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모르는 순대 이야기. 출출한 배를 안고 길을 걷다 보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풍기는 냄새에 저절로 발길이 향한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어림잡아보지 않더라도 자신 있게 “이모, 떡볶이 한 접시랑 순대 주세요, 오뎅 국물은 써비스~, 알죠?”를 외칠 수 있는 길거리 음식. 그 가운데 단돈 2천원이면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 3대 길거리 분식을 대표하는 국민간식 ‘순대’다. 순대의 어원은 만주어로 순대를 가리키는 ‘셍지 두하(senggi-duha)'에서 나왔다고 한다. ‘순’은 피를 뜻하는 ‘셍지’, ‘대’는 창자를 뜻하는 ‘두하’가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셍지’는 고려 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짐승의 피를 가리키는 '선지'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또 셍지두하의 한자어를 우리말로 발음하면 〈순타〉라고 발음되기도 하는데 순타라는 말이 점점 순대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릇 대신 음식물을 보관할 수 있는 순대의 아이디어는 중국의 대륙 정벌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칭기즈 칸이 대륙을 정복할 때 돼지의 창자에 쌀과 야채를 혼합하여 말리거나 냉동시켜 보관성과 휴대하기 편해 전투식량으로 활용했고 이러한 음식들은 군대의 기동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중국의 <제민요술>에 실린 순대의 기원 19세기 말 <시의전서>에 처음으로 등장한 ‘도야지 ?대’ 이처럼 순대는 버려지던 창자를 이용해 맛뿐만 아니라 보관법에서도 인류 문화상 가장 독창적인 조리 방식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양의 피와 양고기 등을 다른 재료와 함께 양의 창자에 채워 넣어 삶아 먹는 법’으로 이는 창자에 재료를 채워 먹는 지금의 순대 제조 방식과 흡사하다. 흥미로운 것은 원나라의 요리서 〈거가필용〉은 순대를 관장(灌腸)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아마도 순대를 만들려면 먼저 창자를 씻어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으나 지금의 ‘관장’을 생각하면 그리 식욕을 돋우는 명칭은 아니다. 제민요술이 저작될 당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고, 시대상 중국의 음식이 많이 전파되었다는 각종 문헌을 봐서는 삼국시대에도 순대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되기도 한다. 이런 요리법으로 만든 순대는 17세기 중반에 출간된 책에 개의 창자에 개고기를 만두소 버무리듯이 하여 가득 넣는 개장(犬腸)이 소개되어 있고 18세기 영조 42년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19세기 초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우장증(牛腸蒸)’으로도 쓰여 있다. 이름 그대로 소의 창자에 소를 넣고 찐 것이다. 역시 〈주방문〉에는 소의 창자에 선지를 넣어 삶는 황육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돼지 창자 속에 무엇을 넣느냐는 그때마다 다르겠지만, 무척 많은 재료가 들어갔다. 북한식 순대, 개성에서 유래 분탕 대신 찹쌀과 흰쌀을 섞어 만들기도 한다. 돼지밸에 순대소를 넣고 두 끝을 실로 묶어서 끓는 물에 넣어 삶다가 침질하여 공기를 뽑는다. 익으면 건져서 한 김 나간 다음 편으로 썰어 담고 초간장과 같이 낸다”고 돼지순대 조리법이 실려있다. 조용헌의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이란 책에 실린 간송(澗松·전형필)가(家) 며느리 김은영 씨의 증언에 따르면, 쌀겨나 밀겨만 먹고 자란 돼지의 창자로 만든 ‘절창(絶脹)’이란 순대가 있었다고 한다. 겨만 먹은 돼지는 지방이 적고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았다는 내용도 함께 전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순대는 북쪽의 함경도부터 남쪽의 제주도까지 만들어진 지역마다 그 지역의 풍토와 생산되는 재료가 첨가되며 고유한 맛과 특색이 생겨났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소창(작은 창자)은 한없이 나오지만 대창은 기껏 해야 50cm~1m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대창을 이용해 만들었기에 귀하고 좋은 것이라는 뜻의 '아바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함경도 출신들을 아바이로 부르고 있어서 그 고장 향토 순대음식을 호칭하기도 한다. 이 마을은 함경도 사람들이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가 고향에 가지 못하고 정착하여 만든 동네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함경도 외의 사람들도 마을에 꽤 터를 잡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민의 60% 정도가 함경도 출신이다. 1999년 함경도 향토음식 축제에 출품되어 처음 이름을 얻었고 지금도 계속 아바이순대로 불리고 있다. 함경도 순대 중에는 아바이순대 외에 명태순대, 오징어순대가 있다. 양배추, 마늘, 양파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야채와 새우젓 등의 양념을 선지와 함께 비벼낸 것이 천안의 명물 전통 병천순대이다. 뽀얀 국물 속 담백한 순대가 가득한 순대국밥은 시골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어느 장터에서나 허기진 장꾼들의 저렴한 한 끼로 사랑받아온 메뉴이다. 병천순대가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한국전쟁 후 이곳 병천에 햄 공장이 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한다. 돈육의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값싼 부산물을 이용해 순대를 만들어 먹었는데 먹을거리가 귀하던 그때 저렴하면서 영양 많은 순대는 서민층에게 환영받는 음식이 되어 오늘날 병천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글 안세준 요리사. 카페 아일을 거쳐 현재 오키친 여의도 점 셰프로 일하고 있다. 웹진 Switch SHINHAN BANK |
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