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저자는 섬사람들의 오랜 염원을 기억하면서 오름의 이름에 담긴 뜻을 풀이하고, 섬사람들의 삶의 굴곡을 더듬는다. 어떤 오름은 나물과 경작물을 내어주는 밥그릇 같은 존재였으며 어떤 오름은 다쳤을 때 약초를 내어주는 치유의 땅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섬사람들에게 오름이란 복작한 삶의 터전이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이며,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고, 신화의 한복판이기도 한, 밟고 서 있는 제주의 모든 것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오름의 능선을 따라, 오름 품은 울울창창 깊은 숲을 따라 이 천혜의 풍광을 오롯이 담기 위해 저자 최창남은 자신의 ‘오름’ 여행을 김수오 사진가와 함께했다. 사진가 김수오는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자연 훼손과 난개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현재 제주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기록하는 사진가이자 한의사로 활동 중이다. 이 책에서 사진가 김수오가 하늘과 땅, 사람과 나무, 풀과 바람이 어우러진 오름의 장관을 제대로 포착해내 보여주었다면, 저자 최창남은 초등학교 6학년 읽기 교과서에 게재된 동화 『개똥이 이야기』의 작가답게 특유의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에세이시스트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뜻과 생각에 쫓기며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이 희망하는 삶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목차
마중글
섬으로 흘러들다
아부오름 바람과 눈물의 땅
다랑쉬오름 영혼의 길에 들다
용눈이오름 너머의 삶을 그리워하다
당오름 신의 거처
백약이오름 치유와 회복의 땅
동검은이오름 신들의 땅
영주산 또 하나의 섬, 또다른 한라산
물영아리오름 물의 땅
노꼬메오름 서툰 삶을 그리워하다
바리메오름 밥
높은오름 신들의 손길
체오름 하늘을 만나다
졸븐갑마장길 마음 내려놓다
윗세오름 신들의 정원, 비움의 아름다움
작가의 말
스스로 태어난 것들로 이루어진 섬
저자 소개
저 : 최창남
목사이자 작가. 작곡가. <노동의 새벽>, <저 놀부 두 손에 떡 들고>, <살아온 이야기> 등 지금은 고전이 된 노동가요들과 민청련의 주제가였던 <모두들 여기 모여있구나>와 <화살> 등의 여러 민중가요를 남겼다. 펴낸 책으로는 최근 자전적 고백과 명상록이라 할 수 있는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와 초등학교 6학년 읽기 교과서에 수록된 동화 『개똥이 이야기』가 있으며 『그것이 그것에게』, 『울릉도 1974』, 『백두대간 하늘길에 서다』, 『숲에서 만나다』 등이 있다. 지금은 뭍에서 물러나 제주 남단인 섬 중산간 자락에 몸 기대어 살고 있다.
사진 : 김수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늦깎이 한의사로서, 연어처럼 고향으로 회귀해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맥診脈하고 출퇴근 전후 이슬을 적시며 제주 산야를 누빈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다움을 진맥眞脈하기 위해.
책 속으로
이 섬에는 신화와 전설이 깃들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시선 닿는 곳마다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 한라산과 바다와 곶자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과 오륙십 년 전까지만 해도 제주 사람들의 식수와 생활용수로 사용되었던 용천수가 나오는 물통들에도, 368개나 된다고 알려져 있는 오름들에도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 「마중글」 중에서
그 하나하나가 모두 신화의 배경이며 섬사람들의 삶이다. 섬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에서 말과 소를 방목하며 살았고, 죽어서는 오름에 묻혔다. 오름은 바다와 함께 일만팔천여 신들이 산다는 신화의 땅인 이 섬의 배경이며 삶의 자리였다.
--- 「마중글」 중에서
우주의 중심을 찾아 이 섬의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의 깊고 깊은 곳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흐르다가 용천수가 솟구치는 마을의 물통으로 몸을 드러내어 마을을 살피고 살아가는 이들을 돌보고 있다. 죽은 것이 아니다.
--- 「마중글」 중에서
아끈다랑쉬오름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있다. 표고 198미터이지만 비고는 58미터에 불과하여 조금 과장하자면 숨 한번 고르는 사이에 오를 수 있다. 낮고 작은 오름이지만 그 경치는 빼어나고 정취는 깊고 유려하기 그지없다. 작고 낮은 오름에 무슨 깊고 유려한 경치와 정취가 있겠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아끈다랑쉬오름에 올라 억새와 바람 사이로 난 길을 흘러들 듯 걷다 보면 절로 느끼게 된다.
---p. 40
재미있는 것은 손자가 368명으로 368개 마을의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손자가 368명이나 되었다는 것은 섬 전체의 오름이 약 368개라는 것과 의도적으로 맞춘 것으로 보인다. 368개라는 오름은 섬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이야 다르지만 옛날 사람들은 오름에서 태어나고 오름에서 살고 죽어 오름에 묻혔으니 오름은 그들의 삶의 근거이며 신앙의 대상이며 일부분이기도 했던 것이다.
---p.72
동검은이오름은 동거문악(東巨文岳, 東巨門岳, 동거문이악東巨文伊岳)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검은’의 소리를 따라 표기한 것이다. ‘검은’의 ‘검’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이는 고조선시대부터 내려온 말로 ‘신神’을 의미한다.
