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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대안은 없다
몇 년간 벼르다가 녹색교회 가입신청서를 냈다. 벼르기를 반복한 이유가 있다. 아직 종이컵과 일회용품도 청산하지 못하면서 녹색교회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그러다가 올봄 종이컵을 교회에서 완전히 퇴출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그 무렵 우리의 의지와 반대로 퇴출이 예정된 종이컵을 횐경부가 계속 사용하도록 결정한 것은 공교롭다.
한 치 앞도 예견하기 어려운 환경정책과 달리, 어쨋든 최소한 요건을 갖춘 끝에 녹색교회 가입신청 서류를 내밀 수 있었던 것은 다행한 일이다. 듣자니 올해 전국에서 감리교회 넷을 포함해 모두 16교회가 참가 신청을 했다고 한다. 실은 자격의 유무를 떠나, 교회가 한 마음으로 참여하려는 그 자체로 첫 걸음이란 의미를 둘 수 있다.
선교회마다 한 사람씩 모여 녹색교회추진위원회(위원장, 김준택 장로)를 구성하였다. 기왕 녹색교회에 가입하는 마당에 조금 더 지혜를 모으려는 뜻이었다. 신청서 작성 과정에서 스스로 녹색교회에 대한 자가 진단을 하였다. 결론은 녹색교회 자격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동기부여가 되었다.
당장 NCC 환경선교위원회와 기독교환경운동연대의 녹색교회 담당자들이 실사(實査)를 왔다. 전문가들은 녹색교회 자격유무를 살피면서, 고맙게도 문턱을 아주 낮추었다. 이를테면 태양광 발전시설이 있는지, 옥상 텃밭이 있는지 따졌다면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주방의 수납장을 열어 보고, 분리수거 실태를 조사했다면 민망했을지 모른다.
다행히 2023년 안양YMCA가 주관한 ‘쓰레기를 줄이는 11가지 생활 습관 만들기’ 실천 활동에서 색동교회가 당당히 1등 한 것은 내세울 만한 자랑거리였다. 모두 안양·의왕지역에서 내노라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대안학교였기에 으뜸상은 남다른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말보다 실천이 부족한 현실의 반영일 것이다.
나름 몇 가지 강조점이 있었다. 우리 교회는 과소비와 낭비가 없다. 교회 실내는 물론 십자가 네온에도 LED를 고집하고 있다. 흔한 현수막은 아예 자리 잡지 못한다. 절기 배너는 천으로 만들고, 순환 사용한다. 14년째 한결같이 걸린 색동조각보는 놀랍지 않은가? 일회용 구호도, 목표도, 장려하는 표어도 없이 ‘즐함우함’(롬 12:15)이란 슬로건을 무한반복 중이다.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비로소 깨달은 것도 여럿이다. 우선 교회마다 있는 승합차가 없는데, 아예 구입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독립된 예배 공간을 장만할 계획은 애초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2022년에 보르네오 섬 밀림 지역에 거주하는 선교사를 위해 태양광 발전과 인터넷 안테나를 지원하였다. 비록 월세를 살더라도, 지난 14년 동안 봄과 가을마다 가난한 이웃의 집수리 봉사를 지속해 왔다. 달마다 공개하는 교회재정은 남 돕는 일만 빼면, 지극히 투명하고 검박하다.
색동교회는 애초에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내일의 집’을 7가지 비전 중 하나로 삼았다. 해마다 창조절(왕국절)을 지키고, 365일 정의·평화·생명 운동을 지지한다. 주일예배를 시작하며 부르는 입례송 중 창조절의 경우 시편(시 85:11-13)에 직접 곡을 붙였다(김민경). 성찬주를 만들고, 첫 성찬주를 씨간장처럼 해마다 이어온다. 성찬 그릇과 식탁용 오병이어 등불받침도 흙으로 빚어 구워냈다. 가정용 1년짜리 천달력을 고난모임에서 해마다 구입한다. 오래 묵은 나무를 재생하여 만든 강대상과 촛대는 예술이란 평가를 듣는다.
벌써 10년 가까운 일이다. 작은교회 박람회 참가를 신청했을 때 주최 측에서 색동교회를 토착화교회로 분류해 두었다. 아마 이름만 보고 그런 성격 규정을 한 모양이다. 목사가 생활한복도 안 어울리는 사람인데 감히 토착화 흉내를 낼 수 있겠냐면서 수정을 요청하였다. 굳이 분류하자면 시절나절 변함없이 ‘젊고 따듯하며 평화로운’ 교회이다.
올해는 지구 평균기온 1.5도를 넘어서는 첫 해라고 한다. 이제 신앙공동체는 녹색교회, 녹색학교, 녹색가정이어야 한다. 녹색의 그리스도인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가 변화에 동참할 때 가능할 것이다. 다른 대안은 없다. 녹색교회 신청서를 완성하면서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