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이야기를 수필 '왜목마을에서' 발표하면서 먼 훗날 그 친구가 자신의 시집을 들고
방긋 웃으면서 다가오는 듯한 상상이 든다는 내용을 썼는데, 실제 너무나 뜻밖에도 첫시집을 출간해서다.
그 친구는 지난 1년 동안 열심히 읽고 쓰며 남다른 노력을 했던 것이다.
- 전화 저편에서 다소 상기되어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훗날 자신의 시집을 들고
방긋 웃으면서 다가오는 듯한 상상이 들어 괜히 내 마음도 설레었다. - 본문에서 발췌
어제 출판사에서 시집 원고 마지막 교정을 보는데,
내 앞에서 볼펜을 들고 자신의 시를 심오하게 읽고 있는 그녀가 대단해보였다.
그리고 그 친구가 고마웠다. 그 불볕 더위에 멀리 갔다오느라고 나는 그날 더위 먹어서 며칠 고생했지만
그 시간들이 정녕 보람있는 시간으로 환원을 시켜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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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목마을에서
- 리아
나는 가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묘연해질 때가 있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생을 이어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건 내가 게으르기 때문에 생성되는 잔여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간절히 하고 싶었던 것을 찾아서 한다면 내게 더 이상의 무의미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기는 나는 자주 책을 읽으며 마음의 위로를 받곤 한다. 책 속에서 좋은 표현은 메모해 놓곤 했는데, 이 또한 글을 쓰는데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인들한테도 독서와 글쓰기를 권하며, 아울러 쉽게 어필할 수 있는 <감성도시연구원> 고무열 원장의 말을 인용한다.
- 인생을 잘 사는 데는 돈도 중요하지만, 품격과 교양이 겸비된 삶이어야겠지 요. 지금은 획일화된 산업화 시대를 지나 개성이 강조되고 '내가 나를 대표하 는 세상' 나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개선하며 사는 시대입니다
기습적인 폭염이 한창이던 지난해 7월, 충남 당진에 사는 친구 B에게서 연락이 왔다. 왠지 마음이 공허하다면서 더위도 식힐 겸 당진시 석문면 왜목마을 해변에서 1박 어떠냐고 물었다. 나는 만사를 제치고 달려갔다. 친구는 남편의 고향인 당진시 외곽 구룡리에 농장이 있는 전원주택에 산다. 하지만 친구는 전원생활이 너무나 단조롭다고 번번이 말했던 것이 생각나서 글쓰기를 권해볼 참이었는데 마침 연락이 온 것이다.
당일 오후 3시경 고속버스가 당진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친구 부부가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는 곧바로 20여 분 달려 왜목마을 해수욕장에 도착, 친구 남편은 지인과 약속이 있다며 우리를 숙소 앞에 내려주고 이튿날 다시 오기로 하고 떠났다. 눈 앞에 펼쳐진 드넓은 푸른 바다와 잘 정돈된 해변이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친구는 짐을 챙기고 내게 해변을 걷자고 제안했다. 목조로 된 수변 데크를 걷는데 머리 위에는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철썩대는 파도 소리는 귀를 시원하게 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78F3A5DD5D041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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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큼 걸었을까, 파도 소리에 취해 걷고 있는 내게 친구가 수줍은 듯이 한 편의 시를 내밀었다. 감성이 풍부한 친구는 수첩을 갖고 다니면서 늘 뭔가를 적더니 처음 쓴 시인데도 감동이 일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 시를 그녀 남편 카톡에 보내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친구 남편은 카톡을 보자마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 당신이 쓴 시 맞아? 이제 보니 당신 시인이네!” 친구는 남편의 칭찬에 용기를 얻은 듯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실은 글쓰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나를 초대했다며 와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친구는 대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병환으로 갑자기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다. 그런데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지금의 남편인, 대학 4학년 재학 중이던 선배에게서 위로를 받으며 사랑에 빠져 대학 재학 중에 결혼했다. 하지만 어린 신부가 학생 남편 뒷바라지에다 고된 시집살이를 해서인지 아들, 딸이 결혼해서 벌써 손주가 있음에도, 친구는 걸핏하면 결혼하기 전에 아버지와의 애틋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그 당시를 그리워했다. 내가 친구에게 글쓰기를 굳이 권하는 것도 결혼생활에 묻혀버린 그녀의 젊은 시절을 찾아주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니 기회가 될 때마다 말했다. “친구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쓰면 좋을 거 같은데 한번 써봐.” 그러나 친구는 이 나이에 詩는 무슨 시를 쓰냐고 손사래를 치며 펄쩍 뛰었다. 나는 재차 “뭘 어렵게 생각해? 나에게 카톡에 보내는 메시지처럼 쓰면 돼.”라고 말하며, 마저리 홈스의 『살며 사랑하며 글을 쓴다는 것』에 나오는 문장을 캡처해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처럼 시를 써온 것이 반갑고 고맙기조차 했다.
나는 그날 밤 숙소에서, 그녀의 스마트폰에 블로그를 개설해주고, 친구가 블로그에 시를 잘 쓸 수 있도록 ‘글쓰기’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다행히 친구는 흥미 있어 했고 잘 따라 했다. 이튿날 친구는 서해 왜목마을에서 유명한 일출(日出)을 보며 다시 한 편의 시를 썼다. 다음에 인용되는 친구의 시「왜목마을 일출」은 ‘시에문학회’ 주관 ‘2018 천태산 은행나무 걸개시화전 및 천태산 은행나무 시모음집’『천태산 부처』에 게재되었다.
해뜨고 지는
왜목마을
바다, 파도, 모래, 달
따사롭고
정감 어린 시인의 시어처럼
파도가 철썩인다.
마음의 창을 여는
새벽녘
만남과 소통의 여문 결정체인 양
붉은 아침해 오늘도 여여히 떠오른다
-「왜목마을 일출」전문
친구는 그 후 하루도 빠짐없이 시 짓기를 한다. 때론 학창시절에 즐겨 암송하던 명시부터 본인이 짓는 시까지 하루를 시로 시작하고 있는 듯했다. 혼자 시 쓰기를 계속하는 친구에게 ‘시 창작’ 강좌 수강을 권했다. 얼마 후 친구는 서산 문화센터 시창작 교실에 등록했다고 연락해왔다. 전화 저편에서 다소 상기되어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까 훗날 자신의 시집을 들고 방긋 웃으면서 다가오는 듯한 상상이 들어 괜히 내 마음도 설레었다.
이렇듯 자신의 삶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개선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2019 시에문학 반년간지 <시에티카> 봄호 수록
▼아래 사진은 2019 여름 < 대천해수욕장>에서
![](https://t1.daumcdn.net/cfile/cafe/99F31F415DD5D09B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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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친구옆에는 좋은 친구가 있군요.
아름다운 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소정님 댓글 감사드려요.
해변에서 1박2일동안 친구가 밤새 시집살이 하소연해서 들어주느라고
저는 이튿날 입이 부르텃답니다. ㅎㅎ
잠도 많은데다, 매일 혼자 조용히 있다가 친구가 밤새 이야기해서 잠 못자고해서요. 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