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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당신이 모르는 순대 이야기.
ysoo 추천 0 조회 252 16.09.04 12: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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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모르는 순대 이야기.


출출한 배를 안고 길을 걷다 보면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풍기는 냄새에 저절로 발길이 향한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을 어림잡아보지 않더라도 자신 있게

“이모, 떡볶이 한 접시랑 순대 주세요, 오뎅 국물은 써비스~, 알죠?”를 외칠 수 있는 길거리 음식.

그 가운데 단돈 2천원이면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바로 대한민국 3대 길거리 분식을 대표하는 국민간식 ‘순대’다.


음식보관 방법으로 시작된 순대


순대는 그 인기만큼이나 이런저런 풍문에 시달리곤 한다. 겉을 감싸는 것이 동물 창자가 아니라 식용비닐이라는 둥, 이름은 찹쌀순대인데 들어가는 속 재료는 당면이라는 둥 설왕설래 말들이 많다. 그런데 알고 보면 순대의 꽉 찬 속만큼이나 우리가 모르는 속사정이 많다.


순대는 코끝이 시려울 무렵 추울 때 먹는 것이 제맛이다. 원래 추울 때 먹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순대의 어원은 만주어로 순대를 가리키는 ‘셍지 두하(senggi-duha)'에서 나왔다고 한다. ‘순’은 피를 뜻하는 ‘셍지’, ‘대’는 창자를 뜻하는 ‘두하’가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셍지’는 고려 말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짐승의 피를 가리키는 '선지'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또 셍지두하의 한자어를 우리말로 발음하면 〈순타〉라고 발음되기도 하는데 순타라는 말이 점점 순대로 변형되었다는 것이다.


장에 들어간 고기는 피와 곡물 등과 섞여 숙성되면서 전혀 다른 맛을 낸다. 어떻게 장에 고기를 집어넣을 생각을 다 했을까 신기하기만 하다.

이처럼 그릇 대신 음식물을 보관할 수 있는 순대의 아이디어는 중국의 대륙 정벌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칭기즈 칸이 대륙을 정복할 때 돼지의 창자에 쌀과 야채를 혼합하여 말리거나 냉동시켜 보관성과 휴대하기 편해 전투식량으로 활용했고 이러한 음식들은 군대의 기동성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중국의 <제민요술>에 실린 순대의 기원

19세기 말 <시의전서>에 처음으로 등장한 ‘도야지 ?대’



만주의 유목민들은 잦은 이동에 음식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음식물을 처리해 보관했다. 수시로 양의 젖을 짜서 술과 유제품을 만들어 식량으로 확보했고, 젖을 짤 수 없는 겨울에는 고기를 주식으로 해야 했기 때문에 가축을 도살하면 고기뿐 아니라 내장과 뼈, 피, 가죽까지 알뜰하게 이용했다.

이처럼 순대는 버려지던 창자를 이용해 맛뿐만 아니라 보관법에서도 인류 문화상 가장 독창적인 조리 방식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순대의 기원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6세기에 쓰인 중국의 종합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양반장도(羊盤腸搗)라는 순대요리가 기록되어 있다.

‘양의 피와 양고기 등을 다른 재료와 함께 양의 창자에 채워 넣어 삶아 먹는 법’으로 이는 창자에 재료를 채워 먹는 지금의 순대 제조 방식과 흡사하다.

흥미로운 것은 원나라의 요리서 〈거가필용〉은 순대를 관장(灌腸)이라 부른다는 점이다. 아마도 순대를 만들려면 먼저 창자를 씻어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으나 지금의 ‘관장’을 생각하면 그리 식욕을 돋우는 명칭은 아니다.

제민요술이 저작될 당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였고, 시대상 중국의 음식이 많이 전파되었다는 각종 문헌을 봐서는 삼국시대에도 순대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되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먹는 순대는 ‘돼지순대’지만 원래 순대는 여러 짐승의 창자에 잡고기나 다양한 재료에 피를 섞어 삶거나 찌는 것이다.

이런 요리법으로 만든 순대는 17세기 중반에 출간된 책에 개의 창자에 개고기를 만두소 버무리듯이 하여 가득 넣는 개장(犬腸)이 소개되어 있고 18세기 영조 42년 유중림이 쓴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와 19세기 초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우장증(牛腸蒸)’으로도 쓰여 있다. 이름 그대로 소의 창자에 소를 넣고 찐 것이다. 역시 〈주방문〉에는 소의 창자에 선지를 넣어 삶는 황육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다.


조선 말기에 이르러서야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도야지 ?대’라는 말이 나오는데 “창자를 뒤졉어 정히 빠라 숙주, 미나리, 무우 데쳐 배차김치와 가치 다져 두부 석거 총 ‘파’ ‘생강’ ‘마날’ 만히 디져(다져) 너허 깨소곰, 기름, 고초가로, 호초가로 각색 양념 만히 석거 피와 한데 쥐물너(주물러) 창자에 너코 부리 동혀 살마 쓰라”고 했다.

