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인
조우연
달에 사는 한 사람이 있다
그는 고독의 달인
비 내리는 밤의 지구
그 빗살무늬토기를 깨뜨리지 않고 바라보기의 달인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망망대해 태풍의 눈을 응망하기의 달인
끝내 음음, 신음 한 마디 내뱉지 않는 달인
그는 진정한 쓸쓸의 달인이다
만월이 되면
깊어진 달의 명치 끝에서 발광하며
꼬꾸라지는 눈발을 쓸어 안는 파도와 밀고 당기는 내면의 소리를
담담히 듣는
혼밥 혼술 혼애 혼공 혼여 혼설 혼자 혼신을 다하는 그는 마치
순식간에 이쑤시개를 정리하거나 수십 개 만두를 빚는 그런 달인들보다 한 수 위의 달인
지구에 있는 누군가가 망원경으로 보았다
달 사막 한가운데 찍힌 그의 흰 발뒤꿈치를
그런데 그게 뭔지나 알까
오늘 달인은
초승의 가는 문지방에 구부리고 앉아
발톱을 깎는 중
똑똑, 지구로 보내는 쓸쓸한 타전 소리
―《엽서시》 2024년 1월(이백열일곱 번째 엽서)
첫댓글 오늘 달인은
초승의 가는 문지방에 구부리고 앉아
발톱을 깎는 중
똑똑, 지구로 보내는 쓸쓸한 타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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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이란 이런 것,이라고 한 큐 제대로 보여주는 시다.
'달에 사는 쓸쓸의 달인'을 알아보는 '지구에 사는 쓸쓸의 달인'...
아, 읽는 독자도 쓸쓸하고 아름다워서
흐린 밤, 뜨지도 않은 달의 길을 더듬더듬 내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