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신궁(神弓). 5장 第 5 章. 귀향(歸鄕). 1. 청운장으로 온 소운영은 날로 시름을 더해갔다. 집을 뛰쳐 나왔다고 해서 들은 부모님의 꾸중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다. 귀운장의 무사들 이 와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을때도 고개만 저었다. 할 수 없이 문 부인이 부친에게 편지를 띄워 당분간 동생을 돌보겠다고 알렸다. 거처에 틀어박힌 소운영은 뭘 해도 재미가 나질 않았다. 장군을 타 고 산책을 나가도 기분이 나지 않았다. 가슴 한 구석이 텅 빈것만 같 았다. 그녀는 자신의 봉긋한 가슴을 살며시 쓰다듬어 보았다. 왼쪽 가슴이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새까만 깜둥이. 키도 작고 비 쩍 마른 못생긴 얼굴이 불현 듯 떠올랐다. 가슴이 크게 설레였다. 소운영은 장군이 있는 뒷 뜰로 나가보았다. 장군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장군을 보자 콩닥콩닥 그녀의 가슴은 더욱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그동안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바로 도일봉이 보고 싶은 것이었다. 그토록 무례하고 못생긴 작자를 그리워 하고 있다니! 소운영은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 아니라고 도리질을 했다. 그 러나 한 번 떠오른 영상은 다시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못생긴 깜둥이를 보고 싶어 했다. 다만 자신이 그런 무례한 인간을 그리워 하게 된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 다. 소운영은 정말로 도일봉을 그리워 하고 있었다. 이곳, 장군을 보고 있노라니 불현 듯 정겨운 느낌마져 들었다. 그녀는 벌써 반년도 전에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자신이 막무가네로 굴자 화를 내던 표정하 며, 장군을 달라고 했을 때의 그 극도로 놀라워 하던 표정이 주마등 처럼 스쳐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 못난이의 전체 모습은 쉽게 떠오르질 않았다. 다만 못생긴 깜둥이라는 것만이 떠오를 뿐이다. 그 녀는 한동안이나 도일봉의 모습을 떠올려 보려 하다가 부질없이 고개 만 저으며 안채로 돌아왔다. 문부인은 요사이 아주 바빳다. 남편이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덩달 아 바빠진 것이다. 그래서 동생에게도 크게 신경쓰질 못했다. 소운영 이 청운장에 와 있는 것이 벌써 한달이 넘었다. 문부인은 겨우 시간 이 나서 동생을 살폈다. 그리고 수심에 잠겨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문부인은 크게 의아했다. 그저 심통이나 부리고 어리광을 떨줄 알던 동생이 이렇듯 수심에 잠겨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곤 생각 밖이었 던 것이다. "영아. 너, 무슨 일 있니?" "일? 무슨 일?" 소운영은 지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못난이는 분명 항주에 갔다가 돌아와 형부를 도와준다고 했는데 왜 아직껏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속보이게 그 못난이의 행적에 대해 물어 볼 수도 없는 일이다. 아직까지는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못난이 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으니 언니말이 제대로 들릴리 없다. "네 얼굴에 수심이 어려 있는 것이 필시 일이 있을 것 아니니. 아버 님께 꾸중 들을까봐 그러니?" "꾸중은 무슨...." "그럼 왜그래?" "....," "이것아. 네가 말을 해야 언니가 도와주던 말든 할 것 아냐. 그러니 어서 말해보렴." "정말? 사실은... 아빠가 날보고 자꾸 시집을 가라고 하시잖아! 난 가기 싫어." "얘 좀봐! 여자가 나이들면 시집가는건 당연하잖아. 혹시...너 신랑 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러니? 그 운중학이란 청년은 가문도 좋 고, 인품도 그만하면 괜찮잖아? 그가 어째서 싫은지 모르겠구나?" "쳇, 언니가 뭘 안다고 그래. 