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이국과 냉이무침
오랫만에 먹는 냉이국과 냉이무침의 맛이 향긋했다. 여기서의 냉이란 엇그제 친구의 농장에 들렀다가 캐어 온 것이다.
오전 일찍 들린 농장 근처에서 냉이가 눈에 들어왔다. 밭둑에 퍼대고 앉아 따뜻해진 햇살 받으며 캐고 싶었으나 당장의 할일이 있었다.
쉴새없이 일단 오전 작업을 마치고, 친구와 옛추억이 떠오르는 농촌 들판을 차로 달려 점심을 함께했다. 인적드문 예전에 자주 다녔던 농촌마을 주변을 둘러보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던 옛시조가 새삼스러웠다.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서 냉이를 캐렸더니 오전에 보았던 곳은 금새 친구가 경운을 해버려 사라졌고, 근처 다른 곳에서 냉이를 캘 수 있었다.
아직은 시기가 이르지만, 조금 있으면 쑥과 나물들이 자라나며 봄향기를 뽐낼때다. 예전 배고픈 시절엔 이때쯤이면 여인들이 나물 바구니를 들고 산과 들로 나섰다. 가부장제 시대엔 그게 여자들이 봄향기를 느낄 수 있는 외출 기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부르고 자유분방한 지금은 나물 같은건 그냥 주어도 귀찮해 한다.
우리가 언제부터 배불리 살았던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6.25 전쟁을 겪었고, 6,70년대 보릿고개를 헤치며 살아왔다.
딸린 식구는 많고, 먹을 것은 부족한 배고픔의 시련을 겪고, 밤낮없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비로소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이러한 풍요로움이 유대민족이 가나안 땅을 찾아가며 광야를 떠돌때처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지듯 공짜로 생긴 것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엇그제 어느 유투브를 보니 기가 찼다. 20대 젊은 아가씨의 첫 직장생활, 하루종일 직장에서 시달리다 집에 오면 파김치가 된단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 다음말이 가관이었다. 부자들이 가진 돈을 (공짜로) 나누어 쓰면 좋겠단다. 게다가 그전 유럽에선 부자들을 교수대에 매달아 죽였다는 말까지...
사람이다 보니 그런 생각은 할 수 있으되, 말까지 서슴치 않게 내뱉을 수 있을까?
그래? 생각은 자유지만...그렇다면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열심히 일하여 돈을 많이 벌고, 세금을 내려고 하겠니? 뻔히 교수형을 당해 죽을건데 말이다. 결국은 기성세대가 만든 비극이지만 그 말은 가혹했다.
너는 도대체 왜 사는거니? 나도 가난하지만, 그나마 세금이라도 내줄 수 있는 부자보다 너같은 무위도식을 바라는 인간들이 더 쓸모가 없다고 느껴진다는 악담의 말이 입가에 맴돌았다.
냉이가 쓰다고 먹기를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더라만, 오늘의 냉이는 사악해져 버린 인간들보다 열배 백배 새콤달콤한 향과 맛이 더했다. 열흘 전쯤엔 쑥국을 맛보았다. 내가 다니는 산책길 은밀한 양지녁에서 다른 곳보다 일찍 자라난 것을 캔 것이었다.
사람들은 무공해 자연식품을 찾는다지만, 정작 마트나 시장에서 물건을 살때에는 고상하게도 농약 많이 살포되어 잎줄기 생생한 모양 좋은 것을 고른다.
세상을 탓하거나 사람들을 비난할 생각은 관심 적다. 어차피 각자도생이라 하였으니 어떠한 가난이 닥쳐오더라도 각자가 알아서 살고 볼일이기 때문이다.
이젠 부자들도 눈치를 채어버려 더이상 당하지 않는다는게 현실이다. 조국탈출 세계 4위라던 어느 외국 소식통 대로라면, 이 나라 부자들은 가진 재산 보존하려거나, 교수형 당할까봐 정든 터전을 줄지어 떠나가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가난뱅이들만 남아 서로 더 차지하려 보따리를 쨀것인가? 그 아가씨의 생각대로면 롤모델이 더러는 있겠지! 베네수엘라, 이란에다 윗동네 전통의 김씨네마을...ㅎㅎ
냉이 이야기를 하다가 너무 나갔나? 빠르게 변하는 세상 못쫒아가면 바보가 된다지만, 이즈음엔 폐기된(?) 단어 고진감래, 냉이의 쓴맛속에 향긋함과 식욕이 돋듯 인생살이도 조금은 고난을 이겨 내어야 성취감과 참다운 삶을 느끼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은 뭘 생각하는 자체가 피곤하다. 세상살이 갈수록 삭막하고, 미래가 없다. 뭐 그래도 100세 시대라고? 나이 들어가는 나에겐 끔찍하게 느껴지는 무익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그래도 의무감 안고 살아야 하는 인생이라면, 냉이처럼 쓴맛속에 향내를 품고 사는척 살아감도 나를 포장하는 삶일 것 같다.
* 냉이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들로는 보리뱅이, 황새냉이, 개갓냉이, 지칭개 등이 있다. 보리뱅이는 먹어 보았지만 잎이 거칠고, 지칭개는 약제로도 쓰이는데 먹어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