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현을 보면 두 사람의 말이 떠오른다. 하나는 그의 대학 시절 은사인 김충남 연세대 감독의 말이다. 김감독은 “마운드에 오를 때 싫은 기색을 보인 적이 없다. 어떤 때는 내가 미안할 정도인데 본인은 덤덤했다”며 “요즘도 시즌 끝나면 가끔 만나 소주 한잔씩을 한다”고 조계현의 씩씩함을 떠올렸다. 또 하나는 조계현이 올시즌 도중 어깨 부상으로 출장을 못하고 있을 때 들은 말이다. 두산 곽홍규 단장은 “일단 시리즈에만 올라가면 해볼 만하다. 조계현이 한 경기 정도는 책임져 줄 것이다”고 장담했다.
물론 조계현이 시즌 초반 예상 외로 잘 던졌지만 그를 포스트시즌용 투수로 평가하는 것은 의외였다. 더구나 부상 중이고 나이(36세)도 있는데…. 그러나 지난달 30일과 8일 삼성전의 투구내용을 보면서 곽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이 두 경기는 두산·삼성 양팀의 플레이오프 직행 여부를 결정짓는 사실상의 포스트시즌이나 다름없는 일전이었다. 조계현은 지난달 30일 삼성 김상진과 맞붙어 7⅓이닝 동안 1실점으로 호투,승리를 따냈다. 8일에도 7⅓이닝을 던져 2실점(1자책)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특히 상대가 그를 방출했던 삼성이라는 점이 자극제가 됐을지도 모른다.
지난 30일 패전투수 김상진은 6억5,000만원에 삼성으로 이적된 선수. 한때 두산의 에이스였던 김상진은 팀 운영에 불만을 자주 표시했고 자연 김인식 감독의 눈 밖에 나 현금트레이드됐다. 이에 반해 조계현은 용도폐기된 채 빈 손으로 두산행을 택했다. 8일 중간으로 등판한 이강철은 삼성이 8억5,000만원을 투자해 데려 온 투수다. 두산 김인식 감독은 동국대 감독 시절 광주일고에서 이강철을 스카우트했다. 이강철 역시 싫은 내색 없이 마운드에 올랐고 김감독에게 여러 차례 우승 헹가래를 안겨주었다. 조계현과 이강철은 89년 나란히 해태에 입단,한솥밥을 먹으면서 ‘해태 9차례 우승’에 한몫을 담당했다.
조계현과 이강철,김인식 감독과 김상진. 이들을 생각하면 야구판의 인생유전이 절로 떠오른다. 깊어가는 가을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