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쇼크를 계기로 서구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은 막을 내리고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불황이 시작된다
2차 대전 이후 계속되던 서구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은 1973~74년 제1차 석유파동(오일쇼크)을 계기로 막을 내리게 된다.
석유파동은 1973년 10월 아랍국가들과 이스라엘 간의 전쟁으로 촉발되었는데,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지 못하게 하려고 아랍계 국가들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통해 석유가격을 대폭 인상시킨 것이었다. OPEC은 1973년 10월부터 1974년 1월 사이에 석유가격을 네 배나 인상시키는데, 이로 인해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급격히 불황국면으로 빠져 들면서 실업이 급증하는 반면 투자는 급감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1975년이 되어 오일쇼크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도 한번 사그라든 경제는 되살아나지를 못했다. 어느덧 장기 호황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불황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 마침내 사람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시작된 서구 자본주의의 장기 불황은 신자유주의 전면화 등을 거치고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3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가 2차 대전 이후 25년 가량의 장기호황을 마감하고 새롭게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불황에 접어들게 된 것은 바로 그 장기호황을 이끌었던 케인즈주의가 마침내 한계에 봉착한 때문이었다.
한계에 봉착한 케인즈주의(1) ― 자본의 국제화 전략으로 개별 국가의 경제조절능력 상실
케인즈주의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를 조절·관리함으로써 작동되는 체제였는데, 자본의 국제화 전략으로 인해 개별 국가들은 경제를 조절하고 관리할 능력을 점점 상실하게 되었다.
케인즈주의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총수요를 확대하는 경제정책을 폄으로써 공황을 예방하고 경제를 조절·관리하여 서구 자본주의의 장기호황을 이끌었는데, 총수요를 확대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사회복지 정책으로 소득의 재분배를 실시하여 노동자·민중의 구매력을 유지·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 진영의 확대와 노동자 계급의 역량 강화라는 정치적 조건을 배경으로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자본가들이 한 국가 차원에서 ‘노동과 자본의 대타협’을 받아들여야 했던 결과물이기도 했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힘이 약했던 미국의 경우 케인즈주의의 원조이면서도 사회복지제도가 가장 열악하고 총수요 확대가 주로 군사적 수요를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장기호황을 거쳐 서구 자본주의가 위기를 벗어나게 되자, 자본가들은 파국의 위기 앞에서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노동과 자본의 대타협에 근거한 국가의 케인즈주의적인 경제개입이 거추장스러워졌다. 따라서 자본은 ‘국제화’ 전략을 적극 추진한다. 여러 나라로 생산기반을 분산시키는 다국적 기업이나, 여러 나라의 은행과 증권시장에 분산 투자하고 또한 신속하게 이동하는 다국적 금융자본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게 된다. 높은 세금이나 고임금을 피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불리한 경제정책을 취하는 국가로부터 빠져나와서 유리한 경제정책을 펴는 국가로 몰려드는 것이다. 이처럼 국경이탈만으로도 상당한 경제침체를 가져올 만한 거대자본들이 빠른 속도로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되자 개별 국가의 경제조절관리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러한 국가의 경제조절·관리 능력의 무력화는 케인즈주의에 치명적이었다. 실업증가나 물가상승 등 경제에 이상 신호가 발생하여 여기에 대응하는 경제정책을 시행해도 이전과 달리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이다. 국가의 경제정책 속에는 국가경제 전체를 위해서는 필수적이지만 개별자본에게는 당장 손해가 될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기 마련인데, 국제화된 개별자본은 자신에게 손해를 안기는 경제정책이 시행되면 아예 국경을 넘어가 버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애초의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자본이탈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더 심각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오일쇼크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기 이전인 70년대 초반에 이미 자본의 국제화로 각국 정부들의 경제조절·관리 능력이 상당하게 무력화됨으로써 케인즈주의는 내부로부터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계에 봉착한 케인즈주의(2) ― 신식민지 종속에서 벗어나려는 제3세계의 저항
케인즈주의 기간 동안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은 제3세계 국가들을 신식민지 형태로 종속시키고 있었는데,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려는 제3세계 국가들의 저항이 격렬해지다가 결국 오일쇼크라는 형태로 결정적인 타격을 안기고 말았다.
1959년 쿠바에서 혁명이 성공하고 1960년대를 거치며 베트남 민족해방전쟁이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굴복시켜 나가자, 전 세계적으로 제3세계 국가들 내에서는 민족해방과 자주경제 수립에 대한 열망이 뜨겁게 달아오르게 된다. 이러한 열망은 기본적으로 제3세계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나타났지만, 그 압력은 신식민지 구조에 순응하던 제3세계 각국의 정권들 또한 어느 정도 자주적인 정치경제적 입장을 표방하지 않을 수 없게 강제하고 있었다.
