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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글
남에게 감화(感化) 받는 다는 것은 자신이 미개(未開)함으로 몰린 것으로서 마음 겨루기 소이 심리전에서 패배 하였다는 것이다
금학배추천 2012.05.06 10:34작성글
남에게 감화(感化) 받는 다는 것은 자신이 미개(未開)함으로 몰린 것으로서 마음 겨루기 소이 심리전에서 패배 하였다는 것이다
어떠한 주장 소이 내거는 사상이념 이런데 빠져들고 복종하고 섬기는 것 이런 것 그래 감화 받는다 하는 것인데 뭔가 그래 이해득실을 논하여선 타산적(打算的)으로 득이 될만하면 그렇게 감화 받는다는 것이 되는 것인데 그렇게 감화 받는 것이 재는 관점(觀點)의 차이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그렇게 여러 가지 분류로 생각할 수 이겠지만 결국 뭔가 남의 이념(理念)등에 그래 세뇌(細腦)당한 것이 되는 것이다 현란한 것 휘황한 도시의 문화에 빨려 들 듯 그렇게 머리가 세뇌 당하는 것 주술 세뇌 당하는 것 하고 같은 것이 된다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것은 이미 심리전에 진 것 굴복 남을 섬기는 노비(奴婢) 위상 복종자 순종자가 된 것 길들이는 자의 입장에선 성공한 것 지배자가 피지배자(被支配者)를 순리로 치적(治積)하는데 성공한 것 이런 것이 되는 것이다
타인의 '감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
제시해주신 글은 타인에게 감화받는 현상을 매우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핵심 주장
감화는 '심리전에서의 패배'이다:
남에게 감화받는다는 것을 **'자신이 미개함으로 몰린 것'**으로 규정합니다.
이는 곧 **'마음 겨루기'**라는 심리전에서 패배하여 굴복한 상태로 해석합니다.
감화는 '세뇌'와 '복종'이다:
특정 주장, 사상, 이념에 빠져들고 복종하며 섬기는 것을 감화로 봅니다.
단순히 이해득실을 따져 이득이 될 만해서 감화받는 경우일지라도, 결국은 **'남의 이념 등에 세뇌당한 것'**으로 결론 내립니다.
화려한 도시 문화에 빨려드는 것과 같이, 주술에 세뇌당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비유합니다.
감화의 결과는 '노비' 또는 '피지배자'의 위상이다:
감화는 **'굴복'**이며, 감화받은 사람은 남을 섬기는 '노비' 또는 **'복종자/순종자'**의 위상을 갖게 된다고 봅니다.
반면, 감화를 준 사람은 **'길들이는 자'**로서 성공하여 피지배자를 순리대로 다스리는 데 성공한 **'지배자'**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글의 특징
이 글은 개인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관점을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타인의 사상이나 주장에 영향을 받는 모든 과정을 자아 상실, 종속, 지배-피지배 관계로 해석하며, 이를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감화'라는 긍정적인 어휘 대신 **'미개', '패배', '세뇌', '노비', '굴복'**과 같은 강하고 부정적인 단어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극단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감화나 영향력을 긍정적인 배움이나 성장으로 볼 수도 있을 텐데, 이 글의 논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그러므로 존심(存心) 자신이 뚜렷한 자는 남의 홀리는 이념에 오염(汚染)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질타하고 배격해서만이 자신의 위상을 굳게 지키고 뭔가 자신만의 이념을 내세울 수 있다 할 것이다 권선징악(勸善懲惡)도 다 실익(實益)을 논해 주장하는 것 제도화하는 것 인데 이런 것 결국 치세자(治世者)가 용이(容易)하게 세상을 치세하고자 하는데서 비롯된 주장인 것이고 어떠한 제도(制度)가 만들어져선 어느 사회 집단을 속박(束縛)하는 그런 행태를 띠게 된다할 것이다 그래 그 사회의 구성원이 된 이상 그 제도에 속박을 받아선 순종하는 자 그 제도의 노예(奴隸)가 된다 할 것이고 그 제도화 하여선 실익을 크게 챙기는 자의 노예가 된다 할 것인데 결국 뭔가 자신도 그래 실익을 챙긴다 한다면 그런 제도를 역시 노예로 볼 수도 있는 것이지만 아무런 실익 없고 되려 손괴(損壞)받음이 생긴다면 그냥 다른 자들을 위하여선 죽어라 일만 해 주는 그런 처지 희생(犧牲)양이 된 입장이 되고 만다 할 것이다
'주체성'과 '제도'에 대한 이분법적 해석
이어서 제시된 글은 앞선 글의 주장을 더욱 심화시키며, **개인의 주체성(존심)**을 지키는 방법과 사회 제도의 본질에 대한 매우 회의적이고 투쟁적인 관점을 제시합니다.
