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죽어서도 돈을 번다. 살았을 때보다 죽어서 더 많이 버는 사람도 있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이게 바로 ‘이름 값’이다. 미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최신호에서 ‘가장 많이 버는 죽은 사람들 톱 10’을 발표했다. 올해 4회째다. 연간 최소 500만달러씩 돈을 버는 고인(故人)들이 조사 대상이다. 최근 몇달 내에 숨진 맬론 브란도, 에스티 로더 등은 올해 조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죽었는데 어떻게 돈을 버냐고? 죽은 사람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은 뮤지션의 음악과 사진을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다운로드 받고, 죽은 작가의 저서를 사다 읽으며, 죽은 배우가 나오는 DVD를 구입한다. 그들이 남긴 유무형적 유산을 죽었다고 해서 향유할 수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 것인가.
1위는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 (4000만달러)
고금을 막론하고 'King of Rock 'N Roll'로 통하는 엘비스 프레슬리는 포브스가 조사를 시작한 이래로 한번도 변함 없이 1위로 군림해 왔다. (The king is dead. Long live the royalties!) 1977년 심장마비로 사망한 엘비스는 지난 해 자그마치 4000만달러(약 500억원)를 벌었다.
그가 남긴 히트곡은 'Love me tender' 'Are you lonesome tonight' 'Can't Help Falling In Love with you' 'Don’t Be Cruel' 'Hound Dog'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 '프랭키와 쟈니' '러브 미 텐더' 등 여러 영화에도 출연했다. 게다가 이제 그가 남긴 노래들을 소재로 한 뮤지컬까지 만들어졌으니 이변이 없는 한 내년에도 흔들림 없는 1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4위가 모두 지난해와 순위가 같다. 하긴 다 죽은 마당에 이제 와서 2등 귀신이 1등 귀신 추월하기가 어디 쉽겠는가.
2위는 ‘피너츠’ 만화가 찰스 슐츠 (3500만달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강아지 ‘스누피’ 캐릭터를 만들어낸 만화가. 그는 더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지만, 그가 지금껏 그린 만화들은 지금도 전세계 2400개 신문에 연재되고 있다.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을 비롯한 ‘피너츠’ 캐릭터들은 지금도 TV시리즈, 캐릭터 상품, 기업 CF 등으로 숱하게 쓰이고 있다.
3위는 영화 ‘반지의 제왕’의 원작 소설가 J. R. R. 톨킨 (2300만달러). 영화 ‘반지의 제왕’은 물론이고 ‘반지의 제왕’과 관련된 인형, 게임 등 모든 캐릭터 상품이 톨킨에게 로열티를 지불한다. (‘반지의 전쟁’ 시리즈로 영화사 뉴라인시네마가 번 돈은 30억달러에 달한다) 영화 때문에 뒤늦게 소설 '반지 전쟁'도 다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4위는 비틀스 멤버 출신 가수 존 레넌 (2100만달러) 역사상 가장 많이 리메이크 되는 밴드인 비틀스의 멤버로서, 또 솔로 가수로서, 그의 신화는 세기가 바뀌어도 멈출 줄 모른다. 광팬의 총격으로 어이없이 세상을 뜬지 어언 24년. 우리나라에서도 레넌의 목소리를 라디오에서 듣는 것은 물론, 그의 음악이 깔리는 영화와 CF만도 한 해에 수차례씩 볼 수 있다. 내년에는 ‘레넌’이라는 이름의 뮤지컬도 개막한다.
5위는 동화 작가 테오도르 ‘닥터 수스’ 가이젤 (1800만달러) 그림동화 ‘모자 쓴 고양이’의 작가. 우리나라에선 덜 알려졌지만 이 고양이는 두편의 영화와 TV영화, 캐릭터 상품, 테마 파크 등으로 만들어졌을 만큼 서양 아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책도 많이 팔렸지만, 작가가 부자가 되기 위해 꼭 책이 많이 팔릴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게다가 가이젤의 부인 오드리는 영화 수익의 5%라는 큰 몫을 떼어왔을 정도로 ‘뛰어난 협상가’로 알려져 고인이 된 남편을 부자 리스트에 올리는 데 한 몫을 했다.
