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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귀하게 쓰이는 그릇
나균용 목사님
[딤후2:20-21]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오늘 본문 말씀이 가르쳐 줘요. 어떻게 해야 이긴다? 깨끗해야 이긴다. 쪼끄만 아이 성이 하나 있어 저까짓 거 쯤이야 문제도 아니지 그래서 쳐들어갔는데 참패를 당했어요. 아간이라는 놈 때문에 그러잖아요. 악인들은 그렇게 악하게 살다가 그래서 망하는 거고, 우리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쓰시느냐? 답은 오늘 본문에 있는 대로 딱 하나 깨끗해라.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세상에서 약한 자를 들었어요. 고린도전서 1장 26절부터 나오는 거잖아요. <너희를 부르심을 보아라 너희 중에 능한 자가 많지 않고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고 강한 자가 많지 않고 너희 중에 있는 자가 많지가 않다 하나님은 미련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시고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려고 하시고 없는 자를 들어서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하나님은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는 속이 깨끗해야 된다는 말씀이죠. 속까지 깨끗하게 하는 거는 금방 물로 씻어서 되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예요. <너희가 이 모든 것 가운데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된다> 주인이 그릇을 깨끗하게 씻어 주는 게 아니고 자기가 씻어야 된대요.
오늘 말씀의 요지는 깨끗한 사람이 하나만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다. 예레미야 5장 1절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저 예루살렘에 나가서 큰 길거리에서 찾아보고 알아라> 그 가운데서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어떻게 하신다? 내가 이 성을 사해 준다. 예루살렘을 사해 준다, 예루살렘에 전쟁 안 난다, 성전이 무너지지 않는다, 예레미야가 그것까지는 미처 몰랐을지 몰라요. 그런데 정작 바벨론이 쳐들어오고 나니까 다 무너졌습니다. 성전도 다 무너지고 다 불타버렸습니다. 성전 안에 있는 그 귀한 기물들 전부 다 뺏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다 불태워 버렸어요. 아무래도 그렇지 하나님이 자기 성전을 지켜주시겠지 사람이 타락했는데 사람이 더러워졌는데 그까짓 놈의 그릇이 뭐냐 사람이 더러워지면 그릇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 재료들을 주셨어요. 우리의 무엇을 깨끗하게 하는 데? 이 몸뚱이를 깨끗하게 하는 게 아니죠.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데 어떤 재료를 주셨죠? 무려 5가지나 돼요.
첫째, 에베소서 5장 26절 보니까 하나님께서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시고. 물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전서 3장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고> 회개를 통해서 선한 양심이 살아난다 그래야 깨끗해진대요. 양심이 살아나야 깨끗해지지 양심이 살아나지 않으면 인간은 깨끗해질 수가 없다.
둘째는 에베소서 5장 26절에 물로 씻어 그다음에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말씀을 주셨대요. 시편 119편 9절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할 수 있사오리까> 여호와의 말씀으로 깨끗해지는 거예요.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마음에 간직하고 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깨끗해진다는 거예요. 말씀이 나를 씻어요. 무슨 일을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살면 그 사람은 깨끗하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해야 됩니다.
셋째로는 <나는 너희를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무엇으로 세례를 베푸신다> 셋째는 성령
넷째는 불,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불을 받아야 돼요. 내가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 그런데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겠느냐 그런데 이게 붙지가 않어 예수님이 오셔서 공생애 3년 반 동안 사역을 하셨지만, 이 불이 붙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답답하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더 원하겠느냐> 그리고 그다음에 하시는 말씀이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이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내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무슨 세례를 받으신다고? 아니 옛날 요한한테 세례받으셨잖아요. 근데 무슨 세례를 또 받아야 돼요. 피의 세례를 받으시는 거죠. 십자가에서 피의 세례를 받으신 거예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되겠다 그 말이에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이 오지 않는대요.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어요. 피 흘리셨어요. 그리고 나서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불을 보내주신 거잖아요. 불 받아라 말씀하시는 거예요. 불은 곧 능력이에요.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우리 속에 불이 있으면 활동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고, 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요. 성령과 불로 깨끗하게 만드세요.