1. 주체성(存心)을 지키는 방법: '배격'
글쓴이는 **'존심(存心) 자신이 뚜렷한 자'**라면 남의 홀리는 이념에 '오염(汚染)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질타하고 배격해야 한다.
자신의 위상을 굳게 지켜야 한다.
자신만의 이념을 내세워야 한다.
이는 외부의 모든 사상과 영향력을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철저한 자기 방어와 독립적 이념 구축을 주체성 보존의 유일한 길로 봅니다.
2. 사회 제도의 본질: '속박'과 '실익'
글쓴이는 권선징악을 포함한 모든 제도의 근원을 **지배자의 '실익'과 '치세의 용이함'**에서 찾습니다.
권선징악의 목적: 치세자(治世者)가 세상을 용이하게 다스리고자 하는 데서 비롯된 주장일 뿐이다.
제도의 기능: 만들어진 제도는 결국 그 사회 집단을 **속박(束縛)**하는 행태를 띤다.
3. 제도 속 개인의 위상: '노예' 또는 '희생양'
제도화된 사회 속에서 개인의 처지를 철저히 지배-피지배 구도로 분석합니다.
순종하는 자: 제도에 속박을 받고 순종하는 자는 그 제도의 노예가 되며, 결국 그 제도화하여 실익을 크게 챙기는 자의 노예가 된다.
실익을 챙기는 자: 만약 자신도 그 제도를 통해 실익을 챙긴다면 '노예'로만 볼 수는 없다고 예외를 인정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제도를 이용하는 '노예'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본질적 부정성을 유지함)
희생양: 아무런 실익 없이 손해만 본다면, 다른 자들을 위해 일만 해주는 **'희생양'**이나 **'처지'**가 되고 만다고 결론짓습니다.
이 글은 사회적 합의나 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개인 대 제도라는 프레임 속에서 권력과 이익만을 기준으로 모든 관계를 해석하는 극도의 개인주의적, 투쟁적 시각을 보여줍니다.
모든 제도와 감화를 '속박'과 '노예화'로 보는 시각에 대해, 사회 질서와 협력의 필요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어떤 반론이 가능할까요?
