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농(농업,농촌,농민)의 대부 원테쥔 교수는
1990년대초 북한을 방문하여 북한 농촌의 현실 및 문제점을 분석하였습니다.
원테쥔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북한 식량난의 근본원인은 역설적으로
높은 도시화율과 신속한 농업 현대화에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의 높은 도시화와 농업 현대화가 1980년대말까지는 축복이었지만,
구소련과 동구권이 붕괴된 1990년대이후는 오히려 재앙으로 돌변했다고 합니다.
원테쥔 교수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설상가상으로 석유수입의 전면 중단으로 화학비료 생산이 불가능하게 됨에 따라
북한의 식량생산은 대폭 감소하게 됐다고 볼 수 있죠.
다음은 원테쥔 교수의 "백년의 급진"에 언급한 관련 내용입니다.
「과거 소련이 주도한 동유럽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의 영향아래, 북한은 1인당 평균 경지면적이 남한보다 적은 산지농업이라는 조건하에서도, 일찌감치 기계화를 위주로 한 농업 현대화를 실현했다.
이를 통해 농업부문의 생산력을 극도로 높였고, 따라서 농촌인구가 자연스럽게 도시로 이동하여 70%가 넘는 고도의 도시화를 이루었다. 즉 북한은 일찍이 중국보다도 먼저 농업의 현대화를 실현했고, 오래전부터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때 더 이상 호미질을 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가 오늘날 좌파나 우파를 막론하고, 또 학계의 이론가나 현실의 정치가를 막론하고 모두 동경해 마지않는 아름다운 꿈을 북한은 우리보다 20년전에 벌써 실현한 셈이다. 1989년 무렵 북한은 1인당 평균 식량 배당 380kg, 1인당 평균소득 900달러에 근접해 있었다. 우리의 지금 1인당 평균 식량수준보다 높고, 소득도 우리의 1980년대 말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대화를 앞서 실현한 데 따른 결과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1년에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가 해체되면서, 하루아침에 석유 공급이 끊겼다. 산유국이 아닌 북한은 트랙터를 잠자게 내버려둘 수 밖에 없었다. 인구에 30%에 불과한 농업노동력은 오래전부터 전통적인 농기구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트랙터를 운전하는 것 밖에 할 줄 몰랐다.
경제적으로 봉쇄가 되자, 석유도 없고 트랙터 부품도 없는 조건에서 농사를 지을 길이 막연했다. 식량생산이 대폭 줄었고, 대규모의 기아가 발생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사망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건 누구의 죄인가? (178p) -이하생략-」
첫댓글 저는 북은 그렇다치고 남한의 식량이 걱정입니다. 식량자급율23%의 의미는 심각 그자체에다 농업인구 2%는 이상기후나 경제파동시 수많은 아사자를 불러올수 있다고 봅니다.
정부도 국민도 이문제를 쉽게 외면합니다.
씁쓸하녜요
슬픈사연 이라고 동정하면 국뽕뻡이 고무죄로 얶지 않을까 우려되네요
초창기는 죄다 북한이 좋왔다는 이야기이네요
중국인 교수니까 중국의 입장에서 보는것은 당연한것이고요.
고난의행군이 시작된 가장큰 이유는 사회주의 동맹국이라 믿었던 구 소련과 중국의
인간적 배신이었죠....
구 소련연방이 해체되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 트로이카 개혁개방 노선정책을 취하며(미제의 압박에 굴복하여)
당시 주 교역상품이던 석유와 식량수출을 중단하고....
중국또한 자본주의화되며 북조선에대한 교역을 거의 중단했었습니다.
북조선의 거의 대부분 교역이 소련과 중국에 집중되 있었는데
한순간 모든 교역대상이 사라진 셈이죠.
이런 상황에서 그 어떤 국가민족이 정상적일수 있겠습니까..?
그 와중에도 미제의 북조선 고립압살 전략은 쉬지않고 전 세계로 확대되었으며(무역 제재)
북조선에 대한 무력도발 책동은 (팀 스피리드 핵 전술 훈련)더욱 악날하게 진행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조건에서 선군정치가 나온것이라 봅니다.
이러한 배고품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못하고서는 북조선의 그 미제에대한 원한의 깊이를 절대 알수없죠...
러시아와 중국이 북조선과 교역재개가 된 시점은
거의 핵 개발 시기와 일치한다고 보면 맞을겁니다...^^:
그런 것도 노리고 석유공급을 끊은 것일까요...?
현대농업에서 석유는 곧 식량생산량과 직결된다고 할수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석유는 전략물자로 분류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