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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oman who had had a hemorrhage for twelve years...... (omitted) .....And He said to her, "Daughter, your faith has made you well; go in peace and be healed of your affliction." Mark 5: 25, 34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중략..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He said to her, "Talitha kum!" (which translated means, "Little girl, I say to you, get up!"). Immediately the girl got up and began to walk for she was twelve years old. Mark 5:41,42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 북서쪽 연안에 위치한 도시인 가버나움(Capernaum)지역에서 일어난 기적에 관한 이야기가 오늘 본문 내용이다. 두 여인이 있었다. 한 명은 12년동안 혈루증(chronic bleeding(hemorrhaging): 만성출혈), 즉 생리기간도 아닌데 지속적으로 피가 새어 나오는 질병을 앓던 여인이고 다른 한 명은 무슨 질병인지는 모르나 죽을 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던 이제 12살 된 여자 아이였다.
당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갈릴리 전 지방에 퍼져 수많은 병자들이 치료를 받는 다고 알려져있었던 터라 회당장(Ruler of the Synagogue) 야이로는 자기 딸이 죽는 것을 볼수 없어 예수님을 찾아가 만나 뵈옵고 그 발 아래 엎드러 간곡히 간구하며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시어 딸아이가 죽지 않게 구원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러자 주님은 그의 말을 듣고 소원을 들어 주고자 야이로를 따라 가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오셨단 소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밀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밀지 말라 소리치며 주님이 하시는 기적을 현장에서 보고자 함께 야이로의 집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여기서 몇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문제가 생기면 주님께로 나아가 그발 아래 엎드려 간구하라는 것이다. 즉, 문제의 현장에 머무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그 앞에 엎드려 간구하라는 것이다. 문제의 해결은 내가 주님과 함께 있느냐 아니면 문제 속에 머무느냐라는 공간적인 요소와 겸손하게 엎드려 간구하는 기도가 있을 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주님께로 나아가 기도하자.
둘째로 생각볼 것은 주님은 말 한마디로 야이로의 딸을 고칠 수 있으시나 간구하는 사람의 믿음대로 역사해 주시다. 회당장 야이로는 "오셔서 손을 얹으사 고쳐주소서" 하며 대면 치유를 요청했고 이에 주님은 야이로의 믿음의 분량대로 움직이신다는 것을 알수 있다. 반면 마태복음 8장에는 백부장(Centurion, 오늘날로 말하면 중대장 Captain)이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Paralysis)에 걸려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볼수 없어 야이로 처럼 주님께 나아가 종을 고쳐달라 간구했다. 이때도 주님은 가서 고쳐주시려 했지만 백부장은 "말씀만 하옵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군인이라 가라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니 주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원격치유가 될수 있음을 믿고 고백했다. 그랬더니 주님은 이스라엘에서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시며 원격으로 치료해주셨다.
셋째, 이방인인 로마군인 백부장과 유대교 종교지도자인 회당장 야이로의 차이에서 주님의 능력을 보는 시야가 유대인인 회당장 야이로는 제한적이고 전통적인 틀 속에 갇혀 있는 반면 이방인인 백부장은 좀더 오픈되어 있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했다. 내가 주님을 더욱 신뢰하기 위해 깨트려야 하는 전통, 문화, 틀(프레임)은 무엇인가?
넷째, 예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주님은 계획없이 움직이지 않으신다. 야이로의 딸아이가 죽고 나서 그 집에 도착하시도록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이시고 딸아이가 죽었다는 사실 속에 낙망하는 야이로에게 "두려워 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하시고 야이로를 이끌고 죽은 딸아이게게로 가서 "달리다쿰, 즉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시며 죽은 아이를 살려주심으로 야이로의 믿음을 백부장 수준으로 끌어 올려 주셨다.
