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골성님이 쓰신 글에 대한 답글의 의미로 글을 올립니다.
연개소문의 정변이 실패했다면 고구려가 3백 년은 더 갔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고구려가 얼마나 더 갔을지는 모르는 일이지요.
다만, 저 역시 연개소문의 정변 성공과 집권은 고구려의 멸망을 앞당겼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연개소문이 집권했든, 아니면 영류왕 정권이 유지되었든 당나라의 침공을
피하기는 어려웠다고 봅니다. 당에게 있어서 고구려는 자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잘못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김춘추가 연개소문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을 때 연개소문은 신라를 적으로 돌리고
맙니다. 김춘추가 감금에서 풀려난 뒤 돌아가면서 백제 뿐만 아니라 고구려도 멸망시켜야겠다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신라로 갔을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연개소문은 당시의 신라를 광개토태왕
당시의 신라 정도로 우습게 여기고 적으로 돌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니, 신라 자체를 아예
무시했던 것이지요.
결국은 신라가 당나라의 군량미를 보급해 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 배후 기지 역할을 해 준 것은
고구려에게는 치명타가 됩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신라와 백제 모두를 적으로 돌리지 말고 적절하게 구스르면서 오직 당나라만을
상대로 싸웠다면 아무리 당이 강해도 고구려의 방어 체계를 그렇게 쉽게 무너뜨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 역사상 최고의 외교 군주로 꼽히는 장수태왕의 뛰어난 외교력이 요구되던 시점에
연개소문은 그러한 외교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유목 세력과의 연대도 중요하지만 배후에 있는
백제와 신라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신라를 과소평가하다가 치명상을 입고
만 것입니다. 아무리 신라가 고구려보다 국력이 열세라 하더라도 궁지에 몰아넣으면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예측했어야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권력을 독점하고 또 후계자를 확실하게 세워두지 않음으로써 본인의 사후 고구려의
급속한 붕괴를 가져왔습니다. 고구려의 권력이 연개소문 1인에게 독점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론, 고구려의 멸망은 수십 년에 걸친 한족 세력의 끈질긴 공세의 결과이기 때문에 연개소문 한 사람의
잘못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으나, 연개소문이 현명한 외교력을 발휘하고 권력을 독점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골성님의 생각처럼 고구려가 망하지 않고 신라와 남북국을 이루었든지, 아니면 고구려가
삼국 통일을 했든지 오늘날 우리 민족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잘 되었다면 동아시아가 중원 문명이 독주하지 않고 중원 세력과 동방 세력이 양립하거나 아니면
유목 세력까지 다원화된 질서가 계속 유지되면서 우리 민족의 영향력이 더 커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반대로 고구려가 잘 버티다가 강성해져서 당나라가 쇠망해질 때 요나 금처럼 중원을 상당 부분
장악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거란이나 여진처럼 한족화되어 오늘날
우리 민족의 존재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중원 세력의 독주와 수많은 민족의 소멸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살아 남았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고구려의 비참한 멸망으로 화려한 고구려 문명이 철저하게 파괴되었다는 것과 그 후로 우리 민족은
중원 세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다는 것인데, 지금은 영토의 의미가 고대처럼 중요한 시대는
아닙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지켜나간다면 고구려의 영화를 되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고구려의 영토가 아니라(그 영토마저도 몽골 제국이나 수, 당, 청의 영역에 비한다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구려인의 자부심과 개방성, 국제성을 계승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붙여,
비록 오늘날 우리는 한반도의 남쪽만을 영유하고 있는 분단 국가이지만 21세기의 남쪽 한국은 한민족
역사상 경제적으로 가장 풍요로우며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도 (우리 기업의 위상 등을 볼 때) 가장
크지 않나 생각합니다. 위축되지 말고 올바른 역사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예, 글 잘 읽었습니다. 어차피 현재로써는 "가정"밖에 할 수 없으니까요. 덧붙여 쓰신 의견에만 역시 덧붙인다면..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영향력도 크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통일이 되고 적어도 요동일부와 압록강 북쪽 남만주 일대까지 통일한국의 영토라면 (라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면) 인구는 1억을 훌쩍 넘을 것이고 그로인한 내수시장의 확대와 경제,정치적으로 훨씬 더 커진..지금처럼 강소국의 위치가 아닌..진정한 강대국의 위치에 올랐을 것입니다.(동아시아에서는 일본 그 이상으로, 유럽의 독일과 같은 위치의) 그래서 더더욱 아쉬운 것이겠지요.
고구려가 만주와 한반도를 통일했다면 과연 중국과 북방세력의 압박을 물리치고 오늘날까지 요하이동까지를 확보할 수 있었까요? 역사의 가정이란 부질없는 것이지만 중국과 거란과 몽골, 근대에 들어 러시아와 일본의 압박을 예상해 본다면 만주와 요동을 지켜내기란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일단..연개소문은 그 시대..자기에 맡아진 시대 임무를 충실히 했다고 봐야 합니다..
님이 연개소문을 깐 내용 첫번쨰 내용에 대한 반박을 해 볼까요..
김춘추는 딸내미 복수를 위해서 고구려를 이용하려 했고.백제를 치기 위해서 고구려를 외교적으로 이용했을거라는게 평인데...그 내용을 충실히 해석하자면...외교사신은 그 나라를 대표합니다...딸내미 복수에 눈이 먼 김춘추를 외교사신으로 보냈다고 하면...요즘말로..딸내미의 복수때문에 이성을 잃은 눔을 바로 옆국가에 중대한 외교문제 신라의 흥망를 다룰 수 있는 문제에 외교사신으로 보낸 신라에 콧웃음을 칠 일이고..김춘추가 설사 어쩔수 왔다해도
인질로 잡혔다고 하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교사절을 김금했다해도 느슷합니다..그건 고구려는 강대국이었고..신라는 약소국이었을 뿐만아니라...사신이 감금되었다고 해도 탈출해서 자국으로 돌아간 예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거의 없을 뿐더러..느슷한 억류를 뚫고 간다는 건 자국에 미칠 엄청난 화 때문에 대부분 사신이 억류되더라도 자국에 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차라리 모함을 받아서죽더라도.탈출 할 생각은 하지 않죠.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김춘추가 잘못한 행동입니다.
