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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늪에 빠져들 때
호세아서 6:1~3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제가 어려서 잘 알고 지냈던 한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딸 둘을 낳은 아내와 합의 이혼하고 50이 넘은 나이에 17살 연하의 여인과 재혼하였습니다. 재혼은 그에게 결코 행복을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전혀 살림에 관심이 없는 아내는 음식을 만드는 일과 집 안 청소와 빨래에 관심이 없습니다. 주로 패스트 푸드를 사서 먹거나 밖에서 외식으로 때우곤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친구가 밖에서 힘겹게 일하고 돌아와서 집안 살림까지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전립선암에 걸려 수술을 앞두고 있다고 했습니다. 수술에 필요한 정밀 검사를 하던 중에 이번에는 뇌경색이 온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하반신 뼈가 이상이 생겨 엄청난 통증으로 정상으로 걸어가면 5분 거리의 집을 네 번이나 쉬어서 갔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출가한 딸들도 등을 돌리고 형제는 말헐 것도 없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고립무원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는 슬프고 슬픈 현실에 직면하였습니다. 가진 돈도 없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삶의 쳇바퀴처럼 돌리며 살다 보니 캄캄한 절망이 그의 숨마저 쉴 수 없을 정도로 조여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겪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도 저기에서도 어는 한군데 소망의 빛이 보이지 않는 절체절명(絶體絕命)의 상황에 부딪혔습니다
호세아가 활동하던 기원전 8세기 중엽,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타계 이후 극심한 정치적 혼란이 있습니다. 왕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으로 갖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권의 혼란과 우상숭배로 찌들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심마저도 팽개쳐 버리는 영적 타락의 어둠이 온 백성에 임하였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강력한 제국으로 부상한 아시리아제국의 영토확장이란 미명하에 이스라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하여 많은 군사가 무장하고 달려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백성들의 상태에 대하여 호 6:1에서 “우리를 찢으셨으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찢다’의 히브리어 ‘타라프’ 는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인정사정없이 갈가리 찢는 것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라는 표현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찢김을 받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덤벼들어 찢어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마귀의 공격에 손을 쓸 수 없이 방관하셨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치셨으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채찍으로 때려 거반 죽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찢으시고 치셨다는 표현에서 백성들이 겪어야 할 참담함은 극에 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을 보아도 절망이요 밖을 보아도 절망입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께서 은혜와 사랑을 베풀었지만 이를 등지고 배반하는 백성에게 더는 하나님께서 피할 바위가 될 수 없어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악한 영 마귀의 공격을 방치하신 결과입니다.
신 28: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이를 순종하며 그들에게 풍성함이 임하지만 반대로 불순종하여 우상숭배에 빠지면 인생의 채찍으로 다른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수모를 겪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존심마저도 짓밟히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남유다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 같은 거대 제국에 멸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의 성경 속 기록들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참혹하고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먼 길을 걸어간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존엄성이 완전히 짓밟히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시리아와 바빌론 군대가 포로들의 반항을 막고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포로들의 코나 입술에 낚싯바늘 같은 갈고리를 꿰어 줄줄이 엮어 끌고 갔다고 묘사합니다. 왕과 귀족들 역시 예외 없이 눈이 뽑히거나 쇠사슬에 결박된 채 짐승처럼 벌거벗겨 끌려갔습니다. 포로들은 뜨거운 광야 길을 수백, 수천 킬로미터씩 걸어야 했습니다. 제국들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수치심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 고통이 우연한 불운이나 외세의 강함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에 대해 하나님이 내리신 심판과 징계임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징계로서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라는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깊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시 40: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은 스스로 힘으로 벗어나려고 애를 쓰면 더 깊게 빠질 뿐입니다. 하나님만이 해결책을 지니고 있습니다. 파멸의 웅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세 가지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첫 번째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돌아간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회개’입니다. 회개란 히브리어로 ‘슈브’인데 두 가지 개념을 포함합니다. 떠남과 향함!(Turn from, Turn to) 한문으로 회개(悔改)는 뉘우칠 회 고칠 개
