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속에서 요세미티 버늘 폭포에 오르는 하이커들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버늘 폭포(Vernal Falls)는 ‘봄날의 폭포’라는 뜻이다. 늙은 부부에게는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야릇한 설렘이 고개를 든다. 지팡이 짚고 땀을 줄줄 흘리며 산에 오르는 아내가 딱해 손을 잡아 주었다.
“지팡이가 있는데 내가 당신 손잡을 필요가 뭐 있어?” 아내는 내 손을 매몰차게 뿌리치며 억척스러운 척한다. 아내가 산에 못 올라가겠다고 하면, 나도 늙은이 축에 끼어, 계곡물에 발이나 담가야 할 판이다.
‘노약자 되돌아가는 쉼터’라는 간판이 나타나자,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지르며, 가장 예뻐 보이는 앞면을 펼쳐 보인다. 젊은이들은 쌍지팡이를 짚고 씩씩하게 정상으로 향하건만, 아내는 한계라는 듯 바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난 여기까지야. 더 올라갈 힘도 없고 가치도 없어” 여기까지 왔으니 나는 폭포 정상을 정복하고 싶은데, 그냥 돌아서기가 너무 아쉬웠다. 무관심한 척 뜸 들이며 아내를 대동하고 숲을 여기저기 둘러봤다. 나뭇가지에서 블루버드 한 마리가 머리에 쓴 관을 까딱거리며, 부리로 우리들의 코를 톡톡 가리킨다.
“네가 노약자니? 촐싹촐싹 지금 제일 짹짹 젊은 날이야, 촐싹 올라가 봐”
우리 부부도 낄낄 웃었다. 아내가 슬그머니 의욕을 되찾는다. 깊이 고민하던 아내가 드디어, 지금까지 올라왔듯 쉬엄쉬엄 오르기로 결정했다. 나는 잘 생각했다며 아내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가파른 계단과 거칠게 다듬은 야생 바위 산길이다. 발목을 삐기도 십상이고, 넘어지기도 쉬웠다. 한참 올라가니, 폭포에서 생긴 물안개가 굵은 소나기로 되어 마구 쏟아졌다. 산이라 추워진데다, 바람도 강해졌고 소나기도 점점 심해졌다. 모두 물에 함빡 젖었다. 계단은 미끄럽고, 굴곡이 심했다. 쌍무지개가 여기저기 떠올랐다. 눈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소나기가 코와 입으로 쏟아 붓는 물벼락 때문에, 사레가 들어 숨도 못 쉬고 캑캑거린다. 진퇴양난의 일대 소동이 시작되었다. 어서 발을 떼어, 한 발짝이라도 더 빨리 위로 올라가는 것이 이 고난을 극복하는 최상의 길이다. 당황한 아내가 아우성을 치며, 눈 감고 허둥지둥 허공을 휘젓다가 내 손을 잡았다.
큰일 났다. 나도 숨을 쉬어야 정신을 차릴 수 있고 눈을 뜨고 길을 내려다봐야 발걸음을 뗄 수 있는데 말이다. 물벼락이 얼굴을 마구 뒤덮으니 질식할 지경이지만, 그보다도 문제는 너무 추워서 얼어 죽게 생겼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올라가야, 과다 체온강하를 막을 수 있겠다. 그러나 공포에 지쳐 눈 못 뜨는 아내를 보니, 아무리 춥고 숨이 막혀도 에너지를 모아 가지고, 다시 올라가야 될성 싶었다.
언뜻 큰 바위를 발견하고 그 밑으로 아내를 낚아챘다. 거기서 폭우를 피하며 서로 얼굴을 닦아 줬다. 너무 추워서 꾸물거릴 수가 없다. 다시 출발하려고 채비를 차렸다.
겁먹은 아내가 허겁지겁 내 손을 움켜잡았다. 혹시라도 내가 혼자 출발할까 봐 두려웠나 보다. 동화 속의 어린애들이 마녀의 동굴을 탐험하러 가면서, 괴이쩍은 요정과 심한 물 전쟁을 한바탕 치르는 것 같았다. 추위와 물벼락 때문에 오물 독에 빠진 햇병아리 꼴로, 덜덜 떠는 아내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내를 길에 세우고 바위 뒤에서 카메라를 열었다.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아내와 나 사이에 무지개가 뚜렷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선명하고 아름다운 무지개 뒤에서, 겁먹은 아내가 억지 미소를 만드니, 인식하지 못했던 새로운 매력이 보였다. 여자는 역시 드센 것보다는 겁에 질려 약간 멍청해야 좋다. 두려워서 덜덜 떨고 주눅이 들어 어리빙빙해야 더 예쁘다. 냄새는 매콤 칼칼하고 색깔은 추위에 눌려 다소곳한, 봄꽃이 풍기는 자태 같아서 호기심이 당긴다. 나도 모르게 만족한 미소가 치밀고 올라왔다. 자기를 끌고 올라가 줄 남편에게 아첨해야 하기 때문에, 정성 들여 만들어 낸 순진한 소녀상일까? 셔터를 누르는 내 심장이 아직 젊다며 마구 벌름거렸다. 피로와 공포와 추위에 짓눌린 해말간 어린 선녀의 수줍은 미소였다.
옆으로도 위로도 급경사로 심하게 비탈진 오솔길의 연속이다. 좀 힘들더라도 안전을 위해, 아내를 더 험한 길 위로 밀어붙이며, 내가 밑쪽에서 걸었다. 혹시 아내가 미끄러지면 내가 밑에서 잡으려는 속셈이다. 걷는 것도 아니고 산 풀을 쥐어뜯고 할퀴며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는 것이다. 더듬더듬 풀을 움켜잡고 밀고 기고 에두르며, 오르고 또 뭉겼다. 갖은 고생 끝에 산 중턱인 폭포 꼭대기에 오르니, 따가운 햇살이 가슴을 녹여준다. 다리 짤막한 캘리포니아 다람쥐들이 한꺼번에 덤벼들며 먹을 것 좀 내놓으라고 엉겨 붙는다. 발로 슬금슬금 밀어도 부득부득 사람에게 달라붙으며 치근덕거린다. 나 먹을 점심이라도 나누어 먹어야겠다. 봄날의 폭포에서 가을날의 중늙은이들이, 젊은이들 틈에 끼어, 회춘했던 기분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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