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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0년 7월 즈음부터 2012년 2월 말 일까지 해방촌 빈집(binzib.net)이라는 곳에서 친구들과
살았습니다. 아토피안의 공동 거주 생활. 기숙사에서도 힘들어 하는데, 같이 밥 해먹고, 같이 놀고, 같이
잠들고... 어땠을 것 같나요? ^^
그곳 친구들은 이상을 꿈꿉니다. 그리고 실현해나갑니다. 그곳에서 공동체 은행 빈고(bingobank.org)를
만들었고, 그 안에서의 프로젝트인 건강계를 만들었습니다. 건강계는 현재 40여명의 조합원으로 각 1만원씩
매달 혹은 3, 6, 12개월치를 내서 그 돈을 모아서 보험으로 치자면 실비 보험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보험의 홍수 속에 자본에 얽메이지 않는 대안적인 실천 모색을 통해 마을과 사람이 회복되어져 갑니다.
의료생협, 뜻 있는 의사, 치료사, 한의사 등이 함께 연대를 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어 나갑니다.
솔직히 아토피에게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 안에서 친환경, 무방부제, 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수제 비누, 샴푸, 로션, 화장품들을 만드는 친구들도 있어 그것을 통해 사각지대 없이
살아가는 것을 꿈꿉니다.
저는 그 공간에서 별명이 '우마'입니다. 일본어 '우마이(うまい [旨い·甘い,熟寝])에서 따온 친구들과 함께
지은 별명입니다.
건강계에서 쿠바의 의료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책을 발제하기로 하여 발제를 맡았습니다.
그 내용을 이곳 다음 아토피 카페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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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서론)과 1장만 정리했어요. 생각보다 넣고 싶은 내용이 많아져서 양이 좀 늘어난 듯 합니다.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사실 건강계 차원에서 무언가를 하기엔, 쉽지 않은 내용들로 보입니다.
정책을 짜는 사람이나, 혹은 의사들이 움직여야 할 부분인데, 그들은 움직이지 않을테니까요.
혹, 카스트로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달라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있을까 싶습니다.
첨부된 파일로 참고해서 읽어봐주세요. 파일은 odt와(odt는 파일이 커서 업로드 불가) pdf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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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명의 인간의 생명은 지구 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의 전 재산보다도 100만 배나 더 가치가 있다. 이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자부심은 높은 소득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축재할 수 있는 모든 황금보다도 훨씬 결정적으로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인민들의 감사의 마음이다.” -체 게바라
저자인 요시다 다로는 이 책을 자신의 나라인 일본의 의료체계 현실 진단으로 시작한다. 원작인 <sekai ga cuba iryo wo tehon ni suru wake>의 현지 출판이 2007년이기에 이 글은 아마도 2000년 초중반의 자료를 토대로 하고 있는 듯하다. 지금은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15년이다. 의료 정책이라는 것이 쉽게 변할까 하냐마는 요즘 세상을 보면 정책 역시 빠르게 변하고 경제적 문제와 연관 지어 여러 알력 다툼들이 존재하는 듯 하다. 작가가 경험한 쿠바의 의료체계를 책을 통해 살펴보고, 우리의 의료 체계에 대한 고민을 빈고 건강계 내에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이 든다.
제일 처음 나오는 차트는 각 국가의 인구, 국민소득, 그리고 신생아 1천명 당 5년 이내 사망자 수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그 나라의 의료 상태를 비교하는 차트(2006년)이다. 쿠바는 12,000불 정도의 수입을 올리며, 7명 정도의 아동이 사망한다. 미국은 40,000불 정도의 소득을 가지고 8명 정도의 사망자 수치를 보인다. 한국은 15,000불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6명 정도의 사망자 수를 보인다.
