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흐르는 섬 보길도
최고봉인 격자봉 등산 약 3시간 남짓 소요
세연정 우리나라원림의 백미, 동천석실 절경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아온다’.
남녘 쪽빛 바다에 떠 있는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는 지금도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흐르고 있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보길도는 뛰어난 자연경관과 윤선도의 원림유적이 어우러져 자연과 문화를 함께 탐방하고 사색할 수 있는 낙원이다.
이름만 들어도 가고 싶은 동경의 섬, 고산의 풍류가 배어 있는 부용동, 빽빽한 동백숲과 몽실 몽실한 자갈이 깔린 해변, 바다에 널린 미역밭, 갯비린내 나는 어촌 별미 등 그 섬에는 그리워할 것들이 많다.
보길도는 완도 화흥포항에서 가던가 해남 땅끝마을에서 가는 방법이 있다. 보길도는 완도에서 31.9km 거리로 면적은 완도의 12% 정도, 인구 2,694명,1,273가구(2021.9.23현재) 정도가 살고 있다.
보길도는 섬인데도 불구하고 산이 제법 많은 편이다. 보길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격자봉(433m). 격자봉 오르는 코스는 들머리를 기준으로 세코스가 있다. 1코스는 보길파출소-광대봉-큰길재-수리봉-격자봉-누룩바위-뽀래기재-보옥리 코스로 9km, 5시간, 2코스는 곡수당-큰길재-격자봉-뽀래기재-보옥리 코스로 6km, 3시간, 3코스는 예송마을-큰길재-격자봉-뽀래기재-보옥리 코스로 6km, 3시간 걸린다.
이들 세코스는 들머리만 다를 뿐 큰길재 이후 보옥리까지 중간 코스는 모두 동일하다. 또한, 뽀래기재에서 망월봉을 거쳐 망끝전망대로 내려올 수도 있다.
필자의 경우에는 3코스를 걸어봤는데 코스가 완만하면서 코스 내내 동백숲 등으로 거의 하늘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덮혀 있어 마치 밀림 속을 걷는 기분이다.
큰길재 이후에는 4-5번 정도 조망이 트인다. 이들 전망바위에 서면 예송리 앞바다와 예작도, 소도, 갈마도, 기도, 목섬 등 크고작은 섬들, 그리고 돛치미전망대가 있는 돌출능선 등이 중경·원경으로 펼쳐져 조망이 수려하기 그지없다.
특히 약간의 운해라도 끼는 날이면 한마디로 수묵화같은 절경을 보여준다.
들머리인 예송리에서 할머니산신당 쪽으로 오르면 이후에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된다.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다.
능선 길에 예작도가 선명하게 내려다 보인다. 예송리해안에서 500m정도 앞바다에 위치한 예작도는 40여 명 주민이 사는 작은 섬이다. 이 섬은 오래된 감탕나무가 유명하다. 감탕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해안지방과 일본․중국 등 난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다. 예전부터 약용으로 사용하여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녹색의 잎과 빨간 열매가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가꾸고 있다. 예작도 감탕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감탕나무로 수령이 300여년이며, 높이 11m, 둘레 2.68㎝에 이르고 있다. 마을에서는 감탕나무를 신성하게 여겨 소나무를 할아버지 당으로 감탕나무를 할머니 당으로 부르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이 화를 면하고 어장이 잘되라고 주위에다 금줄을 치고 마을 제를 지내고 있다. 완도군에서는 현재 보길도와 예작도 간 인도교 건설을 추진 중이다.
격자봉 정상은 데크전망대가 있지만 숲에 가려져 있어 조망은 별로 좋지않다. 오르면서 만났던 전망바위들 조망이 오히려 월등히 좋다.
격자봉 하산길에 꽤 웅장한 기암봉도 만난다. 누룩바위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산길 곳곳에는 진달래꽃들도 보인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갑다. 올해는 아직 진달래 산행을 못했기 때문이다.
홀로 버티고 있는 동백꽃 한송이, 붉디붉은 詩 한 줄! 황홀한, 정말 처절하게 꽃피운,
거북이도 홀로 외로워 보인다. 나도 그렇다. 천천히, 쉬면서 천천히 함께 가자.
격자봉 코스 날머리인 보옥리 바로 앞에는 보죽산이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다. 높이는 해발 195m로 높지 않고 작은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보길도의 주산으로 고산 윤선도가 명명한 산이라고 한다.
필자는 보길도에 두 번 다녀왔는데 첫 번째로 올랐던 산이 보죽산이었다. 제법 가파른 편이며, 마을에서 정상까지 오르는데 약 40분 정도 걸린다. 산 정상에 올라서면 역시 다도해의 아름다운 조망이 환상적이다.
보죽산 바로 아래에는 치도가 누워있고, 특히 망끝전망대 방향으로 갈도, 옥매도, 미역섬, 모래섬 등 작은 섬들이 그림같이 내려다 보인다. 이곳 정상에서도 맑은 날에는 추자도, 제주도가 보이며, 산에는 많은 황칠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다.