오일쇼크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야기된 사태였다. 팔레스타인 민족을 쫓아낸 이스라엘 정권이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전 아랍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며 승승장구하자 아랍 민중들의 여론이 들끓을 수밖에 없었다. 석유라는 전략적인 자원을 수출하고 있던 아랍국가들은 석유가격 급등을 정치적 무기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압력에 내몰렸던 것이다.
영국·미국에서부터 등장하는 신자유주의 : ‘노동과 자본의 타협’ 파기
케인즈주의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불황이 10년 가까이 지속되자, 마침내 그 틈을 비집고 1980년대 초반 영국과 미국에서부터 신자유주의 세력이 집권에 성공한다. 이들은 장기불황을 이겨내지 못하는 케인즈주의의 한계를 공격하며 ‘국가개입 축소와 시장논리 강화로 경제활성화를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는데, 실제 등장한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케인즈주의의 계급타협을 파기하여 자본의 이윤과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힘이 가장 약했던 영국과 미국에서부터 등장했다.
영국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 대처리즘
1979년 총선에서 보수당의 승리로 집권한 영국의 대처 총리는 ‘영국경제를 뒤처지게 만든 장본인은 노동조합과 국가’라는 주장 아래 집권 기간 동안 ‘노동조합을 약화시키고 국가개입을 축소한다’는 대원칙을 가지고 대처리즘이라고 불리게 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철저하게 밀고 나간다.
대처는 집권하자마자 긴축정책으로 주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사용되던 정부지출을 대폭 축소한다. 재정긴축의 결과 실업자가 엄청나게 증가하여 1980년 167만명에서 1983년에 300만명을 넘어선다.
대처는 또한 감세정책을 펴는데, 최고소득자의 세금은 83%에서 40%로 삭감하면서 저소득자의 세금은 33%에서 25%로 차별 축소한다. 이렇게 직접세를 줄이는 대신 간접세를 올리고, 국민보험에 낼 돈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부자들의 세금부담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대신 민중들의 세금부담을 대폭 올려놓은 것이다.
집권 2기인 1984년부터 대처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을 본격 추진한다. 통신·가스·항공·석탄·전자·수도 등 거대 공기업들이 줄줄이 매각된다. 대처는 공기업을 인수하는 자본가들에게 높은 수익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갖가지 조치를 취하는데, 이를테면 상수도 사업을 매각하면서 환경규제 최소화를 약속해 주고, 전기 산업을 매각하기 전에 전기료를 대폭 인상하는 식이었다. 민영화는 대량 실직으로 이어져, 1979년 206만명이던 공기업 종업원 수가 1989년에는 84만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든다. 외주하청화가 급격히 늘어나고, 긴축정책과 민영화로 1980년대 중반이 되면 실직자가 400만을 넘어선다.
또한 대처는 노동조합이 경제정책 수립에 참여하는 통로였던 ‘국가경제개발위원회’를 폐지하고,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크게 제약하는가 하면, 최저임금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등 노동의 유연화를 강제한다.
대처 정권에 의한 단체행동권 제약은 놀라운 수준인데 △파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4주전에 비밀투표로 결정 △단체행동을 시작하기 1주일 전에 어느 정도 수준으로 얼마 동안 단체행동을 할 것인지 통보 △조합원의 파업거부권 명시로 파업 불참자에 대한 제재 불법화 △파업으로 피해를 입은 시민들에게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권 부여 △2차적인 쟁의행위(연대파업 등) 금지 등이다.
미국에서 등장한 신자유주의 ― 레이거노믹스
1980년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레이건은 인플레이션, 생산성 정체, 국가경쟁력 상실이라는 미국 경제의 상황을 타개할 방책으로 집권 기간 동안 규제완화, 감세, 노동의 유연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다. 이른바 레이거노믹스.
레이건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부문을 중심으로 정부 예산을 대폭 삭감한다. 미국의 사회복지 수준은 이전에도 서유럽에 비해 형편없었는데, 레이건을 이은 부시 공화당 정권이 막을 내리던 1990년대 초반에 와서는 사회복지수당 총액이 1970년대 초에 비해 60%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사회복지가 축소되는 것과 반비례하여 빈민촌·범죄·마약은 급증했다. 대신 레이건은 집권 기간 동안 군비예산을 50% 정도 증가시켜 군산복합체 거대자본을 먹여 살리는데, 레이거노믹스의 계급적 본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레이건 또한 감세를 추진하는데, 최고소득자 1%의 세금이 14% 줄어든 반면 최저소득자 10%의 세금은 28% 늘어나는 등 영국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가져왔다.