그는 아첨꾼에 불과하다고!" "응? 그럼 너. 혹시.. 딴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니?" "아니야, 아니라고!" 다급해진 소운영은 얼굴을 붉히며 마구 손을 휘저었다. "호호호. 아니긴 뭐가 아냐, 이것아. 네 얼굴에 그렇다고 써 있는 데! 그래, 어떤 사람이니? 네가 마음에 두고 있다면 필시 훌륭한 공 잘텐데 뭘 부끄러워 하니. 어서 말해봐!" 문부인은 웃으며 동생의 겨드랑이를 간질렀다. 소운영의 얼굴은 온 통 빨게져 홍당무 같았다. "말 안해. 말 안할래!" "이것아. 말을 안하면 언니가 어떻게 도와주겠니? 어서 말하라니까. 어서!" "말해봐야 언니는 웃을게 뻔한데 뭐..." 문부인은 계속 동생을 간질렀다. "요것아. 웃지 않을테니 말해보렴. 네가 좋아 한다는데 내가 왜 웃 겠니. 장차 한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 사람은 바로 새까만... 난 몰라. 말 안해!" 소운영은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언니손을 뿌리치고 방을 뛰쳐 나 갔다. 문부인은 이런 동생을보며 동생이 다른 때완 크게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저 말괄량이 아가씨가 누굴 많이 좋아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 사람이 과연 누굴까? 새까만.. 다음은 무엇이지?" 궁굼하기 짝이 없다. 문부인은 자신이 알고있는 청년들의 이름이나 별호중에 혹, 흑(黑)이나 묵(墨)자를 쓰는 사람을 떠올려 보았다. 그 런 이름자를 쓰는 사람이 몇 명 있기는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조건 들을 생각해 볼 때 동생이 좋아할만한 인물은 그중 한명도 없다. 문 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누구인지 굼궁했지만 동생이 말해주길 기다리 는 것이 좋을 듯 했다. 문부인은 몇일을 두고 동생을 달래가며 속을 떠 보았으나 소운영은 고개만 저었다. 문부인은 생각을 달리했다. 동생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아보려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문부인은 동생을 시중들고 있는 여 인을 불러 동생의 행동을 낱낱이 살피라고 일러두었다. 소운영은 하루의 대부분을 장군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녀는 장군 에게 큰 정성을 쏟고 있었다. 하루에 한번은 꼭 장군을 타고 산책을 나갔고, 털고르기 등을 세심히 신경써 주었다. 그리고 가끔 장군을 쓰다듬으며 한숨을 쉬곤 했다. 문부인은 그런 동생의 모습을 몇번이 나 보았다. 그런 동생의 모습을 보며 문부인은 급기야 누군가를 떠올 리고 말았다. "새까만 깜둥이. 비쩍마른 말라깽이!" 이는 바로 손운영이 도일봉을 두고 욕했던 말이다. "그럼. 저 아이가!" 문부인은 깜짝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도일봉이란 위인은 단 순하지만 거친 사람이다. 평소 소운영이 좋아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 리고 두 사람은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다. 고개를 저었으나 문부인은, 거처로 돌아와 동생을 돌봐주는 여인을 불렀다. "장어멈. 요사이 동생이 어떤 사람에 관해 물어본 적이 없나요?" "예? 무슨...?" "동생이 어떤 사람의 소식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느냐고요?" "글쎄요. 요즘 드나드는 사람이 왜 이리 적으냐고 묻기는 했지요. 그리고는... 그렇지요. 아가씨께서 타고 다니는 말의 주인이 오지 않 았느냐고 묻기도 했어요. 말을 돌려줘야겠다고 그러더군입쇼. 근데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나요. 아씨?" "아니. 됐어요. 돌아가 계셔요." "예." 장어멈이 돌아가자 문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확실해 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동생은 그 거칠기만한 도일봉을 그리워 하는 것이 확실하다. 문부인은 동생과 도일봉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동생 소운영은 아직은 철이 없어서 막무가네이고 버릇이 없지만 사 근사근하고 섬세한 감정을 지니고 있다. 그에 반해 도일봉은 어떻던 가. 