---p.101
걸음 떼었다. 족은노꼬메로 내려서는 계단은 숲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햇살은 부드러웠지만 바람 세찼다. 계단을 내려서자 깊은 삼나무 숲이 기다리고 있었다.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갔다. 길은 끝이 있겠지만 마음은 숲을 닮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설문대할망이 그 숲을 지나고 있는 듯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었다. 바람 따라 걸으며 서툰 삶을 그리워했다.
---p.153
하지만 오늘날 이 섬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땅은 병들고 바다는 죽어가고 있다. 오름은 파헤쳐졌다. 살아 있는 물인 산물이 콸콸 쏟아지던 물통들도 사라지고 있다.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존재해온 것들이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고 사라지고 있다. 스스로 태어나고 스스로 존재해온 것들이 사라진다면 이 섬에는 무엇이 남을까. 신들이었던 것들이 병들고 무너지고 파괴되어 사라지면 이 섬은 그대로 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신들이 사라진 땅에서 사람들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섬에 몸 붙이고 대대로 살아온 이들이 그러한 삶을 견뎌낼 수 있을까. 섬은 섬이어서 좋은 것이다. 섬을 섬답게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 그것만이 섬도 사람들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신들의 거처, 열네 개의 오름을 소요하는 매혹적인 에세이-
설문대할망이 창조한 제주의 또다른 이야기
제주도 사람들에게 그들이 몸 기대어 사는 섬은 한반도 남단에 있는 그저 하나의 섬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이 자리하고 있는 세계였다. 우주였다. 하여 육지와는 다른 독립된 신화와 전설들을 무수히 품고 있다. 이 섬을 창조한 신은 설문대할망이다. 설문대할망은 이 섬을 창조했지만 그녀가 창조한 섬 가운데 자리한 한라산에 있던 깊이를 알 수 없다는 물장오리 습지에 빠져 죽었다고 수많은 신화와 설화들은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설문대할망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장오리 습지에 빠져 죽은 것이 아니라 무거운 육신을 벗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신을 벗고 한라산 깊이 흐르는 살아 있는 물과 함께 흘러 섬 곳곳마다 있는 물통을 통해 다니며 그녀가 창조한 이 세계를, 이 섬의 구석구석을, 사람들을, 이 섬에 기대어 사는 숱한 생명들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바람이 되어 이 섬과 사람들과 생명들을 지키고 있다고 믿는다.
이 섬은 설문대할망이 창조했고, 일만팔천이나 되는 신들이 사는 신들의 땅이다. 눈길 닿는 곳마다, 나무마다 돌마다 신들의 손길이 어려 있다. 하지만, 그 신들이 사람들이 몸 기대어 살아가라고 내어준 사람들의 땅이기도 하다. 이 섬은 숱한 생명들이 생명을 잃고 또 회복하며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명의 땅이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저자 최창남은 오름 트래킹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고 하더니 이런 이야기들을 들고 왔다. 오름 트래킹을 말하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니 이런 이야기의 얼개 안에 오름 트래킹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세 권의 책에 풀어놓을 예정이다. 이 책 『신들의 땅』은 그 첫째 이야기이다. 첫 권이다. 둘째 이야기는 ‘사람들의 땅’이고, 셋째 이야기는 ‘생명의 땅’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제가 이 섬에 몸 기대어 살며 만나고 보고 느낀 이 섬, 이 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땅에 대한 저의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름을 소재로 하였고, 오름 이야기이니 오름 트래킹 책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름을 품어낸 이 땅의 이야기이며, 그 땅에 살을 섞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며, 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섬에 대한 저의 행복한 고백입니다. 이 섬이 품고 있었으나 늘 이 섬 너머에 있던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진지하지 않게,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트래킹하듯 읽을 수 있도록 쓰려고 마음 기울였습니다.”
글과 사진이 함께하는 오름 그리고 오름 품은 숲
저자는 섬사람들의 오랜 염원을 기억하면서 오름의 이름에 담긴 뜻을 풀이하고, 섬사람들의 삶의 굴곡을 더듬는다. 어떤 오름은 나물과 경작물을 내어주는 밥그릇 같은 존재였으며 어떤 오름은 다쳤을 때 약초를 내어주는 치유의 땅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섬사람들에게 오름이란 복작한 삶의 터전이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공간이며, 자연 그 자체이기도 하고, 신화의 한복판이기도 한, 밟고 서 있는 제주의 모든 것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다.
오름의 능선을 따라, 오름 품은 울울창창 깊은 숲을 따라 이 천혜의 풍광을 오롯이 담기 위해 저자 최창남은 자신의 ‘오름’ 여행을 김수오 사진가와 함께했다. 사진가 김수오는 삶의 터전을 파괴하는 자연 훼손과 난개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현재 제주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기록하는 사진가이자 한의사로 활동 중이다. 이 책에서 사진가 김수오가 하늘과 땅, 사람과 나무, 풀과 바람이 어우러진 오름의 장관을 제대로 포착해내 보여주었다면, 저자 최창남은 초등학교 6학년 읽기 교과서에 게재된 동화 『개똥이 이야기』의 작가답게 특유의 간결하고 리드미컬한 문장으로 에세이시스트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낸다. 뜻과 생각에 쫓기며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이 희망하는 삶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