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GfgBORsUhW4?si=iIg3iT0JnR-eAcQz
Liszt: Piano Sonata in B minor, S.178 · Krystian Zimerman
리스트 계열 피아니스트의 계보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피아니스트라는 말은 작곡가란 말과 같은 선상에 있었다. 모차르트, 베토벤 등의 대 작곡가는 동시에 명 피아니스트였다. 지휘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이후에 작곡과 피아노 연주가 분업화되기 시작했는데 그 전문 피아니스트의 선구자로는 한스 폰 뷜로우(1830-1894)를 꼽는다. 그는 베를린필의 초창기 지휘자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직업적인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의 계보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보다 조금 전의 사람인 카를 체르니를 먼저 언급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대로 체르니는 음악사를 장식하는 명교사였다.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지만 그 중에서도 프란츠 리스트(1811-1886)와 테오도르 레세티츠키(1830-1915)는 음악 사상 가장 큰 피아노의 인맥을 형성한 사람이다.
리스트의 제자 중에는 모리스 로젠탈(1862-1946), 에밀 폰 자우어(1863-1942),오이겐 달베르(1864-1932),프레데릭 라몬트(1868-1948), 인슈트반 토만(1862-1940) 등이 있으며 앞서 말한 한스 폰 뷜로우도 이 계열에 있다.
뷜로우는 이후 하인리히 발트라는 명교사를 배출했고, 발트는 아르투르 루빈슈타인과 빌헬름 캠프라는 20세기 거장을 길러냈다. 달베르트는 '건반의 사자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빌헬름 박하우스와 요제프 호프만 등을 길렀고, 헝가리 출신인 토반 문하에는 에르네 도흐나니, 벨라 바르토크 등이 있었는데, 도흐나니는 다시 아니 피셔, 기오르규 치프라 등을 길러낸다.
체르니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흐름은 레세티츠키 계열이다. 그의 제자 중엔 나중에 폴란드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이그나츠 얀 파데레프스키같은 사람이 이었다. 이 계열은 리스트 계열에 비해 더욱 화려하고 자유스런 해삭을 존중했기에 강력한 주관을 가진 스타일리스트들이 이 흐름에 포진해있다.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의 주인공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시하여 벤노 모이세비치, 미에치슬라브 호로초프스키, 알렉산더 브라일로프스키, 베토벤 전문가 아르투르 슈나벨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리스트, 레세티츠키와는 별개의 맥락으로 형성된 흐름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였다. 파리음악원의 앙토완 프랑수아 마몽텔(1816-1898)에서 시작하는 이 흐름은 루이 디에메(1843-1919)를 거쳐 위대한 피아노 교사 마르그리트 롱, 알프레드 코르토, 이브 나트, 로베르 카자드쉬, 블라도 페를레뮈테르, 그리고 쇼팽의 달인 상송 프랑수아 등의 명연주자들을 배출해냈다. 루마니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활동한 여성 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은 모차르트의 세계를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도록 연주해냈다. 같은 루마니아계인 디누 리파티는 불꽃같은 인생을 연소시키면서 쇼팽과 슈만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피아니즘은 안톤 루빈슈타인의 전통이 거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로 이어지고 다시 알렉산드르 골덴바이저, 겐리히 네이가우스, 시몬 바레르, 레프 오보린 등을 낳는다. 이들에 이어 20세기 중반 피아노계의 전설을 이룩했던 거장들이 나열된다. 러시아적 스케일이 무엇인가를 들려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마지막 낭만주의자'로 불렸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바흐 음악의 대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강철같은 터치를 자랑하던 에밀 길렐스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서방 세계에 펼쳐놓은 파장은 가히 원자폭탄에 비할 만 한 것이었다. 호로비츠가 남긴 65년의 카네기홀 복귀 연주회나 86년 모스크바 귀환 연주회 실황은 그 자체로 전설적인 이야기였으며, 40세가 넘은 나이에 비로소 서방 세계에 드러낸 리히테르의 모습 역시 엄청났다.
2차 대전 후의 미국은 어느 분야에서나 그랬지만 각국에서 귀화한 연주자들로 들끓었다. 미국 피아노계의 선두주자로 활약하다가 요절한 윌리엄 카펠을 위시하여 카잘스의 양아들 유진 이스토민, 제 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우승한 '텍사스의 영웅' 밴 클라이번 등이 있었고, 개리 그라프만, 레온 플라이셔, 얼 와일드, 루돌프 제르킨 등이 미국 음악에 주역이 되었다. 레세티츠키의 말년 제자인 미에치슬라프 호르초프스키는 100살이 넘도록 활동하면서 그 고고한 음색을 들려주었다. 현재에 이르러선 머레이 페라이어라는 걸출한 피아니스트를 내놓았다. 그의 모차르트와 슈베르트 연주가 주는 투명한 정감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이지만 98년 들어선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를 녹음하여 또 한번 감탄사를 던지게 만들었다.