다섯째, 하나 남은 거는 피, 보혈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 됩니다. 아까 우리 오순절이라는 유월절 양 피를 바르는 이야기가 있었죠. 문 설주에 바르고 인방에 바르고 그러면 재앙이 왔다가 들어오지 못하고 널 넘어 가리라 우리 찬송했잖아요. 마지막 시대에 세상에는 무시무시한 환난이 옵니다. 어마어마한 재앙이 찾아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눈 이 몸의 많은 지체 중에서도 항상 제일 깨끗해야 하는 지체가 하나 있어요. 눈이죠. 근데 이 눈이 어떻게 항상 깨끗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배워야 돼요. 깨달아야 됩니다.
자 우리 마음에도 자꾸 더러운 게 들어와요. 들어오죠. 여러분 마음은 안 들어오는지 몰라요. 내 속에는 자꾸 들어오더라고. 더러운 생각 욕심, 음란, 도둑질, 탐심, 교만, 못된 게 얼마나 많이 들어옵니까? 마음에 이런 게 자꾸 들어오는데 들어올 때마다 싹 씻어버리면 마음이 항상 청결하고 깨끗해질 거 아니에요. 근데 이게 들어와서 씻겨나가질 않고 그냥 더 들러붙어 있어. 그러면 마음이 삐뚤어지죠. 마음이 똑바로 되지 않죠. 아까는 하나님이 보였는데 그게 하나 들어오니까 하나님이 안 보여 이게 병입니다. 이게 타락입니다.
우리를 청결하게 깨끗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의 재료들, 그래서 마음에 이 다섯 가지가 들어와 있어야 돼요.
첫째가 물 회개 빨리 깨닫고 주님 잘못했습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이 내 마음에 있으면 이런 게 왔다 가도 사탄아 물러가라 쫓겨나요.
셋째는 성령과 그다음에 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혈, 그 피가 마음속에 큰 증거 됩니다. 보혈이 흐르고 있어야 돼요.
우리는 주님이 보시고 기뻐하시는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장차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깨끗해졌다고 해서 당장 쓰임 받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훈련을 시키시겠죠. 연단을 시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장차 귀하게 쓰임 받는 주님의 백성될 수 있게 훈련을 이겨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십시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합니다. 보혈이 우리의 마음에 흘러들어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주옵소서. 날마다 깨끗케 하시고 승리를 주시며 놀라운 새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분
미태복음 1장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한마디로 말해서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어요.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구원을 위해서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서부터 우리 구원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다가 이제 인류의 마지막 때에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구원의 완성이 되는 거죠. 이 큰 역사를 이루시는 이 모든 것이 전부 구원이라고 하는 한 단어 속에 나타납니다. 또 예수라고 하는 이름이 구원을 뜻하죠.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런데 구원 가운데도 어떤 구원이냐.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해내실 분이라> 그래서 예수라고 하는 이름은 다른 많은 거에 구원이 필요하지만, 특별히 죄로부터 구원하신다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은 보다 근본적인 것, 죄에서부터 구원하시는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서부터 우리를 구원해내시면 다른 모든 거는 다 덤으로 따라오는 것들이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어떻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말씀 같고 평범한 말씀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이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깊이 깨닫고 <나는 과연 구원받았는가?> 이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첫째로 생각해야 될 것은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마지막에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해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옵소서> 첫째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셨고 그다음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시험을 물리치고 시험을 이기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셋째로 <다만 악에서 구해주시옵소서> 이 악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이 악의 세력의 침략을 받으면 너나 할 것 없이 다 넘어질 수밖에 없고 자빠질 수밖에 없고 이렇게 큰 불행을 만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기도문의 내용을 보면 이 앞부분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세 가지 기도가 있고 그다음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하는 기도가 있고 그다음에 세 가지는 죄의 용서와 시험에 드는 것 그리고 앞에서부터의 구원 이런 세 가지 이게 전부 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신다 하는 말씀은 바로 이러한 모든 것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하고 악에서부터 구원내시기 위해서 어떤 역사를 이루시느냐, 먼저 하나님은 우리의 환경을 바꿔주십니다.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부터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이주시켜 주셨습니다. 옛날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우상 장사하는 사람이었다. 우상을 만들어 팔고 이렇게 살았는데 세 아들이 있었는데 하란이 제일 맏아들이고 둘째 아들이 나홀이고 아브라함은 셋째 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맏아들인 하란이 죽어버렸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거기에 큰 충격을 받고 우상 장사하던 것을 그는 다 때려치워버리고 깨달음이 온 거죠. 