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과 죄의 자각에 대해 다소 부족함이 있는 것 같아 보충 하고자 합니다
1. 중생과 죄의 자각.
A.. 앞선 글에서 죄의 자각은 어릴 때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일어나고
성경에서도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기에 율법은 믿음으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의
역활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말하는 죄의 자각은 <하나님을 믿지 않음 / 예수님을 믿지 않음> 의 죄가 아닌
자신의 일생동안 저지른 <자 범죄의 자각>에 대해서만 설명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간증에서 증거하는 죄의 자각은 죄의 본질에 대한 자각이 아닌
자신의 자 범죄에 대한 기억을 되 살려 주시는 성령님의 역사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 //
죄의 자각에 대해 과연 성령님께서 자 범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 선생의 역활을
반복하시기 위해 중생의 역사를 하시는가에 대한 의문을 쓴 것입니다.
실제 이 간증들은 이후 놀랍고 큰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이 증거들은 <죄로 부터 돌아 섬> <마음으로부터의 변화> 라는 말에 합당한
행위의 변화를 가져 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 의문은 많은 신자들에게 나타나는 중생과 회심의 이 자 범죄의 자각 체험이
진실로 성경과 기독교 교리에 부합하는 중생과 회심 체험이냐? 는 것입니다.
논쟁을 야기 하고자 함 보다는 먼저 우리 모두가 의심 없이 인정했던 것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더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B. 중생과 또 다른 개념의 죄의 자각
자 범죄에 대한 자각은 누차 언급 했듯이 성령님이 없어도 율법과 성경과
양심과 문화와 법에 의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는 중생이 없이는 깨달을 수 없는 죄의 자각이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불신이라는 죄> 입니다.
성령님께서 오시면서 가르치시는 죄는 < 자 범죄에 대한 자각>이 아닌
<불신에 대한 죄의 자각>입니다.
요한 복음 16장 9 절 성령님께서 오시면 가르치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 즉 세상 사람들이 나를 < 즉 하나님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함이라고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역사 하시는 중생을 통해 신자가 처음 깨닫는 죄는 <믿지 않음> 입니다.
이 때문에 중생 때 일어나는 회개는 <믿지 않았음 / 믿지 못했음>에 대한 회개입니다.
사실 이 죄는 잘 아시다시피 아담으로 말미암은 원죄입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하나님을 스스로 먼저 믿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믿을 능력이 없으니 은혜가 아니면 당연히 구원받을 방법도 없어진 것입니다.
중생 때 실질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두 가지가 뚜렷합니다.
< 이제야 믿습니다 > 라는 믿음의 고백과
<그동안 믿지 못했습니다 / 잘못 했습니다> 라는 회개입니다.
이 두가지 믿음과 회개는 성령님의 역사인 은혜가 없으면 불 가능한 것입니다.
누차 설명 했듯이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믿음은
스스로 성경의 지식을 믿는 방법 / 막연한 하나님 또는 조물주를 믿는 것
외엔 없고 이것은 알미니안의 믿음과 다를 바 없는 자의적 신념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하심의 시작인 성령님의 역사를 통한 중생은 누구나 또는
에정된 자의 믿음에 의한 수동적인 것이 아닌 / 전적 주권적 은혜로 일어 납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은혜로 얻는 믿음은 자의적 믿음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은혜의 믿음을 얻으며 함께 나타나는 것이 <불신에 대한 회개> 입니다.
믿음을 얻지 못하면 회개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없는 회개란 말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 믿음과 회개는 중생과 거의 동시적 / 즉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자 범죄에 대한 자각은 성령님이 없어도 누구나
어릴 적 부터 오랫동안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 견해는 회심이란 /
중생이라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는
<믿음의 얻음> 과 <불신에 대한 회개> 로
믿음의 대상과 회개의 대상을 명확히 알고 믿고 회개하게 하시는 /
하나님의 은혜가 성령님을 통해 맨 처음 가르쳐 주시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성도는 비로소 믿음과 회개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는 성령님이 오시면 가르쳐 주신다는 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과도 일치 합니다.
2. 그러면 중생이란 무엇인가?
중생은 말 그대로 세상 백성에서 천국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중생을 통해 인간이 체험하는 것은 믿음과 회개이지만 /
실제적인 것은 천국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 하겠습니까?