뉘우치고 돌이켜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고친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잘못된 모습이나 상태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겁니다. 그것은 곧 끊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회개는 하나님의 초청으로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초청장입니다. 절망 중에 이 음성이 들려집니다. 깊은 어둠에서 한 줄기 빛으로 내게 다가오는 음성은 하나님께 돌아가면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얻겠다는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제 친구도 절망의 늪에서 하나님의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그는 제게 카톡으로 ‘그래도 그분께 모든걸 맡기고 기도 드려야 하겠지만 아직은 미성숙한 인간인지라~~~’는 고백을 전해 주었습니다. 여기서부터 회개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입니다. 작고 미세한 음성에 반응하여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의 재산 중에 자기의 유산을 미리 받아 타국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그 나라에 기근이 들어 굶어 죽게 되자 아버지에게 품꾼의 하나로 여겨달라며 돌아온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여기서 ‘일어나라’는 말씀을 적용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소망의 빛이신 하나님께로 방향을 정하여 나가는 자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치료의 광선을 비추시고 의로운 태양을 떠오르게 하여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리시고 회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호 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고 했습니다. 아픔을 싸매시며 수치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파멸의 웅덩이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호 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날마다 쏟아지는 정보와 지식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지식이 내 생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냐에 있습니다. 살리는 지식이 있고, 죽이는 지식이 있습니다. 호4:6을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살리는 것을 말합니다. 살리는 지식이 없으면 망할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우턴은 말년의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는 친구에게 뉴우턴은 “난 두 가지만 알고자 한다. 그 첫째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가 나의 주님 이시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천재 과학자 뉴우턴의 기억에서 다른 것은 사라졌을지라도 복음에 대한 지식은 살아남았습니다. 이 지식이 있는 한 그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사랑의 대상인 인간이 타락하여 죽음의 깊은 수렁에 빠졌을 때에 살아날 수 있는 Good News, 곧 복음을 준비하셨습니다. 이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지시고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만에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의 죽음을 딛고 예수님과 더불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을 굳게 붇잡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복음의 적용은 예수님의 흔적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분으로 과게에도 그분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어둠을 뚫고 새벽의 빛같이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구원의 계획을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은혜를 베푸시므로 절망의 늪에서 건져주십니다. 이것을 힘써 믿고 주님께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신속하게 이뤄지는 구원의 능력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호 6: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무력하게 죽으신 예수님에게 큰 실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만에 죽음을 뚫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데 복음입니다. 우리에게도 사흘만 잘 견디면 살아날 수 있다는 절대적 희망이 복음에 나타나 있습니다.
어느 길거리에서 날마다 밝은 미소를 지으며 꽃을 파는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삶은 누가 보아도 가난하고 고단해 보였지만, 그의 얼굴에는 언제나 평안과 기쁨이 넘쳤습니다. 하루는 단골손님이 꽃을 사며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연세에 매일 길에 나와 고생하시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항상 즐겁게 웃으실 수 있나요?” 그러자 노인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내게는 '사흘의 비밀'이 있기 때문이지요.”
손님이 그게 무슨 뜻인지 묻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에 머물지 않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살면서 캄캄한 절망이나 슬픔이 찾아올 때마다 속으로 이렇게 다짐합니다. ‘딱 사흘만 기다리자. 사흘만 잘 견디면 부활의 주님이 내게도 새로운 소망과 기쁨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제가 언제나 웃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라고 말입니다.
이 꽃 파는 노인의 삶은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단순히 성경책 속의 역사나 이론으로 남겨두지 않고, 자신의 치열한 삶 한가운데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캄캄하고 답답한 현실이라도 부활의 능력이 반드시 상황을 역전시킬 것이라는 절대적인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 부활에 대한 믿음이 오늘 하루를 기쁘게 살아내는 실제적인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모든 시간과 환경을 뚫고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신비한 능력입니다. 사흘을 견딜 수 있는 능력도 복음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주어집니다. 이 은혜로 어떤 절망의 늪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시기 까지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이길 수 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내게 복음의 능력으로 절망을 이길 수 있고 벗어날 수 있다고 내 안에서 감동을 주십니다. 성령의 감동이 비록 미미하게 보일지라도 믿음으로 일어나 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오십시오! 예수님을 죽음에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이 내 영혼과 육을 온전하게 살리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