내가 이렇게 하나님 모르고 우상을 만들어 팔고 우상 장사를 했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다 청산하고 거기서부터 이주를 했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시는데, 가장 중요한 거는 우상숭배하는 땅에서부터 건져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방법으로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 들어가서 400년 동안 살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부터 그들을 건져내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다 건져내세요. 그래서 어둠의 땅, 사망의 땅, 이 우상숭배의 땅,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의 땅,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이 우리를 건져내시더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놀라운 건지심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 왔다가 거기 정착하여 살지도 못하고 두루두루 이렇게 애굽에도 갔다가 또 블레셋으로 갔다가 이렇게 돌아다니게 되잖아요. 또 이삭도 마찬가지, 야곱도 마찬가지 이것이 심지어는 그다음 요셉에게 이르렀게 하시고 요셉을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게 하지 아니하시고 애굽 땅에 종으로 팔려가서 종살이를 하지만 거기에서 크게 출세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고 이렇게 해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하십니다.
이런 모든 과정 속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비밀하신 손길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아야 돼요.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다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도 처음에는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려내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고 몽둥이를 깨끗하게 하시고 이렇게 놀라운 기적을 이 행하시면서 육신의 구원 문제로부터 출발을 하셨지만, 나중에 예수님은 백성들에게 이 영적인 구원, 우리 영이 구원을 받아야 된다는 것, 우리 육신은 잠깐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거지만 그러나 우리의 영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므로 영의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심에 전념하시고 이 육신의 질병 고치는 그런 일은 많이 절제를 하셨어요.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은 고쳐주시지 않고 또 예수님이 실제로 많은 병자를 고쳐주셨지만, 그것도 그냥 아무나 닥치는 대로 다 고쳐주신 게 아니고 고쳐주실 만한 사람들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하고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셨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깊이 깨달아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내시되 제일 처음 어떻게 구원하시느냐, 악한 환경에서부터 건져내신다. 다만 악에서 구해주시옵소서라고 말씀할 때 악한 환경에서 구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데 우리가 그러면은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이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첫째 예수님을 믿어라 하는 말씀이죠.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믿으면서 사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전능하신 그분, 우리가 기도할 때 기도를 다 이루어 주시는 분 무엇 하나도 걱정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그런 아름다운 백성들이 되어야지만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런 꿈을 가지고 이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후원하고 그러면서 우리가 마음을 모아서 우리 조국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통일이 되면 우리도 다 북한 땅에 올라가서 교회 세우고, 그래서 우리 한국 백성들은 전체가 제사장 민족이 되어가지고 온 세계에 나가서 백성들 다 건져내는 이 거룩한 추수 작업을 이루어 나가야지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부터 구원하시는 분이라고 하는 사실을 마음에 깊이 깨닫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더욱더욱 아름다운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거는 나를 사랑해라 하는 말씀이죠. 그래서 새 계명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시고 요한복음 21장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나타나셔서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말씀을 무려 세 번씩이나 이렇게 거듭 물으시면서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잘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뜨겁게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백성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나균용 목사님)
요한복음 1장 29절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심을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우리 성경에 보면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모습이 몇 가지가 대표적으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유월절 어린양이 나오고 또 속죄 제물로서의 어린양이 나타나고,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에 하나님 앞에 드려져서 죽는 그런 어린 양도 나타나고, 또 대속죄일에 드려지는 하나님 여호와를 위한 양이 있고 아사셀을 위한 양이 있고, 사실은 염소나 양들이 나타납니다.