두번쨰는 ..요즘 말로 유산상속 문제로 자식이 다퉜을때 둘째 셋째는 죽였어야 했거나 , 또는 사회생활 못하도록 절단을 해야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식의 접근 같아서 씁씁하군요..엄연히 남건, 남산이 남생의 뒷퉁수를 친 사건을 가지고..연개소문에게 연좌제 형식으로 책임을 뭍는다는건 ...차라리 연개소문때 확실히 거란을 합병하는 정책을 써야 했다는 식으로 얘기 했으면 어느정도 이해는 가는데..
셋째..고대엔 영토문제가 그 국가의 자부심, 국제성, 개방성과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습니다..미래학자인 앨빈토플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최소한 그 국가의 자부심 , 국제성. 개방성과 그 나라 영토, 인구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설마. 개인의 삶에 대한 질 과 국부와는 연관관계가 없다라고 말한다면 몰라도...인정할건 인정하고 역사적인 해석에 접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좀더 지리적인 해석를 하자면..순망치한이니..백제가 멸망했으면 곧바로..아니 좀더 오랜시간을 보자면 고구려 멸망을 가져올 수 있고...그걸 잠시 보류하고 미래를 보자면..왜에게 곧바로 한두번 쯤은 신라 경주를 급습하라는 외교를 펼 칠 수는 있을지는 있었겠죠..하지만 그건 현재 우리가 모르는 일이고.해석도 그 당시의 상황을 모르니 성급한건 금물이지만...분명한건 고구려 멸망후 30년 후에 발해가 계승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고구려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민족과 한족의 차별성이 있었고..더 나아가 부여, 고조선을 우리가 생각해야 하고..더 나아가 연개소문이라는 인물때문에 그 차별성을 다시한번 역사적으로 생각하게끔 하는거죠
연개소문도 실수한것이 있찌만 제가 보기엔 영류왕의 실책이 이후 고구려를 전략적 선택의 폭을 줄였다고 봅니다. 수나라가 무너지면서 중국대륙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영류왕은 그 아까운 시간동안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유목세력과 연계하여 중국이 통일되게 못하게 하던가 유목세력이 중국내로 들어가게 도왔어야 했죠. 수나라와의 전쟁으로 확실해졌습니다. 통일된 중국을 상대하는건 매우 버겁다는것을요. 영류왕은 그걸 간과하였고, 중국이 당으로 통일되자 고구려의 선택권은 매우 제한적으로 됩니다. 또한 당나라가 돌궐을 공격하는데 가만히 있었습니다. 또다시 고구려 선택권은 줄어듭니다. 수나라 멸망 당시엔 고구려에게 여러 선택권
이 있었습니다. 1. 중국내 북쪽 세력을 지원해서, 그들이 국가를 세울 수 있게 도와준다. 2. 유목세력이 화북지역을 탈취하게 도와준다. 등등 수도 없이 많죠. 당나라 통일 이후에도 선택권을 많았습니다. 유목세력과 연계해서 당나라를 압박하거나 서로 공격당하면 도와준다거나... 그러나 유목세력까지 당한 시점에서 고구려의 선택은 뻔합니다. 투항하거나 싸우거나 입니다. 중국이 혼란상태에서 전쟁을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물자지원으로 중국을 더욱 혼란에 빠트릴 수 있었죠. 당나라 통일후에도 서로간 물자지원과 외교력만으로도 중국을 압박할 수 있었죠. 연개소문에게 모든 죄을 물린다는건 아니라고 봅니다. 결국 고구려의 멸망은
영류왕의 실책에 더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통일된 당나라는 여러 선택권을 가지게 되었고, 그 선택권 하나인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를 멸망시킬 수 있었떤 거죠. 고구려가 중국 혼란기에 손가락 빨고 멍하니 있던것과 반대로 당나라는 손가락 안빨고, 백제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리운길님. 댓글을 3개 이상 다실 경우 가급적 답글로 처리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좀 더 회원분들이 보기에 간편하게 글도 더 명확하게 정리되기 때문이니 협조해주시길 바랍니다.
고구려가 분명 대단한 나라였다는데에는 동감합니다. 중국 사람들조차 백제와 신라는 몰라도 고구려(고려),발해,조선은 아니까 말입니다. 조선 왕조 500여년동안 우리나라는 만주 벌판을 내버려 둔것이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역량이 폭발하려면 주변국과 열려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청나라와 왜에 닫혀 살았습니다. 좌.우로 막혀버리니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리가 있겠나요? 그것도 500년 동안이나 그렇게 살았으니 말이죠. 참 씁쓸하지만, 이것이 현실인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다만, 이제부터라도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이 필요할때라 생각됩니다. 우리의 뿌리를 찾아 국어와 국사는 필수 교과목으로 지정되어야 하겠습니다.....
고구려가 북방의 유목 돌궐, 백제, 왜를 동맹 파트너로 정합니다.
그리고 신라가 아닌 백제를 택한 이유는 서해바다때문이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만약에 신라랑 동맹을 맺을경우 백제는 적이되는 당나라와 동맹이 되고, 배로 대군을 무혈입성해버리면 고구려나 신라 입장에서는 깝깝해집니다.
서해바다의 주도권을 적 동맹국에 줄수 없으니 고구려-백제-왜 라인이 형성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