이것을 그 뭐 구도자(救導者) 수도자(修道者) 보살(菩薩)의 위상으로만 생각할 것인가 이런 취지이기도하고 그렇게 패배자가 자신을 미화하고 합리화 시키고 안위(安慰)하는 포장의 말들이 그래 지옥에 마애(磨崖)보살(菩薩)이 있다 이렇게들 주어 섬기게 된다는 것이고 결국 그 어떤 주장 사상에 물이 들은 것 지배당하는 것 보살을 이미 들춘다하는 것 석존(釋尊)불가(佛家)의 이념에 물이 들어선 있다는 것 아닌가 말이다 이미 그 주장 세뇌 당한 것이 된다 할 것이고 그래 무슨 실익이 있담 다행인데 맹목적인 것이 된다면 조건 없다 한다면 무엇을 바라지 않고 '베풀었다' '펼쳤다' '뿌렸다'한다면 바보 숙맥처럼 남의 이상(理想)만 좋아라 동경하는 모양세를 그린 게 된 것인데 이것을 역시 유혹하는 단어(單語)가 바로 무주상보시(無住相普施)라 이렇게 위포장(僞包裝)을 하고 나서게 한다는 것 결국 뭔가 무주상보시(無住相普施)라 하는 주장 사상 낚시 놓는 것에 낚였다는 것 아닌가 말이다 소이 혹세(惑世) 감언이설에 낚이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 이념이 들어서 얼마나 솔깃하고 귀가 즐거울 것인가 이런 말인 것이다
종교적 이념과 '무주상보시'에 대한 극단적 비판
제시된 글은 앞서 주장한 **'감화는 심리적 패배이자 노예화'**라는 논리를 종교 및 구도자의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불교의 '보살' 개념과 **'무주상보시'**라는 핵심 교리를 **'패배자의 자기 미화', '세뇌', '위장된 유혹'**으로 해석하며 맹렬히 비판합니다.
1. 구도자 위상의 부정적 해석
글쓴이는 구도자, 수도자, 보살의 위상을 단순히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패배자의 미화: '지옥에 마애보살이 있다'는 등의 이야기는 패배자가 자신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며 안위하는 포장의 말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세뇌의 증거: 누군가 '보살'을 들추고 석존(부처님)이나 불가의 이념에 물들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주장에 세뇌당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2. '무주상보시'에 대한 공격
비판의 정점은 '무주상보시(無住相普施)' 개념에 맞춰져 있습니다.
맹목적인 바보짓: 베풀고 펼치고 뿌리면서도 **'무엇을 바라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실익 없이 남의 이상만 동경하는 바보 숙맥과 같은 모양새로 봅니다.
위장된 유혹: 이 맹목적인 행위를 포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유혹적인 단어가 바로 **'무주상보시'**이며, 이는 결국 **'위포장(僞包裝)'**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합니다.
낚시와 혹세: 무주상보시는 결국 듣기 좋고 솔깃한 감언이설로 사람들을 낚는 **'낚시 놓는 주장 사상'**이며, **'혹세(惑世)'**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글쓴이의 일관된 관점
이 글은 일관적으로 세속적인 실익, 자기 보존, 주체적인 이념을 모든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해타산과 조건 없는 희생을 철저한 이분법으로 나누고, 조건 없는 희생이나 헌신을 표방하는 종교적/도덕적 가치(보살, 무주상보시)를 **'실익을 포기한 패배', '지배 이념에 대한 맹목적 복종'**으로 폄하합니다.
이러한 관점은 초월적 가치, 정신적 만족, 혹은 이타적 행위를 통한 내면의 평화 등 세속적 이익을 넘어서는 종교적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고, 모든 것을 **'권력과 실익을 쟁취하는 심리전'**이라는 틀 안에서만 해석하려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실리 추구와 종교적 가치에 대한 부정은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를 가장 첨예하게 반영하는 시각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이 제시하는 것처럼 '조건 없는 베풂'은 항상 위장된 유혹이나 패배의 합리화일 뿐일까요?