한편,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시기 위해 이동하던 중 한 사건이 발생했다. 회당장 야이로와 함께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수많은 군중에 휩싸여 이동하시다가 주님은 뜬금없이 누가 내 옷을 만졌느냐? 질문하신다. 막 6장에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사건으로 유추해 보면 예수님을 따라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향할 때 무리의 수는 족히 천명은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밀치고 당기고 하는 와중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옷을 스쳐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누가 내옷을 만졌느냐? 물으시니 제자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갈길 바쁜 야이로는 더욱 활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수많은 무리가 에워싸는데 그게 문제가 되냐고 여쭈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닌가? 라고 질문한 것이다. 그런데 주님께는 전혀 다른 사건이었다. 몇개월 전에 모로코 탕헤르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과 이야기하다가 함께 버스를 올라탄 적이 있었다. 그때 버스에 오르고서는 바지 뒷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스마트 폰이 도난 당한 것을 알았다. 마찬가지로 주님은 자신에게서 능력이 빠져 나간 것을 알아 차리시고 질문한 것이었다. 모든 군중들은 이동을 멈췄다. 이때 12년간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앞으로 나와 두려워 하며 떠려 주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고백했다. 자신은 12년동안 용하다고 하는 병원, 의원 다 찾아다니며 자신의 병을 고치고자 했는데 아무런 치료를 못받고 돈만 허비하며 고생하던 차에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옷자락이라도 만지면 치료받겠다는 믿음으로 몰래 군중속에 숨어 주님께 다가와 주님의 옷을 만졌다는 것이다. 그녀가 만지자 마자 자기 몸에서 그 병이 떠난 것을 몸으로 알아 차릴 수 있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자 주님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도 몇가지 교훈을 묵상해 본다.
먼저, 문화 사회적 배경을 살펴보자. 왜 여자는 두려워 떨며 주님께 나왔을까? 혈루증이난 여자가 자궁으로 피를 흘리는 병이다. 구약성경 레위기 15장1~33절에 에 당시 유대인들이 혈루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나온다. 정상적인 여성이 월경을 시작하면 이를 부정한 것으로 여겨 기본적으로 7일동안 여성은 부정한 상태(Unclean, Ritual impurity)가 된다고 믿었다. 민수기 19:22절에는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만지는 그 사람도 부정해 진다고 말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그 7일동안 그 여인과 몸이 닿는 사람, 여인이 앉았던 의자나 누웠던 침대를 만지는 사람도 모두 저녁까지 부정하다고 여겼으며 옷을 빨고 몸을 씨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님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문화와 전통이 사회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생리기간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피를 흐리는 자신은 부정한 자 중에서도 부정한 자였고 아무도 가까이 할 수 없이 철저히 고립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여자였다. 그런 세월이 12년이었다. 주님은 그녀의 고백을 듣고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여인은 온전히 치료받고 지긋지긋한 병에서 온전히 놓여 진정한 자유를 주님으로 통해 맛보게 되었다. 이 사건을 통해 무슨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
첫째, Touch make difference. 뭔가 만지면 변한다. 무엇을 만지느냐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본문에 나오는 두 여인은 한 명은 혈루증 환자이고 다른 하나는 죽은 소녀다. 성경은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부정해지고 죽은 시체나, 무덤이나, 사람의 뼈를 만져도 부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자는 우슬초를 뿌리고 몸과 의복을 물로 씻어 정결케 했다. 부정한자가 만진 것 또한 부정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와 반대로 출 29:37을 보면 번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하리라 는 말씀도 존재한다. 번제단뿐만 아니라 성막에 있는 모든 기구, 물두멍, 그 받침에 기름을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면 그것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해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touch make defference. 접촉은 변화를 일으킨다. 보는 것도 접촉이요, 만지는 것도 접촉이요, 듣는 것도 접촉이다. 모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부정한 접촉은 부정을 낳고 거룩한 접촉은 거룩을 낳는다. here and now, 나란 존재는 지금 무엇을 접촉하고 있는가? 그 접촉에서 무슨 영향을 받고 있는가? 거룩인가 부정인가? 죽음인가? 생명인가? 치욕인가? 영광인가? 존재의 눈길이 머무는 곳, 존재의 손 길이 닿는 곳, 존재의 귀 길이 닿는 곳, 존재의 발길 닿는 곳 그곳이 거룩한 곳이 되게 주님안에 거하자.
