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승하기 전에 내용을 검토하는 편이 좋은 무라야마 담화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일본에 의한 "침략"이었나?
러일전쟁은 일본에 의한 침략이었는가 -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의 베이스가 될 것으로 보이는 무라야마 담화에는, 아무래도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2015년 8월 15일에 발표될 일본의 전후 70년 담화의 내용이 국제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있다. 최대의 초점은 1995년의 전후 50주년 당시에 나온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총리의 담화를, 아베 총리가 어디까지 인용해 반복할 것인가,이다.
"식민지 지배" "침략" "진심으로 사과"는 반복될 것인가?
무엇보다, 주시되는 것은 아베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의 다음 부분을 말 그대로 자신의 담화에서 표명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부분은 다음의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멀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국가정책을 잘못하여, 전쟁의 길을 걸어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빠뜨리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 제국의 사람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 나는 미래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므로, 의심할 바 없는 이 역사의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에 재차 통절한 반성의 뜻을 담아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이상의 표현 속에서 중국과 한국의 정부는 아베 총리가 특히 "식민지 지배" "침략" "진심으로 사과"라는 표현을 그대로 반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편, 아베 총리는 무라야마 담화를 "전체적으로 역대 정권과 마찬가지로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21세기에 걸맞는 미래 지향적인 담화를 발표하겠다"고 강조해, 반드시 무라야마 담화의 표현 자체를 반복하는 것은 하지 않겠다는 자세도 보이고있다.
국제적인 규칙과 규범에 따라 행해진 "병합"
하지만, 여기에서 일본국민이 다시 물어야 하는 것은,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부분의 정확한 의미다. 검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과거 한때 국가 정책을 잘못해" "전쟁의 길을 걸어'' "식민지 지배와 침략" "진심으로 사과" 등의 키워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라고 하면, 대만이나 조선의 합병을 말한다. 그외에는, 문자대로의 "식민지 지배"라고 부를 수있는, 다른 지역의 장기적이고 제도적인 통치는 아니다.
한국은 일본의 조선병합을 비난해 지금도 일본을 몰아세우고 있지만, 일본이 조선반도를 합병하기에 이르른 것은, 러일전쟁이 직접적인 계기였다. 일본의 조선반도 병합은 1910년의 한일 병합조약의 결과다. 이 협약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가 원인으로 되어있다. 중국 땅에서 조선 반도로 남하 공세를 펴고 있던 제정 러시아를, 일본이 조선에서 배격한 것이다.
덧붙여서, 일본의 대만 병합은 청일전쟁의 결과였다. 일본이 당시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겨, 1895년의 청나라와의 강화조약, 즉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청나라에게 대만 할양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조선반도도 대만도, 당시의 국제적인 규칙과 규범에 따라 일본에 병합된 것이다.
일본의 대만이나 조선의 통치는, 구미 제국의 당시 아시아 지역의 식민지와는 다른 동화정책의 추진이라고 할 수있다. 그러나 동화당하는 측에서 보면, 억압과 탄압이었던 것이 된다. 어떻게 하더라도 일본의 "식민지 지배"라고 여겨지게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의 행동도 "잘못된 침략"?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해서, 무라야마 담화의 해석으로 돌아가자. 의문이 몇 가지 제기된다.
청일, 러일 양 전쟁도 "국가 정책을 잘못한 전쟁"이며, 대외적인 사과의 대상이 되는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 이란 대만병합, 조선반도 병합을 가리키는 것인가?
"멀지않은 과거의 한 시기" 란 청일, 러일 두 전쟁이 일어난 메이지 시대를 포함 하는가?
이상의 세가지 점에 대한 답변은, 무라야마 담화를 그냥 읽는 한, 확실히 예스라고 할 수있다. 즉, 무라야마 담화는 청일, 러일 두 전쟁은 일본에 있어서 "국책을 잘못한 전쟁"이며,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국책을 잘못한 침략 전쟁" 이었다고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일본의 국민적 합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단정에 반대의견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원래 2차 대전 후의 도쿄재판(극동 국제 군사재판)에서도, 일본의 "침략"으로 여겨진 행동은 1931년의 만주사변 이후 뿐이었다. 이른바 "평화에 대한 죄"였다. 이 재판의 판결에는 일본이 "침략전쟁" 을 위해 "공동모의" 를 한 시작을 1928년이라고 판단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1928년은 "쇼와 3년", 1931년" 은 "쇼와 6년"이다. "침략"으로 여겨진 일본의 행동은 모두 쇼와 이후이며, 메이지 시대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무라야마 담화는, 분명히 메이지 시대의 일본의 행동도 "잘못된 침략" 이었다며 사과했다.
맑스 - 레닌주의의 역사관으로 담화를 발표
이 점에 대해, 무라야마 씨는 담화를 발표한 1995년 8월의 기자회견에서, "국책을 잘못한 전쟁" 이 어느 시기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인가를 질문받고, "어느 시기가, 어떤 것이다 라는 것을 단정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은 적당치 않다"고 대답했다. 담화는 역사적인 문헌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서이기 때문에,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시기를 특별히 한정할 필요는 없다, 라고 밝힌 것처럼 알 수 없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무라야마 담화를 어떻게 읽더라도, 청일전쟁도 러일전쟁도 침략으로서 비난해 사과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메이지 시대 초기부터의 일본의 대외행동을 침략으로 보는가, 아니면, 아시아에서 식민지 지배를 오랫동안 계속해 온 구미 열강의 위협에 대항하는 자위의 행동이었다고 볼 것인가. 조심스레 말하자면, 일본의 국민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의 대외행동을 제국주의적 침략과 팽창이었다고 단정하는 맑스 - 레닌주의의 영향 하에있는 중국 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의 오래 전부터의 역사관이다. 무라야마 씨가 소속되어 있던 구 일본 사회당도 같은 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무라야마 담화의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점을,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지금이야 말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