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빵 = 씹어야 맛이 난다
흔히들 “오병이어(五餠二魚)”라고도 하는 오천 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다 나옵니다(마태오 14장, 마르코 6장, 루카 9장, 요한 6장). 그런데 유독 요한 복음에서는 그 사건 이후, 몸을 피하신 예수님을 사람들이 찾아 나서고 그분을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 6,26) 그분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육신을 배 불리는 빵이 아니라, 그 표징으로 인해 어떤 숨은 뜻을 드러내시고자 합니다.
두 번째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표현으로 하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요한 6,32) 이 말씀과 함께 자신이 생명의 빵이라고 하십니다. 이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고, 하늘에서 내려온 이 빵을 보고 믿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고도 합니다. 세 번째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말씀으로 “생명의 빵인 그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6,47)고 하십니다. 그분이 생명을 주는 생명의 빵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네 번째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는 말씀과 함께하신 것은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고 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사람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수 있는가? 여기서부터 문제의 심각성이 생겨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고는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기를 포기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시몬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베드로의 이 대답으로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생명의 빵이 무엇인지를, 그분께서 우리에게 먹으라고 주시고자 하는 당신의 살과 피가 무엇인지를! 그것은 당신의 살과 피, 즉 당신 전부를 주시고자 하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당신의 말씀, 즉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새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살을 먹는다는 단어입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φαγειν-파게인)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φαγητε-파게테)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한 6,53) 이 두 단어(파게인과 파게테)는 먹다라는 단어 “에스티오(εσθιω)”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연이어 세 번(요한 6,54; 6,56; 5,57), “내 살을 먹고(ο τρωγων-호 트로곤)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이란 표현에서는 먹는다(에스티오)라는 단어 대신 씹는다(트로고)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요한 6,58입니다. “이것이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고도(εφαγον-에파곤) 죽은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ο τρωγων-호 트로곤)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너희 조상들이 먹었다”에서는 에스티오(먹다)라는 단어가, “이 빵을 먹는 사람”에서는 트로고(씹다)라는 단어가 구별되어 쓰여졌다는 것입니다.
결론으로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요한 6,63) 이 말씀과 함께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생명의 빵은 먹는 빵이 아니라,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빵은 먹는 것이지만, 말씀은 씹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먹는 것이 아니고, 뜻을 깨치고 깨달을 때까지 씹고 씹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두 단어를 구별하여 번역한 것은 킹 제임스(1611/1769) 영어 번역입니다.)
- 황봉철 베드로 신부(성사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