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조선왕조건국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리면서 위화도회군에 대해서는 이성계의 계획된 역심이었다라는 식으로 비난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시각을 설명하고자 할 경우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만일 이성계가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역성혁명을 일으키려고 생각했다면 애시당초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최영의 요동정벌에 철저히 협조찬동하는 척 했서야 정상입니다.
그리해야 회군을 해서 조정을 뒤집어 엎을 기회가 보다 수월하게 생기게 되죠.
하지만 그는 애시당초 요동정벌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만일 그의 생각대로 요동정벌이 없었다면 당연히 위화도회군도 없었슬 것이고 조정을 뒤엎는 구테타는 일어날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다면 그가 역심을 품고 역성혁명을 시도하려고 했다라는 논리는 성립할수가 없죠.
또 최영의 실수이기는 하지만 최영이 평소 이성계의 야심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을 했슬지입니다.
어떤이는 최영이 백전노장인데 상대방 심리를 못 알아보겠느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이성계이 역심을 운운하는 입장에서는 최영의 이성계에 대한 심리간파문제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했다라는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성계의 평상시 역심을 인정하려고 한다면 그만큼 최영은 그것을 간파못한 어리석은 위정자가 되어 버립니다.
즉 이성계의 역심으로 인한 회군가능성 하나 제대로 간파못했스니 그에 대한 책임은 최영이 전적으로 감당해야 하고 최영에 대해서는 비판을 퍼부어야 할것입니다.
하지만 이성계를 역적이라고 욕을 하면서 최영을 똑똑한 장수라고 치켜세운다라는 것은 도저히 앞뒤가 맞지않는 모순된 말이라고 봅니다.
첫댓글 일리있는 말씀이네요.
언제부터 역심을 품었는가가 핵심아닐까요?
처음부터 전쟁의 승패를 스스로 판단했던 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최영에게 회군요청을 한 것이겠지요. 이는 위화도에서 이미 전진을 안하고 대기했을 때부터 최영이 수락하면 회군하고 거부해도 회군한다는 결정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회군할 때도 역성혁명은 생각안했던거 같습니다. 조민수는 창왕을 세울려고 할 때 이성계는 현명하고 덕있는 이를 세울려고 한 것만 봐도 ...단지 정치적 견해가 맞는 왕을 원했던 것같고 창왕이 세워질 무렵부터 욕망이 싹트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입니다. 위화도 회군 이전에 이미 역성혁명을 꿈궜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위화도 회군 때에도 거기까진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우왕과 최영을 숙청하여 견해가 맞는 군주를 세우는 정도의 생각이었겠지요. 정몽주 등 훗날 역성혁명에는 반대하는 듯 보이는 자들도 이런 이성계의 쿠데타에 동조한 것을 보면, 위화도 회군 및 쿠데타 당시의 이성계에게 역성혁명의 의지가 아직 없었거나 설사 있었더라도 아직 표출할 단계는 아니었겠지요
고려사와 태조실록은 조선왕조의 시각이 내포되어 있죠. 이성계의 역심을 의도적으로 감추고자 요동정벌 출정 이전에 사대불가론을 내세운 것처럼 각색했다고도 볼 수 있죠. 조선왕조의 기간동안 유일한 업적은 세종대왕의 "한글"창제가 유일함...
너무 조선왕조를 폄하하시는 건 아닌지. 저 또한 조선을 그리 좋은 시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만 조선 왕조의 유일한 업적이 한글 창제 하나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태도가 아닐련지요.
조선왕조는 시작부터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긴 했지만 역사상 가장 살기 좋고 백성들을 위하는 유래없는 국가였습니다. 외국 전제왕조나 국가와 비교를 해보세요. 왕이 백성을 우습게 아는것 자체를 쓰레기 취급하던 나라였죠. 행정제도나 각종 제도들도 고도로 발달되어 있었구요. 일본이 심어놓은 식민사학에 의해 찌질한 나라로 인식하는 후손들의 태도가 한심한거죠. 실록이나 위궤 자체가 퀄리티를 증명합니다. 이 두개만으로 조선은 이미 설명되었다 보여지네요.
물론 왕같지 않은 왕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조선은 말기를 제외하곤 그 당시의 수준에선 백성을 가장 깊게 생각한 나라가 아니었나 싶네요. 긍정적인 모습도 한번 살펴보시면 조선이 정말 생각외로 괜찮은 나라였다고 느껴지실 겁니다. 물론 자주성이나 사대.국방의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입증 불가능한 '의도'가 언제부터 존재했는가를 따지는 건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봅니다. 이성계가 설사 어린 시절부터 역성혁명의 꿈을 갖고 있었더라도 그걸 이룰 수 있는 세력과 힘이 없다면 그건 그냥 망상에 불과할 뿐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별 의미없는 것이 됩니다. 과연 위화도 회군 이전의 이성계에게 그 정도의 역량이 존재했는가 생각해 보면 긍정적 답변이 나오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특히 후대 왕을 세우는 데 있어 이성계와 조민수 간의 의견대립이 있었는데도 조민수의 뜻대로 창왕이 선 것을 보면 위화도 회군 무렵에 과연 이성계가 압도적인 정치적 힘을 갖고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리고 조선은 나름대로 훌륭한 국가입니다. 조선 말기에 근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한 것이나 임란 등 전쟁에 잘 대비하지 못한 것은 분명 비판받아야 하나 조선이 업적이 없다고 볼 만한 나라는 아닙니다. 대단한 군사적 또는 과학적 성과나 특수한 발명이 있어야지만 업적이 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조선의 제도는 그 시대수준에서 볼 때 괜찮은 편에 속합니다.
군사적 과학적 업적이나 성과측면에서 세종때에 이미 탁월한 성과를 낸 적이 있습니다.
회군의 의미를 너무 축소해서 생각하는건 아닌지..우왕과 최영이 이성계가 진군을 멈추자.얼마나 독촉하였는지..또한 회군을 했을때 칼을 버리라는 우왕의 글도 있었는데...우왕과 최영입장에선 그 당시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출동가능한 인원중에 선발하여 최정예부대를 주었는데 회군하여 고려국왕에게 총칼를 겨누었는데..일시적인 충동일련지..1383년 이때 정도전은 어떠한 명함도 없이 신진사대부라는 이유로 이성계와의 만남이 이루어졌고..정도전, 정몽주와의 교류..정도전을 추천하여 고위직에 오르게 했을뿐만 아니라..위화도 회군했을때..조직적인 일부 신진시대부의 움직임을 연관해서 생각해 보심이..ㅎㅎㅎ
최영장군은 1388년에 이인임 일파을 이성계와 손잡고 축출하였는데...최영입장에선 이성계는 그야말로 촌뜨기..고려난민과 여진족을 지지기반으로 하고.그야말로 중앙에 연고도 없는 촌뜨기가 수문하시중인 신하로써 2인자인데도 아웃사이더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는 움직임을 하는데 왜.경계를 해야 하는지....최영입장에선 콧웃음을 쳤겠죠..ㅎㅎㅎ..이성계 입장에선 회군하여 왕조 밑에서 권력을 잡아봤자.무인정권기 처럼 일시적일 수 밖에 없다는걸 누구보다 당시의 이성계는 알았을텐데요..역성혁명을 마음속에 작게나마 품지 않았다면 위화도 회군은 없었을 겁니다.체계적인 4불가론은 후대에서 정립한것이고.그 당시엔 큰 의미는 없습니다
조선은 양반만 살기좋은 나라 ;;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