이래 귀가 얇은 사람은 남의 말에 고대 넘어가고 마는 것 소이 준비된 자세 고수(固守)하는 마음이 없는 이상 잇권을 갈취하려하는 사기성 덫 놓는데 그냥 넘어가고 만다는 것 그래선 그렇게 심약하고 순수한 자들을 밥으로 삼는 포획을 소일 삼는 사냥꾼 포수들은 그래 용이하게 밥거릴 찾는다는 것이다 스스로들 날 잡아 잡슈 자신 코베어다 받치는 전술에 말려든 것이 된다 성인의 말로 감화 세뇌시킴 그래 백성을 사지(死地)로 몰아도 백성들이 감읍(感泣) 감지덕지 한다는 것 이런 것 하나의 통치자 지배자의 세상을 전장마당으로 본 전술(戰術)인 것이다
어떠한 사상에 이념(理念)에 감화(感化)받는 것 대략 종교(宗敎)가 되는 것인데 그래 귀가 얇은 자들과 그렇게 마음이 철벽 두꺼운 자들 소이 양심 철판 깔았다 하는 그런 자들과 등 크게 두 가지 부류(部類)로 볼수 있는데 소이 밥거리와 포수(砲狩)로 나누어지게 된다 할 것이다 어느 이념(理念)을 수용하여선 잇권을 쟁취하는데 이용하면 포수(砲狩)가 되는 것이고 이용하지 못하고 그냥 순수 추종하면 결국 밥거리 어느 이념 집단 수괴(首魁)를 먹여 살리는 종 노비(奴婢)가 된다는 것 일꾼이 된다는 것 수족(手足)이 되거나 이런 행태(行態)를 갖게 된다 할 것이다
'심리적 취약성'과 '이념'을 통한 착취의 구도
제시된 글은 앞선 주장들을 종합하여, **취약한 개인('귀가 얇은 사람')**이 이념이나 사상이라는 **'사기성 덫'**에 걸려 **지배자('포수')**에게 착취당하는 메커니즘을 더욱 노골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글은 인간관계를 철저히 지배-피지배, 포식자-피식자의 구도로 분석합니다.
1. 심리적 취약성과 '밥거리'
글쓴이는 **'귀가 얇은 사람'**이나 **'심약하고 순수한 자'**를 가장 먼저 표적으로 삼습니다.
취약성의 결과: 준비된 자세나 고수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잇권을 갈취하려는 사기성 덫에 쉽게 넘어가고 맙니다.
자기 희생: 이는 스스로 '날 잡아 잡수'라고 하며 자신을 바치는 **'코 베어다 받치는 전술'**에 말려드는 것이라고 비유합니다.
쉬운 포획물: 이러한 심약하고 순수한 자들은 **'사냥꾼 포수'**에게 **'밥거리'**가 되며, 포수들은 이들을 통해 용이하게 실익을 취합니다.
2. 통치자의 이념 전술: '성인의 말'
글쓴이는 통치자나 지배자가 이념을 이용하는 행위를 **'전술(戰術)'**로 규정합니다.
감화/세뇌의 목적: 성인(聖人)의 말로 백성을 감화/세뇌시켜 사지(死地)로 몰아도, 백성들은 오히려 감읍(感泣)하고 감지덕지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전술의 핵심입니다.
세상을 전장으로 보는 시각: 이러한 행위는 통치자/지배자가 세상을 전장 마당으로 보는 전술의 일환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이념은 사랑이나 도덕이 아닌, 지배를 위한 무기입니다.
3. '밥거리'와 '포수'의 이분법
결론적으로, 어떠한 **사상이나 이념(대개 종교)**에 감화받는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며 극단적인 이분법을 완성합니다.
부류 심리적 상태 이념의 이용 방식 결과적 위상
포수 (砲狩) 마음이 철벽 두꺼운 자 (양심 철판 깐 자) 이념을 수용하여 잇권을 쟁취하는 데 이용 지배자, 사냥꾼
밥거리 귀가 얇은 자, 순수한 자 이념을 이용하지 못하고 순수하게 추종 종 노비, 일꾼, 수족 (집단 수괴를 먹여 살리는 자)
Sheets로 내보내기
이 글은 이념이나 종교가 순수한 신념과 희생을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냉혹한 실리 추구와 권력 다툼의 도구로 사용되며, 취약한 자들의 에너지를 착취하는 메커니즘을 형성한다고 매우 비관적으로 결론짓습니다.