저자는 붕괴하는 일본의 복지의료 현실을 보며 ‘지속가능한 복지의료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영국과 미국도 각각 공공의료병원의 의사 수 부족과 중산층의 과중한 의료비 지출, 그로 인한 복지의료 사각지대 발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로하스(LOHAS: 건강과 함께 환경 보전을 중시하는 생활방식)나 슬로 라이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는 중에, 히로이 교수의 ’정상형 사회론‘은 매력적이다.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상식적으로 복지의료는 경제문제다. 풍요와 건강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학자들의 이론은 그 사례를 통해 증명된다. 이 소득수준과 건강의 정도를 나타내는 도표가 그리는 비례곡선을 역으로 해석하면, 경제 수준이 낮아도 의료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보다 유아사망률이 낮고, 의료 붕괴된 영국이 모델로 배우려고 하는 나라, 바로 쿠바이다.
쿠바의 지역예방의료란 무엇인가. 우리나라 말로 ‘초기진료(primary care)'는 동네 병원에서 일차적으로 병을 확인해보는 진료행위를 뜻한다. WHO는 ’건강 상태의 개선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지역 수준에서 통합하기 위한 수단‘, ’예방, 건강증진, 치료, 사회복귀, 지역개발 활동 등을 모두 포괄하는 종합의료의 기둥‘이라고 정의한다. 쿠바는 1985년 ’패밀리 닥터‘라는 초기 진료 전문기관을 전국적으로 정비하여 소련의 알마 아타라는 옛 수도에서의 선언의 목표대로 2000년에 전국민 98% 커버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패밀리 닥터들은 ‘콘술토리오’라는 자택 겸 지역의원에서 간호사와 팀을 이루어 약 120가구를 돌본다. 인구밀도에 따라 농촌에서는 75가구로 줄어들기도 한다. 정부가 집을 제공하지만, 살림살이는 검소하다. 특권계급이 아니다. 직장인 평균월급의 1.5배 정도 받는다.(334페소:575페소) 의료박사가 되면 800페소로 올라가나, 엔으로 환산하면 4천엔(약 5만원)정도다.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암과 심장병이 2대 사안이며, 에이즈의 위험성에 대한 주의도 잊지 않는다. 보다 전문 진료를 위해 지역의원의 상급기관인 지역진료소 ‘플리클리니코’에 의뢰하기도 한다. 양쪽의 팀워크는 잘 되어 있다.
쿠바는 경제봉쇄로 인해 의약품 수급이나 엑스레이 필름 수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로 인해 좋아진 점이라면 대안으로 한방약이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한 사람 당 20분 정도를 할애하며 10명의 진료를 한 뒤 점심식사를 한다. 오후에는 왕진이다. 주머니에는 ‘타르헤타스’라는 왕진 진료기록부를 가지고 다닌다. 좋은 평가를 얻은 환자 관리법으로 전국적으로 도입이 되었다. 왕진은 건강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1년에 두 번, 최소한 1번 이상은 반드시 하도록 되어 있다. 왕진 이동 중에도 지역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역 전체의 분위기를 살핀다. 왕진을 마치고 와서 동료들과 미팅을 한다. 미팅을 마치고 아이들의 입원준비를 한다. 대기실 벽에는 지역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건강 분석데이터 포스터가 붙어 있다. 미팅에는 의사, 간호사 외에도 그 의사가 담당하여 지도하는 의대생들도 참여한다.
지역의료는 경제위기의 시련을 견디도록 도와주었다. 소련 붕괴 직후 쿠바는 일명 ‘스페셜 피리어드’라고 불리는 경제 위기를 겪었다. GDP가 마이너스 35-40%라는 세계 대공황을 제외하고는 근대 역사에는 없는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모든 영역에서의 물자가 부족했고, 의료서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거액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가솔린 부족으로 청소차의 운행도 축소되었고, 거리에는 방치된 쓰레기로 넘쳐났으니 위생상태에 얼마나 치명적이었겠는가. 이런 상태에서 쿠바의 건강지표는 그런대로 유지가 되었고, 그 중 유아사망률은 지표가 상향되기도 했다. 믿을 수 있는가. 경제 위기가 시작되기 몇 해 전 시작된 패밀리 닥터 제도의 영향이다. 자금 부족으로 전국에 패밀리 닥터의 지역의원을 세운다는 프로젝트 수행은 좌절 되었지만 말이다. 임시방편으로 아파트나 일반주택을 진료소로 개축하는 등 정부는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했다. 한 사람도 해고시키지 않고 더욱 많은 의사를 훈련시킴으로 복지의료제도를 지켰다. 지역 커뮤니티 내에서 힘든 위기상황을 더불어 나누었다.
