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잘법에서 이런 질문이 있었다. "현실의 부모조차 자기 자식이 아무리 미워도 육체적 고통을 가하거나 지옥 불에 넣지 않는데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을 영원히 타는 지옥 불구덩이에 넣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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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하나님과 잘 연결되지 않는 개념이 바로 지옥의 개념이다. 그래서 존 스토트도 자유주의자와의 대화에서 영혼 멸절설을 이야기 하기도 했다. 사랑의 하나님이 영원히 타는 불에서 고통받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었고, 영혼이 멸절된다는 개념이 좀 더 사랑의 하나님과 맞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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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좀 더 확장된 이론은 랍벨의 love wins다. <사랑이 이긴다>로 번역되기도 했던 이 책에서 랍벨은 하나님은 궁극적 사랑이시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인 지옥으로 사람을 보내지 않고 결국 모든 피조물을 구원할 것이라는 보편구원론에 가까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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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시인이며 사상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이라는 책을 써서 당시 화석화된 종교를 풍자했는데 그의 책에서 대립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는 정반합에 가까운 이론을 펼친다. 당시 종교가 인간의 열정과 욕망을 무조건 악과 죄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천국과 지옥으로 상징되는 두 힘이 서로 만나야 더 나은 발전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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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블레이크에게 천국은 이성, 절제, 질서 같은 개념이고 지옥은 욕망과 욕구에 해당한다. 그 책에서 유명한 '지옥의 잠언'을 보면 욕망에 대해 찬양하는 구절들이 많다. 단순한 이원론적인 종교를 비판했지만, 천국과 지옥의 결혼은 선과 악의 명확한 구분이 없어지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고, 이런 분위기에서 좀 더 성경적인 기준을 제시하려고 C.S.루이스는 <천국과 지옥의 이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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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서문에서 루이스는 "인간은 끊임없이 천국과 지옥을 결혼시키려 한다고 지적한다. 진리도 얻고 거짓도 포기하지 않으며, 천국도 원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죄도 고집하는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지옥을 지옥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면서, 천국과 지옥의 이혼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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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루이스가 말하는 '이혼'은 장소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지옥과 연결된 본성이 믿음 안에서 결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념으로서의 이혼을 설명한다. 소설속에 영혼(ghost)이 등장하는데, 영혼은 실재가 없는 아직 몸이 되지 못한 상태를 말하고, 이것은 자기 중심적일 수록 점점 자신의 실제를 잃어버려가는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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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혼들이 버스를 타고 천국에 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천국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회개하고 천국에 머물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해서 못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존심, 원망, 통제욕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천국을 거절하고 다시 지옥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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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그들이 천국에 가서 걸었던 천국의 정원의 풀은 마치 송곳처럼 걸을 때 마다 아팠다. 이것은 그들이 물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영혼 즉 자신의 실제를 점점 잃어가는 자기중심적 삶을 묘사한다. 루이스는 천국은 실체(reality) 이고 지옥은 자기의 실체를 잃어버리고 있는 중임을 말한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견고한 사람들' (solid people) 인데, solid는 고체를 말한다. 예수님은 자기를 버릴 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했지만, 지옥의 영혼들은 자기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가 되지 못하고 자기를 잃어버리는 영혼으로 천국을 감당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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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도 천국을 거부하는데, 그는 하나님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탐구하고 논의하는 그 자체의 기쁨을 좋아하기 때문에 천국을 포기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지옥에서 발표할 논문이 있다고 말하면서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명성과 화풍을 인정받고 싶어서 지옥으로 돌아가려 한다. 원한을 품은 어머니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아들을 더 사랑해서 지옥으로 돌아가고, 원망하는 노파, 자손심이 강한 배우등도 모두 스스로 지옥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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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들 모두는 천국에 못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천국에 들어가기를 거부한다. 지옥의 문은 안에서 잠겨있다는 말처럼 그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지 못한다. 어거스틴이 죄를 '순서가 바뀐 사랑'이라고 표현했듯이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살고 싶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지옥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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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최후의 심판에서 자신의 지옥행을 깨닫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지만 이미 회개할 시간이 끝났다고 지옥에 들어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스로 하나님 없는 영원을 선택하고 싶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곳이 지옥이기 때문이다. 바깥 어두운 곳에서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구절은 분노와 원망의 목소리다.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될 당시 서울 구치소 근처를 가본적이 있다. 박근혜 구속이 잘못되었다고 소리를 외치는 많은 군중들이 있었다. 이정미 법관이 머리에 파마 핀을 꽃은 채 출근한 것을 술취해서 판결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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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아마도 지옥은 이런 종류의 믿음이 있는 것 같다. 절대 용납하지 못하는 가짜뉴스의 사로잡힌 사람들처럼 그들은 스스로 지옥을 가는 것을 원한다. 하나님과 함께는 절대로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선택을 하고 가기 때문에 원망과 분노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는 것을 기도하고 원하는 사람은 천국으로 갈 것이다. 그러나 "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라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 없는 영원을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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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옥은 이미 이 땅에서도 맛보고 있다. 루이스는 "지옥은 투덜거리는 쉴 새 없이 불평하는, 늘 남을 탓하는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싹수부터 도래내 버리지 않으면 커서 지옥이 될 무언가가 자라고 있다." 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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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옥은 지독한 자기 중심성이다. 천국은 그 반대로 '로드십'이다. 복음은 우리를 점점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살아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기쁨으로 순종하는 삶의 본질이다. 지옥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기쁨만을 추구한다. 마치 중독처럼, 알콜, 게임, 마약 중독자들은 기쁨을 추구하지만 추구하고 나서 허무와 좌절 속에 빠진다. 거짓된 자기 기쁨을 추구하는 삶 자체가 지옥의 예고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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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삶의 행복을 고백했다. "내가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 3:12) 신앙은 먼저 '사로잡히는 것'이다. '매료되는 것'이다. 그 사랑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기를 기뻐하며 자신을 드리는 삶이다. 이렇게 자신을 잃어버릴 때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게 된다. 지옥은 스스로 하나님 없는 영원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가는 자기 중심적 감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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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 지옥은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고 있고,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은 자기가 주인이 되는 삶이며 하나님을 거부하는 에덴의 죄와 동일한다. 천국을 사모하는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무정한 하나님이 아니라,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도록 자유를 허용하시는 하나님의 유기는 심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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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했어요, 꺼내주세요라고 부르짖는 이들을 잡아다가 지옥 구덩이에 처넣는 하나님을 그리는 게 억지인 이유가 있다. 지옥에서 버스를 타고 온 승객들은 구원보다 스스로 규정한 자유를 택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노라면 웬지 권력과 자유를 잃어버릴 수 밖에 없으리라는 착각에 빠져 있는데..지옥은 인간의 자유를 기리는 가장 거대한 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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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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