오래 겪어 보지는 않았으나 성격이 소탈하고 소박하긴 하다. 어 찌보면 우직스럽기 까지 하다. 두 사람의 성격은 틀려도 너무 틀리다. 양가의 지체도 다르다. 꼭 가문의 내력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소홀이 할 수 없는 문제 다. 이런 일들로 인해 불행한 파국을 맞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문 부인이 생각할 때 두 사람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동생이 불행해 진다면 어찌 두고 보겠는가. 문부인은 소운영을 조용히 불렀다. "영아. 너 아직도 말해주지 않을래?" 소운영은 다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문부인이 말을 이었 다. "그래. 말해주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이제부터 언니가 당부하는 말 들을 잘 지켜야 하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언니도 널 도울 수 없어." "피. 도와주려면 그냥 도와주면 될 일인데 무슨 조건을 붙이고 그 래?" "요것아.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핀잔부터 주는구나. 언니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평생 애써도 않될걸? 그러니 잔소리 말고 들어." 문부인은 정색을 하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자는 한 번 시집가면 그만인게야. 남편이 박대한다면 너는 어쩌 겠니? 그러니까 주의해서 잘 들어보란 말야. 남녀간의 사랑이란 제 3 자가 나선다고 되는건 아니야. 또 어느 한쪽만의 마음만으로도 이루 어질 수 없어. 두 사람 모두 상대에 대해 지극한 마음이 있고서야 진 정한 결합이 이루어 질 수 있어. 그렇다고 그것이 또 다는 아니야. 마음맞는 두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살다부면 수 많은 일들이 발 생하고 또 그 문제들로 인해 부부는 싸우게 되는데, 이런 것을 모른 다면 결혼생활은 정말 힘들어.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있어 야 해. 네가 그 천방지축 날뛰는 버릇만 고쳐 보겠다면 언니는 너를 힘껏 돕도록 하겠다." "쳇. 내가 뭘 천방지축 이라고 그래. 그가...만약 날 구박한다면 내 가 가만 있을 것 같아?" 문부인은 동생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쉬운일이 아니다. 문부인 은 좀 더 동생을 지켜보기로 했다. 언니 입에서 고리타분한 말들만 나오자 소운영은 듣는척 만척 했다. 그리고 몇일 후, 우연하게도 언니 입에서 그 새까만 깜둥이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그간 항주에서 친구를 돕느라고 늦는다는 것이었다. 겨울쯤에야 청운장으로 온다고 했다. 소운영은 괜시리 마음이 콩닥거 렸다. 귀운장으로 돌아갈 생각없이 아예 언니집에 눌러 앉았다. 밖엔 벌써 첫눈이 내리고 있다. 도일봉이 오기로 한 날이 다가옴에 따라 소운영은 안절부절 못했다. 언니에게 그런 모습을 감추려고 무 진 애를 써야 했다. 그리고섣달에 접어들자 드디어 그가 왔다. 소운영 때문에 불만스런 마음으로 청운장을 떠났던 도일봉은 곧장 항주로 가서 친구를 찾았다. 친구는 한 고향 사람으로 나이는 도일봉 보다 여덟살이나 많았다. 벌써 삼년전에 고향을 떠나 항주의 표국에 입사하여 표사가 되어 있었다. 성격이 좋고 활달하여 웃사람들에게도 인정받아 그간 처를 얻어 아들까지 보았다. 도일봉은 지난 반년동안 그 친구와 함께 표국에서 거주하며 일을 배 웠다. 친구는 그 방면에 벌써 상당한 조예를 쌓았고, 명성과 자금도 어느정도 모아두고 있었다. 반년이 지나자 도일봉은 그 친구와 동업 을 하기로 하고 작은 표국을 인수했다. 물론 돈은 흑진주를 처분해서 마련했다. 새로이 시작한 사업이 안정된 것은 아니나, 고향에서 다녀 가라는 소식이 도달하여 잠시 시간을 냈다. 청운장엔 귀향중에 들린 것이었다. 문국환은 외출 중이었다. 그는 요즘 눈코뜰새 없이 바빠서 집에 있 는 날이 드물었다. 내일에나 돌아온다고 했다. 대신 문부인과 운기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문부인에게서 용정차를 대접받은 도일봉은 내일 문국환이 돌아오면 다시 보기로 하고 전에 거처했던 뒷뜰로 향했다. 뒷 뜰에는 생각지도 않던 반가운 친구가 있었다. "장군!" 장군이다. 풀 밭을 한가로이 거닐고 있던 장군도 도일봉의 목소리를 듣고는 반가와 투레질을 하며 달려왔다. 