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경사지중에서 발췌한 전선지 기록
단암사 미혈설화 (한국학중앙연구원 구전채집)
http://yoksa.aks.ac.kr/jsp/ur/TextView.jsp?ur10no=tsu_1034&ur20no=Q_1034_1_F_004
미혈설화의 옛 날 기록
단암사 미혈기 (경오)의 어설픈 번역
전주부 관할이고 동북으로 20여리 떨어졌다. 절을 기이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단암석실이라 불렀다. 천일진인이 창건한 것이다. 험하고 기이하여 가히 형용할 수 없다. 동쪽 측면에 혈이 있는 데 물이 났다. 물이 졸졸 흘러서 끊이지 않았는데 실오라기 모양과 같다. 혹 이르길 이런 까닭에 미혈이라 한다. 천일진인이 그 제자(이름은 생각나지 않음)와 더불어 함께 기거하였다. 항상 발우를 가져다 미혈에 받쳐 놨는데 쌀이 흘러나와 됫박에 담기면 얻었다 했다. 조석으로 겨우 자급할 정도였다. 조금도 지나친 경우가 없었다. 뒷날 천일이 입적하자 제자가 미혈이 작아 쌀이 작게 나오는 것을 싫어하여 급기야 도끼와 송곳으로 구멍을 팠다. 이에 쌀이 나오지 않고 물만 나왔는데 그 일이 지금에 이르러선 기백년 전이 된다. 그래도 오히려 미혈이라 이름한다. 대게 그를 꾸짖으나 이 일의 참되고 거짓됨은 알지 못하겠으나 세상이 지나치게 구하여 얻으려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하겠다. 내가 일찍이 조정을 관찰하건데 그 많음을 구한다고 하는 것이 한 말의 록을 구하는 것이었고 내가 시정을 관찰하건데 그 많음을 구하는 소이가 일전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얻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마침내 그 얻은 것 까지 잃게 하였다. 이 천일의 제자를 괴이하게 여길게 있겠는가 ? 대저 십년의 쌀이 하루아침에 물이 된 것이다. 비록 밝게 알고 널리 판단한 것이나 또한 그 만에 하나를 알지 못한 바가 있을 수도 있다. 저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 어리석고 어리석으며 어둡고 어두었을 뿐이다. 치발의 무리가 그 것을 잃게 하였은즉 그 어찌 다시 책망할 바이랴. 특별히 세상이 많은 것을 구하는 것을 풍자함이니 그 것을 얻음에 족해야 할 것이다.
단암사의 옛날 기록과 사진
대정 3년은 1915년
단암사에서 기둥 홈에서 발견된 일제시대 영가축원문
현재 단암사 동굴 미륵전 불사 진행중
무너진 동굴 미륵전 (1989년경 )
통일신라 (814년경)
비문의 기록은
원랑선사는 구족계를 받고 중국으로 유학가기 전 승관의 임명을 받아 단암사에 부임하여 수행했다는 내용이다.
단암사의 기록으로본 역사
1. 백제 무왕 때 서암대사에 의해 창건
2. 조선 중기 진묵대사가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중창 동굴미륵전을 건립
3. 박해안 스님이 기존의 건물을 부수고 그 재료로 요사 재건축
4. 1989년경 동굴미륵전이 기초 암반 균열붕괴로 도괴
5. 폐사직전의 사찰에서 현재 미륵전 복원 불사중 (4.8 행사 전후 완공)
불자님들의 십시일반(한 등 켜 주기 관심과 지원)이 절실한 상태
주소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 688번지
농협 계좌 : 175265 - 51 - 026321
예금주 : 대한불교 조계종 단암사
권선문(勸 善 文)
중생들이 어리석고 매각되어 고해로서 락상(樂相)을 삼아
한 없이 치달으니
불조께서 출현하여 이를 가엾게 여기여
상연(相緣)을 짓고 진응(眞應)의 불사를 일으켜
전각과 당우를 짓고 불호(佛號)를 근념(勤念)하게 하고
경전을 강설하여 교리를 배우게 하며
깊은 선정을 닦게 하되
다양한 제접의 방편을 일으켜
인도하고 가르쳐 깨우쳐왔습니다.
본래 청정한 본원에는 바탕조차 없으니
어찌 한 법인들 일으켜 세울 수 있겠습니까 ?
또한 입을 열고 손가락을 세워 듦이
모두 허튼 짓이요 허물만 더하게 됨이라
그럴진데 무엇을 세워 불사를 삼을 수 있겠습니까 ?
비록 그러나 능히 만법이 하나로 돌아감에
그 하나의 소의처를 지극하게 타파(打破) 투득(透得)한 후에는
입을 열고 닫고와 당우와 법을 세우고 무너뜨림을
한결같이 자재로이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중생들의 험악한 견지(見地) 위에 수행의 주초를 놓고
정행(正行)의 기둥을 세우며 지혜의 들보를 얹어
니르바나의 법당을 짓고 이행의 교도상(敎導相)을 지어
근기가 부합한 이들을 상대로
법익을 얻게 할 수 있으니
어리석음으로
어찌 근본본원을 빙자하여
스스로의 매함을
증명할 바이겠습니까 ?