둘째, 여인의 믿음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성경은 믿음을 정의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치료 받고자 하는 강한 바람이 생겼다. 그녀는 과감히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부정함 이란 틀에서 머무르지 않고 주님께로 그 문제를 가지고 가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그녀가 주님께 나아가는 것을 실행에 옮기려 하자 두려움도 찾아왔을 수도 있다. 만일 자신의 병이 낫지 않는다면 하는 만약의 상황도 고려했을 수 도 있다. 부정한 여인이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었다고 오해를 받으면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염려 근심 걱정은 믿음을 가로막지 못했다. 믿음은 그것을 극복하게 했다. 여인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비밀리에 군중속에 들어가 주님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주님이 자신의 앞을 지나치실 때 손을 내밀어 주님의 옷자락 끝을 떨리는 손으로 잡았다가 떼었다. 그러자 즉각 그녀의 몸이 반응을 했다. 몸으로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머리로 깨달은 것이 아니다. 생각이 아닌 실체적으로 몸이라는 물질적 존재가 반응한 것이고 이것을 여인의 뇌가 알아차린 것이다. 겨자씨 한알 만한 믿음이 있어도 기적은 일어난다. 주님을 향한 믿음의 결국은 구원이다. 해방이다. 자유다. 죄에서 자유하고 질병에서 가난에서 부끄러움에서 열등감에서 혼돈에서 나약함에서 초라함에서 수치심에서 거짓 프레임에서 자유한 것이다.
둘째, 열역학 제 2법칙을 거스르는 힘은 생명인데 생명의 근본은 믿음임을 알 수 있다. 열역학 제 2법칙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떨어 진 종이는 썩는다. 물질은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러나 생명의 법칙은 씨앗이 발아하여 새싹과 묘묙이 되고 나무가 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체가 되고 분화하여 생명체가 된다. 더욱 질서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의 몸은 열역학 제 2법칙으로 더욱 쇠잔해 질 수 밖에 없었고 죽은 야이로의 딸, 시체는 썩어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철저한 열역학 제 2법칙이 다스리는 영역속에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께로 그 질병과 죽음이란 주제를 가지고 나아가 간구할 때 다른 말로 믿음을 내어 보일 때 질병은 치료되었고 죽은 몸은 다시 생명을 되찾았다. 열역학 제 2법칙을 정확하게 거스르는 것이 믿음이다. 필자는 모로코에서 결핵환자들 돕는 코이카 프로젝트 메니저로 활동했었다. 공식적인 2년간의 사업이 끝나고도 지금까지 이어서 6년동안 자원 봉사를 하고있다. 도움이 필요한 결핵환자들을 만났을 때 난 그들이 할아버지 처럼 보여 예의를 갖추다가 나이를 확인하고 나보다 어린 사람들을 종종 본다. 젊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여호수아는 나이 80이 넘어서도 "이 산지를 내게 주옵소서" 하며 숫자에 불과한 나이가 아닌 믿음의 나이로 정탐군으로 활동하던 시기와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했었다. 여인이 몸으로 자신이 병이 물러간 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머리로만 깨닫고 신앙생활 한다고 착각하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것이 분병하다. 전 인격적으로 전 육체적으로 주님이 깨달아 진것이다. 여기서 좀더 나아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말씀하신 것도 기억난다. 교회는 지식과 철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머리로서 주님을 이해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온 몸으로 온 인격으로 영혼육의 전 차원으로 주님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영혼에게 주님의 거룩함을 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주님의 보시는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 내가 제목을 두 여인이라 말한 것은 유대교 전통에서 소년은 13세, 소녀는 12세가 되는 날에 종교적 성인식인 '바트 미츠바(Bat Mitzvah)'를 치를 성인의 자격을 얻게 하기 때문에 소녀도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나이가 되면 부모의 영적 책임에서 벗어나 스스로 율법(계명)을 지킬 의무를 지는 온전한 성인으로 인정받았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발을 꿇으며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다"고 애통해한 것은, 이제 막 성인이 되어 꽃을 피우려던 딸의 비극을 강조하는 문화적 맥락이 그 속에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 명은 12년간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었고 다른 여인은 이제 월경을 시작하는 성인으로 매월 7일동안 부정하다는 프레임 속에 살아야할 여인이었다. 종교적 문화적, 전통적으로 한달에 7일씩 부정한 여인으로 여겨질 수 밖에 없는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존재들로 그들을 보신 것이다. 예수님은 누가 자기를 만졌는지 이미 알고 계시다. 그분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모르실 수 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누가 자신을 만졌느냐고 황당한 질문을 일부러 제자들에게 그리고 군중들에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용기를 발휘한 그녀에게 더이상 숨기지 말고 공개적으로 자신에게 임한 축복을 고백하도록 하셨다. 그렇게 부정한 여인이라고 손가락 질하던 수많은 남자들을 멈춰 세우고 믿음으로 행동한 한 여인의 신앙고백을 듣게 하셨다. 남성 여성 평등을 사람들은 말한다. 주님의 주도 면밀한 이 사건 전개를 보면서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차별하지 말자.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아담이 고백했던 그런 사랑스럽고 내 몸에서 나온 소중한 존재, 나와 동등, 평등한 하나님의 피조물로 천국의 유업을 같이 받을 자로 사랑하며 섬겨야 하지 않겠는가?
