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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시 42:1-5)
할렐루야!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나온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은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고 말씀하셨습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눈이 바라보는 곳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가리켜,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후 4:7)고 말했고, 베드로 사도도,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벧전 2:4)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곳, 우리의 눈이 바라보는 곳, 우리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보배요, 보물이신 예수님이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사 33:6)고 선포했습니다.
보배이신 우리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보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낙심되고 불안한 일들이 계속되어지고 이 때에, 오늘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하나님은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일이 없을 때, 모든 일들이 순리대로 돌아가고 있을 때, 평안할 때, 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지 않았을까요?
시편 기자가 하나님과 끊임없는 교제를 유지하고 있었더라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이렇게까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하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누리고 있었을텐데, 하나님의 품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었을텐데,...
왜 우리는 바른 길이 아니라, 어그러지고 잘못된 길로 가서, 방황하고, 힘들어 할까요?
왜 우리는 우리의 최고의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을 멀리 하여,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까요?
왜 우리는 스스로 어둠 속에서 헤매며, 낙심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탄식하는 일을 자초하게 될까요?
어쩌면, 항상 하나님 곁에 있었더라면, 하나님 편에 서 있었더라면, 하나님을 찾았더라면, 다급하게 하나님을 찾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거나 떠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 일 없을 때, 평안할 때, 항상 하나님을 찾고 찾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그렇지 못할지라도, 다급한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을 때에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하나님을 부를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치 히틀러에 맞서 싸웠던 본 회퍼 목사님은 “여러분은 쌀쌀한 가을밤 숲속에서 크게 울부짖는 사슴의 울음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는지요? 뭔가를 갈망하는 그 울음소리에 숲 전체가 떠는군요. 1절에서는,한 사람의 영혼이 이 땅의 재물이 아닌 하나님을 찾아 그렇게 울부짖습니다. 한 경건한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옮겨진 채 구원과 은혜의 하나님을 그리워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압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울부짖습니다. 그는 일찍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가까이 계심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허공에 대고 외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자기의 하나님을 부릅니다.”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하나님, 내 영혼 안에서 당신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일깨우소서. 당신은 나를 아시고, 나는 당신을 압니다. 나를 도우셔서, 당신을 찾고 발견하게 하소서. 성실하신 하나님, 돕는 이들을 도우소서. 불안과 난관 속에서 도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당신의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세상과 모든 죄와 악마에 맞서는 아이입니다”
여러분! 아무 일이 없을지라도, 항상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설령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게 되더라도, 다급한 일을 만나면,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항상 우리 곁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울부짖음도 들으시고,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 할까요? 목마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다급하게 하나님을 찾게 될까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목마름을 채워 주실까요?
오늘 읽은 시편 42편은 아마도,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다윗이 썼을 것입니다.
사슴은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하고, 다윗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합니다.
다윗은 “내 영혼이 내 왕권과 유다 나라의 영화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왕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애석해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궁정이나 뜰이나 곳간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궁전에서 추방당했다고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다윗은 그런 것들에는 그 어떤 미련도 없습니다. 그는 그런 불편한 부귀영화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 만날 수 있다면, 그런 것들은 영원히 다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여겼습니다.
다윗은 베들레헴의 우물을 그리워하지 않았고, 샤론의 장미나 골짜기의 백합화로 인하여 탄식하지도 않았으며, 갈멜의 아름다움이나 레바논의 영광을 보고 싶다고 부르짖지도 않았습니다. 그의 유일한 탄식의 대상은 그의 생명의 하나님, 그의 놀라운 기쁨이신 하나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길을 잃은 어린아이가 울며불며 부모를 찾듯이, 다윗은 그렇게 울며불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다윗은 길을 잃고 우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결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는 다시 예루살렘에 있는 성막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예배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했습니다, 그의 부르짖음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대상 16:11)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항상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사모하십시오.
3절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사슴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풀이 있는 들판이나 그늘진 숲을 원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냥개에 쫓겨서, 죽을 힘을 다하여, 도망치느라, 기진맥진하여, 더운 열기가 온 몸에서 발산되어 나오고, 목이 타들어 갈 때, 지금 당장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풀이 있는 들판이나 그늘진 숲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슴은 오직 한 가지, 시냇물을 갈급했습니다.
1절의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라는 말의 다른 번역본을 보면, “시냇물을 찾는 사슴이 갈증 속에서 헐떡거리며 울부짖듯이”, 또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울부짖듯이”로 되어 있습니다. 사슴은 원래 소리를 잘 내지 않지만, 지금은 끔찍한 고통 속에서, 시냇물을 찾아다니며,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7절을 보면, 다윗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하여,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나도 힘든 형편입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어찌해야 할지, 캄캄할 뿐입니다.
사슴은 언제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다윗은 언제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요? 언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요?
다윗을 추격하는 무리들은 다윗에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라고 묻습니다.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우리의 죄와 허물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 외에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죽음 가운데서 우리의 생명이 되셨고, 죄 가운데서 우리를 용서하는 분이 되셨고, 고통 속에서 우리를 돕는 분이 되셨으며, 전쟁 속에서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
마틴 루터는 “누군가 여러분에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가리키며, ‘예수님이야말로 바로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본 회퍼는 “다른 목표, 곧 행복 찾기를 추구할 사람은 추구하라지. 내 마음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추구할 테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십니다.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바로 내 안에 있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슬퍼하고, 어찌하여 내 안에서 그리도 불안해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자기 얼굴을 보여주시며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련다.”
본 회퍼는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슬퍼하겠는가? 내가 여전히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데, 누가 내게서 그분을 빼앗으려 하겠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믿음 안에서, 나에게 두신 하늘을, 누가 내게서 강탈하려 하겠는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누구도, 본 회퍼에게서, 예수님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추적해보면,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습니다. 수많은 위협으로 죽음의 위기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이 절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영혼이 여호와 하나님을 소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살다 보면, 낙심되고, 불안해하는 일들이 어디 한 둘입니까?
몹시 기대했던 일이 한 순간에 어그러지기도 합니다. 남들보다 열심히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뒤쳐진다고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산불로 삶의 터전이 불타버릴 수도 있습니다. 전세 사기를 당해, 쫓겨날 수도 있습니다. 물질의 큰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는 말은 “하나님을 바라라”, “하나님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급하고 위급한 일을 만났을 때, 낙심되고 불안한 일이 터졌을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29:1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평범한 날들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있어야 하고, 낙심되고 불안한 일을 만났을 때에도, 하나님을 찾는 갈급함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27:8절을 보면, 다윗은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쫓김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하고 불안해 하는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그때, 우리는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 62:5-7)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여러분! 항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모른 척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가장 좋은 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때, 그 날은 반드시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그 날을 기다리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오직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주님만 바라봄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하오니,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