“모든 의사는 반드시 농촌에서 일을 해봐야 합니다. 의학교에서는 의학을 배우지만 농촌은 커뮤니티를 배우게 해주니까요. 커뮤니티는 제 인생의 중심입니다.” -Dr. Sanso
혁명 이전부터 쿠바의학은 뛰어났다. 의료 주요시설의 수와 지역에 기반을 두는 패밀리 닥터제도는 갓난아기 때부터 환자의 생활상을 모조리 꿰뚫고 있기에 그들의 건강 상황을 모르는 게 더 이상할 정도이다. 1825년 이미 아바나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의사들이 왕진을 하고 있었다. 자원봉사로 무료 치료활동을 하는 것이 의사들의 책무였다. 이런 의사들 중 자연과학 아카데미의 초대학장 니콜라스 구티에레즈, 쿠바 약학의 선조가 되는 토마스 로마이가 있다. 로마이는 천연두 백신을 도입했으며, 1923년 쿠바는 세계 최초로 천연두를 근절한 나라가 되었다. 1886년 광견병 백신 접종, 1904년 파상풍 항독소요법, 1916년 장티푸스 백신 접종 군내 제도화, 1962년 쿠바는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소아마비를 뿌리 뽑았다. 1902년 말라리야(황열병) 연구-파나마운하 건설에 도움을 주었고, 1930-1950년대 예방의료 계획 보급, ‘구급치료소’를 세우고 빈자를 상대로 일차진료를 시행하였다. 혁명 직전인 1958년 ‘상호부조 진료소’는 아나바 시민 거의 절반을 커버했고, 보건의료조합에 의한 종합적 의료서비스가 전국 1백 여개 이상 상호부조 진료소와 조합이 생겼다. 미국이 예방의료 계획이 세워진 것이 1970년대에 들어선 다음이니 쿠바의 대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러나, 병원 응급실이나 각 시군에 설립된 구급치료소는 부상자의 응급조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나 그 수와 시설장비, 스텝의 불충분, 낮은 치료수준은 그것이 쿠바의 의료제도가 초창기부터 찬양 받을 만한 것이었다는 주장을 잠시 주춤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하다. 실로 그렇다. 대기업 일부에만 시설이 있었으며, 조합에 가입한 국민도 전체의 20%에 지나지 않았다. 말하자면 부자들만 민간병원에서 만족스러운 치료를 받았다는 뜻이다. 의학 자체는 앞서 있었으나 사회제도로서의 의료는 명백히 뒤떨어져 있었다.
혁명정부는 빈곤 근절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쿠바혁명의 독특한 점은 혁명 초기부터 농촌 의료를 중시해왔다는 점이다. 게릴라들은 전투 중인 1956년부터 농민들에게 무료의료를 제공했고, 혁명 다음 달인 1959년 2월에 농민기술, 의료, 문화지원국을 창설, 가난한 농민들의 의료개선에 착수했다. 1960년, 관련법을 제정하고 농촌으로 가는 의사들에게 거액의 봉급을 주었다. 1961년 치과 서비스법도 제정하여 치과의사들도 활동에 가담했다. 의료비의 무료화와 전 국민의 의료서비스 보급을 향한 개혁이 시작되었다. 민간 제약회사를 국유화하여 의약품 가격을 내렸다.