레이건은 1981년 항공관제사 파업에 참여한 1만 2천 조합원들을 전원 해고하고 항공관제사 노동조합의 교섭권과 대표권을 빼앗아 노동조합을 소멸시키는 등 대단히 공격적으로 노동조합을 파괴한다. 생산라인의 하청화가 대규모로 진행되고, 198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 노동자 전체의 실질임금이 5%나 하락한다.
80년대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강타하는 신자유주의
IMF 구제금융으로부터 시작되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 경제파탄 초래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를 무력화시키며 등장했기에 ‘국가의 경제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논리에 맡겨두어야 경제가 산다’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웠다.
하지만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에서 보여진 실제 신자유주의의 모습은 국가가 거대자본의 이윤과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책들을 경제·정치·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펼치는 것이었다. 노동의 유연화를 강제하고,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며, 공공부문과 사회복지를 축소하는가 하면, 때로 적극적인 군비확장에 나서기도 했다. 계급간 타협을 파기시키는 영역에서는 경제개입 최소화와 시장논리를 들먹였지만, 거대자본의 활로를 뚫어주기 위해서라면 적극적인 경제개입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므로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 신자유주의의 의미는 케인즈주의 시대의 계급간 타협을 파기하는 자본의 대공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본이 케인즈주의라는 일종의 양보를 받아들였던 핵심 이유가 대공황과 2차 대전을 겪으며 형성되었던 ‘파국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면, 장기 호황의 시기를 거치며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이제 계급간 타협을 파기하고 다시금 자본의 천국을 누리고 싶어진 것이 신자유주의를 등장시킨 핵심 이유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신자유주의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 가운데 상대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역량이 가장 약했던 영국과 미국에서 80년대 초반에 등장하였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는 것은 소련·동구 사회주의가 몰락하는 90년대 초반을 지나서였다.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영·미 신자유주의 등장 시기부터 신자유주의 공세에 초토화
하지만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의 경우에는 영국과 미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는 것과 거의 같은 속도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강제된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는 1980년대부터 극심한 신자유주의 공세를 겪어야 했다. (다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은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와서야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다. 다음 호 참조.)
신자유주의 이전의 라틴 아메리카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등 라틴 아메리카(중남미) 국가들은 이미 19세기에 정치적 독립을 이루었지만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천연자원 등의 1차 상품을 헐값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로 수출하고 다시 이들로부터 공산품 등 2차 상품을 비싼 값으로 수입하는 전형적인 식민지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대공황(1929~1939) 시기에 1차 상품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이상으로 혹독한 공황을 겪고 난 이후, 중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을 취하게 된다.
즉 기존에 수입에 의존했던 공산품들을 이제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기 위하여 정부가 앞장서서 그 생산기반 구축에 나선 것이다. 1970년대까지 지속된 수입대체산업화로 중남미에서는 상당한 정도로 공업화가 진척되고 경제가 성장한다.
그런데 수입대체산업화 정책으로 세워진 공장의 대부분은 외국자본이 직접투자 형태로 들어온 것이었기에, 경제 ‘종속’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다. 외국자본들은 막대한 이득을 모국으로 송금해 버렸기 때문에, 중남미의 대다수 노동자·민중은 공업화와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외채 위기와 IMF의 구조조정 요구
1970년대까지 중남미 각국은 수입대체산업화 정책 속에서 엄청난 규모의 외채를 떠안게 된다.
외채는 특히 1970년대에 급증하게 되는데,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불황으로 1차 상품의 수출이 현저히 줄어들면서 공업화에 필요한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선 외채를 급격히 늘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불황으로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서방의 민간은행들이 물 쓰듯 돈을 빌려준 것도 한 몫 했다.
그런데 1982년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고금리 정책을 쓰게 되자 상황이 급변한다. 미국 쪽이 더 고수익을 보장하는 상황이 되자 서방 민간은행들이 앞다투어 중남미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러 나선 것이다.
갑자기 닥친 외채위기로 중남미 국가들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간다.
멕시코는 1982년 8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90일간 대외지급을 중단하지만, 결국 12월부터 IMF(국제통화기금)와 협상을 시작한다. 외환보유고가 완전히 바닥난 멕시코는 IMF가 긴급자금지원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긴축정책, 규제완화, 민영화, 외국인 투자 인센티브 확대 등을 수용하고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시작한다.
