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71호 가난한 자를 못 본 체 하지 말라 (잠28:27)
‘부자로 죽을 것이냐, 부자로 살 것이냐?’
말하자면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처럼 살 것이냐, 아니면 사도행전 9장의 다비다처럼 살 것이냐 묻는 겁니다. 당신은 어느 쪽입니까? 어느 쪽 인생을 살고 싶습니까?
누가복음 16장의 부자는 대문 바로 앞에 나사로라는 거지가 살고 있었음에도 나 몰라라 하고 매일 파티하며 흥청망청 살았습니다. 요즘 말로 명품 걸치고, 수억짜리 자동차 타고, 매일 맛집 찾아다니고, 틈만 나면 파티하며 산 겁니다. 바로 눈앞에 헐벗어 춥고 배고파서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사람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부자의 결국은 어찌 되었습니까? 그는 죽어 음부로 내려가서 물 한 방울의 자비를 구하는 불쌍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반면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신앙을 선한 행실로 입증한 사람이었지요. 그런 그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도움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이 급히 베드로를 청하였고, 베드로는 죽은 다비다를 살려내는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왔을 때 그들은, “베드로 선생님, 이것 보세요. 이거 다비다가 만들어준 속옷이에요. 겉옷도 있어요.” 하며 그를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들의 간청을 하나님이 외면하셨겠습니까?
고넬료라는 사람은 이방인 최초로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의 식솔들까지 동일한 복을 받았습니다. 왜 이런 복을 주셨을까 봤더니, 고넬료가 우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고, 다음은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이었습니다(행10:2).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은 자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들과 나누고 베푼 삶을 산 고넬료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장례식에 가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가 죽었는데 많은 사람이 찾아오면 그 사람은 잘 산 사람이고, ‘죽었는데 뭐 하러 가?’하고 아무도 안 찾으면 그 사람은 잘못 산 사람이라는 겁니다.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조문객들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습니다.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 ‘그분이 어려울 때 쌀을 줬다.’, ‘애들 학비를 줬다.’, ‘어머니가 아플 때 병원비를 줬다.’ 등등 아버지가 베푼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분은 정말이지 인복(人福)이라는 이름대로 살다 가셨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댓돌에 신발이 마르면 가난하게 된다고 하시며, 가난한 자들에게 쌀독의 쌀을 퍼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5)고 하셨습니다. 왜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잠19:17)는 약속 때문입니다.
저는 언젠가 ‘3천만의 호구’라는 별명을 가진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호구(虎口)란 사전적 의미는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뜻하나, 그 여인은 어수룩해서 강제로 빼앗긴 것이 아니라 선한 마음으로 많은 사람을 돕고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군가가 필요하다면, 누군가가 필요할까봐 자원하여 한없이 베푸는 자였는데, 그녀가 고백하길, 그랬더니 자기 수중이 빈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졌다고 했습니다.
지갑을 열었더니 오히려 지갑이 풍성해졌다며 지금 부족함이 없는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오차가 없는지…. 하나님은 분명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고 말씀하셨거든요. 사실 우리 교회도 목회 초기부터 전국과 전 세계에 오디오 테이프는 물론 비디오테이프까지 무료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당시에는 해외로 비디오테이프 10개를 보내려면 거의 10만 원 정도가 들었는데도 우리는 원하는 사람에게 다 보내줬습니다. 그랬더니 그것이 세계 복음화의 기틀이 되었고, 땅끝예수전도단을 형성해서 지금까지도 그 회원들이 아낌없는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원에도 40년 전부터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있지요.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무료로 먹이려고 하느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창고에 쌀이 떨어진 적이 없고, 부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요,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고요.
여러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2:26).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그에게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쓸 것을 주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을 산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약2:15~16).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줘야지요. 큰 걸 하라는 것 아닙니다. 수억씩 도와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는 라면 한 그릇에도 감사, 감격합니다. 구제는 절대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7~18).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볼까요?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자를 보고는 사랑을 가르친 제사장도 그냥 지나가고, 당연히 사랑을 실천해야 할 레위인도 피하여 갔습니다. 그러나 이방인으로 여기는 사마리아인은 그를 주막으로 옮기고 주막 주인에게 부탁하여 보살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사랑을 입으로만 말하지 말고,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10:37)고 말씀하십니다.
나눌 게 없다고요? 아무리 가난해도 나눌 것이 있다고 합디다. 정 없으면 재능기부도 좋고, 시간이 날 때 힘으로라도 보탤 수 있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다 가능하지요. 자고로 물이 고여 있으면 내(川)가 될 수 없고, 강도 이룰 수 없습니다. 물이 흘러야 내도, 강도 이뤄 그 안에 물고기가 풍성하게 되는 겁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도 있습디다. “과도히 아껴도 더욱 가난해질 뿐이라”(잠11:24). 구제하는 것은 하늘에 저축하는 것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눅12:33). 즉 구제하는 일은 이 땅에서만 잘 되는 일이 아니라 내세까지 보장받는 최고의 보험입니다. 노후보장은 물론 사후보장까지 든든한 보험이지요. 보험 많이 들었다고 소문내면 악이 틈탑니다. 최고의 보험인 구제도 오른손이 한 것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친히 갚아주신답니다(마6:2~4).
코로나19 때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가끔 착한 건물주들이 나타나 임대료를 깎아주고, 아예 안 받기도 한다는 소식들을 듣는데, 그 소리는 마치 한여름에 냉수처럼 시원하기만 했습니다.
여러분,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죽을 때는 아무것도 못 가져갑니다. 부자로 죽으면 뭣합니까? 갈 때 다 놓고 가는데요. 살아 있을 때 나누고 베풀어 부자로 살다 가는 것이 지혜롭지 않겠습니까. 이제라도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어 가난하고 병든 내 이웃을 돌보고 베풉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요, 우리는 그저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청지기는 주의 뜻대로 행해야 ‘잘했다’ 칭찬받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오늘 배운 대로 실천합시다.
명절 때가 되면 더욱 외로워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또 탈북민들, 우리나라에 일자리를 찾아온 외국인 근로자들입니다. 그들이 옆에 있걸랑 명절 음식을 좀 나눠주세요. 그거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네들은 따스한 사랑이 그립거든요. 괜히 맛있는 음식 만들어서 귀신에게 바치지 말고, 살아 있는 내 이웃과 나누세요. 나누면 없어지고 적어질 것 같지만, 나누면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즐거운 추석 지내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인색한 자식은 부모도 싫어한다
구제는 축복의 씨앗이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http://m.cafe.daum.net/ssj0643/cR42/93?svc=cafe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