이러한 철저한 실리 중심, 지배-피지배 구도의 해석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는 데 강력한 통찰력을 주기도 하지만, 인간의 선의, 이타심, 그리고 진정한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에는 순수한 신념이나 호의는 없고 오직 '포수'와 '밥거리'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러므로 무엇이 자신 한테 와 닫는다 할 적에 우선 셈이 빨라야 한다는 것 이해타산이 머리 두뇌회전 빨리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인데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고 목전에 실익에 급급할 게 아니라 긴 안목을 내다보는 것 이런 것이 지혜라 할 것이라 소이 무엇이 와 다으면 그것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 두뇌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두뇌가 명석(明晳)해야 한다 하지만 수재(秀才)가 다 잘사는 것은 아닌 것이다 명석한 두뇌를 가졌어도 역시 빈곤을 못 탈출하는 자들이 허다 대다수인데 소이 무언가에 그래 선택 받았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손길과 같은 것 이런 것이 많다는 것이다 타고난 자질 그 뭐 숙명적인 것 이런 것도 영향을 미친다 할 것이지만 상대성 논리라 그렇게 내가 아무리 차를 잘 몰아도 남이 와선 들이 받는데야 그 해볼 도리가 없 잖는가 말이다 이런 취지 주위 여건 환경에 영향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 그래 대세를 논하게 되는 것이라 할 것이라
실리 추구와 '선택받음'에 대한 논의 확장
이 글은 앞서 주장한 **'심리전에서 승리하고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한 철저한 실리주의'**를 유지하면서, 성공을 위해 필요한 요소에 **'두뇌 회전(지혜)'**뿐만 아니라 **'운명'과 '환경'**까지 포함하며 논의를 확장합니다.
1. 성공을 위한 '빠른 셈'과 '지혜'
글쓴이는 외부의 자극이나 이념이 다가올 때 개인이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제시합니다.
빠른 이해타산: **'무엇이 자신한테 와 닿을 적에 우선 셈이 빨라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해득실을 계산하는 두뇌 회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긴 안목의 지혜: 눈앞의 이익('목전의 실익')에 급급한 '약삭빠른 고양이'가 될 것이 아니라, **'긴 안목을 내다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라고 정의합니다.
이용할 줄 아는 능력: 핵심은 외부의 이념이나 기회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수동적으로 감화받는 **'밥거리'**가 아닌, 능동적으로 이념을 취하는 **'포수'**가 되라는 앞선 주장과 일치합니다.
2. 성공의 한계: '운명'과 '환경'의 영향력
그러나 글쓴이는 개인의 지적 능력만으로는 성공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며, 외부 요인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두뇌의 한계: 명석한 두뇌를 가진 수재라도 빈곤을 탈출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하며,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합니다.
'선택받음'의 중요성: 성공 여부는 **'무언가에 그래 선택 받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나 **'타고난 자질, 숙명적인 것'**과 같은 운명론적 요소를 의미합니다.
주위 환경의 압도적 영향: 상대성 논리를 예로 들어, 내가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남이 와서 들이받으면 도리가 없듯이 주위 여건과 환경의 영향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강조합니다. 이로 인해 **'대세'**를 논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이 글은 **개인의 노력과 지혜(이용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개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거대한 힘('선택받음', '대세', '환경')**이 성공을 좌우한다는 현실 인식을 담고 있습니다.
결국 **'포수가 되기 위한 개인의 지혜'**와 '타고난 운명이나 환경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길' 중, 글쓴이는 어느 쪽이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것일까요? 아니면 이 둘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까요?