도일봉은 장군을 얼싸안았 다. "장군, 장군아. 네가 아직껏 여기 있을줄은 몰랐구나! 너는 그동안 더욱 늠름해 졌는걸. 이렇게 반가울 데가 있나!" 도일봉은 크게 웃움을 터뜨리며 보퉁이를 팽게치고 장군과 함께 눈 덮인 풀밭을 달리기 시작했다. 말과 사람은 정말 오래간만에 함께 달 렸다. 도일봉은 신이 나서 지칠때까지 달렸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장군도 기쁜 듯 목을 도일봉의 어깨에 비벼댔다. 숨이 찬 도일봉은 땅에 벌렁 누워버렸다. 장군이 얼굴을 ?았다. 하늘이 어두웠다. 금 방이라도 큰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어이쿠!" 도일봉은 갑자기 놀라 주위를 돌아보았다. 장군을 만나 반가와 하는 통에 한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장군이 이곳에 있다면 그 매서운 계집애 소운영도 분명 이곳에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귀찮은 일이다. 무슨 계집애의 성질이 그토록 사납단 말인가. 생각하면 어처 구니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 매서운 계집애가 이쪽으로 다고오고 있었다. 소운영은 도일봉이 온 것을 진작부터 알았다. 당장 달려가서 말이라 도 걸어보고 싶었지만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소운영은 대신 뒷 뜰에 와 있었다. 도일봉이 장군과 함께 달리는 것 도 다 보았다. 저 깜둥이는 여전히 얄밉기만 하다. 도일봉은 소운영이 다가오자 재빨리 털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 버 릴까 망설였다. 머뭇거리다 보니 소운영은 어느새 다가와 장군을 쓰 다듬으며 도일봉을 매섭게노려보았다. 얄미운 인간이 아는체도 안하 니 더욱 화가 치민다. 따귀라도 한 대 갈겨 줬으면 싶다. 도일봉은 멍청이 서 있는 것 보다는 그래도 말이라도 하는게 좋을 것 같아 주섬주섬 마지 못해 입을 열었다. "잘 있었어?" "흥. 남이야! 잘 못 있었다면 어떻할테야?" 날카롭게 쏘아 붙이는 그녀의 말에 도일봉은 그만 머슥해지고 말았 다. 괜시리 말을 걸었다가 본전도 못찾은 셈이다. 우물쭈물 뭘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도일봉의 모습에 소운영은 슬그머니 웃움이 나왔 다. "호호. 뭐 잃어버린 거라도 있어? 왜 그렇게 우물거려? 조금전에 장 군을 보고 반가와 하는 모습을 보니 꼭 형제끼리 다시 만난 것 같던 데. 돌려줄까?" "아니, 장군과 나는 친구야. 하지만 네가 잘 보살펴 주고 있으니 그 것으로 됐어." 도일봉은 더 있기가 뭐해서 보퉁이를 주워들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 다. 소운영은 화가 치밀었다. 도일봉의 뻣뻣한 태도에 비위가 상한 것이다. "이봐. 네가 뭐 그리 잘났다고 그처럼 뻣뻣하게 굴어! 내가 무슨 귀 신이라도 되는줄 알아. 남이 말하는데 왜 꽁무니를 빼는거야?" '그럼 네가 귀신이 아니란 말이냐? 공연히 시비나 거는 여자귀신이 지!' 그 말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대신. "이봐. 너는 어째서 나만보면 시비를 걸고 그래? 네가 잘 있지 못했 다니 유감이다만 그게 어디 나 때문인가 말야?" "너 때문이 아니라고.... 나는 너만 보면 화가 난단 말야." "이게 또!" 도일봉은 그만 화가 치밀어 한마디 해주려다 그만두고 홱 돌아서 안 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 나쁜녀석. 말라깽이 깜둥이!" 소운영은 발을 동동 구르며 도일봉의 등에다 대고 한바탕 욕을 퍼부 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남의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니 야속하기 이 를데 없었다. 저 멍청이는 어째서 저토록 멍청하고 무뚝뚝 한지 불만 이 만장이나 치솟았다. 왈칵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만 돌아가 거처 로 뛰어갔다. 참으려 했지만 거처로 돌아오고 보니 더욱 서러웠다. 방울방울 눈물 이 흘러 내렸다. 자신은 그야말로 장중보옥(藏中寶玉)으로서 귀하게 만 자라나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저 미쩍마른 깜둥 이만은 도무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화가 치밀고 서러운 생각만 들 었다. 마냥 슬프기만 하다. 그녀는 한바탕 눈물을 쏟고 말았다. 