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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중에 이웃교회의 젊은 성도님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김진아 집사님에게 배트민트를 배웠던 아주 젊고 건강한 청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젊은 아내와 2살난 아이와 엄마 배속에 태아를 두고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한 주간은 그 젊은 친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젊은이지만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죽음은 한 순간이구나. 젊다고 건강하다고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 아니구나. 언제나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 감옥 안에서 임박한 죽음을 준비하면서 믿음의 아들이요 제자인 디모데에게 ‘떠남’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떠날 시각이 가까왔다”(4:6)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4:7)
자신의 떠남과 임박한 죽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9)
바울은 디모데를 그리워하면서 ‘어서 속히 오라’고 명령합니다. 우리 성경에 “어서” 라고 되어 있어서 그 느낌이 잘 전달되지 않는데 이 단어는 ‘열심히’라는 말입니다. 쉽게 말해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NIV)은 ‘Do your best’라고 번역합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모든 노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21절에도 보면, 한 번 더 이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바울은 디모데를 빨리 보기를 원했습니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습니까?
사도 바울은 왜 디모데를 이렇게 빨리 보기를 원했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바울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떠날 기약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직감했습니다.
지난 11월에 저의 장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 전에 죽음을 직감하시고는 병원 가시는 것을 거부하셨습니다. 그리고 드시는 곡기를 거의 끊다시피 하셨습니다. 그러니 자식들의 마음이 불편한 것입니다. 저도 그러했습니다.
돌아가실 때, 가시더라도 드시는 것을 드시고, 병원도 가시고 하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모님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너무나 분명하셨고, 이 세상의 삶에 대한 회한은 다 정리하시고, 모든 것을 감사하면서 세상 떠날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혼절하시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울처럼, 저의 장모님처럼 죽음을 준비하면서 시간이 다되었음을 직감하고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보고 싶은 사람을 그리워하고 만나보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저는 장모님의 죽음을 통해서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대양주 총회 총회장을 맡으므로 한국 고신 총회의 사절단으로 가야 했습니다. 이때에 아내와 함께 한국에 갈 수 있었고, 아내는 4주 동안 장모님과 마지막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장모님과 아내에게 주신 기회요 은혜였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떠날 기약이 되었기에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합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어서 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도 내 인생의 주인이시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고백하는 만남이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드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한세기 동안 많은 분들에게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일생을 살면서 다섯가지 생활지침을 세워놓고 살았다고 합니다. 평범한 얘기지만 다시 한 번 듣고 생각을 가다듬어 보세요.
첫째는 살아있는 한 최대의 노력을 할 것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 최대, 극대화해서 살아갈 것이다. 능력을 극대화해서 살 것이다.
두 번째는 한 순간도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셋째는 타인을 경멸하지 말자.
넷째는 결코 복수심이나 질투하는 마음에 사로잡히지 말자.
다섯째는 지금 곧 죽는다해도 마음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말자.
에드워드는 이렇게 주어진 세월 동안 최선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너는 어서 오라’고 두 번씩이나 강조하면서 명령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둘째, 바울에게는 사람이 없습니다.
“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10)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11)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12)
10절은 우리 성경은 생략되어 있지만 이유를 말하는 ‘접속사 FOR’로 시작합니다. 디모데가 빨리 와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데 바울 곁에 사람이 없습니다. 6명이 언급되는데 바울 곁에는 누가 말고는 아무도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바울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번 설교 때에 이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데마는 바울을 버리고 떠나갔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했기 때문에 …. 처음에 데마는 바울과 함께 했었고 바울의 훌륭한 동역자로 수고했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형편없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으로 그레스게와 디도는 아마도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하기 위해 바울을 떠났을 것입니다.
