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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성지순례
아, 황금불탑 부처님 나라여!
2002-10-07
사진설명: 58만좌의 부처님이 봉안된 땀보디 사원.
사진설명: 58만좌의 부처님이 봉안된 땀보디 사원.
불교신문 성지순례단은 지난 9월26일부터 지난 3일까지 황금대탑의 나라 미얀마를 순례했다. 이번 순례에는 서울 조계사와 도선사, 부천 석왕사, 부산 혜원정사와 내원정사 불자 등 140여명이 동참해 미얀마 수도 양곤과 인근도시 바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바간, 미얀마 마지막 왕조였던 공파웅 왕조의 수도인 만달레이 등지를 돌며 부처님의 생생한 숨결을 체험했다.
미얀마심장 양곤 ‘쉐다곤’
순례단이 미얀마 양곤에 도착한 때는 지난 9월26일 오후 8시. 저녁의 어둠이 짙게 내린 도심은 조용했다. 공항에서 눈에 띈 것은 남녀 모두가 입은 미얀마 전통의상인 ‘론지’라는 치마였다.
본격적인 순례의 대장정 다음날 미얀마를 상징하는 대탑인 쉐다곤 파고다를 맨발로 오르는 일정부터 시작됐다. 높이만 해도 98m에 이르는 이 대탑은 부처님이 계실 때 세워진 사원으로 미얀마의 두 상인이 부처님게 공양을 올린 뒤 8발의 머리카락을 보시받아 지어졌다는 설화가 있다.
이후 쉐다곤 대탑은 1450년 한타와리 왕조 신소부 여왕이 자신의 몸무게 만큼 황금보시를 하여 후대의 왕은 물론 일반 민중들까지 보시를 해 불가사의한 황금과 보석이 소장돼 오고 있다. 처처에 황금첨탑이 뾰족뾰족이 서 있고, 지금도 황금을 이용한 불사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 이 나라 민족의 부처님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오전에 이어 순례단은 양곤 인근의 불교성지 바고로 향했다. 14세기 힌싸와디 왕조가 건립한 쉐모도 대탑은 쉐다곤 대탑에 버금가는 114m의 높이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거대한 와불인 쉐달랴옹 사원과 4자매의 신심이 서린 짜익푼 사원의 거대한 부처님을 친견하며 미얀마의 불교에 심취되기 시작했다.
최초 통일왕조 성지 ‘바간’
성지순례의 환희심이 솟구친 일정은 바간에서였다. 비행기로 이동해 찾아간 바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UN의 관심속에 허물어진 유적들이 복원되고 있었다. 2500여개가 넘는 대탑들이 도시 전체를 노천박물관으로 만들었고 곳곳에서 스님들이 수행했던 여적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국인 바간왕조(1044-1287)는 이곳에서 2세기동안 찬란한 불교의 꽃을 피웠다. 맨발로 오르는 탑마다에서 느낄 수 있는 민중들의 애절했던 불국토를 위한 발원은 현재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쉐지곤사원과, 인도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양식의 아난다사원, 이라와디 강변의 부파야 사원, 거대한 발우가 봉안된 마누아 사원 등 천년의 세월동안 풍파를 겪으면서도 부처님을 향한 신앙심으로 많은 유적들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피곤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바간을 떠나 비행기로 도착한 만달레이에서는 더위와 싸워야 했다. 전용버스로 사가잉에 위치한 시다구불교대학에서 행사를 마치고 언덕에 위치한 솬우퐁야신 사원, 그리고 몽유아 지역의 거대와불이 봉안된 보디타타옹 사원과 58만부처님이 봉안된 땀보디사원은 순례객들의 신심을 새롭게 했다.
물처럼 흐르는 땀을 훔치며 30일에도 계속된 만달레이에서의 일정은 언덕사원(만달레이 힐)과 석장경이 봉안된 구도도 파고다, 그리고 수많은 민중들이 금으로 부처님을 장식하고 있는 마하무늬 사원을 방문하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왕조 아픔 간직한 ‘만달레이’
1일부터 2일까지는 다시 양곤으로 이동하여 칠엽굴 형식을 띤 마하파사나구하 사원과 스님과 불자들의 수행처인 마하시 사원, 까바에 사원에서의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가 이어졌다.
