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기법(17)-맥주 세 병 안주 하나
- 첫박이 대박이다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았을 때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듯한 느낌을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요즘 글쓰기 능력이 강조되고 있지만 모두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 한다. 직장인들은 사보 담당자가 원고 청탁을 하지 않을까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글쓰기가 어렵고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해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다. 수필의 성패는 첫 문장에서 거의 결정 난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너무나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 무수한 광고와 홍보 문구 등에 지친 우리들. 시쳇말로, ‘삼빡하지’ 않는 문장에는 둔감해진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수필의 첫 문장은 솔깃하여, 당기는 맛이 있어야 한다. 첫 문장을 읽고 난 뒤, 다음 문장을 도저히 읽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다면? 그렇다면, 글쓴이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 그는 제대로 글을 쓸 줄 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독자의 호기심을 최대한 자극해야 할 것이다. 마치 ‘수수께기’ 내지 ‘스무고개’와 같은 문장도 그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광화문·과천의 관가는 뒤숭숭하다.” 오래 전 중앙선데이 6면 머리기사 ‘인수위 면면에 바짝 긴장한 각 부처 표정’의 첫 문장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정권교체를 앞두고 인수위 위원들의 면면에 관료사회가 보인 반응을 기사는 이렇게 압축했다. 추가 설명이 없어도 독자는 중앙부처의 공무원들이 좌불안석임을 느낄 수 있다.
글의 첫 문장은 독자를 사로잡아야 한다. 글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하고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기사의 첫 문장을 영어로 리드(lead)라고 하는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글의 길라잡이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수필은 발단의 예술이다. 처음 석 줄의 문장이 글의 알파와 오메가다. 김봉군은, <<문장기술론>>에서는 ‘바람직한 첫머리(useful beginning)’와 ‘바람직하지 않는 첫머리(poor beginning)’에 관해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분명히 기술해 두고 있었다.
우선, 바람직한 첫머리다. ‘사실의 직접 진술’, ‘과제에 대한 간략한 소개’, ‘솔직성이 독자를 감동시킴’,’의문형의 적절한 제시 내지 열거로 주위를 불러일으킴’, ‘짧고 참신한 관련 어구나 사항의 인용’ 등을 들었다. 다음은, 바람직하지 못한 첫머리다. ‘상식에 불과한 인생론을 과장하게 꺼내 놓음’, ‘지시작문의 경우, 주어진 관해 대해 불평함’, ‘개인적 변명을 늘어놓음’, ‘사전적 정의의 인용’ 등을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마감 시간 직전의 신문사 편집국은 ‘너구리 잡는 굴’이었다.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마감 시간은 다가오는데 쓸 만한 리드가 떠오르지 않는 까닭이다. 기자들은 애꿎은 담배만 연방 축낸다. 첫 문장이 나오기만 하면 그 다음은 술술 풀릴 것 같은데 첫 문장이 머릿속에서만 맴도니 미칠 노릇이다.
첫 문장을 쓰는 것은 헝클어진 실타래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과 같다. 무슨 일이든 처음은 어렵다. 애인의 손을 처음 잡거나 회사에 처음 출근하는 일, 아이를 처음 학교에 보내는 것…. ‘시작이 반’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요즘에는 글의 종류나 필자의 성향이 워낙 다양해 글쓰기에 왕도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렇더라도 첫 한두 문장에서 글의 성패가 갈린다는 지적은 중요하다. 대입 논술이든, 회사 보고서든 마찬가지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윌리엄 진서는 그의 저서 ‘글쓰기 생각쓰기’(원제: On Writing Well)에서 “첫 문장에서 읽는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그 글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첫 문장이 왜 중요할까. 대개 독자는 관대하지 않다. 재미있거나 중요한 부분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초반에 재미없다 싶으면 책이든 신문이든 덮어버리기 일쑤다. 읽는 사람이 외면한다면 필자로서는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다. 그러니 초반에 미끼를 던져 독자를 유인해야 한다. 어떤 리드가 효과적일까. 첫째, 집필 의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대개는 짧을수록 좋다. 전체 내용을 훑어보고 이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훈련을 하자.
둘째, 독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독자가 글과 일체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선하고 이색적이며 이목을 끌 만한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느낌이 좋은 시의 구절, 산뜻한 느낌을 주는 광고 문구나 신문 제목을 눈여겨봤다가 이를 활용하자.
보도문의 리드는 사례 제시형, 본문 요약형, 비유형, 인용형, 묘사형, 질문형 등 여섯 가지로 나뉜다. 글의 성격이나 집필 의도에 따라 어떤 유형을 쓸지 정하자. 다음은 실제로 미국 신문에 실린 재미있는 리드들이다.
“먼지가 사람을 죽이고 있다.”(환경기사 중)
“이 도시에서는 땅이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큰 도둑이다.”(경제기사 중)
“오래 전, 작은 나무를 사랑한 소년이 있었다.”(인물기사 중)
요즘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이 잦아지면서 많은 수필가들이 기행수필을 자주 발표한다. 그런데 기행수필을 쓸 때 주의할 점은 ①어떤 모임이, ②어디에서, ③몇 시에 모여, ④무슨 교통편으로, ⑤몇 명이 출발하고, ⑥몇 시에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식의 내용을 서두에서 밝히는 경우가 더러 눈에 띈다. 그러나 자신의 일기라면 모를까 독자는 기행수필에서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 목적지에 가서 ①무엇을 보았고, ②무엇을 느꼈으며, ③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알고 싶어할 것이다. 서두의 중요성을 소홀히 여긴 때문일 것이다. 서두에서 독자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독자는 책을 덮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또 국내 관광지나 명승고적을 찾으면 그곳에서 나눠준 관광 팜플렛 자료를 짜깁기하여 기행수필을 빚는 것도 권장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수필을 쓰면 관광 안내문이지 문학수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행문 쓰기가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작가 나름의 독창적인 시각과 해석으로 발단부터 눈길을 끄는 피사체를 그려야 좋은 기행수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서두가 짧고 간결하며 매력적이어야 한다. 작품의 서두는 대부분 작품의 성격과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으로써 매우 인상적이어야 한다. 독자에게 강한 인상과 함께 호감을 주고 이른 바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관심을 갖도록 제시해야 한다. 육상경기의 출발점과도 같은 것이 글의 서두이고 보면, 단거리 경주에 해당하는 수필의 서두는 그 글의 성패를 좌우하는 운명적 부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수필가들이 첫 줄, 첫 머리의 단 한 줄을 끌어내기 위해 피나는 산고를 겪는 것이다. 한흑구는 수필 한 편 쓴 데 5년을 소요했다.
방송에서는 30초 전쟁이란 말이 있다. 프로그램이 시작하면 시청자는 30초 내에 그 프로그램을 더 볼 것인가 채널을 돌릴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30초란 아나운서가 200자 원고지 한 장을 읽는 시간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패러디하여 수필에 대입하면 그 결과는 똑 같다. 수필도 30초 전쟁이란 말이 통한다. 200자 원고지 한 장에는 수필의 제목과 수필의 서두가 들어간다. 그러니 제목이 좋고 서두가 흡인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독자가 책을 덮거나 다른 작품으로 건너뛰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다는 뜻이다. 모름지기 수필가라면 이 30초 전쟁의 의미를 서두의 중요성으로 치환해서 알아들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