두기고는 바울이 에베소로 보내었습니다. 어떤 목적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디모데가 에베소를 떠났을 때 디모데가 없는 동안 교회를 섬기게 하기 위해서 파송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며 디모데가 서둘러 와줄 것을 말합니다. 늘 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을 신뢰하며 성령으로 충만했던 바울인데, 그런데 그런 바울이 사람을 그리워하며 사람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주석가는 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서도 사람들 속에 있었고,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에게서 힘과 위로를 얻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겨울을 준비하면서 사람을 챙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떠나가고 떠나보내고 있지만 함께 하는 사람(누가)이 있음을 확인합니다. 예전에는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마가)를 데려오라고 합니다. 자기 일에 유익한 사람으로 챙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아들이요 제자인 디모데로 하여금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올 것을 강력히 명령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만나야 합니다. 사람을 챙겨야 합니다. 특별히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자’ 주님을 소망하고 기다리는 믿음의 형제 자매를 만나야 합니다. 성도의 교제를 중요시하고, 이런 섬김을 위해서 봉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 세대를 챙겨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올 때에 부탁하는 것입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13)
바울이 추가로 말한 두 가지, 하나는 겉옷이고 또 하나는 책입니다.
바울은 왜 겉옷을 챙겨오라고 했을까요? 지하 감옥에 있었던 바울에게 있어서 힘들게 했던 것은 추위였습니다. 제가 로마의 겨울 날씨를 구글에서 알아보았습니다.
“로마의 겨울 12월, 1월, 2월은 가장 추운 달로, 평균 기온은 낮에는 10°C ~ 15°C , 밤에는 3°C ~ 5°C 사이입니다. 눈이 쌓이는 일이 드물지만, 눈이 내리기도 합니다.”
오클랜드의 겨울날씨와 비슷할 것 같습니다. 얼음이 얼지 않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겨울 날씨는 한국의 온돌방을 그립습니다. 그런데 감옥 안에서 하루 종일 햇볕도 보지 못하고 냉기 가득한 감방생활은 정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추위는 극성을 부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필요했던 것은 겉옷입니다. 그 당시에 겉옷의 개념은 지금 우리와 많이 다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겉옷을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담요 중앙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겉옷은 소매가 없는 커다란 외투, 머리만 나올 수 있게 구멍이 있고 온몸을 감싸는 망토 같은 옷을 말합니다. 그래서 겉옷은 가난한 자에게는 한밤의 추위를 막아주는 이불과 같았고 저당으로 맡길 수 있을 만큼 재산으로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겉옷을 몇벌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고가의 옷이나 첨단 유행을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청교도들은 힘들고 어려운 여건 가운데도 Sunday clothes를 장만했습니다. 검소하면서도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준비해서 주일이면 교회 갈 때에 입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가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깨끗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울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육체적인 것을 하찮게 여기고 경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령, 우리 몸이 아파보십시오.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할지라도 만사가 귀찮습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집니다. 남을 돌아보고 돕고 섬기고자 하는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육신이 따뜻하게 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은 우리 영이 거하는 성전을 세우는 일입니다. 건강한 육체에서 건강하고 거룩한 영성과 자유의지가 작동합니다. 육신을 잘 보존하고 건강하게 하는 일은 주의 일이요 거룩한 일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책을 챙겨 오라고 합니다.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
그 당시에 책은 일반적은 두 가지로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는 파피루스로 된 책입니다. 파피루스라는 식물의 줄기로 만든 종이에 기록한 문서입니다. 다른 한 종류는 가죽 종이는 양피지입니다. 양이나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종이입니다. 양피지는 파피루스보다 더 중요한 문서나 책을 기록 보관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여러 책들 중에서 특별히 양피지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 중에는 양피지로 된 책을 두고 구약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또 주님의 말씀 혹은 신약의 사본이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로 보건데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자기의 최후가 임박한 것을 바라보면서 챙기고 있는 것은 책이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싶어 했습니다. 바울은 잘 아시는 대로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평생을 고질병으로 안고 살았습니다. 그런 바울이 지하 감옥 안에서, 빛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환경 가운데에서도 성경을 읽으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증거했지 않습니까?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5-16)
성경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주어집니다. 말씀을 붙들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성경을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마지막, 죽음의 임박함을 느끼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는 속히 나에게 오라”고 강하게 당부합니다.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고, 겉옷과 책을 챙겨오라고 합니다. 마지막 삶의 순간에 바울에게 필요했던 것입니다. 사람이 필요했고 겉옷이 필요했고 책이 필요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인생의 겨울은 다가옵니다. 세월을 아껴가며 우리가 챙겨야 할 것들,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노인대학이나 은퇴 준비자들을 위한 강좌에 보면 하나같이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과 사람과 돈이었습니다.
내가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육신의 건강을 잘 관리하고 유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위해서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고 잘 했다는 칭찬과 함께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