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96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소학(小學)》은 일상생활에 절실한 것인데도 일반 서민과 글 모르는 부녀들은 스스로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라옵건대 여러 책 가운데에서 일상생활에 가장 절실한 것, 이를테면 《소학》이라든가 《열녀전(列女傳)》ㆍ《여계(女誡, 여자의 생활과 처신 등에 관한 내용이 담긴 책)》과 같은 것을 한글로 뒤쳐(번역) 인쇄, 반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위로는 궁액(宮掖, 궁에 딸린 하인)으로부터 조정의 재상집에 미치고 아래로는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 없이 다 배우게 해서, 온 나라의 집들이 모두 바르게 되게 하소서.“
위는 《중종실록》 28권, 중종 12년(1517) 6월 27일 기록입니다. 어린아이들 또는 유교 입문자에게 초보적인 유교 학문을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수신서(修身書,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닦아 수양하는 책)인 ‘소학’ 등을 한글로 뒤쳐 조정의 재상은 물론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공부하여 모르는 사람 없도록 하자는 홍문관(궁중의 경서-經書와 문서 따위를 관리하고 임금의 자문에 응하는 일을 하던 관아)의 뜻에 중종은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
▲ 중종, <소학>을 온 백성이 공부할 수 있게 언문으로 뒤치라고 했다.(그림 이무성 작가)
조선은 대부분 공식 문자 생활이 한문으로 이루어졌기에 언문(한글)이 푸대접받았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중종실록》의 기록을 보더라도 온 백성이 한글을 배워 알고 있었으며, 나라에서 이렇게 《소학》 같은 책을 한글로 뒤치도록 하였음을 보면 한글이 조선시대 한문에 이어 공식 글자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임금이 내리는 공식 문서인 교지에도 한글을 썼다는 것은 이미 알려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