중생을 통해 천국을 보게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영 이시듯이 천국을 본다는 것도 영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 자체가 광대하신 나라 즉 천국이십니다.
천국이란 세상에서 말하는 나라 라는 단어의 공간적 개념 보다는 /
< 주 안에 / 하나님 안에> 라는 영적 개념의 단어라고 생각 합니다.
온 세상과 우주 만물이 다 그의 안에 있다는 것처럼.....
성령님의 역사라 함은 성령께서 영으로 택자에게 실제적으로 임재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에 따라 인격적으로 / 또는 나라 같은 광대하신 존재로 말입니다.
인간은 바람 그 자체를 볼 수 없듯이 하나님의 영을 볼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영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을 깨닫습니다.
바람은 볼 수 없지만 그 소리를 듣고 바람임을 알 듯이 /
택자는 성령을 볼 수는 없어도 성령님의 임재를 알게 되는 것이 신비한 역사입니다.
보이는 것은 없지만 분명한 < 성령님의 임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임재 하시고도 이를 택자가 모르게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려면
무엇하러 오시겠습니까?
바람이 소리조차 없고 나뭇 잎을 흔들지도 못한다면 누가 바람을 바람이라고 알겠습니까?
성령의 역사를 못 느낀다면 / 성령의 역사라는 표현을 어찌 쓸 수 있겠습니까?
사울에게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예수님의 영과 빛으로 나타나심처럼......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시지만 분명히 성령님임을 알게 하시는 역사를 말 합니다.
만일 이것이 <신비주의>라고 하신다면 여러분에게 나타나고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님의 역사> 란 뜻 자체가 신비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내주 성령>은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파노라마처럼 자신의 죄들을 기억나게 하심 /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는 모습/ 방언
등등의 간증에서 나타나는 내용 또한 성령님의 신비한 역사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영적 체험 없이는 증언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심이라는 결과물을 갖고 중생을 유추해 내려고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는 햇빛을 가지고 태양에 대해 어느정도 설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태양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은 태양 안으로 직접 들어 가 관찰 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태양 안으로 들어 갈 방법이 없기에 추론의 방법 외엔 없습니다.
같은 이치로 그 누구도 죄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단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아 갈 수 없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시면 되는 것입니다.
찾아 오신 하나님을 아브람처럼, 사울처럼 비로소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진리란 유추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란 보여 주시는 대로 보고 가르쳐 주시는대로 아는 것 뿐인
전적인 성령님의 주권적 가르침입니다.
진리의 증거는 오직 성경과 성령님을 통해 배운다는 것 뿐입니다.
그렇다고 성도의 이성을 묶어 두신다 또는 로봇처럼 하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님의 전지 하심>을 통해 성도의 이성을 간파하시고
더 새롭게 하시며 새롭게 하신 이성을 성도가 활용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중생도 중생 그 자체가 증거입니다.
중생이 그 자체가 증거인 것은 / 성경과 성령님의 역사가 상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회심은 이 증거에 따라 사람이 이성으로 반응 한 것 뿐입니다.
결국 중생이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하나님의 하나님이심> 과
< 하나님은 곧 하나님의 나라임>
<바로 그 하나님과 그 나라를 믿으라는 가르침을 위하여 증거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
라고 저는 주장 하고 싶습니다.
주기도문 /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
왜 우리는 이 기도를 해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천국 백성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언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십니까? 세상 백성이 천국 백성 되는 중생 때 입니다.
언제부터 성도의 마음 속에 천국이 임합니까? 성령님이 오시는 때 입니다.
언제부터 성도가 천국을 맛보며 살아 가는 것입니까? 중생 때입니다.
언제부터 성도는 거룩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까? 전부 중생 때 입니다.
죽어서 영원한 천국에 들어 가는 것과 현실에서 천국 백성인 성도가 되는 것은
또 다른 개념입니다.
성도는 죽어서가 아닌 / 중생하며 천국 백성으로 하나님께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천국 백성된 너희들이 천국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믿으라는
가르침을 주시기 위한 성령님의 역사이시고 /
이로 말미암아 믿음의 대상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3. 회심
따라서 회심은 성령님의 역사인 중생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음 과
그동안 믿지 못했음을 회개하고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로 믿고 돌아 섬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습니다.