그래선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말하는 것이기도 한 것, 기우는 차에는 또 같이 타지 않는다 이런 말 선별하라 이렇게 말 주장을 하기도 하고 하는 것이라 실익에 대한 시비흑백을 가릴줄 알으라 그런 눈을 가져라 이런 취지이기도 하고 한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 공부를 하였다하여도 저한테 모르는 문제만 시험에 나오면 별수 없는 것 근데 뗑뗑이쳐도 몇 가지 않 배웠는데 그 자기가 배운 것만 나온다면 백점이 되는 것이다
답안지 작성 요령도 잘 숙지하고 있어야만 역시 채점에 유리하다할 것이다 이래 알 수 없는 것 한테 놀려 받는 것 불공평한 것이 많은 것이 이 세상 돌아감 이기도한 것이다 화복(禍福)이 사람 임의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되는 수가 허다하다 일해놓고 사업 추진자가 부도가 나면 품값을 못 찾듯이 다 성공 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 사회에 우리가 살기도 하는 것이다
남 해악질 끼치려 하는 것이 되려 덕을 준 것이 되고 남 덕 주려하는 행위가 되려 손괴준 것이 되고 좋은 일하려다간 또는 하고 난 다음 재앙이 미치고 나쁜 일하고서도 복(福)을 받고 상관 두둘겨 패고 무용(武勇)을 떨친 것이라 이레 훈장(勳章)받고 이래 세상은 대중 없는 것 벌을 받아야 할 자리에 상(賞)을 받고 상(賞)을 받아야 할 자리에 공(功)을 치하(致賀)받아야 할 자리에 꾸중듣고 이래 아주 불공평한 것이다
'운'과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현실 인식
제시된 마지막 글은 앞선 글들의 실리주의, 주체성, 그리고 환경의 압도적인 영향력에 대한 논의를 **'불확실성'과 '불공평성'**이라는 더욱 비관적인 현실 인식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노력보다는 **'운(運)'**과 '요령(答案紙 작성 요령)', 그리고 **'대중 없는 세상의 모순'**이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고 강조합니다.
1. 처세술과 실리 추구의 중요성
글쓴이는 성공을 위해 필요한 처세술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의 인정: 타인의 권위를 빌려 자신의 위세를 떨치는 **'호가호위'**를 현실적인 처세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선별 능력: **'기우는 차에는 같이 타지 않는다'**는 말처럼, 불리한 상황이나 집단을 피하고 유리한 쪽을 선별할 줄 아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실익에 대한 분별력: **'실익에 대한 시비흑백을 가릴 줄 아는 눈'**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는 앞선 주장을 반복합니다.
2. 노력과 결과의 불일치: 시험의 비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주장을 **'시험'**이라는 비유를 통해 명확히 합니다.
운의 영역: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했어도 모르는 문제만 시험에 나오면 소용이 없지만, 공부를 소홀히 했어도 배운 것만 나오면 백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노력과 상관없이 **운(출제 범위)**이 결과를 결정함을 시사합니다.
요령의 중요성: **'답안지 작성 요령'**을 잘 숙지하는 것이 채점에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하여, 본질적인 실력 외의 **형식적 기술(테크닉)**이 결과를 좌우함을 지적합니다.
3. 모순되고 불공평한 세상의 현실
글쓴이는 세상의 돌아가는 방식에 불공평함과 예측 불가능성이 만연해 있음을 통탄합니다.