부산 내원정사에서 동참한 이난희(34)씨는 “이번 순례를 통해 시간과 돈에 사로 잡혀 진정한 자신을 잃고 살아온 그동안의 궤적을 돌아보게 됐다”는 참가소감을 밝혔다.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차창 밖으로 저녁노을이 황금대탑과 겹쳐지며 붉은 흔들림이 시야에 들어오며 미얀마인들에게 불교는 ‘삶의 모든것이다’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 이모저모
순례단 국빈예우 ‘환영’
사진설명: 한-미얀마 불교지도자와 순례단이 쉐다곤 황금대탑을 순례하고 있다.
사진설명: 한-미얀마 불교지도자와 순례단이 쉐다곤 황금대탑을 순례하고 있다.
본사 순례단은 여느 순례단과 다른 국빈대우의 영접을 받았는데….
우선 지난 9월26일 양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는 과정에서 미얀마 종교성 뜨라아옹고 차관을 비롯한 미얀마 고위공직자들이 VIP실에서 환영을 했다. 이날 환영 자리에는 고산스님(쌍계사 조실), 혜명스님(혜명정사 주지), 암도스님(전 포교원장), 정련스님(전 포교원장, 내원정사주지), 영담스님(본지사장, 부천석왕사주지) 등이 미얀마 종교성 관계자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다.
미얀마 언론 비상한 관심
방문 일정동안 미얀마 국영 TV(MRTV)는 저녁 주요 뉴스시간을 통해 3차례에 걸쳐 본지 방문단의 행사장면을 2분동안 방영하며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첫 방송은 방문 첫날 공항에서의 영접과정을, 두번째는 쉐다곤 대탑에서 양국 우호증진 법회, 세번째는 지난 1일 열린 저녁만찬 행사를 보도했다.
또한 영자 주간지 미얀마 타임즈와 종합뉴스를 표방하는 미얀마통신(MNA) 등 주요언론이 취재경쟁을 벌였다. 또한 스리랑카 스님과 신도회장 등 4명이 순례에 동참해 의미를 더했다.
양국 불교 황금유대 ‘첫발’
순례 일정에서는 3차례의 크고 작은 행사가 마련되어 한-미얀마 불교의 황금유대를 다졌다. 우선 첫번째 행사로는 27일 양곤의 쉐다곤 대탑에서 열린 양국 합동법회였는데 이날 행사에는 본지순례단과 부천 석왕사 신도, 순례단 스님 일동이 3장의 황금판을 쉐다곤 대탑에 기증했다. 또 지난 9월 29일에는 만달레이 인근의 시가잉에 위치한 시다구 불교대학에서 양국 불교의 우호를 다지는 법회가 열렸다. 또한 지난 1일 양곤 트레더스 호텔에서는 불교신문과 시다구 불교대학이 함께 하는 저녁 만찬행사를 조계종 중앙신도회 후원으로 성대하게 열렸다. 미얀마 종교성 우아웅킨장관이 함께한 이 자리에서는 부천 석왕사와 한국에서 거주하는 미얀마 노동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승합차 전달식이 있었으며 최신형 팬티엄 컴퓨터와 200여개의 시계증정식도 함께 열렸다.
* 미얀마는…
88%가 불자인 불교국가
군통치로 민주화 ‘과제’안아
동남아시아의 뱅갈만과 안다만해를 둔 인구 4800만, 국토 67만 평방킬로미터(남한의 7배, 한반도의 3배)에 이르는 135개 소수민족(67% 버마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다. 전 국민의 88%가 불교를 신봉하는 불교국가이며 화폐는 ‘차트’다.