먼저 우리는 속죄 제물로써의 어린 양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에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속죄를 위한 제물은 제사 가운데 넷째 제사인 속죄, 다섯째 제사인 속건제가 있는데 이 2개가 다 속죄를 위한 제물입니다, 그리고 첫째인 번제도 죄를 속하는 것이고 셋째인 화목제도 죄를 속하는 것이고 제사란 다 죄와 연관이 있는 거지만, 첫째, 속죄제나 범죄나 둘째인 소재나 셋째인 화목제 이 3가지에 대해서는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넷째로, 나오는 속죄제나 다섯째인 속건제에 대해서는 향기로운 재물이라는 말씀이 안 나와요. 그래서 사실 이 죄를 위한 재물에 대해서는 향기롭다는 말을 안 쓰고 있는데, 예수님은 우리 에베소서 5장 2절에 있는 말씀 그대로 예수님은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셨다 했으니까, 예수님은 첫째, 속죄제로 제물로서의 어린 양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그리스도는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다>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6절에서 <더 이상의 본죄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 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 하신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번제와 속죄제를 완성시키셨기 때문에 이제 다른 이 짐승 잡아서 드리는 거는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씀이죠. 또 이사야 53장 10절에서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속건제물로 자기를 드리셨다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이 모든 제물이 되는데, 신약성경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화목제물이란 말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 요한일서 2장 2절, 요한일서 3장 10절에는 예수님은 화목제물이라고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대속죄일에 두 염소를 택해서 그중에 하나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가 되고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가 되는데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택함 받은 염소는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알 수가 있는 거죠.
첫째는 속죄의 제물로서의 어린 양이 있구요. 둘째는 유월절 어린 양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우리의 유월절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었다>고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에 어린 양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지셨다. 셋째는 대속죄에 되어지는 여호와를 위한 어린양인데요. 이것도 여호와를 위한 양은 예수님이다라고 말할 때는 문제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또 화목제물로서의 어린 양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화목제물이라고 설명하는 말씀이 3번 반복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화목제물이시다~ 이런 것을 우리가 마음의 깊이 깨닫는 시간이 돼야지만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조금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속죄 제물로써의 어린 양은 한 개인을 위한 어린 양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죄를 짓고 죄지은 것이 깨달아졌을 때 하나님 앞에 짐승을 잡아서 드리는데 이 제물은 우리 레위기 4장에 나오지만 소나 염소로 드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속죄 제물로 들이는 소나 염소로 이렇게 들여지는데 “예수님이 우리의 속죄를 위한 제물로 들여지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월절 어린양은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한 가정 단위입니다.
셋째로는 모리아 산에서 이삭 대신해서 죽은 어린 양이죠. 이것은 여러분들이 다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고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이삭을 결박하고 나무 위에다가 올려놓고 칼을 들어서 막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갑자기 <아브라함아 네 아들 네 독자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마라> 명령하셨어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살아났습니다. 그 다음에 놀라서 뒤를 돌아봤더니, 수풀에 어린 양 1마리가 걸려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깨닫기를 아하 이 양을 잡아서 대신 드리라고 하는 것이로구나 하고 그 양을 잡아서 이삭 대신에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첫째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돼야 되고, 우리 눈에 보여도 기도를 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눈에 안 보여야 기도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눈에 보여도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은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대속죄일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여호와를 위한 양입니다. 이것도 2마리의 염소를 취하는데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한 염소고,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염소고, 이렇게 둘로 하는데 이 둘 중에 여호와를 위한 염소로 택함 받은 그 염소는 분명히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이 확실한 이야기입니다.
이제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드려진 그런 어린 양입니다. 화목제물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내가 더 가까워지기 위한 제사입니다. 그래서 화목제인데 사실 화목제라고 하는 것은 말로 화목제라고 한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과 내가 더 가까워져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말씀을 더 우리가 생각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이 히브리 사람들은 제사를 드릴 때 피와 함께 기름과 콩팥이 중요한데요. 콩팥을 드리라고 했는데 이 콩팥이 왜 중요한가? 이것을 우리가 생각해야지 하겠습니다. 콩팥을 화제로 드리게 된 거예요. 3장 4절에 설명합니다. 구약에서는 콩팥이 무엇을 뜻하는 거냐? 감정과 생각과 양심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심장에는 우리의 마음이 있는 곳이고 마음이 있는 곳이고 콩팥에는 양심이 있는 곳이라는 거예요. 우리나라 말로는 심장 그것도 마음 심 자하고 소화기를 말하는 장을 써서 심장에 마음이 있다. 그런데 양심은 어질 양자에 마음 심자를 써서 양심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은 마음입니다.