격자봉이나 보죽산 이외에도 보길도에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도 개발되어 있다. 이 중 대표적인 트레킹 코스는 ‘어부사시사명상길’이라 부르는 코스로 예송리-큰구미-공룡알해변-보옥리 코스로 5.3km, 약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등산이나 트레킹 이외 일반 여행코스로는 크게 4코스로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부용동의 윤선도 유적, 둘째 망끝전망대와 공룡알 해변, 셋째 예송리 해변, 넷째 통리와 중리 해수욕장, 송시열 글씐 바위 등이다.
등산은 하지않고 여행 만 할 경우 1박 2일 일정이면 먼저 부용동을 돌고 청별항 쪽으로 나와 망끝전망대로 가서 노을을 감상한다. 이튿날 나머지를 둘러 본다. 청별항에서 가장 먼 보죽산까지 12.6km, 반대편인 송시열 글씐 바위까지는 7.7km이다. 청별항은 노화도와 보길도간 보길대교가 놓여진 2008년 이전까지는 보길도로 들어가는 주선착장이었던 곳이다. 청별항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맑은 이별이다. 임금에게 관직을 맡지 않겠다고 한 고산의 슬픈 의지가 남아 있는 곳이다.
보길도는 다도해가 품은 수많은 섬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섬이다. 자연풍광이 빼어난 덕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은둔하며 ‘어부사시사’, ‘오우가’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작품을 여럿 남긴 ‘고산문학의 산실(産室)’이기 때문이다.
당대 명문가인 해남 윤씨의 종손으로 태어난 고산(孤山)은 한 때 인조의 총애를 받아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사부에다 형조정랑, 공조정랑 등의 고위관직을 두루 섭렵했다. 그러나 48세 때 반대파의 모함을 받아 작은 고을의 수령으로 좌천됐다가 이듬해 파직되어 해남 연동의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낙향해 있던 고산은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왕과 왕실사람들이 남한산성과 강화도로 피난했다는 전갈을 받고 수백명의 노복과 의병을 배에 태우고 강화도로 향했다. 그러나 항해 도중에 강화도와 남한산성은 함락되고 인조 임금은 맨발로 눈길을 걸어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소식을 듣자 고산은 세상을 등지고자 제주도로 향하다가 풍랑을 만나 잠시 보길도 황원포로 피항하게 되었다. 이때 보길도의 아름다운 산수에 매료된 고산은 “천석(泉石)이 절승하니 참으로 물외(物外)의 가경(佳境)이요 선경(仙境)이라” 감탄하며 아예 눌러앉기로 작정했다. 그의 나이 51세 때인 인조 15년(1637)의 일이다.
고산은 자신이 정착하게 된 곳을 생김새가 연꽃같은 동네라는 뜻에서 부용동(芙蓉洞), 격자봉(433m) 기슭에 새로 지은 집을 낙서재(樂書齋)라 이름지었다. 청별항에서 10여 분 가면 나오는 세연정(洗然亭)은 그의 풍류가 녹아 있는 정자로 부용동 최고의 명소다.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매우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으로 주로 연회와 유희의 장소였다.
그는 흐르는 계곡을 막아 연못을 만들고 돌로 물막이 시설(석보)을 만들어 비가 오면 폭포가 쏟아지게 했으며 이를 바라 볼 정자를 세웠다. 그리고는 누와 대, 못에서 무희들로 하여금 풍악을 울리고 춤을 추고 시조를 읊게 했다. 자연미와 인공미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세연정은 우리나라 원림의 백미로 꼽힌다.
부용동에서 전망이 가장 좋은 곳은 동천석실(洞天石室)이다. 이곳은 큰길에서 약 30분 올라가면 나오는 산속의 작은 목조건물로서 맑은 공기와 부용동의 전망을 즐기며 고산이 시를 읊고 묵상을 하던 곳이다.
등산하듯 왕복 1시간 정도 걸어서 오르내려야 하지만 일단 동천석실까지 올라가면 격자봉 산세로 둘러쌓인 부용동이 그림같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 중턱 암벽 위에 지은 집이어서 경관이 웅장하고 절경이다. 최상단 조그맣게 보이는 집(적색 원으로 표시한 곳)이 동천석실, 우하단 기와집은 침실건물이다.
깎아지른 바위절벽 위에 지은 집이라서 암벽등반하듯 조심스럽게 올라가야 한다.
청별항에서 황원포를 거쳐 솔섬낚시터 방향으로 해변도로를 따라가면 망끝전망대가 나온다.
망끝전망대는 멋진 낙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맑은 날에는 추자도와 함께 제주도까지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끝없이 탁트인 시원한 바다와 함께 서해바다로 붉은 몸을 감추는 일몰광경은 환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쪽 해안에 서면 모래섬, 상도, 미역섬, 옥매도, 갈도 등의 자잘한 섬들이 노을 물에 멱을 감는 듯이 보인다. 바다에 접하여 뾰족히 솟아 있는 보죽산도 지척에 있다.