6위는 영화배우 마릴린 먼로(800만달러) 신세대들 가운데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비비안 리 젊은 시절 얼굴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매릴린 먼로 얼굴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이(36)보다도 오랜 시간(42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섹스 심벌’이다. 그만큼 지금까지도 그녀의 ‘이미지’가 많이 팔리고 있다는 얘기다. 먼로의 재산을 관리하는 회사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새로 계약을 맺은 파트너사만도 150개에 달한다.
7위는 비틀스 멤버 조지 해리슨 (700만달러)
‘아니 비틀스 멤버 중에서 폴 매카트니보다 조지 해리슨이 먼저 뽑히다니?’ 하고 의문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 리스트는 ‘죽은 사람들’ 대상임을 잊지 말자.
리드 기타인 조지 해리슨이 작곡이나 노래로는 비틀스에서 기여도가 낮을지 몰라도, 비틀스 앨범이 팔릴 때마다 로열티의 4분의 1이 정확히 해리슨에게 돌아간다. 비틀스가 해체된지 30년이 지났지만 지난해에도 비틀스 앨범은 900만장이나 팔렸다.
8위는 작곡가 어빙 베를린 (700만달러)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엔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스가 되지 못할 바에야 캐롤 남기는 게 최고다. 매년 크리스마스만 되면 팔리고 거의 매년 새로운 가수에게 리메이크 되니까. ('어바웃 어 보이'의 백수 청년 휴 그랜트가 평생 직장도 없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기억하는가? 바로 할아버지가 만든 캐롤의 로열티다!)
매년 연말이면 전세계에서 흘러나오는 캐롤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국가적 중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불리우는 미국인의 애창곡 ‘갓 블레스 어메리카’의 작곡가인 어빙 베를린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뉴욕 거리에서 동전 몇푼을 구걸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던 가난한 이민자였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음악은 이제 ‘어메리칸 뮤직’을 정의한다고 일컬어진다.
9위는 레게의 전설 밥 말리 (700만달러) ‘I Shot The Sheriff’ ‘No Woman No Cry’를 부른 자메이카 출신 레게 가수. 80년까지 10장의 앨범을 냈으며, 1981년 사망한 뒤 3년 만에 나온 그의 히트곡 모음 앨범은 2000만장 넘게 팔렸다. 음악 뿐 아니라 헤어 스타일로도 ‘레게의 전설적 스타일’을 구축했다.(‘레게’라는 이름은 자메이카 토속음악에서 나왔다)
10위는 작곡가 리처드 로저스 (650만달러) 줄리어드 음대의 전신인 맨해튼 음악학교 출신. 대본작가 겸 작사가인 오스카 해스타인 2세와 콤비를 이뤄 ‘오클라호마!’ ‘남태평양’ ‘왕과 나’ 등의 뮤지컬을 작곡했다. ‘도레미 송’ ‘에델바이스’ 등 주옥같은 노래들을 담은 ‘사운드 오브 뮤직(1959)’은 이 콤비의 마지막 작품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고전이 됐으며 줄리 앤드류스 주연으로 영화화된 작품도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남았다. (사진 출처는 포브스)
스티브 잡스가 남긴 10가지 혁신 제품
애플의 공동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5일(현지시간) 사망함에 따라 그의 명성을 드높이게 한 제품들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잡스는 엔지니어어로서 정규 과정을 받지는 않았지만 200여개에 달하는 미국 특허권에서 발명가로 등재돼 있다. 고인의 지시로 개발된 주요 제품을 살펴보자.
1. 애플1(1976): 애플의 첫번째 컴퓨터 제품으로 생산대수는 많지 않았다. 애플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이 설계했고, 잡스는 펀딩을 주도하고 마케팅을 맡았다.
↑ 1977년 소개된 애플2
2. 애플2(1977): 초창기 성공을 거둔 개인용 컴퓨터 중 하나이다. 애플2는 엔지니어 등 특정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설계됐다. 생산라인은 1993년까지 유지됐다.
3. 리사(1983): 팔로알토에 있는 제록스의 리서치센터에서 영감을 받아 잡스가 개발에 나선 컴퓨터이다. 마우스로 작동되는 아이콘, 윈도우, 커서 등이 장착된 그래픽유저인터패이스를 갖춘 첫번째 상업용 컴퓨터이다. 오늘날 컴퓨터 인터패이스의 기본이 되는 제품이다. 하지만 가격이 비싸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리사는 잡스가 총각이던 23살때 태어난 첫 딸의 이름이다.