문국환은 다음날 오후 늦게야 돌아왔다. 지친 표정이었다. 문국환은 요즘, 청응방의 각 분타가 새로 일어난 의혈단(義血團)이 란 무림집단으로부터 심한 타격을 받고 있어 직접 분타를 돌며 진상 을 조사하고 대응할 조처를 취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빳다. 의혈단 이란 집단이 집적 청응방을 도발한 것은 아니나 사업을 방해하고 동 료들끼리 이간질을 시켜 조직을 와해시키려 하고 있다. 문국환은 청 응방주 석숭(石崇)과 함께 의혈단의 본색을 색출하고 그에 대처하려 했으니 쉽지가 않았다. 이 의혈단이란 집단은 그야말로 신비스럽게 행동하여 이름만 알려졌지 그 조직이나 행동방향등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마치 꼬리만 드러낸체 머리는 구름속에 숨겨둔 것만 같았 다. 의혈단에 대해 많은 것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들이 여느 무림문파 와는 다른, 어떤 좋지못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대개, 타 조직의 비밀을 캐내고, 또 동료들을 이간시켜 조직을 와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필시 몽고놈들의 앞잡이가 분명하구나!" 심중은 분명 그러했지만 증거가 없다. 또 그들의 소굴이 어딘지, 인 원이 얼만지, 누가 우두머린지도 알 수 없다. 문국환은 다만 그들의 도발에 대해 철저히 항거하고 또 방도(幇徒)들의 행동을 각별히 주의 시킬 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나라를 되찾을 희망은 갈수록 줄어들고, 의혈단과 같은 몽고의 앞잡 이들만 늘어가니 정말 난감한 일이다. 몽고인의 사주를 받아 같은 민 족, 같은 동포끼리 드잡이질 하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울화통이 터져 죽을 맛이다. 할 말은 많고 사람은 없다. 문국환은 정말 힘이들었 다. 그래도 집에 돌아오면 한결 나았다. 어여쁜 부인이 있고, 늠름한 아 들이 있으니 이들을 보면 힘든 것도 잊을 수 있다. 새 힘이 솟는 것 같다. 피곤한 몸을 쉬고 싶었으나 도일봉이 와 있다는 말에 쉬지도 못하고 뜨거운 물에 목욕만 한체 서재로 나왔다. 서재엔 도일봉과 부 인, 아들과 처제가 있었다. 도일봉은 문국환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냈다. "문형. 오래간만 입니다. 그간 안녕하셨소?" 문국환도 반갑게 웃었다. "도형제도 간강하군. 그래, 갔던 일은 모두 잘 되었소? 친구분도 안 녕하시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문형이 피곤해 보여요. 들어가 좀 쉬어요. 시간은 많으니까." "그렇다고 한 낮부터 쉴 수야 있나. 도형제는 그간 배운게 많은 것 같군?" 도일봉의 인상이 그만 팍 찌그러졌다. "하! 말도 말아요. 보지 않으려 해도 절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니 나로선 어쩔 수 없더이다. 세상이 이런줄 알았다면 차라리 촌구석에 서 세상 모른체 사냥이나 계속할 것을! 이거야 원. 사람들이 살고 있 는 것인지, 아귀(餓鬼)들이 살고 있는 것인지 분간이 안되더란 말입 니다. 서로들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고 아웅다웅, 이놈이 저놈것을 빼 앗고, 저놈은 또 그놈것을 훔치고. 꼴들이 칼만 안들었지 강도나 다 름 없더라니까요! 차라리 칼들고 싸우는 것은 점잖은 축에 들어요. 정말 무시무시 하더이다. 그리고 또, 이 몽고놈들은 전문적으로 사람 을 괴롭히는데, 정말 눈 뜨고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에요! 그야말로 초특급 강도들입니다. 문형 말대로 그놈들은 과연 못되먹었습디다. 생각 같아서는 그저 싹! 목을 처버리고 싶었지만 중과부족(衆寡不敵) 이라! 나 혼자 힘으로 그많은 몽고놈들을 다 죽일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항주를 떠나기 전 그중 못된놈 몇을 골라 싹! 목을 처버렸지 요. 또 현성 관아에 숨어들어 불을 싸질러 버렸고요. 하핫. 그놈들. 놀라서 날뛰는 꼴이라니! 아주 가관이더이다. 아주 질이 나쁜 놈들이 요." "쳇. 그럼. 몽고놈들이 좋은 놈들인줄 알았어? 그놈들은 우리 한인 들 중에서도 강남에 사는 남인(南人)들을 가장 멸시한다고! 내가 보 니 너도 좋은 사람은 아니야!" 소운영이 쏘아붙이자 도일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하고는 말 안할테다." "이게 또..." 