화복(禍福)의 비예측성: 화와 복이 사람의 임의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되는 수가 허다합니다. '일 해놓고 사업 추진자가 부도가 나면 품값을 못 찾는' 것처럼, 노력과 무관하게 실패할 수 있는 **'불확실성 사회'**에 살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선악과 결과의 역전:
남에게 해악을 끼치려 한 것이 되려 덕을 주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남에게 덕을 주려 한 행위가 되려 손괴(손해)를 주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좋은 일을 하고도 재앙이 미치고, 나쁜 일을 하고도 복을 받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상벌의 부조화: 벌을 받아야 할 자리에 상을 받고, 상을 받아야 할 자리에 꾸중을 듣는 등 세상의 상벌 체계가 아주 불공평하다고 비판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 일련의 글은 개인의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철저한 실리주의와 이념에 대한 배격이 필수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불공평하고 모순되며 운과 대세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냉철하고 염세적인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결국 글쓴이의 시각은 **'스스로 포수가 되어 실리를 챙기려 노력하되, 성공은 결국 운과 환경에 달려 있다'**는 이중적인 현실론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실익에 대한 시비흑백을 가릴 줄 아는 눈'**은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산림에 불이 났는데 관공서 기관에 신고하게 하게되어 있는 제도가 되어 있어선 신고 하였더니만 되려 포상(褒賞)을 받아야할 처지인데 그 기관끼리도 부서끼리도 이헤 득실이 있는지라 먼저 신고 받지 못한 기관이 불조심 잘 계도(啓導)못한 것으로 질타를 받는지라 그러니 신고한 자가 되려 그넘들 한테 욕먹고 꾸지람 듣고
이래 박복(薄福)한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는 것 [시래풍송등왕각(時來風送登旺閣) 운퇴뇌굉천복비(運退雷轟天福碑)] 신고만 하고 부득이한 일이 있어선 불끄는데 자진 동원 못하여선 그래 왜 불끄러 나오지 않았느냐 이렇게 호되게 질책 받고 이런 입장도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넘의 산림이 불이 다타 없어져도 신고하지 말아야만 하다는 것 아닌가 말이다
맹자에 말을 하길 내 처첩이 머리 끄들고 싸워선 흐트러지면 내 갓끈으로 묶어주는 것은 가당하다 할 것이나 남의 계집들이 그래 쌈질 하는데 내가 가선 갓끈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묶어 주려 한다면 여너 사람이 그래 의심의 눈초리로 볼 것 아니더냐 이런 환경 일 적엔 아예 문을 닫아 걸고 못 본체 하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을 하는 것 하고 유사(類似)하다 할 것이라
내 집 불 아닌 바에야 산천을 다 소실(燒失)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이런 말 이런 생각만 모두 갖고 있다면 공동체 사회가 제대로 운영될 리가 만무라 는 것 공중에 이익이 자신만의 사익(私益) 없다고 못 본체 해버린다면 병이 전염 만연해질 것 아닌가 말이다 다들 피해자가 된다할 것인데 되려 그렇게 공중을 위해 하는 자가 푸대접받는다면 누가 할 것인가 이런 말인 것이고
그렇다고 악랄한 신고 꾼 파라치 제도 파파라치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다수 공중 사회를 위하여선 뭔가 크게 위하는 것이 된다 할 것 같으면 그렇게 신고정신 여럿의 힘을 모을려 하는데 알리는 것 이런 것은 크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이라 할 것이다
공익적 행동의 역설과 '신고'의 딜레마
이 글은 앞서 다루었던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주제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신고 행위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더욱 심화시킵니다. 선한 의도의 행동이 오히려 개인에게 불이익과 질책을 초래하는 모순을 지적하며, 공동체와 개인의 이익 사이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1. 산불 신고 사례와 '박복한 모습'
글쓴이는 산불 신고 사례를 통해 제도의 비효율성과 개인이 겪는 부당함을 비판합니다.
포상이 아닌 질책: 신고자는 포상을 받아야 할 처지임에도, 신고를 늦게 받은 관공서나 부서가 '불조심 계도를 못했다'는 질타를 피하기 위해 신고자에게 욕하고 꾸지람을 듣게 만듭니다.
운명의 비유: 이는 마치 **'시래풍송등왕각(時來風送登旺閣), 운퇴뇌굉천복비(運退雷轟天福碑)'**처럼, 운이 좋아야 포상을 받고 운이 쇠하면 재앙을 맞이하는 박복한 상황으로 묘사됩니다.
자진 동원의 요구: 심지어 신고만 하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불 끄는 일에 자진 동원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호되게 질책을 받는 입장까지 생깁니다.
결론: 이러한 부당함 때문에 차라리 산림이 다 타 없어져도 신고하지 말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2. 맹자의 비유와 공동체 딜레마
글쓴이는 맹자의 비유를 가져와 **'내 일이 아닌 경우 관여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논리를 현실에 적용합니다.
