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여자라는 것 잊지 마세요.
옥수수와 감자를 누구보다 좋아합니다. 어려서 먹고 자란 때문인지 추억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이면 강원도에서 지인이 보내주거나 사기도 합니다. 감자랑 옥수수는 빠지지 않고 여름내 먹으면서 더위를 이겨냈습니다.
올해는 일찍 춘천에서 옥수수가 택배로 왔습니다. 시동생이 보내주신 겁니다. 춘천에서 근무하면서 형제들에게 일일이 챙겨서 보내주셨습니다. 커다란 자루에 한 자루입니다.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자루에서 고향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결혼해서 처음 산 곳이 경산이었습니다. 그때는 길에서 강원도 번호를 단 자동차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렸습니다. 해마다 강원도로 여행을 가는 것도 향수병 때문입니다. 강원도의 산과 강, 강원도 김치랑 고추장 옥수수 감자전 그런 것이 사무치게 그리워서 강원도 산으로 깊이 들어가 그동안의 그리움을 토해내고 다시 가슴 가득 강원도의 기운을 모아옵니다. 그렇게 한껏 모인 기운은 한 해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에너지가 됩니다. 그리운 사람들의 목소리, 맑은 물과 바람, 계곡을 젖게 하는 물소리, 엄마의 손맛이 느껴지는 김치와 고추장 맛은 평생 그리움의 섬으로 떠 있습니다.
내일 강원도로 휴가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집에서 쉬면서 하루를 뒹굴면서 보냈습니다. 작은아들은 비가 온다는 기막힌 날에 이번에도 여행을 서울로 갔습니다. 작은아들이 서울 가면 언제나 비가 내려서 기우제가 따로 필요 없다는 농담까지 합니다. 예약한 약속이니 비가 온들 어떠하겠습니까. 비가 오면 보너스로 비로 인해서 생기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비는 와도 좋고 안 오면 더 좋고 아니겠습니까? 아들도 다행히 성격이 긍정적이라서 우산을 챙겨 들고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서울에 벗이 있어 마음이 헛헛하면 기차여행을 갑니다. 집에서 그림 작업만 하고 있으니 기차여행은 더없이 좋은 필링의 시간이 됩니다.
저녁에 생선회와 소고기 스테이크로 남편이랑 아들이 저녁을 준비했습니다. 앉아서 받아먹는 음식은 왜 이리도 맛있는지 모릅니다. 가끔 이벤트를 해주는 우리 집 남자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잘생긴 것도 부족해서 스윗 보이까지 그리고 따스한 중년 남자까지.
오늘도 소주는 친구입니다. 오가는 술잔 속에 싹트는 사랑입니다. 부자간에 술을 나누면서 남자들만의 이야기를 엿듣는 재미로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엄마는 여자로 안 보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래도 여자로 앉아 있습니다. 아무리 더워도 화장하고 예쁜 반바지에 민소매를 입고 해운대 앞바다를 연상시키는 패션으로 거실을 오가는 장정들 속에서 한 떨기 수선화로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엄마는 여자라는 것 잊지 마세요. - 2022년 7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