함께라고 할 때에 그거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과 내가 함께하는 거죠. 그런데 지식도 하나님과 내가 함께하는 지식, 공통된 지식 둘이 같이 인정하는 지식, 이런 지식이래야 된다고 하는 거죠. 이것이 칸시언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양심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옳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나도 그게 옳습니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함께 동의하고, 함께 인정하고, 함께 알고 ,이렇게 나가는 것을 가지고 칸센스라고 합니다. 양심이라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우리말로는 양심이라는 번역이 적당한 번역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양심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 속에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 입니다하고 고백하는 이게 우리 양심 아닙니까? 하나님도 나에게 너는 죄인이다. 말씀하시고 나도 하나님 앞에 옳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렇게 고백하게 되고 이것이 양심입니다.
이런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느냐 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난다, 곧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서 우리가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게 될 때 우리의 양심이 살아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 될 수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십니다.
그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는 말씀은 작게는 나 개인의 죄를 해결하는 속죄의 제사로부터 나가서 유월절 어린 양이 되어 내 가정에 죄를 없애는 거고, 더 나아가서 속죄제사가 되면은 그것은 민족 전체가 죄를 지었을 때 그 백성 전체를 위한 제물로 소를 잡아서 바쳤는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개개인을 위한 제물도 되시지만, 내 가정을 위한 제물도 되시고 더 나아가서 이 나라, 이 민족 전체 더 나아가서는 온 세계 인류를 위한 속죄의 제물로써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이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되고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더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려면 우리의 죄를 씻는 방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밖에 없음을 깊이 깨닫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주님의 이 큰 구원의 역사가 삶속에서 나타나고 아름답게 성취하는 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나균용 목사님
삼하 20:14-19
14 세바가 이스라엘 모든 집합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발을 에우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 지어다 들을 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이 말씀의 배경을 먼저 좀 설명을 드려야 됩니다. 사무엘하는 굉장히 어두운 내용의 이야기가 있는 장입니다. 제일 처음에 다윗이 죄를 범하죠. 충성된 장군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결국 장군을 전쟁터에 내보내서 죽이고. 그 일로 말미암아 아들들 사이에서 분란이 일어나고 전쟁이 나고 아들들이 서로 죽이고 이런 불행한 일이 있고 그것도 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그래서 압살롬이라고 하는 아들이 왕까지 죽이려고.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하는 큰 반역을 겪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평생 전쟁을 많이 한 사람이지만 전쟁마다 다 이기고 어려움이 없었는데 아들이 반역을 일으키고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니까 아들과 같이 싸우지는 못하고 아들을 피해 가지고 도망을 다니잖아요. 이렇게 도망을 다니는 불행한 이야기, 그런 속에서 하나님 앞에 얼마나 기도했겠습니까? 기도하면서도 다윗의 마음은 그래도 저걸 자식이라고 하나님께서 저 자식을 해치지 말아주시기를 빌면서 이렇게 했지만, 결국 압살롬은 다 멸망을 받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겨우 이게 평정이 됐나 했는데 또 문제가 일어나죠.
무슨 문제가 또 일어납니까? 이번에는 오늘 본문에 있는 얘기가 그겁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난은 겨우 평정했는데 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세바라고 하는 자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을 모아 반역을 또 일으켜서 다윗을 몰아내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이런 짓을 해요. 그러니까 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급히 요압을 장군으로 세워서 토벌하라고 내보냈는데 이들이 가서 있는 곳이 아벨이라고 하는 성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제일 북쪽 끝에 아벨이라고 하는 성이 있는데, 거리로 가서 그 성을 점령하고 세바가 거기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고 요압 장군이 가서 성을 포위하고 그냥 다 무너뜨리려고 이렇게 작정을 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성문을 꼭꼭 잠가놓고 그러고 있으니까, 토성을 쌓아가지고, 이렇게 해서 성보다 더 높이 토성을 쌓아서 쳐들어가려고 이렇게 계획을 하고 이런 일들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그 성의 지혜로운 여인이 하나가 있어(성경에는 이름도 안 나와요) 이 여인이 나타나서 <내가 요압 장군을 만나보고 싶다. 그리고 요압 장군을 좀 이리로 오시라고 해라> 이렇게 해서 요압 장군이 그래도 또 그 말을 듣고, 우리 같으면 웬 미친년이 날 부르느냐 하고 상대도 안 할 거예요. 그런데 요압이 겸손했던 거죠. 그래서 그래 혹시 무슨 좋은 방법이 있을까? 사실은 요압도 이 성을 이제 무너뜨리고 이 세바라는 놈을 잡아서 없애버려야 되겠는데 반역군을 다 진압을 해야 되는데 이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이 궁리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에 뾰족한 수가 나타나는 거는 아니잖아요.
