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다른 생각(의견)을 가지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댓글로 자신의 의견을 달아주셔도 됩니다. 다만, 이 분의 생각도 한 번 경청하여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자가 기사로 많은 것을 전달해주지는 못한 듯 합니다. 그분의 강의나 책자를 참고하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비행장에서 경비를 서다가 졸았다는 이유로 흑인 상사에게 매를 맞은 뒤 미국 예일대학이나 하버드대학에 가겠다고 다짐했던 소년. 그 소년은 자신의 다짐처럼 예일대에 진학해 사회정신의학을 공부했다. 병원 없는 사회를 꿈꾸는 ‘국민 의사’ 이시형 박사(81)의 얘기다. 그는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Hwa-byung)을 세계 최초로 정신의학 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자 <배짱으로 삽시다> <이시형처럼 살아라> 등 베스트셀러를 쓴 명강사다. 그는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면서 자연의학에 눈을 돌리게 됐고, 2007년 웰니스마을 ‘힐리언스 선마을’을, 2009년에는 ‘세로토닌문화원’을 세우며 뇌과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사진 네이버 제공
최근 이 박사를 서울 서초동 세로토닌문화원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대구공항에서 ‘스페셜 가드’라고 불렸던 경비병 일을 했을 때를 떠올리며 “그때 공항이 얼마나 추웠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어느 날 비행기 유도등 안에 들어가서 바람을 피하다 잠이 들었다. ‘빵빵’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순찰 돌던 흑인 상사가 서 있었다. 그에게 말채찍으로 등허리를 맞고 돌아온 이 박사는 가족들에게는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대신 셋방에 살던 서울대생 형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형은 “복수를 하려면 미국 예일대나 하버드대에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 얘기가 머리에 남아 군 제대를 하고 예일대와 하버드대 두 군데만 지원해 예일대에 합격했다. 당시는 정신분석이 주류였던 시절이어서 사회정신의학을 전공했다.
자연의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0대 중반에 허리 디스크, 퇴행성 관절염이 겹쳐 수술 권고를 받았을 때였다. 그는 교수 시절 틈만 나면 테니스를 쳤다. 1970년대 학생들은 시위를 하러 나가 강의실에 없었고, 환자만 돌보던 시절이었다. 그는 ‘의사가 몸 관리 하나 못하다니 직업적인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병원에 온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들도 습관만 제대로 가졌더라면 병원에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의학에는 한계가 있고 이제 중요한 것은 ‘치병’이 아닌 ‘예방’이다.” 그때부터 자연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에스컬레이터 앞에는 긴 줄로 늘어서 있지만 계단은 텅텅 비어 있다. 이 박사는 “이런 습관들이 병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유명한 자연의학센터를 찾아다녔고, 2007년 강원 홍천에 ‘힐리언스 선마을’이란 자연의학센터를 만들었다. 선마을에 가면 모든 게 불편하다. 숙소로 가려면 300개의 계단을 걸어야 하고, 식탁 위에는 30분짜리 모래시계가 있다. 한 끼를 30분 이상 먹고, 한 입에 30번 이상 씹고 스스로 걷자는 것이다. 이렇게 선마을을 다녀간 사람이 3만명이 넘는다. 그는 “전 국민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세로토닌(serotonin)’을 강조한다. 그는 “세로토닌은 본능을 관장하는 편도체를 다스리는 신경전달물질이자 행복 호르몬”이라며 “‘슬로(slow)’ ‘심플(simple)’ ‘스몰(small)’의 정신으로 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후발국가여서 따라잡기 위해 지난 반세기 격정적인 세월을 살았다”며 “사회가 목표지향적이다 보니 다리가 무너지고 세월호 사고까지 터졌다”고 말했다.
“우리도 외적인 성장보다는 정신적인 성숙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일단 뛰고 생각했습니다. 엔도르핀적인, 격정적인 세월을 지나면서 부작용도 많았습니다. 이제는 신중히 생각하고 뛰어야 합니다.”
이 박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큰일을 못했지만 그래도 사회정신과 의사로서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는 81세지만 대중교통을 탈 때 돈을 낸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생의 모토입니다. 우리 사회가 나를 이만큼 키워줬으니까 큰 빚을 졌죠. 그런데 아직도 다 못 갚았어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인생은 참 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말은 단거리 한 바퀴만 돌면 되는 게 아니고 마라톤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원칙주의자들은 살기 힘들지는 모르지만 결국 이기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