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1.수요성령집회 설교
*본문; 요일 1:~10
*제목; 요한서신 읽기(1) 생명의 로고스와의 사귐
1. 야고보와 요한의 차이
이제 지난주까지의 ‘야고보서 읽기’를 마치고, ‘요한서신 읽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요한서신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지의 저자인 요한(일반적으로 사도 요한과 동일 인물이라고 이해하고 있다.)을 정확하게 이해해야한다.
사도 요한은 매우 정서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예수님과도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후견인(아들)로 지정될 정도로 예수님의 신뢰를 얻었다.
이런 그가 믿음을 정의하는 것에 있어서, “사귑”(관계성)과 “영적 깊이”(외면보다는 내면으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시각으로 지금-여기를 평가함)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본문 가운데 다시 다루어질 것이다.
어쨌든 사람은 이처럼 “자기”라는 렌즈로 세상을 본다. 세상이 더러워 보이는 것은 자기반성의 근거가 된다. 그러므로 바른 시각과 삶을 위해서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세워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야고보, 그리고 요한 등의 서신을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선언들을 종합해서 예수님의 우리를 향한 바른 뜻을 조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 모두가 다 예수님의 뜻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진행되는 ‘요한서신 읽기’를 통해서 우리의 믿음의 내용과 방향성, 그리고 결단이 분명해지길 기도하다.
2. 생명의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
요한의 예수님을 지칭하는 표현을 보면 가장 요한스러움(?)이 묻어난다. ‘1절’을 보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1)
요한은 예수님의 기원을 태초로부터 시작한다.유대인의 왕이신 다윗의 후손으로 해석하려는 베드로 사도 등의 시도와는 출발점이 완전히 다르다. 예수님을 더 근원적으로, 더 깊이 이해한 것이다. 그의 관계성에서 그의 신앙의 시점이 출발한 것이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은 한 마디로 “생명의 로고스(말씀)”이다.
“로고스”란 그리스철학의 개념에서 차용된 것이다.(이것만 본다면, 그가 어떠한 청중을 기대하고 이 편지를 쓴 것인지 유추할 수 있다.) 신(一者)과 인간 사이에서 신의 뜻과 신의 사역을 전달하는 신이 바로 “로고스”이다. 특별히 예수님은 창조하시고, 생명을 부어주시는 신이라는 것이다.
말씀으로 해석된 이 로고스는 그래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신이다. 사도 요한은 이 그리스철학의 개념을 예수님께 적용하여 예수님의 존재와 사역을 표현하려 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그리고 우리 인류에게 있어 예수님은 하늘의 생명을 전하는 가장 소중한 분이신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 로고스를 우리가 직접 보고, 직접 만진 놀라운 은총을 누렸다는 고백이 더해 있을 뿐이다.
이것이 기독교가 오직 예수라고 거듭 고백하는 이유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첫 번째 생명을 부여하신 분일뿐만 아니라, 이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완성하신 두 번째 생명(영원한 생명)을 부여자이신 것이다.
3. 요한이 말하는 믿음이란?
요한다운 예수님의 고백에 이어, 요한다운 믿음의 표현이 나타난다. ‘3,6절’이다.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요일 1:3,6)
바로 “사귐”이라는 단어이다.하나님과의 믿음에 관한 부분을 “사귐”이라는 표현으로 사용한 사도는 오직 요한이 유일하다. 즉, 사도 요한은 믿음은 예수님과의 관계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믿음에 대해 모호한 정의와 태도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가장 정확한 선언이요 지적이다.
당신과 예수님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당신은 어떨 때에 예수님을 찾는가?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감정들이 일어나는가?
사도 요한의 믿음에 대한 관계성 표현(사귐)의 정점이 “사랑”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사도 요한에게 믿음은 사귐이고 사랑이다.
당신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얼마나 깊은 사귐과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믿음의 진위를 결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된다. (마치 진짜 아버지와 가짜 아버지의 차이처럼, 혹은 진짜 남편과 가짜 남편의 차이점처럼.)
4. “사귐”이 있는 믿음의 증거
그렇다면 예수님과 사귐이 깊어진 성도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기쁨이 일어난다. 사랑해본 사람은 다 안다. ‘4절’이다.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일 1:4)
양로원에서 손주 자랑을 하지 않기로 한 양로원 이야기를 잘 알지 않는가? 손주 자랑을 하면 만원의 벌금을 내기로 한 다음날, 어찌 되었는가? 조용해진 것이 아니라, 돈만 수북히 모였다고 한다.
예수님과 사귐이 깊어지면, 믿음이 생기면, 그 분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자랑에 기쁨이 넘쳐난다.
당신은 예수님과 이런 사귐이 있는가? 사도 요한은 없으면 가짜 신앙이라고 말한다.
둘째,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행한다고 한다. ‘6,9절’을 보자.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일 1:6,9)
사랑하게 되면, 그가 원하는 말과 행동을 하려 한다. 그래서 어두움의 일을 버린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아뢰고 속 시원해지려 한다. 이것이 사랑이고, 사귐이고, 믿음이다.
만일 예수 믿고 내 안에 이러한 일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가짜 신앙인이다. 나는 어떠한가?
첫댓글 이 설교는 사도 요한의 성품과 신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은 관계성을 조명합니다. 저자는 요한이 예수님을 태초부터 존재하신 '생명의 로고스'로 정의하며, 신앙의 본질을 단순한 교리 수용이 아닌 인격적인 '사귐'으로 보았음을 강조합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과 소통하며 그분 안에서 영적인 기쁨을 누리는 역동적인 과정으로 묘사됩니다. 또한 이러한 사귐의 증거로 성도의 삶에 나타나는 정직한 회개와 진리를 행하는 구체적인 변화를 제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설교는 독자들에게 자신의 신앙이 관념에 머물러 있는지, 아니면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실제적인 관계에 뿌리박고 있는지 자문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