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신학과 교회 개척 1(1988-) - 광주 신안동의 광주신학교에 ESF 목자이셨던 한의수 목사님의 소개로 Mdiv과정에 입학해서 가지고 간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또래 친구 박전도사가 있어 친하게 지냈는데, 한번은 내 자전거를 보며, "나도 이런 자전거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그러면 기도하시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자전거도 주실까?"
마침 애양원의 문연심 자매에게서 전화가 왔다.
"15만원 보냈으니 쓰세요!"
"이 돈 다른 친구 줘도 돼요?"
"맘대로 하세요!"
다음날 내 자전거를 타고 새 자전거를 끌고 등교하니 그 친구가 깜짝 놀라 왠 자전거냐고 물어 건네주며,
"자전거 주시라고 기도했죠,"
"네! 했죠!"
"그 응답이요!"
그가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애양재활병원 직장동료 김희자 선생께서는 젊은 시절 미스코리아 뺨치는 미모의 소유자였다.
아기를 난산하던 중 한쪽 편마비가 오자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불편한 몸으로 공장을 경영하는 오빠의 공장에서 일을 돕고 있는데, 한 남성이 계속 청혼을 해서 거절했더니 퇴근 때 황산 테러를 당했다.
전신 3도의 화상으로 얼굴과 가슴, 허벅지까지 피부가 엉겨붙는 무시무시한 상처를 입고 60번의 재활수술을 받았단다.
퇴원해서 오빠집으로 갔는데 이사를 해버렸다.
동생의 모습이 너무 흉측해서 아이들의 교육에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녀는 세 남자에게 버림받은 거였다!
애양원으로 오셔서 근무하시면서 옷 하나 안사입고 월급의 거의 전부를 후일 장학재단을 꿈꾸며 저축하셨단다!
직원예배를 인도하실 때면 당신께서 고난 중에 받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눈물로 간증하셨다.
평소 수술 후유증으로 멀미가 심하며, 편마비로 등산은 꿈도 못꾸셨다!
어느 해 직원여행 시 지리산 노고단을 부축해서 등정에 성공했다!
편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며 내 손을 잡고 극심한 통증과 싸우며 마침내 <인생소풍> 중 최초이며 최후일 지도 모르는 등정을 마침내 이뤄낸 것이다!
마침내 당신께서 꿈도 꾸지 못한 노고단 등정을 이뤘다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다!
이후 한차례 더 진안의 마이산 암마이봉을 또 오르셨다!
외로운 그녀는 바울과 선이를 친자식같이 예뻐해 주셨다!
그리고는 당신께서 내 삼년 동안의 신학교 학비를 감당해 주셨다!
할렐루야!
조직신학을 강의하시는 서박사님은 출중하셨다.
"구속은 창조의 회복이며, 은혜는 자연의 회복이다!"
이 두가지 명제에 두 눈이 번쩍뜨였다!
광주에 내려오시는 날엔 몇몇 동기들과 여관까지 찾아가서 강의를 더 청해 듣곤 했다.
화란 자유대학에서 "쿰 라우데(성적 최우수상)"를 수상하신 석학이셨다.
한국교회에 개혁신학과 무천년주의를 최초로 심으셨다!
너무 존경해서 서울의 집까지
없는 형편에 참외를 사갔는데 드시지 않으셔서 혹시 값싼 과일이라 그러시는지 서운했다.
"여보! 큰일났어! 바울이 일기장 읽어봐!"
화사한 봄이 되니 바울이가 놀이공원으로 놀러가자고 보챈다.
"네 식구가 놀이공원 가면 비용이 얼만데?"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데려가지 않았는데 그날 저녁 일기에
"아빠가 늙으면 방에 가둬놓아야겠다!" 라고 쓴 것이다!
"아빠가 지금은 가난해서 미안해! 나중에 비행기 많이 태워줄께!"
친구의 소개로 김강호 목사님을 소개받았다.
성경 전체를 한 맥으로 꿰뚫어 보는 독특한 방식으로 성경을 강의하시는데 너무 쉽고 한 눈에 성경전체가 들어오는 놀라운 방식이다.