4. 맥킨토시(1984): 맥킨토시는 리사처럼 그래픽 유저인터패이스를 갖췄다. 가격도 싸고 속도도 빨랐다. 제품 광고가 쏟아진 뒤 소비자들은 그래픽 인터패이스가 설계에 얼마나 유용한지를 깨닫게 됐다.
5. NeXT컴퓨터(1989): 애플에서 물러난 잡스는 강력한 워크스테이션 컴퓨터를 제조하는 회사를 운영했다. NeXT컴퓨터는 많은 대수가 팔리지는 않았지만 세계 최초의 웹브라우저가 이 컴퓨터에 맞춰 만들어질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는 또한 오늘날 맥킨토시와 아이폰의 운영체계(OS)의 기초가 됐다.
6. 아이맥(1998): 잡스가 1996년 애플에 복귀했을 때 애플은 PC 시장의 몰락과 함께 침몰하고 있었다. 아이맥은 애플의 몰락을 반전시킨 첫번째 제품이었다. 아이맥은 전세계 시장에서 인터넷의 혜택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서 최초의 홈컴퓨터로서 큰 주목을 받았다.
↑ 2001년 출시된 아이팟
7. 아이팟(2001): 아이팟은 하드드라이버를 갖춘 최초의 디지털 음악플레이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초의 성공 모델이었다. 휴대용 전자기기로의 애플의 확장은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이팟의 성공으로 아이튠즈와 아이폰이 등장할 수 있었다.
8. 아이튠즈 스토어(2003): 아이튠즈 스토어 전에는 디지털 음악을 구매하는 것은 골치거리였다. 사람들은 주로 불법으로 음악을 내려 받았었다. 아이튠즈는 모든 음악 라벨에서 트랙을 모았고 내려받는 과정도 단순화시켰다. 아이튠즈는 2008년 미국에서 최대의 음악 소매점이 됐다.
9. 아이폰(2007): PC 시장에 맥킨토시가 있었다면 휴대전화 시장에는 아이폰이 있다. 아이폰을 통해 애플은 현재 세계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또 아이폰은 거의 모든 스마트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0. 아이패드(2010): 애플을 포함한 십여개의 컴퓨터 기업들이 아이패드에 앞서 태블릿PC를 생산했다. 하지만 어느 한 제품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아이패드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카테고리를 만들어냈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 에 관해 별 관심이 없어서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애석하게 췌장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가 너무 안쓰러워 이제야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네요. 국악사랑s님의 짧고 간단한 인포메이션, 그를 아는데 적절한 도움이 됐네요. 죽어서 유령이 돼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 열사람도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한데, 재밌는 것은 마릴린 먼로가 비록 죽어서도 떼돈을 벌망정 살아서 행복했을까요? 그녀가 그닥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은 별로 안해 봤네요. 개인적으로 이 보라돌이는 먼로를 좋아합니다. 그녀의 편안한 눈빛이 너무나 위로가 되니까요. 세계의 많은 남자들에게 위안을 주었을 그 눈빛..
첫댓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10월인 것 같습니다.
잡스 당신의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하겠습니다.
당신의 창업정신과 살아 생전의 말씀이 어록이 되어 저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그 유명한 '스티브 잡스' 에 관해 별 관심이 없어서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애석하게 췌장암으로 짧은 생을 마감한 그가 너무 안쓰러워 이제야 그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네요. 국악사랑s님의 짧고 간단한 인포메이션, 그를 아는데 적절한 도움이 됐네요.
죽어서 유령이 돼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 열사람도 아주 재밌게 봤습니다.
한데, 재밌는 것은 마릴린 먼로가 비록 죽어서도 떼돈을 벌망정 살아서
행복했을까요? 그녀가 그닥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은 별로 안해 봤네요.
개인적으로 이 보라돌이는 먼로를 좋아합니다.
그녀의 편안한 눈빛이 너무나 위로가 되니까요.
세계의 많은 남자들에게 위안을 주었을 그 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