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에세이 [울산광역매일]울주 시니어 스내그 골프에 거는 기대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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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red>울산광역매일</font>≫ <광역 에세이> 울주 시니어 스내그 골프에 거는 기대

막상 정년퇴직하고 나니 마땅하게 갈 곳이 없었다. 가까운 곳에 노인복지관이 있고 다녀도 될 충분한 조건이 되지만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머뭇거리다 삼 년을 보내고 용기를 내어 노인복지관에 입문했다. 나에게 입문의 용기를 준 것은 <또래오래 상담봉사단>을 모집한다는 노인복지관의 공고였다. 육 개월의 교육과정을 수강하면 같은 또래의 노인들 고민을 상담하는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상담사 자격이 주어진다는 그럴듯한 명분이 동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퇴직 이후,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돌아보니, 열심히 했다고 자부할 만큼 치열했다. 그러나 그 열심 70년이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었다. 전체 삶의 십 분의 일이라도 남을 위하여 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교육이 끝나고 나니 기대와는 다른 결과였다. 노인들의 고민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고민이 있더라도 같은 또래의 노인에게 상담받기를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을 위한 삶으로 내 인생의 일 할을 채우려고 좋아하는 술까지 끊었는데… 남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결심, 노인이 노인을 보살피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노인복지관에 대해 서먹함이 없어졌고, 새로운 여러 과목을 열심히 수강할 수 있었다. 또 노인에 대하여, 노인복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노인복지관에 나오는 노인은 그래도 축복받은 노년이다. 요양원에 있는 노인, 병원에 입원 중인 노인, 자력으로 노인복지관에 올 형편이 되지 않는 노인, 그리고 동네 경로당에 있는 노인들보다는 형편이 좋은 노년을 보내는 곳이 노인복지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인복지관에 오는 사람들조차도 차이가 심하다. 경제력, 건강 그리고 지식수준 또한 천차만별이다.


스내그 골프라는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생소한 단어들, 난생처음 접하는 종목 그리고 처음 보는 도구들, 처음 듣는 이름. 들어본 단어라고는, 강사가 하는 말 중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골프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어떤 노인이 딸에게 노인복지관에서 골프를 배운다고 자랑을 한 모양이다. 오십 대의 딸이 무슨 골프인지 선생님에게 다시 물어보고 오라고 했던 모양이다. 노인은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 놓은 것을 휴대폰 사진기로 찍어 딸에게 보여주며 ‘바이스엔골프’를 배운다고 했단다. 딸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노인에게 새로 생긴 좋은 운동이라며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그 노인이 찍은 사진에는 ‘바이스 엔 골프 아카데미’라고 강사가 자기소개하면서 흑판에 적어준 소속된 회사 이름이었다. 그래도 그 노인은 바이스엔 골프를 배운다고 약간 틀리게 말이라도 하지만, 다른 많은 노인은 무엇을 배우고 있는 지 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주변에 젊은 자식이 있는 노인은 물어볼 곳이라도 있지 싶다. 노인도 유치원생처럼 알림장을 만들어 자식에게 보여주면 좋을 텐데 싶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알림장에 “산가지 준비해 오기”였다. 산가지는 살아있는 가지인 줄 알고 시장바닥을 헤맸지만, 그때가 겨울철이라 허사였다. 결국 학교 앞 문방구에 알아보니 계산할 때 쓸 수 있는 작은 플라스틱 막대기를 비닐봉지에 담아 팔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성냥개비를 가지고 계산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노인과 어린이의 말에는 통역이 필요한 모양이다. 


작년부터 시작한 스내그(SNAG) 골프는 노인들에게 인기가 대단하다. 기회의 균등이란 이유로 작년에 배웠던 노인은 전원 탈락하여 대기자로 남고 올해는 전원 신규로 채워졌다. 우여곡절 끝에 노인복지관 내에 노인이 노인을 보살펴 복지를 증진하겠다는 목적으로 ‘울주 시니어 스내그’라는 동호회를 만들었다. 울산광역시 체육회, 울산광역시 스내그 골프협회 등 뜻있는 단체의 후원을 받기로 했다. 그 모임의 대표로 내가 뽑혔다.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노인 알림장, 또는 노인 통역사는 할 수 있겠다 싶다. 시내버스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은 정작 또래의 노인 중에 건강이 조금 나은 사람이 아니던가. ‘또래오래 상담봉사단’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울주 시니어 스내그’에서 이룰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