문국환이 손을 저어 두 사람을 말렸다. "물론 몽고인들이 좋을리 없지요. 헌데, 도형제가 그토록 큰 소란을 부렸다면 혹 친구가 어려움을 당하진 않을까?" "문형은 확실히 생각이 깊은 사람이군요! 일을 저지를 때 나는 그런 생각도 못했어요. 하지만 안심해도 될겁니다. 내가 죽인 놈들은 친구 와는 전연 관계가 없으니까요. 나는 단지 그중 나쁜놈 몇을 골라 죽 였을 뿐이에요. 관아에 불을 지를때도 복면을 했으니 나를 찾지는 못 할겁니다. 그걸로는 내 친구를 연관지을 건덕지가 없어요." "음. 언젠가는 몽고의 달자들을 저 멀리 사막(沙漠)으로 좇아낼 날 이 오겠지요. 그런데 집에서 소식이 왔다고요? 집에 무슨 일이 있 나?" 도일봉이 갑자기 뒷통수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그게 저...원단(元旦)을 함께 보내자고...." 도일봉의 머뭇거림에 눈치 빠른 문부인이 나섰다. "보아하니 그 일 외에 더 좋은 일이 있을 듯 한데요?" "헤헤. 부인께선 잘도 아시는군요. 이건 좀.. 쑥스러워서. 사실은 부모님께서 나를 장가들이고 싶으신 모양이에요." 그 말에 자매는 깜짝 놀랐다. 문부인은 힐끗 동생을살폈다. 소운영 은 그야말로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커다란 두 눈에는 슬 픔과 분노, 수치감이 가득했다. 도일봉은 자매의 표정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부모님은 이미 연세가 많으시고, 손자를 빨리 안아보고 싶으시 대요. 그래서 이번에 색시를 골라 두셨답니다." 도일봉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운영은 "흥!"하고 코웃움을 치고는 자리에서 발따꾟 일어나 서재를 나가버렸다. 그녀의 돌연한 태도에 도일봉이나 문국환은 어리벙벙 해지고 말았다. 영문을 알 수 없어 서 로를 바라볼 뿐이다. 도일봉이 소운영의 마음을 알리 없고, 문국환 또한 요사이 바쁘게만 보내느나 처제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소운영 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는 문부인만이 가슴 아파하고 있을 뿐이다. 동 생의 요즘 행동으로 보아 도일봉을 진심으로 그리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동생이 상처를 입고 말 것이다. 문부인의 비 상한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문국환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참 좋은 일인데! 미리 축하해야 겠는걸. 하핫" 도일봉은 계면쩍은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고마와요. 그렇지만 나는 사실.. 이번일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응? 신부될 규수가 마음에 들지 않던가?" "그런건 아니에요. 색시될 여자는 아직 보지도 못했는걸요. 하지만 나는 아무래도 문형만한 복은 없는 것 같아서요. 세상 어느 구석에서 부인만한 분을 또 찾아낸단 말입니까...? 아이쿠 이런! 문형, 내 말 은 절대 나쁜 뜻이 아니었어요! 난 정말 주착이 없다니까요. 미안하 게 되었어요. 죄송합니다 부인." "하핫." "호홋" 부부는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계면쩍어 하던 도일봉도 부부를 따라 헤헤 헤픈 웃움을 흘렸다. 도일봉은 말은 사실 문부부에게 큰 실례가 되는 것이다. 도일봉의 위인됨을 알고, 또 부부가 모두 도량이 넓어 웃고 넘겼을 뿐이다. 문부인은 이 말을 동생이 들었으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문부인의 머릿속에서 번갯불이 번쩍 일었다. 좋은 수가 떠오른 것이 다. 그들은 잠시 더 담소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문국환은 아직도 피곤한 상태였고, 도일봉은 또 내일이면 먼 길을 가야하기 때문에 일찍 쉬어 야 했다. |
첫댓글
수고 많으세요
검은 눈동자 운영자님
카페를 위해 헌신하시는 모습
귀감이십니다
충 ~ 성!!!
감사합니다 베베님~^^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11.26 19:15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입니다
잘밨어요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요
좋은생각??? 무슨 생각인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