보죽산 인근 보옥리에는 공룡알 해변이 있다. 갯돌(검은 자갈)이 공룡알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파도가 거센 지역이라 돌이 크고 둥글둥글하게 닦였다. 반질반질하고 색깔이 희한한 돌들이 물에 잠겨 있다. 물이 출렁일 때 돌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이 해안을 ‘뽀래기 갯돌밭’이라고도 한다. 갯돌은 예송리 해변에도 많다. 시커멓고 무거운 조약돌들이다.
예송리는 무성한 상록수림을 뒤에 두고 예작도와 고깃배들이 잔잔한 물결 위에 떠 있는 아늑한 해변이다. 봄철 몽돌밭에는 늘 미역 줄기가 빨래처럼 걸려 있다. 예송리 앞바다에는 예작도, 갈마도 등 여러 섬들이 점점이 떠 있는데 이 섬들이 거친 파도를 막아주기 때문에 바다가 호수처럼 아늑하고 잔잔하다. 전복을 비롯, 미역이나 톳을 양식하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예송리에서 돛치미전망대(평마바위) 방향으로 조금 가면 통리와 중리해수욕장이 있으며, 중리에서 계속 큰 길을 따라가면 보길도 동쪽 끝의 백도리 해변에 ‘송시열 글씐바위’가 나온다. 글씐바위는 우암 송시열선생이 1689년 이조 숙종때 83세의 나이로 제주도로 귀양가던 중 풍랑을 만나 상륙하였던 곳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것을 한시로 새겨놓은 것이다. 예송논쟁으로 윤선도를 귀양보냈던 그가 보길도에 초라한 신세로 들렀다는 것이 묘하기만 하다.
여든셋 늙은 몸이 멀고 찬/푸른 바다 한 가운데 있구나/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이길래/세번이나 쫒겨나니 궁한 운수로다/북녘 끝 부질없이 님을 우러르며/남녘 바다 바람 잦기만 기다리네/담비 갗옷 내리신 옛 은혜에/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송시열 글씐바위가 있는 선백도 해안은 보길도에서 해안경치가 가장 좋다. 웅장한 바위절벽과 함께 쫙 깔린 부표 사이로 물살을 가르는 배와 바다태공의 모습에서 섬 특유의 정취가 물씬 나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바닷가이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오세영 시인(서울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은 그의 시 '보길도'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글,사진/임윤식)
서럽고 막막하여 문득
이 세상 홀연히 접고 싶은 날엔
해남 땅 끝 물 건너 외로운 한 점 섬
보길도에 가보아라.
중리, 통리 바닷가 수많은 몽돌들
모두가 하나같이 모를 버려, 각을 버려
물 나들면 둥글둥글
한가지로 감싸안고 사느니,
(후략)
*보길도 가는 방법은...
-보길도는 완도 화흥포항 또는 해남 땅끝마을에서 가는 방법이 있다.
완도 화흥포항(061-555-1010)에서 갈 경우 노화도 동천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보길대교를 건너면 된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가 6시40분부터(하절기의 경우) 거의 매시간 운항한다. 사전예약을 받지않고 현장 발매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배가 자주 다니고 자동차를 실을 수 있는 큰 배이기 때문에 여객선이 만원일 우려는 거의 없다. 소요시간 약 40분. 완도 공용버스터미널에서 화흥포항까지는 8.7km, 배시간에 맞춰 셔틀버스가 다닌다. 또, 해남 땅끝항에서는 노화도 산양항까지 30분 소요. 6시 40분부터(하절기의 경우) 거의 30분마다 운항한다.
노화도와 보길도 사이에는 보길대교로 이어져 있어 하나의 섬이나 마찬가지다. 보길도에서 돌아갈 때는 청별버스정류장에서 노화도 동천항 가는 농협셔틀버스를 타면 된다. 요금은 1,000원. 여객선 출발 30분 전에 보길도 청별버스정류장을 출발한다. 버스정류장에 농협셔틀버스 및 섬내 공용버스 시간표가 붙어 있다. 예송리를 들머리로 격자봉 등산을 할 경우에도 청별에서 공용버스를 타면 편리하다. 보길도 관광안내지도는 면사무소나 다도해해상국립공원보길분소(061-554-6474), 세연정 매표소 등에서 구할 수 있다.
*잘곳·먹을곳
-보금자리펜션(청별) 061-553-6217, 황토한옥펜션(예송리) 061-553-6370, 공룡알펜션(보옥리) 061-555-5144, 수림민박(부황리) 061-554-8846
-장터순대국감자탕(청별) 061-553-1269, 우리식당(청별) 061-553-6380, 보길한식(부황리) 061-554-7391, 미리내식당(예송리) 061-553-6429, 공룡알펜션횟집(보옥리) 061-555-5144
-보길택시 010-5953-8846, 061-553-6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