브라질은 1982년 말 IMF의 지원을 받고 강력한 긴축정책을 폈지만, 결국 1987년 2월에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중장기 채무에 대하여 90일간 이자상환을 중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IMF의 지원을 받고 브라질은 더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개하지만 1990년대를 거치면서 상황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 칠레 등 거의 모든 중남미 국가들의 상황 또한 마찬가지로 전개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IMF의 강요로부터 시작된 중남미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 엄청난 위력으로 중남미 국가들을 휘몰아쳤다.
IMF가 요구한 긴축정책 때문에 중남미 국가들은 교육·보건 등 그나마 빈약한 수준의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IMF의 요구로 무역과 금융시장이 자유화되었는데, 외국자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자 이것이 새로운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다.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민영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어 전화·통신·전력·항공 등 알짜배기 국가기간산업들이 통째로 외국자본의 소유로 넘어가거나 외국자본의 지분율이 대폭 높아졌고, 전화요금·전기요금 등이 대폭 인상되었다.
하지만 IMF가 요구한대로 열심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행했지만, 경제는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 연평균 5% 이상의 경제성장을 기록하던 멕시코와 칠레는 80년대 내내 1% 내외의 성장에 그쳤고, 아르헨티나는 연평균 -0.5%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전체적인 경제성장의 정체·후퇴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로 인한 고통이 노동자·민중에게 집중됐다는 점이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이 계속되었지만 물가를 잡는다는 이유로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바람에, 실질임금이 대폭 하락했다. 멕시코에서는 1982년부터 1988년까지 7년 동안 실질임금이 40%나 감소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1990년의 실질임금이 1980년에 비해 85%로 후퇴했고, 우루과이는 72%, 페루는 무려 43%로 후퇴했다.
최저임금의 하락폭은 더욱 심각하였다. 1980년의 최저임금에 비해 1992년의 최저임금이 브라질은 53%, 아르헨티나는 44%, 페루는 16%를 기록한다.
빈부격차도 더욱 벌어져서, 칠레의 경우 1980년에 최고 소득자 10%가 전체 소득의 36%를 차지했는데, 1990년에는 45%를 차지하게 된다. 멕시코에서는 민영화된 900여개의 국영기업 대부분이 소수의 거대자본에게 팔려나가서, 5개의 거대자본이 멕시코 전체 자산의 50%를 소유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렇게 고통스럽게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했지만, 정작 위기의 원인이었던 외채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났다. 1982년에 멕시코의 외채는 860억 달러였는데, 1987년에는 1,093억 달러가 되었다. 브라질은 922억 달러에서 1,223억 달러로 늘고, 아르헨티나는 436억 달러에서 584억 달러로 늘어났다.
아프리카 대륙은 18~19세기에 네덜란드·독일·프랑스 등의 식민지로 분할 점령당한 이후 ‘자급자족적 농업경제’가 해체되고 원료를 헐값에 수출하고 공산품을 비싸게 수입하는 ‘식민지 경제’로 재편되었다. 대다수 아프리카 국가들이 1960년대에 독립을 쟁취하는데, 이제 산업화를 통해 식민지 시대의 경제체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런데 아프리카 신생 국가들은 산업화에 필요한 자금을 세계은행의 원조에 의존하게 되는데, 세계은행은 원조를 해주는 대신 아프리카 경제를 ‘환금작물의 단일재배’ 형태로 재편하도록 유도해 나간다. 즉 가나에서는 코코아, 세네갈에서는 땅콩 하는 식으로 한 국가가 돈이 되는 하나의 작물을 대량 재배하여 수출함으로써 외화를 획득하여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헐값으로 농산물을 대량 공급받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를 파국으로 내모는 것이었다. 환금작물은 수시로 과잉생산과 국제시세 폭락을 거듭했고, 돈을 벌어들이지 못한 가운데 최소한의 양식도 생산하지 못하여 가장 풍요롭다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대다수 민중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태가 속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최소한의 산업화도 이루지 못한 아프리카 대륙에도 1980년대 초반 신자유주의가 몰려온다. 세계은행의 원조 자금이 IMF의 ‘구조조정 지원 기금’으로 바뀌면서. 무역자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긴축재정 등의 요구조건을 내건 구조조정 지원기금은 사하라 사막 이남에 있는 47개국 가운데 36개국에 흘러들어가면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강제한다.
