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예천군의 ‘삼연재’, 150년 세월을 간직한 고택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ㅁ자형 한옥의 마당에 앉으면 풀벌레 소리가 들리고, 사랑채 문을 활짝 열면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소박한 연못과 든든한 굴뚝을 지나 안채 너머 뒤뜰을 살피면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
는 장독대 행렬과 아기자기한 텃밭이 자리를 지킨다.
이 오래된 집에서 4대째 자리를 지키며 살고 있는 김두진(62씨)와 아내 조인선(59)
씨. 1년 전 큰아들 김구한(35)씨의 결혼으로 며느리 이지은(31)씨가 고택으로 들어오
고, 가족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고택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호기심 많은 도시 며느리 지은 씨, 오늘도 고택에 숨겨진 보물찾기 한창. 손길 닿고,
발길 가는 모든 곳에 신기함이 가득하다.
고택 삼연재가 아직 다듬지 않은 원석 같다는 지은 씨는 좋은 곳을 좋은 사람들과 나
누고 싶어 또 다시 일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 시어머니의 그 며느리라 했던가, 완고하게 고택을 지키며 살아온 맏며느리 인선
씨 밑으로 또 다른 맏며느리 지은 씨가 들어온 후 150년 전통의 고택엔 심심찮은 새바
람이 불기 시작한다.
4대를 지나 5대에 걸쳐 구석구석 옛이야기 고스란히 간직한 삼연재, 가족들이 들려
주는 고택의 가을소식을 ‘인간극장’이 전한다.
삼연재에는 4대째 소 키우고 농사짓는 김두진 씨와 조인선 씨가 살고 있다. 노부부
를 모시고, 삼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워내며 부부는 오래된 집과 함께 늙어왔다.
들녘은 황금으로 물들고, 감나무 가지엔 주황빛이 가득한 수확의 계절. 고택 삼연재
도 예외 없이 가을걷이에 한창이다.
생강에, 땅콩에, 참깨까지... 거둬들일 작물도 한 가득인데 다가오는 겨울을 대비해
월동준비까지 돌입한 삼연재.
삼연재 맏며느리 인선씨. 100년이 넘었다는 고택에 덜컥 시집와 보니, 시어머니가
두 분이었다. 한 명도 벅찬 마당에 무려 두 명의 시어머니라니 주위 친구들의 걱정의
눈빛이 쏟아졌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두 분의 시어머니는 인선 씨를 친딸 마냥
살뜰히 챙겨주셨다.
혹독한 시집살이는 외려 성질 짱짱 호랑이 시아버지 몫. 꽃다운 새색시 시절, 시아버
지의 훈수 아래 두 시어머니로부터 양반집 전통과 가풍을 두루두루 익혔고 까탈스런
시아버지 입맛 맞추라 시어머니의 손맛을 고대로 이어받았다.
엄한 시아버지는 삼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내고 나서야 바깥출입을 허락했다.
하지만 타고난 여장부 기질 어찌 숨기랴, 슬금슬금 나오기 시작한 인선 씨의 오지
랖. 어깨너머 이것저것 배우고, 거들기 시작하더니 어른들이 모두 돌아가시자 봉인 해
제하듯 숨겨왔던 기질을 뽐내기 시작한다.
직접 농사지은 참깨로 참기름사업에 뛰어들고, 시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손맛으로 각
종 요리대회의 상을 섭렵. 이것도 모자라 다문화 가정에 한글 선생님, 독거노인들의
요양보호사까지 고즈넉한 고택의 대문을 활짝 열고 바깥활동 전성시대를 보내고 있는
삼연재의 안방마님 인선 씨다.
◆촌(村)스럽지만 세련되게, 도시아가씨, 맏며느리 되다
인선 씨가 완고하게 지키며 살아온 고택에 1년 전 또 다른 맏며느리가 들어왔다.
큰아들 김구한(35) 씨의 아내 이지은(31)씨. 오래된 한옥에서 고생하지 말고 도시로
나가 살라는 부모의 권유에도 아들내외는 기어이 고택 코앞에 집을 지어 신혼살림을
차렸더랬다.