맹자의 비유: 남의 아내가 싸우는 것을 갓끈으로 묶어주려 하면 오해받기 쉬우니, 차라리 문을 닫아걸고 못 본체 하는 것이 낫다는 맹자의 말이 신고 사례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공동체 파괴의 우려: 이러한 생각('내 집 불 아닌 바에야 산천이 다 타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이 만연하면 공동체 사회가 제대로 운영될 리 만무하다고 경고합니다.
전염병의 비유: 공익에 자신의 사익(私益)이 없다고 못 본체 하면 병이 전염되어 만연하는 것과 같아,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푸대접받는 공익 행위: 공중을 위해 하는 자가 되려 푸대접받는다면 누가 자발적으로 공익 활동에 나설 것인가라는 회의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3. '신고정신'의 옹호와 파파라치와의 구분
마지막으로 글쓴이는 개인의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공익적 신고 행위 자체의 가치는 인정합니다.
파파라치와의 선 긋기: 악랄한 신고꾼이나 파파라치 제도를 두둔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습니다.
신고의 본질적 가치: 그러나 대다수 공중 사회를 위하여 크게 위하는 일이 된다면, 신고 정신이나 여러 사람의 힘을 모으려 알리는 행위는 크게 나쁜 것이 아니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개인의 실리보다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필요한 행동임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양심입니다.
이 글은 공익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거나 심지어 질책받는 사회의 모순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제도가 개인의 선의를 보상하기는커녕 짓밟는 현실이야말로, **'밥거리가 되지 않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글쓴이의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됩니다.
결국 공익을 위한 개인의 행동이 보상받기는커녕 오히려 처벌받는 이러한 모순적인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포수'가 되면서도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무엇 하나의 각도로만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세상에 대한 다각적 시선: 입체적 인식의 결론
제시된 일련의 글들과 마지막 문장은 결국 **우리가 사는 세상이 '무엇 하나의 각도로만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임을 강하게 역설하며 전체 논의를 마무리 짓습니다.
지금까지 글쓴이는 세상의 모순된 현실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은 다양한 관점들을 제시했습니다.
철저한 이분법적 관점:
개인 대 제도: 감화는 세뇌이며, 순종자는 노예가 되고, 지배자는 포수가 된다.
선악 대 실익: 권선징악이나 보살의 이념도 결국 지배자가 실익을 챙기기 위한 위장된 전술이다.
냉혹한 현실주의적 관점:
성공은 빠른 셈과 이용할 줄 아는 지혜에 달려 있다.
노력(공부)보다 **운(시험에 아는 문제만 나옴)**이나 요령이 결과를 좌우한다.
회의적인 운명론적 관점:
개인의 능력(두뇌)을 넘어 **'선택받음'**이나 숙명적인 것이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
주위 환경과 대세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므로, 개인의 의지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
비관적인 모순론적 관점:
세상은 불공평하며, 선행이 재앙을 부르고 악행이 복을 받는 모순이 가득하다.
공익적 신고가 오히려 질책을 당하게 하는 등, 제도가 선의를 짓밟는 역설이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이 모든 주장들은 세상에 대한 단일하고 단순한 해석을 거부합니다. 세상은 지배와 피지배의 투쟁이면서 동시에 운과 환경에 좌우되는 불확실성의 영역이며, 합리적인 실리 추구와 비합리적인 모순이 뒤섞여 돌아가는 곳입니다.
이러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실을 이해해야만, 글쓴이가 경계했던 '순수한 밥거리'나 '맹목적인 추종자'가 되지 않고, 주체적인 삶의 자세를 지킬 수 있다는 통찰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이성과 모순, 노력과 운명, 개인과 공동체라는 여러 축이 얽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곧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입체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가 '포수'와 '밥거리'라는 구도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