‘환금작물 단일재배’의 강화, 마이너스 경제성장, 의료예산의 격감, 생필품 가격의 급상승 등으로 귀결된 1980년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아프리카 대륙을 말로 다할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만들어 버린다. 만성적 영양부족 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프리카 전체 인구의 1/4이 넘고, 콜레라와 AIDS가 창궐하는 오늘날 아프리카 대륙의 비참한 현실을 만든 주역은 바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었다.
90년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신자유주의
소련·동구 사회주의 몰락과 유럽대륙, 일본 및 동아시아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초반 영국과 미국으로부터 시작하여 1980년대를 거쳐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을 휩쓴다.
이제 1990년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는 마침내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로 확산된다.
소련·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유럽대륙으로 확산되는 신자유주의
섬나라 영국을 제외한 유럽대륙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도 신자유주의가 거의 파고들지 못하고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여전히 케인즈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동유럽에서는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자리잡고 있었다.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에는 노동자들의 힘이 아직 상대적으로 강했다.
그런데 1989년 동독·폴란드·헝가리·체코·루마니아 등에 이어 1991년 소련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국가들이 줄줄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는 동유럽은 물론이고 서유럽에서까지도 (사실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노동자들의 힘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러한 사태 전개는 신자유주의가 유럽대륙을 파고드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동유럽에서 전개된 신자유주의 형태의 자본주의화
유럽대륙에서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져 내린 이후 급속한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었던 동유럽에서부터 시작된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국가가 무너져 내린 것은 경제·사회·정치 체제가 너무나 비민주적이어서 관료적인 특권과 통제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부패한 특권관료들의 지배에 저항했던 민중들의 ‘민주화’ 열망을 담아낸 이념은 ‘민주적인 사회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로의 체제 전환’이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동유럽의 민중들에게 돌아온 것은 ‘자본주의’였고, 그것도 노동대중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을 특징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형태의 자본주의였다.
1990년대 동유럽 국가의 노동자·민중들은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주의 시절의 사회복지 체계가 무너져 내리고 살인적인 인플레와 대량실업 사태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반면에 민영화된 국영기업들을 소유하게 된 거대 자본가들이 과거의 특권 관료층을 대신하는 지배계급으로 등장했다.
신자유주의 형태의 자본주의가 들어선 지 10년이 넘어선 오늘날 동유럽에서는 관료적인 특권과 통제는 무너졌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손에 잡히지 않고 노동자·민중은 심각한 생존권 위협 앞에 내몰려 있다.
‘신자유주의 도입’ 외치는 서유럽 자본가들
동유럽의 사회주의가 무너져 내린 것은 서유럽에서의 계급역관계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서유럽의 자본가들이 2차 대전 이후 40년 이상 계급간 타협을 받아들여 왔던 것은 서유럽 각국의 노동자들이 오랜 투쟁을 거쳐 상당한 힘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못지않게 동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 진영을 구축하고 있는 데서 오는 위협도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이제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외부로부터 오는 위협이 사라지고 나자, 서유럽 자본가들은 급속하게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신자유주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나선다.
여기에는 1980년대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한 미국·영국의 자본이 노동자를 희생시킨 만큼 상대적으로 높은 효율성을 갖추게 된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경쟁에서 갈수록 밀리게 되는 만큼, 서유럽 자본은 ‘신자유주의 도입’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서유럽의 신자유주의 확산을 주도해 온 유럽 경제통합
서유럽에서의 신자유주의 확산은 서유럽 각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는 것과 아울러 신자유주의 성격의 유렵 경제통합 추진으로 병행되어 나타났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유럽 경제통합 추진이었다. 유럽 경제통합은 서유럽 각국의 신자유주의 도입과 확산을 강제하는 중심축이었기 때문이다.
유럽 통합은 본래 중국보다 땅도 좁고 인구도 적은 유럽 대륙이 20여개의 국가들로 나뉘어 수많은 전쟁을 거듭해 왔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 ‘평화로운 유럽 단일 국가’의 꿈을 안고 주창되어 온 것이었다. 유럽 대륙이 1·2차 세계대전의 주 전쟁터가 되어 극심한 파괴와 살육을 겪고 난 이후 ‘유럽 통합’의 이념은 유럽인들 사이에 상당한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당장 정치적 통합을 이루는 것은 난망한 일이었기 때문에 우선 유럽 차원의 경제공동체를 추진하여 실익을 얻자는 뜻에서 1957년 EEC(유럽경제공동체)가 출범하고, 이것이 1967년 EC(유럽공동체)를 거쳐 1979년 유럽의회를 두게 되고 1991년에 EU(유럽연합)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서유럽 자본가들이 신자유주의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유럽 통합의 성격은 급격하게 신자유주의 형태로 변질된다.