돼지 창자 속에 무엇을 넣느냐는 그때마다 다르겠지만, 무척 많은 재료가 들어갔다.




북한식 순대, 개성에서 유래


알다시피 순대는 보통 북한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1994년 조선료리협회에서 발간한 〈조선료리전집-민족전통료리〉에서는 “돼지피에 다진 돼지고기, 배추시래기, 분탕(쌀), 녹두나물, 파, 마늘, 깨소금, 간장, 후추가루, 생강즙, 참기름을 넣고 순대소를 만든다.

분탕 대신 찹쌀과 흰쌀을 섞어 만들기도 한다. 돼지밸에 순대소를 넣고 두 끝을 실로 묶어서 끓는 물에 넣어 삶다가 침질하여 공기를 뽑는다. 익으면 건져서 한 김 나간 다음 편으로 썰어 담고 초간장과 같이 낸다”고 돼지순대 조리법이 실려있다.


이처럼 순대가 북한음식으로 알려진 데에는 고려시대 개성의 소문난 돼지고기와 순대 ‘절창’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려의 수도인 개성은 한반도에서 육고기 문화가 가장 번성한 지역이었다. 개성에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과부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먹고 살기 위한 방편으로 나라에서 돼지를 사육하게 했다고 한다.

조용헌의 ‘동양학을 읽는 월요일’이란 책에 실린 간송(澗松·전형필)가(家) 며느리 김은영 씨의 증언에 따르면, 쌀겨나 밀겨만 먹고 자란 돼지의 창자로 만든 ‘절창(絶脹)’이란 순대가 있었다고 한다. 겨만 먹은 돼지는 지방이 적고 부드러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았다는 내용도 함께 전하고 있다.


하지만 순대는 남쪽의 끝 제주에서도 원류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순애’라는 이름이다. 만드는 방법은 몽고의 순대와 유사하다. 채소는 거의 없이 돼지 피와 곡물을 섞어 만든 부드러운 식감이다. 제주는 과거 고려시대 원나라의 목축지로 쓰였다. 그래서 육지의 제조방법이 아닌 몽골의 순대와 유사한 순대의 맛이 전해진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순대는 북쪽의 함경도부터 남쪽의 제주도까지 만들어진 지역마다 그 지역의 풍토와 생산되는 재료가 첨가되며 고유한 맛과 특색이 생겨났다.


함경도 아바이순대부터 남녘의 병천순대까지


‘아바이’는 함경도 말로 '아버지'란 뜻인데 아바이순대는 돼지의 대창(큰 창자)을 이용해 만든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소창(작은 창자)은 한없이 나오지만 대창은 기껏 해야 50cm~1m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 대창을 이용해 만들었기에 귀하고 좋은 것이라는 뜻의 '아바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함경도 출신들을 아바이로 부르고 있어서 그 고장 향토 순대음식을 호칭하기도 한다.


강원도 속초의 아바이순대는 속초시 청호동의 실향민 마을 아바이 마을에서 나왔다.

이 마을은 함경도 사람들이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국군을 따라 내려왔다가 고향에 가지 못하고 정착하여 만든 동네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함경도 외의 사람들도 마을에 꽤 터를 잡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주민의 60% 정도가 함경도 출신이다.

1999년 함경도 향토음식 축제에 출품되어 처음 이름을 얻었고 지금도 계속 아바이순대로 불리고 있다. 함경도 순대 중에는 아바이순대 외에 명태순대, 오징어순대가 있다.





북녘에 함경도 아바이순대가 있다면, 남녘에는 병천순대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양배추, 마늘, 양파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야채와 새우젓 등의 양념을 선지와 함께 비벼낸 것이 천안의 명물 전통 병천순대이다. 뽀얀 국물 속 담백한 순대가 가득한 순대국밥은 시골이나 도시를 막론하고 어느 장터에서나 허기진 장꾼들의 저렴한 한 끼로 사랑받아온 메뉴이다.

병천순대가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년 전 한국전쟁 후 이곳 병천에 햄 공장이 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한다. 돈육의 가공 과정에서 나오는 값싼 부산물을 이용해 순대를 만들어 먹었는데 먹을거리가 귀하던 그때 저렴하면서 영양 많은 순대는 서민층에게 환영받는 음식이 되어 오늘날 병천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돼지의 큰창자를 쓰는 함경도 아바이순대와 달리, 병천순대는 작은창자를 써서 돼지 특유의 누린내가 적다. 잘 손질한 소창에 배추, 양배추, 당면 등을 정성껏 넣어 만든 야채순대는 담백하고 쫄깃한 맛으로 수십 년 전부터 아우내장터를 찾는 사람들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비록 순대의 몸값은 세월 속에 낮아졌지만 뻔한 주머니 속사정을 들키지 않고서도 주거니 받거니 탁주 한잔에 순대 한 접시면 서로 묵은 시름을 덜어낼 수 있어 여전히 서민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사랑받고 있다.



글 안세준

요리사. 카페 아일을 거쳐 현재 오키친 여의도 점 셰프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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