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력서
김지영
계룡산 기슭 상시동 김복연씨 두마면 김예수씨 슬하에
첫째 아들로 태어나
내 할머니 손대희 여사 딸만 열둘 낳은 재분네집 날마다 업고 다니며 자랑
어린시절을 산 아래 외딴집에 살며 지게 지고 산에 가서 나무하고, 소 끌고가 쇠꼴을 먹이고,
개복숭아, 머루, 개암 등을 따 먹고,
소나무 송진 껌 대신 씹으며 아카시아 꽃 진달래꽃 따먹으며 유년시절 보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용등바위 계곡에서 멱 감고
그날 밤
고열에 시달리다가 온 몸이 마비되어
사망.
할아버지가 죽은 나를 들쳐 업고 이십리길을 달려가
대전 병원에 시체로 입원
병원에 가던 내 어머니 교회 십자가 보고 달려 들어가
“우리 아들 살려 주세요. 그러면 평생 교회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절규
전도사님 기도 빨로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
그 후 어머니 김예수여사 교회에 나갔으나 이름이 예수그리스도와 같아 불경스럽다고 해서 ‘일순’으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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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담을 쌓고
집에 오기 바쁘게 가방 내팽개치고
뒷산, 주인 없는 공동묘지로 뛰어가
묘지위에 난 땅벌 굴 쑤시다가
머리에 열두 개 혹이 나고, 이틀 동안 혼절
날마다
복숭아 서리 포도 서리 서리하느라고 초등학교 시절 다 보내다가 외양간 우리 집 황소 뒷다리에 채여 나가 떨어져 그때부터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6학년 때 아버지가 담임을 하여
그 덕분에 꽁짜로 과외를 했으나
공부는 매번 꼴찌
졸업할 때 아버지 빽으로 유사 이래 듣도 보도 못한 ‘국어 읽기 상’ 수상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성적이 다소 향상
50명 가운데 46등. 50명 가운데 두 명은 장기결석생
음악실에 가다가 교무실 앞복도에 있는 종을 침
수업시간 시작되려면 아직 멀었는데 종이 울리자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 벌떼처럼 뛰쳐나와 나를 포획
한 시간 동안 교무실에서 무릎 꿇고 벌을 서다
완전 꼴찌로 커트라인에 걸려 고등학교에 입학
1학년 때 반에서 꼴찌
2학년 때 막걸리 수학선생님이 방학 후 과제물 전시회 때 내 공책을 전시
그 때부터 수학만 공부, 6개월 만에 수학 만점
3학년 때 성적이 수직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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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대학 진학
첫 사랑 순자와 야간열차 타고 부산태종대 놀러갔다가 오던 중 여관에 투숙.
잠만 잠.
어영부영 대학생활 하다가
2학년 마치고 눈 내리던 12월 21일 머리 빡빡깍고 군에 입대
최전방 강원도 화천군 봉오리 상서면 보병 27사단 포병 99대대 입대
배고프면 뒷산에 올라가 더덕을 캐 먹다
어떤 신병이 취사반 옆에 똥 싸 놓는 바람에 집합
독사가 똥을 싸릿가지로 찍어 입에 넣어줄 때 나는 콩나물까지 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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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병 때 10.26발발
휴가 중 귀대 한다는 걸
할머니가 만류
휴가기간을 다 채우고 귀대했다가
한 달 동안 똥만 치움
제대 후 3학년에 복학
내 여동생 간호하던 문숙이가
대전 공설 운동장 뒤 골목으로 끌고 가서는
결혼하지고 유혹
아직 생각 없다고 거절
문숙이 울며불며 집에 가서는
자기 동생 미숙이 나에게 소개
미숙이 내가 다니는 학교에 입학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빨간 가방에
수건과 비누를 넣어 가지고 와서
목욕을 같이 가자고 강권
목욕탕 앞에서 미숙이 나오기를 한 시간 씩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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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후 안산상고 부임
‘황태자’로 불리며 인기 독차지
믿거나 말거나 교무실 자리에 꽃병만 다섯 개
자취생활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면 양동이로 받음
미숙이 졸업하던 해 결혼 이듬해 딸 선엽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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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에 거주 반월 신문 논설 주간 위촉
신문사 창간호부터 22년 동안 ‘김지영의 세상사는 이야기’란 제목으로 칼럼을 씀
동산교회 출석
예수 역을 맡은 탤런트가
건강이 악화되어
교회에서 하는 '사랑의 메시아' 연극에
나에게 가발을 씌우면
예수와 비슷할 거 같다는 연출자의 오판으로
얼떨결에 예수 역 맡아
연극대상을 받고
전국순회 공연
청주교도소에서도 공연
![](https://t1.daumcdn.net/cfile/cafe/166F29134A7815410A)
그 후동산교회에서 설립한안산 동산고등학교 이사로 선임
서울 명문여고로 부임
잘나가다
방랑 시작
십년동안 인생 고시공부 전념
어쩌다 중앙문화센터 출입
서정범 교수님 덕분에 수필가란 칭호를 얻음
글 같지도 않은 글 쓴 답시고
수필가라 사기치며 모지라기 무녀리 초등학교 동창들 앞에서 똥 폼 잡음
걷는 것을 좋아하며
음주가무를 즐김
'지랄발광춤'의 창시자
공옥진의 병신춤을 능가함
아직도 되지도 않는 수필 쓴다고
껍쩍거리며 똥폼 잡고 다님
반 미치광이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 미워함
주량은 소주 두 병, 맘에 드는 사람과 마시다보면 6병까지도 가능
몸무게 67
신장 175
제대로 된 것 하나도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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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얼마 전 버스를 탔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나보고 하는 말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괜찮아”
벌떡 일어나더니
“할아버지 빨리 앉으세요”
내 주변에 진짜 할아버지들도 많았는데 버스 안에서 개망신
그 다음날 2호선 지하철 타고 가는데
어린아이가 빽빽 울자
한 아주머니가 나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자꾸만 울면 할아버지가 이놈 할 거야!’
