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2.25.목. 삼일독립운동에 대한 사목활동을 보태면서. 유낙준모세주교.
“주님이 나를 보내시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가4:19).” 주님이 주님의 사람들을 구할 시간이 온다고 주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세상에 보내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신앙심, 열정, 헌신으로 사시는 성공회 사제
1. 우리 시대에 성공회 사제로 산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처럼 살고자 성공회 사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하여(1고린7:24)” 하느님을 이해하고 믿습니다. 모든 곳에 하느님이 계시기에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하느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깊이 이해함으로 다른 사람의 이해를 깊이 하고 하느님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제는 자신의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하는 것을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둡니다. 그래서 사제는 사람들의 노예로 사는 길과는 다르게 “그리스도의 노예로 살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로 사는 것입니다(1고린7:22).” 사라질 기쁨이 아니라 무한한 기쁨을 주시는 하느님이 계신 곳을 기억에서 잊는다면 하프를 연주할 오른손이 말라버릴 것이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 노래를 하지 못할 것입니다(시편137:5-6 참조). 사람에게서 흥이 사라지면 사는 맛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는 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제는 자기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사는 흥을 주시는 분입니다. 현실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찌든 가난이 주는 분노보다도 순수한 웃음과 밝게 사시는 하느님의 사람인 사제로 사시는 당신은 하느님의 은총의 표본입니다. 재미가 있고 노래가 있는 사제의 삶을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2. 이번주 초에 교육부와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장을 만난 자리에서의 대화가 있었습니다. 모 기업이 학교를 세웠었는데 자신의 기업 이미지를 높이려고 만들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다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공부를 서당에서 배우는 시대에 신학문을 배우는 학교가 세워졌는데 그 학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은 그러한 학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학교이름이라는 것을 몰랐다고 하며 학교이름에 대하여 알게 되어 고맙다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역사와 전통을 알지 못하면 눈앞에 있는 현상에만 집착하여 이해를 다르게 할 수 있다는 이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1907년도에 세워진 성공회 부대동성당에서 세운 학교가 북일학교였습니다. 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신 이가 김종희 한화기업을 세우신 분이십니다. 신학문을 공부한 기억으로 북일고등학교를 천안에 세우신 것입니다. 또한 1908년에 세워진 성공회 병천성당에서 세운 진명학교의 교사들이 3.1운동의 핵심조직이었다는 것입니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날 일본경찰들이 쏜 총에 교사들이 처음에 많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1907년에 세워진 성공회 진천성당의 전도부인이 진천의 산에 올라 봉화대에 불을 지펴 3.1운동의 거사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병천에 알렸다는 것입니다. 성공회 병천성당의 지하에서는 태극기를 등사로 하여 만들어서 풍세와 오지인 광덕까지 배포했습니다. 이렇게 삼일독립운동이 이 지역에서는 진천과 병천이 긴밀하게 연결하면서 성공회의 성도들의 조직에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료를 제게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역사는 기록으로 잘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경찰에 발각되지 않으려고 남모르게 하는 독립운동은 자료가 남으면 안 되기에 우리에게는 기억장치로만 자료가 있을 뿐입니다. 1919-2021으로 삼일독립운동이 후손에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3. 코로나-19로 인하여 처음 확산된 지역이 대구시였습니다. 이에 대해 동네단위에서 방역활동을 긴밀하게 움직이게 한 곳이 대구 성서 공동체방송국이었다고 합니다. 감염차단과 방역조치에 대해 촘촘히 알리는 역할을 공동체방송국이 잘 하여 행안부에서도 인정을 했다고 합니다. 관악, 마포, 성남, 금강(공주), 광주시민(광주 북구), 고려(광주 광산구) 풍산(예천), 영주의 라듸오방송국이 공동체방송국으로 출범했습니다. 이에 올 3월 초에 공동체방송국의 전국에서 신청을 받아 공동체방송국이 위기대처에 중요한 기구로 인식한 모양입니다. 광주에서는 두 개가 도시 안에서 공동체방송국을 운영하고 있고 서울에서도 지역활동이 활발한 마포성산에서 공동체방송국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교구에서는 예산성당이 이를 준비하여 지역주민과 결합된 마을교회로 선교의 비젼을 세우고 있습니다. 세종에 방송국이 생기면 좋을 것입니다. 이미 공간이 있다면 실제 방송장비를 마련하는 정도이고 초창기이니 지원도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공동체방송국이라는 곳을 찾으면 두루 활동한 이야기를 알게 될 것입니다. 사순절기인데 방송국 세우기로 이 절기를 보내는 것은 아닌지요? 도전이 없다면 이루는 것도 없으니 서당에서 학교로 움직여 볼까요?
4. 한반도 선교의 초창기의 자료집을 모닝캄지의 번역으로 10권만 출간되었습니다. 우리교구에 한권을 받았고 기억장치로도 받았으니 필요하시면 기억장치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구세실주교님이 사목일기를 영어 필기체로 쓰신 것이 성공회대학 역사자료관에 있다고 하여 이를 번역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한반도에 가장 복음적인 사역활동을 하신 구세실주교님은 한반도에 성공회 교회를 가장 많이 세우신 분이셨습니다. 저는 구세실주교님처럼 복음을 전도에 열성을 다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구세실신부님은 부대동성당에 1910년도에 부임하셔서 북일학교에서 김종희학생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시에 서울대성당에 계시다가 잡혀 북으로 가셨고 영국에 도착하시기까지 무진장 고생을 하신 우리의 주교님이십니다. 이렇게 구세실주교님의 한민족에 대한 복음의 열정을 우리가 잘 이어받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아울러 대전교구의 한인 첫 주교이셨던 배두환마가주교님의 선교여정을 기록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서울교구의 첫 한인주교이신 이천환주교님의 기록이 작년에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우리 대전교구도 배두환주교님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나눔의집 사제로 활동을 할 때 대전지역의 어르신리더들을 만나면 대다수 배두환마가주교님을 아셨습니다. 대전지역의 리더들을 만나 성공회에 대전지역의 지식인, 의사들이 많이 신도가 된 것입니다. 아마 배두환주교님 시기에 대전시의 지식인들이 가장 많이 모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주교로 대전시의 리더들을 성공회 성당으로 모이게 하려고 하지만 힘에 부칩니다. 그래서 배두환주교님의 선교열정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배두환주교님은 아들과 사위가 성공회 사제로 활동하시고 계십니다. 배두환주교님의 선교의 발자취를 기록하여 후손들이 기억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하느님의 사람을 활동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흥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사람으로 신앙심과 열정과 헌신으로 사신 구세실주교님과 배두환주교님의 삶을 기록하여 책으로 발간하여야 합니다.
5. 사제가 부임하는 곳마다 안 싸운 적이 없는 사제의 삶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싸움을 못 하기에 싸움을 피하고 도망가는 사람입니다. 바르게 세우기 위해 싸움을 한다는 이유가 분명하더라도 사제는 싸움하지 않고 바르게 세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싸움을 하면 사제 스스로가 속이 무진장 아프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목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서로를 불쌍하게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잇속에 빠질 때는 제 주장만하게 됩니다. 성공회의 라틴어 기도가 사제의 마음에 늘 머물기를 바라며 기도를 올립니다. “기리일레이손 Kyrie eleison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