이전 시기에 유럽 통합 작업은 각 국의 주권과 고유한 경제·사회·정치 체제를 존중하면서 시간을 두고 자연스럽게 통합기반을 갖추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도입을 추진하는 서유럽의 자본가들은 1990년대 들어 급격한 유럽 경제통합을 주장하고 관철하면서 이를 무기로 각국의 경제정책을 반강제적으로 신자유주의로 몰고 가게 된다.
특히 1991년 12월 유럽 정상회담 결과 체결된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 조약은 유럽중앙은행을 두어 유럽에 단일통화(유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는데, 이 유럽통화동맹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의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의 3% 및 정부예산의 60% 미만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포함한다.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따라 재정적자를 줄여야만 하게 된 각국 정부는 앞다투어 사회복지 지출을 줄이고 공기업 보조금 등 공공부문 예산을 축소하게 된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의 삶이 심각한 공격을 받게 되자, 1990년대 중반에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에는 노동자 파업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경제통합은 신자유주의를 저지하는 방향으로 국가 경제정책을 펼치라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요구를 효과적으로 피해가며 서유럽 전체에 걸쳐 신자유주의 흐름을 급속하게 확산시키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
왜냐하면 한 측면으로는 유럽 경제통합에 따라 각국 정부의 경제정책이 현실적 근거를 상실해 왔기 때문이다. 또다른 측면으로는 단일 시장이 형성되는 유럽 차원에서는 경제정책을 펼칠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관철시킬 통로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회는 이름과 달리 자문기관일 뿐임)
유로 화폐통합으로 신자유주의 물결 더욱 거세질 전망
유럽 단일화폐 ‘유로’는 결국 1999년에 출범했고, 이제 2002년부터는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이 마르크·프랑·리라 등의 고유 화폐를 없애고 유로만을 사용하게 됨으로써 유럽 경제통합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단일화폐 유로만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제 서유럽에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더욱 거세게 휘몰아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단일 화폐를 사용하게 되면 같은 상품의 가격 차이가 한눈에 드러나는데, 사통팔달로 교통이 연결되어 있는 유럽 대륙에서 소비자들은 어렵지 않게 가격이 낮은 나라에서 물건을 사게 될 것이다.
임금 수준이 높거나 세금이 많은 나라일수록 상품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 상황전개는 유럽 전체에 걸쳐 임금인하와 세금축소(사회복지 감소) 경쟁을 강제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봉쇄전략 속에 예외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동아시아 신흥개발도상국들
6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한국·대만·싱가폴·홍콩 등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들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이루어 일반적인 제3세계 국가들과 달리 신흥개발도상국으로 구분되기도 했다.
이들 동아시아 신흥개발국들의 지속적인 경제발전은 무엇보다 사회주의 진영의 확대를 막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미국은 특히 대만과 한국의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중국과 북한에 대비되는 세계적인 ‘쇼 윈도우’로 내세우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 국가들에 대규모 원조를 하고, 미국 시장에의 접근에도 예외적인 특혜를 주었다. 아울러 이들 국가들이 적극적인 경제개입으로 특정 산업을 육성하고 무역 보호장벽을 두어 경제발전에 큰 효과를 보는 것에 대해, 다른 제3세계 국가들과 달리 90년대 초반까지도 용인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신흥개발국들의 경제는 일본의 하청생산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일본 경제 또한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면서 장기간 순조로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위기에 봉착한 일본 및 동아시아 ― 외환위기·장기불황 거쳐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전면화
하지만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상황은 완연히 달라진다. 1990년대 들어 일본 및 동아시아의 경제는 미국과의 무역마찰이 급증하며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특히 한국·인도네시아 등은 1990년대 후반 외환·금융위기를 겪게 되고 IMF 구제금융을 계기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전면화하게 된다. 일본은 1990년대 초부터 장기불황이 계속되고 있는데, 불황 탈출을 시도하며 기존의 일본식 모델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를 도입해 나가고 있다.
신자유주의 이전에 일본 및 동아시아의 경제체제를 지배한 ‘일본식 모델’은 서유럽과 달리 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열악한 사회복지를 주요한 특징으로 하고 있었는데, 신자유주의의 도입으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더욱 극렬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세계화된 신자유주의의 기본 성격
노동자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 사유화와 시장숭배, 초국적 자본의 세계지배
지난 호까지 살펴보았듯이 신자유주의는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 세계 거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제 이렇듯 세계화된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자.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의 지배전략인데, 특히 거대한 초국적 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지배전략이며, 거대자본의 확대재생산 운동을 자유롭게 보장하는 것에 핵심을 두고 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확산은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들의 힘이 약화되어 온 최근 세계사의 흐름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신자유주의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짓밟는 동시에 자본의 이윤과 자유를 극대화시키며 발전해 왔고, 그러한 흐름을 더욱 강화시키려 하고 있다.