넷째, 본문의 12란 숫자는 무엇을 의미할까?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먼저 3이란 것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포함하는 숫자로서 매우 신비한 하늘의 숫자라고 생각한다. 점과 점이 만나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이 만나면 면이된다. 12는 1하고 2란 숫자가 결합된 것이다. 1과 2를 더하면 3이 된다. 3점이 만나야 비로서 면이 되고 삼각형이란 도형이 만들어 진다. 다른 도형도 있지만 사각형은 삼각형 두개가 모인 것에 불과하다. 오각형은 삼각형 3개가 모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기에 모든 도형의 근본은 삼각형이고 그것은 3위 일체 하나님 한분을 의미한다. 하나이면서 3이고 3이면서 하나이다. 그 안에서 사인, 코사인, 탄젠트가 나온다. 즉, 파동이 나온다는 것이다. 주기가 나오고 기울기가 있고 움직임이 나온다는 것이다.
12는 무엇일까? 3을 4번 더하면, 즉 3이란 숫자에 4를 곱하면 12가 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12명을 세우셨다. 계시록의 144000은 12x12= 144 여기에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1000이 곱해진 형태다. 그런데 여기서 한 여인은 12년을 혈루증으로 고생했고 한 여인은 12년을 살다 생을 마감했다. 하늘의 숫자 3이 동서남북 곧 땅을 의미하는 4에 곱해져 12란 숫자가 나왔는데 이는 주님이 다스리며 양육한 제자들 12명이란 숫자처럼 주님의 통치가 임하여 풍성한 삶을 살고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결과로 이어여야 할 것 같은데 반대로 심한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급기야 죽음이라는 정 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삼위일체 속에서 나오는 성령의 파동이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두 여인은 누구일까? 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아내처럼 대하셨다. 호세야 2장 19~20절에서 주님은 "내가 네게 장가 들어" 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엡 5:31-32절에 부부의 연합을 설명하면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주님은 계 19:7절에는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란 언급하시며 성도들이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신부로 단장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오늘날 12란 껍데기 숫자에 포장되어 속으로는 심한 질병과 사망의 문턱에서 긍긍전전하며 살아가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묵상해 본다.
무엇을 성경은 말씀하고 계신가? 심한질병과 죽음에 놓인 교회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음을 명확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혈루증 여인도 사경을 헤메는 소녀에게도 달라진 것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이 함께 하시는 것 외에는 변화도 발전도 건강도 생명도 없다. 내 안에 계신 주 예수님을 혈루증을 앓던 여인처럼 몸으로 느끼는가? 달리다쿰 소녀야 일어나라 는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가? 언제까지 경계선에서 머뭇 거릴 것인가? 사탄이 밀까부릇 하듯이 나를 청구하게 두지 말자. 주와 함께 거침없이 아낌없이 후회없이 저 들판을 달리고 성벽을 뛰어 오르고 승리의 깃발을 꽃아보자. 진정한 12지파 12제자의 삶읠 살아 보자.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도와 주리라.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리라.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