남들은 어렵고 불편해하는 시부모님 댁을 제집 드나들 듯 왕래하는 것도 모자라 지
은 씨, 150살 ‘삼연재’ 탈바꿈을 위해 두 팔 걷어붙였다.
세월의 흔적을 버티느라 여기저기 성치 않은 고택 보수작업과 함께 숨어있던 고택의
재발견에 돌입한 지은 씨. 삼연재 식구들에겐 발에 채이고 널렸던 창고 속 옛 물건들
이 도시 며느리 지은 씨에겐 꺼내도, 꺼내도 끝이 안 보이는 보물 상자.
교과서에서만 보던 디딜방아를 손수 닦아내고, 유독 국수를 좋아하시던 할아버지 덕
에 할머니가 매일 미셨다던 홍두깨로 피자를 만들어 뚝딱 저녁상을 차린다.
바쁜 시어머니를 대신해 미술전공을 살려 오래된 고택을 솜씨 좋게 꾸미더니, 지은
씨, 급기야 고택을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자 과감히 제안한다.
고즈넉한 고택에서 충분히 먹고 살만 한데 도대체 왜 그러나 했더니, 좋은 곳은 사람
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오가야 오래도록 유지된다는 신세대 며느리의 지론이란다.
낯선 이들의 방문을 질색했던 선대 어르신들이 계실 땐 꿈도 못 꿨던 일. 고택 생활
1년차 며느리의 당돌한 제안에 한바탕 고부갈등이 휘몰아치는가 싶더니, 호탕한 신세
대 시어머니 인선 씨는 두 팔 들고 환영한다.
‘자고로 사람의 발 때가 묻어나야 마루가 반질반질 해지고, 땅이 단단해진다’며 의기
투합한 삼연재의 맏며느리들. 바야흐로 150년 세월의 삼연재에 고부합작 새바람이 불
어오기 시작한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아들 귀한 삼연재에 큰 아들로 태어난 두진 씨. 나고 자란 집 안에서 위로는 부모님
상을 치루고, 아래로는 자식들을 길러냈다.
새벽이면 눈뜨자마자 소들 먹이부터 챙기고 낮이면 생강 밭, 땅콩 밭, 고구마 밭까지
농사일도 놓지 않으며 그렇게 한평생 고택을 떠나지 아니하고 삼연재를 굳건히 지켰
다.
생전에 호랑이보다 무서운 가장으로써 꼿꼿하게 군림하셨던 아버지와는 다르게 두
진 씨는 일평생 아내 인선 씨에게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집 안팎을 넘나들며 여장부 면모를 뽐내는 아내 덕에 머슴살이 아닌 머슴살이를 하
게 된 두진 씨. 넝쿨째 굴러온 야무진 며느리 지은 씨의 등장에, 이젠 며느리살이까지
하게 생겼단다.
산에가 나무해오라면 나무해오고, 사랑채에 군불이 식을라치면 군말 없이 불을 땐
다.
손님들 많은 날엔 물걸레 적셔 무릎 꿇고 청소하고, 행여 마당에 낙엽 쌓이랴 틈만
나면 빗자루를 집어 드는 게 일상. 할아버지 대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살갑게 시아버지를 챙기고, 따르는 며느리 지은 씨의 부탁을 어찌 거절하랴. 도
시에서 시집와 낯선 한옥을 다듬지 않은 원석이라며 애지중지하고, 집안 일 빈구석 하
나 없이 해내는 야무진 며느리를 믿고 따를 수밖에.
새 맏며느리를 맞고 다시금 활기를 띄기 시작한 150년 고택 삼연재. 각자의 자리에
서 각자의 방식으로 고택을 지켜나가는 가족들의 모습을 ‘인간극장’이 전한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150년 고택 三然齊에 얽힌 얘기,재미 있었습니다. 한가지 궁금한것은 "三然齊"에 관한 것입니다, 이 古宅이 三然齊인 내력 입니다,
정리중 발견하여 늦게 답글 드립니다.
보문면 승본리 254(노티기)의 삼연재당은 1932년 안동권씨 김창근(1867~1947)을 위해 그의 아들 병건이 세운 목조와가 입니다.
김창근의 자는 성극, 호는 삼연당 묘는 예천읍 우계동 매골 간좌에 있습니다
삼연재는 김창극님의 호 삼천당을 사용한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