나는 너무 놀라워서 나는 성경을 구속사적인 해석방식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기로 하고 도합 7년 정도를 투자해서 공부했다.
당시 한국교회에는 구속사에 대한 연구가 미진하여 많은 목회자들이 잘 알지 못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구속사 전문가이셔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했다!
17.신학과 교회 개척 2 - 아버지께서 물려 주인 논을 팔아 교회개척을 시작했다.
여수 여서동의 한 사층 건물의 꼭대기 층을 1850만에 전세로 얻었다.
15평 중 5평을 베니다로 막아 개수대를 놓고 주방을 만들고 나머지 공간은 우리 가족의 거실과 안방인 셈이다.
정옥동 장로님께서 70만 원을 주셔서 장의자 7개를 마련했다.
이 스승님의 감지적지한 은혜를 어찌 갚을 수 있을까?
강대상이 없어 주어온 식탁 위에 하얀천을 까니 안성맞춤이다.
난 교회 안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싫다!
그래서 <남성성과 꼰대>의 상징성으로 대표되는 검은 양복과 넥타이 대신 잠바를 입고 목회 첫 설교에 임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낯설었던지 첫참석한 성도들이 설교에 집중하지 못하고 "혹 이단 아닐까?" 하고 의심하는듯 보여, 이것이 교회의 문화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수께서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회당에 들어가셨더라면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난 주중엔 광주의 신학교에서 공부했고 아내는 아이를 돌보며 가까운 제과점에서 초등학생 두 아들의 숙제를 도와드렸다.
제과점 일이 너무 바빠 아이들에게 신경을 쓸 수 없는 부부는 무척 고마와 하셨다.
한번은 쌀이 떨어졌는데, 외출을 다녀오니 교회당 앞에 쌀푸대가 놓에 있었다.
나중에 보니 제과점 사장께서 선물하신 것이다!
할렐루야!
최초의 성도는 장길용 집사님의 가정이다!
광주의 김목사님의 강의를 이미 들으셔서 구속사에 관해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가지신 보배같은 분들이시다!
내내 큰 힘이 되어 주셨다!
여수로 직장을 따라 오신 일가족이 제과점에서 과자를 사면서 근처에 다닐만한 교회를 물었다.
사장님은 "이 위에 천사들이 살고 있어요!" 하고 우리 교회를 소개했다.
지성과 인격을 갖추신 부부는 첫예배를 드리고 가시면서 "처음으로 졸지않고 예배를 드렸다!"고 인사하셨다!
"광열이 입술이 유난히 파래요! 큰 병원에 가보세요!"
이집사님 부부는 유복한 시가와 친정을 둔, 고학력에 수입 좋은 직업에, 좋은 조건이란 모두 가진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이다.
게다가 아들까지 얻었으니 기쁨이 어떻겠는가?
그런데 그가 정말 입술이 파랗다!
부랴부랴 전남대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니 심장의 심실과 심방에 모두 구멍이 뚫려 있어 자기들은 수술한데도 확률이 아주 적단다.
서울대병원으로 가라고 등을 떠밀어 두어 차례 수술했고 심한 운동은 못하지만 생명을 건졌다!
부부는 그 아기 때문에 얼마나 겸손하게 주님께 매달리며 성도들을 섬겼는지 모른다!
정종한 장로님 부부와의 추억을 잊지 못한다!
옆에 사시면서 잘 섬겨주시며 친구해 주셨다.
"4자" 라고 명명했던 평자, 연자, 선자, 양자 집사님들의 섬김과 교제를 잊지 못한다!
가득이네 가족이 멀리서 이사왔다.
갑자기 빛이 제과점 앞에서 다리를 부비며 심하게 물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물으니 빵이 먹고 싶다는 데모란다. ㅋ
부인 집사님은 교통사고로 하반신 장애로 휠체어를 타시는데, 잔망스런 남매의 시중과 남편을 위한 식사와 집안일로 매일매일이 파김치가 되시고...
결국 우리가 집사님의 방한칸을 얻어 이사하고, 대신 아내가 살림을 맡아 돕기로 하고...
아내의 수고는 두 배가 되고, 섬기는 기쁨도 두 배로...
