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함을 받은 죄인
기독교의 ‘핵심 중의 핵심’을 가장 잘 설명해준 것이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다.
탕자는 악의 뿌리를 뽑은 후에 아버지께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냥 “방향만 돌려” 아버지께 돌아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용서하고 받아주셨다.
예수님의 첫 설교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였다. 히브리어 譯을 보면 “회개”에 “슈브(שׁוּב)”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 뜻은 “다시하다, 뒤로 방향을 돌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시7:12). 따라서 회개란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을 뜻한다. 탕자가 그리했고, 십자가에 달린 한편 강도도 그리했다. 그들은 죄 없는 聖者가 아니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할 수 있다. 곧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린 죄인과 하나님께 등을 돌린 죄인이다. 전자는 의롭다함을 받은 죄인이지만, 후자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 죄인이 된다.
p.s.
부처나 공자나 노자의 가르침 중에도 좋은 말씀들이 있다. 나는 금강경을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윤리·도덕적인 면에서 예수님의 말씀과 너무나 똑같은 말씀들이 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처나 공자나 노자의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과 “방향이 같은지” 검증도 해보지 않고, 단지 자신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이유로 그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목사나 신학자들이 있다.
알고 있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르다. 알고 있는 것은 지식으로 끝나지만, 가르치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것이 된다. 나는 그런 자들에게 마15:9~14을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