피아노 음악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독일에선 박하우스의 뒤를 이어 발터 기제킹이라는 거인이 있었다. 동구 출신들의 약진도 주목할 만하다. 슈라 체르카스키는 80세가 넘도록 살면서 고풍스런 시정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알프레드 브렌델, 헝가리 출신의 타마스 바샤리와 졸탄 코치슈는 명실상부한 피아노계의 장로로 남아 있다.
이탈리아에는 미켈란젤리라는 '건반의 수도승'이 있었다. 그가 들려준 지극히 투명하면서도 세밀한 음화는 다시 태어날 길이 없다. 그가 잠시 가르친 바 있는 마우리치오 폴리니 역시 제네바 콩쿠르, 쇼팽 콩쿠르를 사상 최연소 나이로 휩쓸면서 피아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영국에는 마이라 헤스라는 여왕이 있었으며, 커트너 솔로몬, 클리포드 커즌, 존 옥던 등이 있어 아카데믹한 해석과 탁월한 테크닉을 선보일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에는 폴란드 출신의 아르투르 슈나벨이 있었다. 그가 들려준 베토벤 연주는 SP 시절 필청판 중의 하나가 되었다. 뒤를 이어 그 유명한 빈 삼총사 프리드리히 굴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 외르크 데무스가 종횡무진으로 활약했다. 특히 '기인' 굴다는 베토벤,모차르트의 세계에서 듣는 이를 매혹시킨만큼 재즈 음악계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있다.
가장 재미있는 일은 음악적 변방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태어나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 일이다. 칠레의 클라우디오 아라우가 그랬으며, 스페인의 알리시아 데 라로차가 그랬다. 아르헨티나의 여성 영웅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도저히 여성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힘과 스케일로 차이코프스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을 선사했다. 90년대 들어 포르투갈의 마리아 조앙 피레스가 들려준 모차르트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들 '변방의 인물' 중에서 가장 전설적인 인물은 역시 캐나다의 글렌 굴드였다. 이렇다할 스승도, 유파도 없이 나타난 굴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자, 그렇다면 브렌델이나 폴리니, 아르헤리치, 페라이어같은 거성들 이후의 피아노계는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30대에서 40대 초반의 젊은 비르투오조들의 면면을 살펴볼 때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역시 러시안 스쿨의 후예들이다.76년 몬크리올 콩쿠르에서 우승한 니콜라이 데미덴코, 73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우승자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85년 쇼팽 콩쿠르에 우승한 스타니슬라프 부닌, 87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인 릴리야 질베르슈타인, 90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우승한 보리스 베레초프스키, 91년 에이버리 피셔상을 수상한 예핌 브론프만 등이 모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지휘자로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미하일 플레트뇨프가 있으며, 여전히 관심의 초점이 되는 에프게니 키신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젊은 연주자 중엔 러시아 출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크리스티안 침머만은 75년 쇼팽 콩쿠르에 최연소 우승하면서부터 일찌감치 음반계의 주목을 받았다. 쇼팽, 드뷔시 작품에서보여준 그의 서정성은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다. 유고 출신의 이보 포고렐리치나 핀란드의 올리 머스토넨은 대단히 주관적인 해석을 들려주지만 그만큼 매혹적인 것도 사실이다. 피아노의 장을 맺기 전에 언급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20세기 후반들어 부활한 포르테 피아노다. 포르테 피아노는 18세기 후반에 하프시코드를 밀어내고 태어난 피아노의 원형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대규모 콘서트홀에서의 연주를 위해 스타인웨이를 위시한 그랜드 피아노들이 탄생하면서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나는가 싶었는데, 원전악기 연주자들의 설득력이 커지면서 다시 많은 레코딩에 사용되고 있다. 이미 파울 바두라 스코다나 외르크 데무스같은 노장들이 포르테 피아노를 사용하여 연주한 적 있었고,현재에 이르러선 맬컴 빌슨, 스티븐 루빈, 맬빈 탕, 안드레아스 슈타이어 등이 당대의 음악을 연주할 때 즐겨 사용한다.그러나 이 시대에 있어 포르테 피아노로 가장 주목받는 연주자를 들라면 아무래로 네덜란드의 요스 판 임머젤과 미국의 로버트 래빈을 들어야 할 것이다.
글쓴이 : 베토벨라
https://youtu.be/mjJvqKTo7Pw?si=OATrEQSEZk9HWEYp
Liszt - Venezia e Napoli - Rich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