나중에 우리가 함께 살펴보겠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전 세계 노동자·민중의 투쟁 또한 갈수록 격렬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노동자·민중의 투쟁은 신자유주의의 실현에 여러 가지 변형을 가져온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역량이 얼마나 되는가에 따라서 각 국마다 신자유주의의 전개양상과 속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때, 신자유주의의 기본 성격은 몇 가지로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1) 노동자에 대한 극단적인 공격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극단적인 공격에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서 정리해고는 자본의 경영수지를 개선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적극 장려된다. 심지어 흑자경영 상태에서도 비용절감의 논리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거리낌 없이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호황이 가장 극점에 올라있던 1999년에 노동통계국 집계로 150만명 이상이 정리해고 당함으로써 사상 최고를 기록한 바 있다. 경기위축으로 가동률이 일시적으로 줄어드는 경우, 천문학적인 순이익을 남기고 있지만 이익률을 좀더 높이기 위해 조직체계를 바꾸는 경우 등등 정리해고는 아무 때나 수시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장려되고 찬양된다. 신자유주의 아래서는 이러저러한 핑계와 계기를 만들어서 단호하게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수시로 잘라낼 줄 알아야 ‘능력 있는 경영자’ 대접을 받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끊임없이 확대시킨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장기근속자들을 해고한 자리에 대체 투입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보편적인 양상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형태가 극히 불안정하고 임금 수준도 정규직보다 훨씬 열악하다. 노동조합으로 조직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노동조합 조직률이 상당히 낮다.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어느 나라에서나 노동력을 소모품처럼 값싸고 편리하게 이용하려는 자본의 탐욕은 끝이 없다. 일용직, 계약직, 파트타임, 계절고용, 하청노동, 파견노동 등 헤아릴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자의 실질임금 인상을 최대한 가로막는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이른바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질임금 감소가 두드러지는데, 이후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실질임금 하락이 자주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10년 동안 미국 노동자들은 5%, 중남미 노동자들은 10~50%의 실질임금이 하락했다. 실질임금이 상승하는 경우에도 전체 소득 가운데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상대적인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놓인다.
신자유주의는 노동조합을 배척하고 무력화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이데올로기적 물리적 탄압을 가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영국에서는 1980년대 중반 광부노조의 투쟁을 무너뜨린 이후 대대적인 노동법 개악을 실시하여 노동조합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미국에서도 1981년 항공관제사 파업에 참여한 1만2천 노동자를 전원 해고하여 노동조합을 와해시키고 개인별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물렸는데, 이러한 방식들은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 노조탄압의 전형으로 자리 잡는다.
제3세계의 경우에는 신자유주의 도입 이전에도 노조를 배척하는 나라가 많았는데, 신자유주의 도입은 그러한 정책을 더욱 확고하고 세련된 형태로 발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서유럽의 경우에는 노동자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강했기에 일정한 한계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노조를 배제하고 무력화하려는 경향은 예외없이 나타났다.
(2) 공공부문과 사회복지의 파괴
거대자본의 이윤 극대화를 지상가치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공공부문과 사회복지를 파괴해 나간다.
철도·전력·통신·에너지·수도 등 공공부문에 대한 민영화는 일반적으로 이들 기업을 인수하는 자본에게 떼돈을 벌게 하는 반면 해당 노동자들에게는 대량 해고와 노동강도 강화, 일반 국민들에게는 요금인상과 서비스 질 저하 등의 심각한 피해를 가져다 준다. 실제 공공부문 민영화는 너무나 심각한 폐해를 가져와서 다시 되돌아가는 경우도 속출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철도는 민영화 이후 대형 안전사고를 연달아 일으켜서 다시 국유화 일정을 밟고 있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전력은 민영화 이후 설비투자 소홀로 전력대란을 야기하여 다시 공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는 지속적으로 공공부문을 민영화시켜 나가고 있으며, 특히 제3세계에서의 공공부문 민영화는 대부분 거대한 자금을 보유한 해외자본에 매각됨으로써 초국적 자본의 지배를 가속화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고 있다. 최근 신자유주의에 맞선 민중항쟁이 일어난 아르헨티나에서는 그동안 900여개의 공기업을 모조리 팔아치웠는데, 심지어 주민등록 발급까지 해외로 넘기는 지경이었다.