4. 중생과 성화
중생과 회심의 구별이 분명해진다면 믿음과 행위에 대한 개념도 명확해 질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올바른 중생과 회심의 개념 없이 / 견인과 성화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문으로 들어 갔는데 /그 안의 내용을 증거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의견과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첫댓글 제가 쓰고자 하는 내용은 중생과 회심에 대한 구원의 서정 교리와 성경 내용의 해석의 차이 때문입니다.
물론 헬라어 나 히브리원어를 모르니 올바른 해석에 무지 하겠지만....
많은 글들을 찾아 보아도 제대로 이해가 힘듭니다.
제 개인적 체험을 주장 한다는 분들도 있습니다만, 제 의문은 제 개인적 체험을 주장 하고자 함이 아닌....
중생과 믿음 또는 중생과 회심에 대한 설명들이 오히려 각자의 체험에 기인하거나
또는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라는 의문이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저 혼자만의 이상한 의문인지 ?/ 정말 궁금합니다.
몇년전 우리나라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고든 스미스의 온전한 회심 7가지 얼굴을 보면
회심의 동인으로 믿음, 회개,신뢰와 용서의 확신,충성과 헌신의 결단과 다짐, 물 세례,성령님을 선물로 받음,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일원이 됨을 꼽았습니다.
회심의 결과로 나타난 것도 동일한 7가지였습니다.
결론은 회심의 동인이 결과이고 결과가 동인이라는 제 상식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유명 하신 분들의 추천을 받아 여러 상을 받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진실로 중생과 회심에 관해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올바르게 정리된 책이 나오고
모든 교인들에게 전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중생과 회심은 구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인데 아직도 논쟁이 있고
여러 신학자들의 주장을 올바른 기준 없이 추종하거나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 합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회자분들께 그들의 영혼을 믿고 내어 맡긴것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생과 회심조차 이해 못한다면 어찌 그 안의 하나님의 세계는 올바로 이해할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자 범죄에 대한 자각과 전도자의 복음 선포를 듣고 받아들여 하나님, 예수님 앞에
나아 가 구원을 부탁 드리는 것 // 이것도 중생과 믿음에 포함 시켜야 할까요? 외적 소명 아닐까요?
이 구원을 부탁 드렸을 때 나타나시는 성령님의 역사 // 이것이 중생 아닐까요.
이유는 이는 택자에게만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가 내적 소명인 특별 은총 아닐까요?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의 경계는 중생.
성령님의 역사에 대한 반응 //, 믿습니다.. 그동안 믿지 못하고 믿으려 했습니다. 잘못 했습니다.
구원해 주십시요 등등 인간이 반응 하는 고백과 생각 //이것이 회심 아닐까요..
이 세 가지를 굳이 구별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글이 계란으로 바위치기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수 많은 신학자, 목회자, 중직자, 교인들이 모태 신앙
또는 어릴 적 부터 이미 믿음이 시작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믿음 후 중생은 이해가 쉬워도// 중생 후 믿음은 그들의 경험상 맞지가 않습니다.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맞추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너무도 사랑하여 신학교에 가서 중생을 체험하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뭔가 잘못 되어도 아주 잘못 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 글의 논리에도 자가 당착 또는 모순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저 스스로 발견하기가 힘듭니다.
있다면 가르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중생 후 믿음이라면 믿음 없는 사람 가운데 중생한 사람이 있다는 말과 같은 말이지 않습니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중생합니까? 그러면 귀님의 말대로 본다면 1차중생(?)--믿음(회심)--2차중생(거듭남) 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귀님은 중생을 1차중생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성령의 내적사역은 회개하게 하고 믿음을 결단하게 만드는 사역을 의미합니다. 회개하고 믿음을 결단하여 받아들일 때(회심할 때) 순간적으로 중생(거듭남)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때 성령이 들어와서 내주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회개와 믿음(회심)과 거듭남과 성령의 내주가 모두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의 많은 교인들은 어릴 때부터 믿어야 한다, 나는 믿는다라는 자기 암시
또는 자기 최면과 가르침등으로 믿음을 스스로 강화 시킵니다.
믿음은 나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 저도 하나님을 믿고 싶습니다 라는 사모함과 복음과 죄의 자각에서
나오는데 / 현대 교인들은 아예 나는 믿습니다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믿게 된 것이 은혜의 믿음이라고 주장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분들께 믿음은 중생 때 얻는 것이야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되겠습니까?
대부분의 교인들이 중생 후 믿음을 거짓 이단교리로 치부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올바른 중생론 확립과 전파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