수요일 오전 8시에 올리겠습니다!
요즘 생업 때문에....
글쓴이 저작권자 김원식
이 소설에서 시나리오 각색 도용 표절을 절대 금합니다.
첫댓글 천천히 하세요 ㅋㅋ. 근데 이계찰대 너무 똑똑하다 -.-;
감사합니다. 제가 봐도 이계찰대가 너무 똑똑한 것이 사실인 것같군요.
아 너무 오랜만이네요. 역시나 재밌는 내용!!!!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하시는군요~
하하 너무 감사합니다. 기대해주시다니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쌓진-> 쌓인...^^ 역시나 기다린 보람이 있습니다. 내용도 내용지만 볼 때 마다 놀라운 점은 군사학에 대한 지식! 나중에 고수전쟁이나 고당전쟁을 쓰시게 되면 온달에서의 설정 그대로 갔으면 좋겠네요.^^ 아, 이왕에 고구려 군주들을 태왕이라 칭한 것 문자명왕도 문자명태왕으로 칭하는 것이 어떨까요?
음 ....... 고민 해야 겠군요 솔직히 명왕이나 성왕에 대해서 제가 아는 바가 없어서 어떻할까 했는 데 한번 고민하겠습니다. 하여간 열심히 하겠습니다
광개토태왕이나 고국원왕도 각각 호태성왕이나 성태왕이라고 불렀으니 무리는 없을듯...^^;; 아니면 제 닉인 명치호태왕??(퍽!)
제가 알아보고 싹 고치게습니다 요즘은 바빠서 가끔 잠깐 접속하는 데 여기만 들어오면 할 말이 많아 집니다. 공부가 되는 데요 아자아자.
아참 다음글 올리는 날은 다다음주 수요일로 바뀌었습니다 그 주 토요일이 정모니까 아예 빨리 올리겠습니다
희소식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