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 황석영의 ‘해질무렵’ -
내가 좋아하는 작가 황석영이 지난 연말경(2015,11 문학동네)에 내놓은 비교적 단편에 속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박민우는 자수성가한 이제는 은퇴가 가까운 건축설계관련 전문가..라기 보단 대한민국에서 설계라면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출세한 사람이다.
가난한 시골에서 일가가 떠나와 서울의 열악한 산동네에 살면서 그 바닥을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본래 공부머리가 좋은듯)하여 최고대학에 들어가 입주가정교사가 되어 동네를 떠난다.
그 후 유학까지 하고 외국서 십여년 관련일을 하다가 귀국하여서는 관련 굴지의 회사도 운영하지만 현재는 많이 침체한 상태다.
성공한 인생이건만 그리 썩 개운치 않달지 활력 욕망도 식어가는 그야말로 황혼의 인생이다.
어느 날, 옛날 달동네에서 알고 지낸 유일한 여고생이었던, 첫사랑이었던 차순아의 전화번호를 얻고 안부통화도 잠시 한다.
그 후 그녀의 이메일이 온다.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을 무렵 선생이 근방에서 강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했었다며 첨부한 파일은 안 읽어도 된다.
첨부파일은 그녀의 자서전일지 수기 비슷한 것인데...
아주 어린 시절 섬에서 살던 이야기, 서울로 올라와 달동네에 정착한 이야기..민우를 보며 만나며..자신도 그 동네를 떠나야겠다는 다짐...
그러나 수도시설도 없고 화장실마저도 너무 열악한 달동네도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요즘 유행하는 프라이버시니 층간소음 따위는 당장의 생존 앞에선 먼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구두닦이등의 의리...활극..........헌데...
그 이메일 파일은 차순아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들 여자친구(애인 아님)인 정우희가 보낸 것이다.
정우희는 연극 극작과 연출도 하면서 편의점 야간알바로 생계를 이어가는 지하단칸방이나 원룸등에서 사는 힘든 아가씨다.
똘똘하고 날카롭고 다정다감한 차순아의 아들 김민우는 철거용역도 하고 비정규직으로 역시 힘든 나날을 보내는 청년이었다(순아가 박민우를 상기하고 지은 이름이다).
그러나 김민우는 희망절벽인 세태에 지쳤는지 홀연 자살카페 회원들과 동반자살을 해버린다.
몇 달 되지 않아 그의 엄마인 차순아도 홀로 살다가 고독사한다ㅜ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인지 수기를 발견하고 정우희가 대강 정리하여 박민우에게 보낸 것이었다.
차순아와 만날 약속을 하고 기다리는 박민우지만 멀리서 일별하고 스쳐지나가는 정우희였는데...
정우희가 하고팠던 말은 혹은 따져묻고팠던 말은 차순아의 수기 맨 뒷부분 문장이었을 것이다.
[ 나는 그애가(아들이) 우리처럼 어렵고 가난해도 행복했으면 했지요.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요, 왜 우리 애들을 이렇게 만든 걸까요.]
작가 황석영은 후기에서 답한다.
[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기지만 겪을 때에는 그것이 원래 한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었다 ]
이쯤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88만원 세대, 삼포세대, 헬조선, 금수저흙수저란 단어들을 연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수십년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왔고 끝내는 달동네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곡간에서 인심나며 의식주가 족해야 예도 차린다는 공자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그런데 왜 한국사회는 더 각박해지고 살기가 힘들어졌는가?
지엔피로 따지면 전보다 열몇배 더 잘 사는데 과연 그러한가 말이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면 우리 장년세대들은 잘못 살아왔다.
잘 살아보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건만 지금도 못 살고 있다. 집과 차는 결코 잘산다는 것의 바로미터가 될 순 없다. 달러 따위가 무슨...ㅜ
달동네는 사라졌지만 수많은 벌집고시원..지하방..기생충..
여러 의미에서 현대...특히 대한민국의 현재는 ‘해질무렵’일지 모른다. 경제성장 발전의 침체 퇴조란 측면에서 그럼직하고
온갖 방종 패륜들이 횡행하는 세기말적인 풍경도 비슷하다.
가까이는 이 소설에서도 나오듯 현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출구없는 좌절도 그렇다.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 대책 없는 국방, 출산포기, 친족살해. 세계최고의 자살율...
어쩜 대한민국은 정말 석양무렵일지 모르며
장차 어둠이 갈수록 더해질지도 모른다....ㅠ
2016. 3월에 씀
https://youtu.be/LeSq693--uk
* 황석영은 이 작품 이후 6,25의 비극을 다룬 ‘손님’과 새로운 해석의 ‘심청’과 ‘노티를 한 점만 먹고 싶구나’란 음식 기행에 대한 수필집도 냈습니다만...그후로도 여러 작품이 나온 걸로 압니다만 미처 못 읽었기에......
한가지 일화만 옮기지요.
황의 토로인데 일반의 선입견과 달리 이문열과 이념등... 대척점 없이 부드러운 사이라고...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이를 만난 실화...월북한 이의 부친이 그때까지 생존해있고 재혼하여 여러 이복형제가 존재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격한 눈물을 보이더라는...이가 매도당하는 부분도 상당하지만 어찌보면 민족의 비극을 그대로 투사하는 가정사랄지...ㅜ
비슷한 배경의 이문구작가는 그저 죽지 않으려고 살아남기 위해서 문학을 했다지요? 이문열도 비슷하게 우파우익으로 방어막을 치지 않았을지...ㅠ
....얼마전의 이태원 참사를 보고는...이 책이 생각났네요.......부언은 안 할랍니다...ㅜ 2022.11
** 여러날전, 한강작가의 노벨문학상 소식. 첨엔 가짜뉴스가 아닌가 할 정도로 충격이었지요. 언젠가는 황석영이 꼭 탈거라고 믿었기로..ㅜ 2024.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