성을 튼튼히 걸어 잠그고 그리고 대응하고 있으니 이거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고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있고 만약에 전쟁을 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이 다칠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아도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습니까? 이러고 나라가 피폐해 졌는데 또 이러한 반역이 일어났으니 이거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요압도 많이 고심을 했을 텐데... 웬 여인이 나타나 가지고 요압 장군을 만나고 싶다. 하니까 요압이 만나러 갔어요. 당신이 요압입니까? 그렇다 내가 요압이다. 아 그랬더니, 오늘 그 여자가 구절 말씀에 이렇게 말하잖아요.
18절에 <먼저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다. 그러니깐 이 아벨이라고 하는 도시는 옛날부터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왔던 그런 도시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 아벨에 쳐들어와가지고 여기를 다 둘러싸고 멸망시키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혜자들이 있는 성은 무너뜨리면 안 된단 말이에요. 지혜자들이 있는 곳에 가서는 지혜를 배워보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받아야 되는 것이지, 무너뜨려서는 안되는 곳이다, 그랬더니 요압 장군이 대답하잖아요.
그게 이제 20절 이하에 나타납니다.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그렇지 않다는 말을 3번이나 반복하죠. 그러면서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서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성에서 떠나가리라>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랬더니 여자가 말하기를 <그의 머리로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던지리다>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여자가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감에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서 요압 앞에 던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압이 그 세바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나팔을 불어 무리를 다 모아, 무리가 다 그 성벽에서 물러나서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이렇게 반역을 진압했다 하는 것입니다.
뜻 있는 사람들 몇몇 사람들하고 다 이렇게 연락을 취해 가지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자 그래 가지고 저 세바를 잡아가지고, 저놈의 목을 쳐서 우리가 이것을 요합 장군에게 던져주자 이렇게 계획이 됐을 거고, 거기에 용감한 사람들이 힘을 모아 가지고 결국 세바를 잡아서 그의 목을 쳐서 그의 목을 요압에게 던져주었다 이거잖아요.
보통 여자 같으면은 이거는 감히 엄두도 못 내리게 어떻게 그런 일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남자들도 하지 못하는 일을 여자가 해냈습니다. 이게 다 뭘 말합니까? 지혜를 가지면 여자가 지혜를 가지면 남자들로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낼 수가 있다. 지혜를 가지면 막 굴복하게 된다. 지혜를 가지면 전쟁이 필요가 없다. 이 땅은 참 평화의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도 전쟁을 통해서 나라를 평화롭게 만드는 게 아니고 지혜를 통해서 우리나라를 새롭게 만들어야 되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훌륭한 지혜자가 나오게 되는 거고,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들 하나님 잘 섬기는 사람이 줄어들면 지혜로운 사람들도 자꾸 줄어들죠.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이 없으면 지혜로운 사람도 나타나지가 않아요. 그래서 이 씨도 중요한 거고, 토양 흙도 중요한 거고, 다 그런데 이 땅에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토양이 전부 옥토로 변하고 그래서 거기에 숨겨진 지혜가 잘 자라서 이 땅에 지혜로운 일꾼들을 많이 길러내게 될 것입니다.
먼저 우리 가정 가정이 이 지혜의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우리 교회 교회가 지혜로운 사람들로 가득해지고, 이렇게 하면 이 나라가 변하고 세계가 변하고 이 땅에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큰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혜를 더욱 간절히 구해야지만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민족복음통일을 허락하시고 전 세계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고 제사장 나라로서의 큰 사역을 감당해 나가는 역사를 일으켜주옵소서.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만을 영화롭게 하는 주님의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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