내 주변 돌아보니 남자라곤 나 혼자
쪽팔려 차에서 후다닥 내림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나 정신이 많이 온전치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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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83~85년 27사 77연대 다녔습니다. ^^
선배님 반갑습니다.. 이기자!!
'이기자!'
고생많으셨네요.후배님. 27사단 가운데서도 77년대가 제일 근무하기 힘든 곳인데. 가끔 사창리에 가면 버스정류장 순대국밥을 먹곤 했지요. 그 순대국밥집 아줌마도 벌써 세상을 떠나셨겠네요. 후배님을 만나니 옛날 생각이 나고 친근감이 듭니다. 정말 반갑습니다.
이렇게 재미있게 쓴 이력서는 처음! 6.25 때 계룡산 어느 마을에서 피난 생활을 했는데 어느날 제 키의 두 배가 넘는 나무를 지게에 지고 산에서 내려오는 소년을 보고 깜짝. 혹시? 지기님은 늘 웃음을 선사하는 행복 전도삽니다.
선생님 안동갈 때 뵙고 못 뵈었네요. 잘 지내시죠? 뵙고 싶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한 시간 가량 배꼽을 꽉 잡았음!!(달아나면 안 되니까) 아침 일찍 받았던 스트레스여, 안녕!
유쾌한 웃음소리에 제가 자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첫사랑 순자씨가 혹시 제 친구 박순자는 아니지요? 하여간 지기님 덕분에 십년은 더 젊어졌어요.
그 순자는 어디 살지요? ㅋㅋ길지도 도르겠는데
ㅍㅎㅎㅎ 진짜 한번 지랄발광 맞장뜨고 싶당!
ㅋㅋ
혹시 문숙이가 첫 키스하려다 콩나물 냄새맡고서는, 평소 언니한테 깝쭉대던 미숙이를 대신??? 하하하.
문숙이하고는 손밖에 안 잡았어요. 지나고 나니 그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순자하고도 정말 잠만 잤나요? 못믿겠쓰요..ㅋㅋ
그땐 워낙......
지기님의 이력서는 언제나 재밌습니다.
병미씨도 이참에 이력서 한 번 써보면.........
김지영선생님의 소탈하고 꾸밈없는 순수함이 이래서 좋습니다. 조~오 습니다. ^^
소탈 순수는 영훈이형이 최고지요.
누가 들어가보라고 해서 와봤더니... 그 예수, 참 이쁘기도 하여라. ㅋㅋ 저는 요즘 김지영 선생님 고향 드나드느라 세월 다 가유.
뻔질나게 상시동 방송타고 있더구먼유. mbc. kbs ... 김지영 선생님 미역 감던 용둠벙이 이번 대전kbs에 완전히 떴슈. 그 마을 밀밭길이 환상적이구먼유. 이상 밀린 얘기 다 전했슈. ㅎㅎ 모두 모두 행복하세요.
선화는 내가 용등바위서 발가벗고 멱감을 때 바위 뒤에 숨어서 나를 쳐다보며 나를 그리워하던 내 고향동생입니다. 선화 동창들이 상시동에 많이 살고 있는데요. 그 동창들이 주축이 돼서 상시동 입구에 선화시비를 세웠답니다. 그 덕에 내 고향 상시동이 떴지요. 나는 유명한 선화가 내가 멱감는 것을 자세히 지켜 봤다는 사실이 너무 자랑스럽고 또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일부, 퍼가요.^^
자네를 친구로 둔 나는 행복한 사람. 주량이 소주 2병인 것은 지금 알았네. 앞으로 좀 더 권할께.
고마워, 수학여행 선물은 안사왔어도 돼.
저는 요즘 이 김지영 이력서랑, 며칠 전 에세이스트 까페에 올린 <다시 보는 에에이스트 여인들> 땜에 삽니다.
가끔 살기 귀찮을 때, 휙 들어와 읽으며 낄낄낄 깔깔깔 꺄르륵 넘어갈 것입니다.
몇번씩 죽었다 살아나야 비로서 이런 이력서 쓸 수 있는데, 나는 한 번도 죽었다 깨난적이 없으니 이 훌륭한 이력서를 열심이 읽을 밖에요.
우와!
솔직한 이력만으로도 너무 재밌는데 거기에 글솜씨까지 더하니
글을 읽은 독자인 저는 글을 읽는 동안은 엄청 즐거웠습니다. ^ _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