이런 급진적 개혁은 반발을 불러왔다. 당시 6천명의 의사들 중 3분의 2가 국외로 떠났다. 카스로는 이를 미국의 음모로 보았. 그는 국민들의 출국을 막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의 기술자와 전문가를 길러내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 남은 사람들로 대학을 발전시키자. 혁명 전과는 달리 학생들은 무료로 의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두메산골이나 농촌에서 1년 동안 봉사활동이 의무가 되었다. ‘페드로 코우리 열대의학 연구소’ 구스타포 코우리 소장도 그 혜택을 입고 농촌 의료봉사를 한 사람이다. 그는 카스트로와의 추억을 이렇게 회고한다. ‘농촌의 병원에서 일을 하는데 홀연히 카스트로가 나타나서 농민들의 건강상황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5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후에 카스트로는 부족한 뢴트겐 등의 기자재를 보내주었다.’ 당시 코우리 소장은 26살이었고, 카스트로는 35살이었다.
임산부, 영양실조 아이들 케어, 결핵, 한센병, 성병 박멸 백신접종, 헌혈 캠페인, 위생교육, 쓰레기 처리, 커뮤니티 청소작전... 혁명 방위위원회와 쿠바여성연맹 등 주민 조직의 참가도 장려되어 사회복지사들과도 연관되어 갔다. 지역차원의 다양한 보건의료 활동을 통합할 필요가 생기고, 1964년 ‘통합적 무니시피오 폴리클리니코’(시군구 종합진료소)를 설립한다. 종합진료소 역시 수도보다 지방에서 먼저 지어졌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시군구 종합진료소는 일차진료를 양적, 질적으로 진전시켰다. 이에 따르는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아이들이 건강해지니 성인들 병이 상대적으로 많아지고, 전염병이 뿌리뽑힘에 따라 만성진활이 차지하는 비율이 늘고, 사망률이 낮아짐에 따라 고령화도 진행되었다. 크게 세 가지 결점도 나타났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에 비해서 일차진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하는 역할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상명하복의 관계에 따른 폐해도 발생했다. 의사와 환자의 커뮤니케이션이 불충분해서 원래라면 좀 더 발휘되었을 커뮤니티의 잠재력이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못했다. 해결을 위해 ‘헬스 팀’을 만들어, 팀워크를 장려했다. ‘베이직 헬스 프로그램’을 통해서 ‘숨은 증세’를 진단하는 데 눈을 돌렸다. ‘사회적 질병’이라는 개념을 쓰기 시작했고, 교수들도 진료소 활동과 협동하여 출장서비스를 하게 되고, 예방치료 교육과 연구활동을 진전시키는 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의 문제점은 커뮤니티 진료소의 서비스 내용이었다. 설비와 서비스의 열악함이 문제가 되었다. 다양한 의료분야가 발전한 반면, 전문화가 진전됨으로 포괄적 치료의 제공이 어려워졌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예방하기 보다 수동적으로 ‘병에 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는 달성하지 못했다.
이런 반성을 토대로 ‘패밀리 닥터’ 제도가 등장했다. 지역진료소, 병원, 커뮤니티 의료의 삼각 구도가 생겨났다. 커뮤니티 다른 패밀리 닥터들과 다른 과 의사들, 심리학자, 통계전문가, 사회복지사들이 베이직 워크 그룹을 만들어 지원했다. 실전 속에서 발견한 지속적 접촉과 리스크 평가는 ‘디스펜사리자시온’이라고 부른다.
쿠바에서는 이미 20년이나 이전부터 예방의학에 대처하여 패밀리 닥터라는 독특한 제도를 낳았다. 하지만 예방의료로 모든 병을 낫게 할 수는 없다. 치료할 수 없는 나머지 20%의 병에 쿠바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1장 “단연 돋보이는 쿠바의 지역예방의료 정리“ 끝
다음 이 시간에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