그런 은혜에 힘입어
능히 깨닫고 난 후라면
그대로 그이라
그 모든 입처(立處)가 그 자리며
그 모든 동처(動處)가 그 자리며
그 모든 주처(住處)가 그 자리이니
법이 아닌 사(事)와 물(物)이 없고
법당 아닌 곳이 없어
산하대지가 모두 이 그 법당이요
부처님의 활발발(活潑潑)한 생지의 본래 면목일 것입니다.
이로서 불은에 상응하게 됨은 물론
모든 중생과 함께 화장세계에서 같이 유행케 될 것입니다.
소납이 깨달은 바로는
당처를 달리하고 수행처를 찾는다는 것이
바른 수행을 어기는 악견일진데
따로이 수행처를 준비한다는 것도
법에 맞지 않는 줄 압니다만
중생의 세계가 매우 어지럽고 유혹하는 바가 많아
배각합진하는터라
미혹되어 윤전의 사슬을 끊기 어렵기에
각도(覺道)의 용이(容易)함을 찾아
치도(痴道)와 지도(智道)를 강제로 구분하여
부처가 되는 수행 길에 오른 이들로
심행을 다스리기 적당한 곳에 모이게 하고
스스로를 가지런히 하여
그 서로 탁마케 하고 연궁케 하려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갖은 근기들이 모여와서
깊이와 높이를 더하여
본원에 계합하기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한결 쉬울 것이라 사려됩니다.
물고기에게는 맑은 물이 필요하고
대호나 큰 사자에게는 수풀이 필요하듯
수행자들에게도 허망된 반연을 끊기에 적당한
길지의 가람이 필요할 것이니
이는 바로 근기에 부응한 적당함을
찾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단암사 가람은 왜소한데다
근래 수십년 동안 지나친 관리 소홀로
퇴락하고 무너져서
누구라도 깃들어 수행함이
곤란하기 그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상당한 길지에 있고
진묵대사를 비롯한
옛 종조들께서도 귀하게 여기어
기꺼이 이 곳에 머물며
중생들을 제접하고 교화하였던 곳입니다.
그렇기에 멀고 가깝고를 막론하고
훈화를 입게 되어
그 법력과 영현이 널리 알려진 도량이었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전주시와는 수분의 거리요
근일에는 도로와 함께 당우 아래 뜨락까지
포장 되어 참불(參佛)하려는 단월들이 찾기가
매우 용이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더 이상 방치함은 불은에 패역하고
시은을 가벼이 하는 것이라
간과를 더 허락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관리 소홀로
당우가 퇴락할 대로 퇴락했으나
중창하여 도량면모를 일신한다면
낙후된 호남 불전지에서
전법도생중흥의 한 몫을 톡톡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력하고 부덕하나마
소납이 이 도량에 연이 있어
임시로 수리하여
전법교화에 필요한 약간의 짐을 옮기고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우가 왜소한데다 심히 퇴락하였고
현재로는 인근의 큰 도로에서 24시로 들려오는
큰 소음을 막을 수 없어
신심이 깊은 몇몇 분만을 제외하고는
신도들의 발길이 모두 끊겨
그대로 방치할 경우 더 이상 가람으로서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날이 근심과 우려로
관리비만을 염려하면서
일양(日陽)만 허비하다가
태공당 월주 전 총무원장 큰스님과
금산사 주지 원행 스님의 간곡한 권발(勸發)에 힘입어
동굴 속 미륵전과 인근 시민들이
항상 정진할 수 있는 법당과 강당, 그리고 선당을 짓겠다하여
간원을 발원하고
시연을 구하기 위해
졸렬한 문투로 권선문을 짓고
삼보 전에 예를 갖춘 후
삼가 제방의 대력 종장 큰 스님들과
뜻있는 사부대중에게 고하고
오랜 옛날부터 면면히 이어온
불가승단의 십시일반미풍양속의 진작을
간곡하게 호소하게 된 것입니다.
거듭 불전에 백배 고두하고 원하옵건데
제방의 대력 종장 큰 스님들과 사부대중의 현연(賢緣)들께서는
소납의 간절한 발원의 뜻을 이끌어
존원(尊原)들의 비연중생(悲緣衆生)들에 대한 교화원력이
고구정녕하고 애절함을 직접 나투어 주신다면
소납의 부덕하고 미력함이라도
어찌 불가능하기만 한 대작불사가 되겠습니까 ?
근자에 산문이 외도에 심히 오염되어
미풍양속을 잃는 것이
천만 당우를 잃는 것보다
크게 잃는 것임을 아는 이들이 줄어드니
소납의 본원에
좌절의 난이 있을까 저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분 종장 큰 스님들의 법력을 믿습니다.
만대에 기리 전할 당우로서
지리 형국에 이로우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전각을 짓고
그윽한 수행처로 다듬어
후손 만대에 전한다면
후학들 뿐만 아니라
모든 중생들이 이에 호응하여
부처님의 거룩한 법익 속에서
강녕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부디 대력 종장 큰스님들께서는
불전에 서원한 소납의 간원이 성취 될 수 있도록 하여
모든 중생들에게 큰 이익이 돌아가게 하소서 !
종남산의 취적(醉笛)은 만고로부터요
붉은 바위 위의 밝은 달은 금후(今後)로다.
누가 그 위에 전각을 세우고
부처의 진상(眞相)을 짓겠는가 ?
억 !
백학이 소양천 위에 맴도니
죽절(竹節)의 법지(法池)에서 황룡이 솟아 오르도다.
불기 2550년 6월 2일
종남산 아래에서 대명이 삼가 쓰고
고두 발원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