한국과 비슷하게 1886년부터는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받았으며 1948년 독립했으나 1962년에는 네윈의 군사쿠데타로 군부정권이 들어선 이래 민주화를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1988년에는 우리나라 광주민중항쟁과 유사한 운동을 통해 새로운 민주정부에 대한 열망을 겪고 있으며 1848년까지 독립과정에서 우리나라의 김구선생과 유사한 활동을 했던 아웅산장군(47년 피살)의 딸인 아웅산수지(91년 노벨평화상 수상) 여사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이 1990년 승리했으나 군부의 계엄선포로 아직 정치적인 혼란을 겪고 있다.
1989년 군부는 버마에서 미얀마로 국가명을 바꾸어 계속 통치하고 있으며 1996년에는 딴쉐 국방장관이 실권을 장악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얀마=여태동 기자 tdyeo@ibulgyo.com
- 순례기/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
미얀마에서는 우기(雨期)가 끝날 무렵인 9월말 10월초 6박 7일간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이번 순례는 불교신문사가 주최하고 반야여행사가 주관했다.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의 전 원장이신 고산, 암도, 정련 스님을 비롯한 신도 140명의 대중이 참여했다. 미얀마의 상징 쉐다곤 대탑이 있는 수도 양곤, 2500여개의 파고다가 너무 아름다워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바간, 제2의 수도 만달레이, 대탑과 세계 2번째 큰 종으로 유명한 밍군, 시다구 불교대학이 있는 사가잉, 58만개 불상이 모셔져있는 땀보디 사원의 몽유아, 양곤 인근의 바고 등을 순례했다.
미얀마는 우리와 비슷한 근현대사의 길을 걸어왔다. 3차례의 전쟁 끝에 1886년부터 영국에게, 그후 3년간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를 받다 1948년 독립을 맞았다. 독립운동의 영웅 아웅산 장군이 피살되고, 1962년 군부쿠데타에 의해 버마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88년 민주화 시위 이후 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연합(NLD)에 대패한 군부는 계엄령 선포로 선거를 무효화시켰었다. 최근에는 아웅산수지의 가택연금을 풀고 외국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5호담당제의 존속에서 나타나듯 여전히 권위적인 통치체계를 갖고 있다.
유엔이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지정하기도 했던 미얀마. 이런 미얀마 국민의 행복지수는 얼마나 될까. 국교로 지정되어 거의 모든 국민의 정신적 지주인 불교는 미얀마에서 어떤 의미이며 무슨 역할을 할까. 혹시 불교가 권위적인 체제를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미얀마를 다니면서 내내 떠나지 않았던 물음이다.
미얀마는 135개 민족이 공존하고 있음에도 민족간의 분쟁은 거의 없는 편이다. 풍부한 자원과 1년에 3모작이 가능한 기후 등으로 굶어죽는 사람도 없다. 사원에서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그들의 눈은 순박하다.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과 눈길이 마주치면 십중팔구 미소를 짓는다. 수도 양곤을 비롯한 순례한 곳 모두는 녹지로 덮여 있었으며 어디를 가나 금빛 파고다와 사원이 있고 그 속의 그들은 평화로웠다.
사원은 엄숙히 기도만 하는 곳이 아니다. 한가하게 쉴 수도 있고, 점심도 먹으며 낮잠도 자는 곳이다.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며 아이들의 놀이터가 파고다와 사원이다. 사원과 파고다에서는 모두 맨발로 다녀야 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더 편안함을 준다.
대부분의 미얀마 국민은 행복해 한다고 한다. 우리가 볼 때는 매우 가난하지만 불사 동참이나 스님들 공양에는 적극적이다. 현세의 내 모습은 과거 업으로 인한 것이므로 대체로 순응적이며, 내세를 위해 기도와 보시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무한 경쟁속에 사는 우리들과는 분명 다르다.
과연 인간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다나까를 얼굴에 칠하고 론지 치마에 슬리퍼를 신은 순박한 얼굴의 미얀마 사람들. 3층 이상 건물은 하나도 없는 드넓고 푸른 대지에 수많은 파고다와 사원의 바간. 잊을 수 없이 아름다운 미얀마와 미얀마 사람들. 나의 삶과 불교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 미얀마 순례였다.
미얀마=유지호 조계사 종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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