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취해 오십년
임재문
술과 담배는 기호 식품이다. 특히 남성들이 더 호감을 갖는 기호 식품이다. 그러나 나는 담배는 배우지 않았다. 그래도 양심적 고백을 하자면 담배를 피워보기는 했다. 젊은 시절 직장 초기에 회식으로 술을 마시고 이차로 다방에 가면 다방 아가씨가 물려주는 담배를 피워보기는 했다.
또 한참 피시방에 몰입해서 다닐 때 피시방 내 옆자리 아가씨가 담배를 피우면 나도 한 개 줘요 해서 더러 피워보기는 했다. 그러나 습관성은 되지 않았기에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담배 냄새도 싫어하는 사나이가 된 것이다.
술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서른살이 다 되어가는 무렵까지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가끔 회식이 있으니까 그 때부터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술이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리고 만 것이다.
술은 어른한테서 배워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내 맘대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으니 그 술버릇이 좋을 수가 없다. 술에 취하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데 술에 취했다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어야 했다.
그래서 내 주위에 사람들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해도 나는 술독에 빠진 사람처럼 술을 마셔야만 한다. 습관성이 되어버리고 술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총각을 면하고 결혼을 해야 하는데 엄한 아버지 때문에 연애도 봇해 보고 중매 결혼으로 맞선을 보게 되었다. 맞선을 볼 때마다 퇴짜를 맞아야 했다.얼굴도 못생긴데다가 비쩍 말라 비실 비실한 나를 보고 다 도망가기 일수다. 그래서 아예 결혼을 포기하고 혼자 독신으로 살려고 했는데 이모님이 중매를 하시며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맞선을 보게 되었는데 내가 맞선을 본 중에 가장 미녀와 맞선을 보게 되었다.이 아가씨를 놓치면 나는 독신으로 살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온갖 감언 이설로 설득을 해서 결국은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아내 될 아가씨는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독교인에 공무원이 결혼 조건이라고 하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 아버지께서는 교회를 개척하셨고 지금은 장로님이시라고 나도 모태신앙에 독실한 기독교인이라고 술은 전혀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맞선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리하여 결혼에 성공해서 신혼 때 술을 마시지 않고 살아야 했다.술을 그렇게 즐겨 마시던 사람이 갑자기 술을 끊으니 부작용이 올 수밖에 없었다. 신경성 위장병에 소화불량에 그렇지 않아도 비실 비실한 사람이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으니 두손을 번쩍 들고 말았다.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신경성 위장병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다시 왕성한 식욕을 회복한 것이다.
나는 수석을 좋아해서 야근하고 비번 날이면 수석을 탐석하러 다닌다. 그날도 따뜻한 봄날 들판에는 모내기가 한창이라 새참을 내와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소냐 나도 탐석은 뒤로 하고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은 막걸리에 취해서 모내기하는 무논에 빠져버린 것이다. 온 몸에 흙탕물이 범벅이 되어버린 그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아내에게 혼나고 그래도 계속 마셔야만 하는 내 술버릇! 어느덧 술취해 오십년을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나를 아는 사람들이 묻는다. 지금도 논 메고 다니지 않느냐고 나는 대답한다.논을 메고 싶어도 그곳에 아파트가 들어와서 더 이상 논을 멜 수가 없다고, 아내여 미안하다. 술취한 나를 이해해 주어서 더욱 미안하다. 지금은 내가 아내를 설득해서 일주일에 두 번 술을 마신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마신다. 아내는 나를 위해 모과주 매실주 영지버섯주등 담금주를 내 온다. 그래서 나는 술이 좋다. 술 취해 오십년! 인간 백세 세상이니 술 취해 80년을 향하여 달려가고 싶다.한국수필 - 2026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