낡은 화물차에 각종도구를 가득 싣고 시골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어르신들의 재봉틀부터 라디오, 티비, 선풍기, 심지어 고장난 자전거, 리어카 까지 고쳐주고 다니는 노총각 박승준 집사님이 이삼 년간 펜팔한 아가씨와 만나기로 한 날, 용기가 없다고 동행을 요청하셨다.
목욕탕을 들러 때빼고 광낸 말끔한 차림의 얼굴엔 기대가 넘쳐 흘렀다.
"어떻게 생긴 아가씨일까?"
순간 약속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청순한 아가씨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녀는 한쪽 편마비가 심한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간단한 대화와 차 한잔을 마시고 되돌아 오는 길에 그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전에 읽은 일화를 소개했다.
"수년 간 매주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너무나 대화가 즐겁고 사랑스럽기에 나이고, 미모도 물을 필요도 없었다.
약속대로 장미꽃을 한손에 들고 한여인이 다가왔다. 아뿔사! 육십대의 할머니 아닌가? 그는 그만 돌아갈까 하고 생각했으나 수년 간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어 그녀에게 다가가 자기를 소개했다.
그 할머니가 어떤 젊은 여인이 이 꽃을 들고 갈어가 달라고 부탁했단다.
잠시 후 묘령의 미모가 출중한 아가씨가 미소를 띠며 나타나 악수를 청해왔다!"
몇년 동안 사랑하고 신뢰한 믿음을 그렇게 쉽게 져버릴 수 있냐고 그를 설득해서 계속 만나기로 했다.
장애를 가지고도 장애인을 돕는 사회단체에서 수 년을 한결같이 봉사해온 천사같은 자매여서 두 분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장애를 가진 딸이 번듯한 총각과 화촉을 밝히는 모습에 친정 부모님이 정말 대견해 하셨다.
신부가 말했다.
"장애가 있었기에 정말 멀쩡한 신랑을 만나 자랑하고 싶었다!"
그가 고백했다.
"신부가 비록 한손을 잘못쓰지만 손수 요리해서 이웃 대접은 물론 부부생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너무 행복하다!"
그들 부부가 아들 둘을 낳아 알콩달콩 가정생활을 만끽할 때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쳐왔다.
이유를 모르는 원인으로 그가 다리를 못쓰게 되어 지팡이를 쓰게 되더니 최근에는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어려운 살림 형편에도 생보대상자 신청을 하지 않아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 한 가정이 양보하면 더 어려운 한가정이 혜택을 받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부부는 광주의 외곽 장수동 농촌마을의 작은 구멍가게를 세내 낚시가게를 열었고 천성적으로 부지런하고 남을 섬기는 자세로 중고 낚싯대를 고쳐주는 서비스로 그 일대에서 소문난 명품가게를 일구었다.
난 그즈음 중국에서 귀국하여 자주 그 가게에 들러 잔일을 처리해드리고 퍼세식 화장실을 처리해 드렸다.
한번은 차가 없는 내게 백만원 짜리라며 엑센트 중고차를 선물했다.
감사하게도 수년간 내 발이 되어 주었고, 개척교회를 시작한 내게 칠백 만원을 무이자로 빌려주셔서 수년 후에 갚기도 했다.
"내 차 좀 운전해서 서울 한번 가십시다!"
부부와 동행해서 KBS에 가보니 월드비젼에서 주최하는 축제에 김희자 씨와 강원래, 김 송 씨 부부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벌써 수년 째 장애인을 돕는 현장에서 두터운 교분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행사의 절정 무렵 사회자가 그를 무대로 부르더니 무대 뒤편에서 베트남 고교생으로 보이는 처녀가 나오니 그가 휠체어를 탄채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너무 의외의 일이었는데 사회자가 설명하기를 그가 수년 째 베트남의 가난한 여학생을 양딸삼아 도와서 이벤트로 기획만남을 주선했단다!
게다가 장사해서 번돈을 매월 전세계의 불우아동 삼십여 명을 120여 만원씩 장학금으로 줘 왔단다!
할렐루야!
두 아들이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취업하여 든든한 아빠의 큰 바위가 되어 주었고, 가게는 접었으나 장로가 되셔서 아내의 지극한 정성의 간병을 받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