신자유주의는 또한 사회복지를 지속적으로 축소하면서 그만큼 부유층의 세금부담을 감소시켜 나간다. 이는 1980년대 대처 정권 및 레이건 정권에서 공히 취해진 정책이었으며,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일반화되어 있다. 신자유주의 이전에도 사회복지 체제가 열악했던 제3세계의 경우에는 그 나마의 사회복지 체제마저 붕괴시키는 형태로 나타난다.
신자유주의의 사회복지 파괴는 사회 모든 영역을 시장경쟁의 논리와 잣대로 변형시키는 것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교육·의료·주거·휴양 등 인간 생활의 기본적인 영역에서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고급스런 제도와 시설이 나날이 발달하고 있고, 그와 동시에 빈부격차가 확대되고 절대 빈곤층이 늘어나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전형적 모습이다.
(3) 초국적 자본의 세계지배
세계화된 신자유주의를 주도하는 것은 초국적 자본이다.
오늘날 초국적 기업들은 생산과정의 초국적 조직화, 거대 인수합병 등을 통해 엄청난 규모를 갖추고 있다. 매출액 세계 1위 기업인 GM의 매출액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나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많다. 이렇듯 막강한 규모를 갖추고 있는 초국적 기업들은 전 세계의 기업들을 수직적으로 하청 계열화시키면서 세금·이윤송금·인건비·노조봉쇄 등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국가들로 투자를 집중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면화를 강제해 나가고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이들 초국적 기업들의 모국 정부들은 세계무역기구(WTO)와 갖가지 투자협정 등을 통해 개별 국가의 경제통제력을 무력화시키면서 초국적 기업의 세계지배를 확대하는 데 적극적인 지원을 펴고 있다.
초국적 금융자본은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 왔는데, 이제 전 세계의 GNP를 모두 모은 것보다 더 많은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투기성 목적으로 각국의 외환시장과 주식시장을 넘나들고 있는데, 1990년대 이후 그 규모가 너무 커져서 이들의 집단적인 이탈만으로도 특정 국가의 전체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다. 거대한 투기자본이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일국의 경제를 순식간에 뒤흔들 수 있게 되어 있는 오늘날의 현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근본적인 불합리함과 부패성을 상징하고 있다.
□ 신경제 환상을 무너뜨린 심각한 불황, 새로운 파시즘과 미국의 군사패권 제국주의
1990년대 10년 동안 미국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기록했다. 이를 근거로 신자유주의 주창자들은 “컴퓨터·인터넷 기술혁명과 결합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이제 자본주의의 주기적인 경제순환을 극복한 ‘신경제’를 구축해 냈다”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2000년 이후 신경제 거품은 붕괴했다. 끝을 모르고 치솟던 미국 주식시장의 주가는 2000년 3월 이후 폭락을 거듭하여 2001년에는 2000년 초반 주가의 1/2 이하에서 맴돌았다. 미국은 2001년에 11차례 금리인하로 6.5%에서 1.75%까지 금리를 내렸지만, 아직까지 경제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이제 ‘신경제’론은 하나의 환상일 뿐이었음이 누구의 눈에나 명확히 보이고 있다.
그런데 10년 호황을 거치며 미국의 소득순위 하위 40% 가계의 순재산은 80%나 줄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에도 못미치는 저소득자가 점점 늘어나 2001년에는 전체 인구의 17%(4,600만명)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는 1990년대 미국 경제 10년 호황의 밑바닥에 엄청난 수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확대, 다시 말해 고도의 노동착취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미국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진 이유는 소비 위축 때문인데, 이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봉착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리해고·비정규직화·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이윤을 확대하여 일정 기간 호황을 누렸지만, 그로 인해 대중의 구매력이 말라붙어 상품이 팔려나가지 않으면서 결국 심각한 불황으로 빠져든 것이다.
미국 경제의 심각한 불황은 신자유주의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나 고용확대를 가능케 한다는 저들의 논리가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미국이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이 군비지출 확대 전략이다. 천문학적인 경비가 소요되는 미사일방어망(MD) 구축을 집요하게 추진하고,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무차별로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좋은 실례다.
미국의 군비지출 확대 전략은 필연적으로 미국의 군사패권 제국주의를 더욱 강화시켜 전 세계의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심각한 인권침해 내용을 담고 있는 ‘테러방지법’을 전격 제정하는 등 파시즘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경제적 실패를 정치군사적인 수단으로 뒤엎으려는 미국의 행보 속에서 신자유주의는 더욱 극악한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