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자란 풀을 매면서 둘째가
" 아빠 ! 작물 중에서 농사짓기 제일 편한게 무엇인가요 ? "
" 콩이란다. "
" .......... "
" 아빠 !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작물은 무엇인가요 ? "
" 콩이란다. "
" .......... "
" 아빠 ! 돈을 제일 잘 버는 작물은 무엇인가요 ? "
" ............ "
" 콩은 아닌 모양이죠 ? "
" ............. "
우리네 농촌에서 정작 좋은건
바다 건너 악랄한 이들에게 다 빼앗기고
돈을 쫓아 눈이 먼채로 헤매다 몸부림 치다 보니
밀농사 보리농사 콩농사 이제 쌀농사까지
그것도 모자라
농사지을 땅까지 모조리 없어질 판이다.
무얼 먹고 살라고 ...
언제까지만 살고 말라고 ...
눈이 맑은 아이들 세대엔 어찌 하라고 ...
풀천지 농사는 포기하는 법이 없다.
악착같이 씨를 받고 뿌리고 관리하고 거두고 ...
조금 떨어진 산밭에 며칠전 밀을 베고
이제 콩모종을 옮겨 심을 때다.
산밭이라 날짐승 피해도 줄이고
때도 늦지 않도록 우리도 콩 모종을 뿌려 본다.
어김없이 잘 자란 메주콩 ( 그루콩 ) 과 쥐눈이 콩 모종들을
오늘 장마가 온다는 소식에
물주는 수고를 덜기 위해 서둘러 캔다.
일의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밀을 베고 난 후 로터리를 치고
큰애랑 손쟁기로 며칠전에 골을 타두었다.
요즘은 워낙 마른 땅이라 비오면 심기 위해 ...
모를 잠 심는 아내가
잽싼 손놀림으로 콩모종을 놓아 나간다.
뒤따라 가며 괭이로 슬슬 묻어 나간다.
약초 종자도 들깨 모도 이런식으로 심는다.
작은애가 부지런히 모를 날라주면
아내와 큰애가 간격맞춰 놓아 나가고
내가 괭이로 슬슬 묻어 나간다.
전혀 힘들게 없으니 즐거 울 수 밖에 ...
큰애는 먼저 내려와 남은 콩모종을 마저 캔다.
손은 느려도 꾸준한 심성은
이미 자연의 모습이 다 되었다.
땅은 말라 있고 장마비라도 기다리는데
되려 햇빛이 나고 마음은 급한데
반가운 손님은 찾아 오고 ...
멀리까지 가서 점심식사후
남은 모종을 캐서 올라가 보니
먼저 심은 콩모종이
땅에 바싹 말라붙어 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짓는 농사일은
어느것 하나 맞아 들어가지 않으면
낭패보기 쉽상이다.
다행히 늦은 오후
비가 몰려 오더니 이내 쏟아지기 시작한다.
서둘러 콩을 심는데
나중엔 발이 푹푹 빠진다.
장마라니 미룰 수도 없고 서두를 수 밖에 ....
괭이에 젖은 흙이 자꾸 달라 붙으니
묻는게 힘들어 진다.
날은 어두컴컴해 지고 비는 계속 퍼부어 대는데
악착같이 들깨모종까지
이리저리 마저 옮겨 심었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며
비오는 어둔밤에 청승떠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서도
이젠 당연한 듯 여긴다.
그들을 포기시킨 풀천지의 무모함은
당연히 게으르고 무식한데서 오는 결과이다.
서로를 아끼고 믿는 소중한 가족애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거리낄게 없으니
우리의 고생이 보람이 되어
늦은 저녁 밥상에 작은 행복이 된다.
내일 날이 밝으면 오늘 말라붙었던 모종 걱정에
서둘러 산밭으로 달려가보게 될 것이다.
다음날 남은 자리에
팥을 더 심기 위해 올라가 보니
고생고생하다 간신히 일어서는 콩들을 보고
죄를 지은 듯 가슴이 뜨끔 거렸다.
단순한 농사 같지만
해마다 궁금한점 투성이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마음이 무너짐을 경험하며
조금씩 농사를 배워 나간다.
잘 할라고만 애 쓰다 보면 배우기는 커녕
자꾸 포기하게 될 수 있다.
마른 땅에 심어 보고 젖은 땅에 심어 보고
물도 주고 심어 보고 골을 타고 심어 보고 하다 보면
땅이 작물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키워 내는지
작물은 어떤 상태를 원하고 견뎌 내는지 ...
애를 태우며 조금씩 알아 갈 수 있다.
오늘 작은 개울이 되 버린 고랑에
콩 모종을 심으며
공룡 발자국 처럼 푹푹 들어가는 땅에
우리의 못남과 어리석음을
사정없이 묻어버리고 싶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작물과 땅을 위해
내가 제일 힘들게 할 줄 알아야 한다.
모종을 옮겨 심을 땐
오래 걸리고 힘들더라도
맑은 날 물을 주고 하나하나 정성껏 심어야 됨을
오늘 잔꾀를 부리다 마음고생고생 하며
다시 한번 뼈아프게 느껴본다.
( 첫 수확한 양파의 앙증맞은 모습 )
본밭에서는 미처 뽑지 못한
완두콩이 널부러져 있고
감자와 마늘이 장마가 그치길 기다리며
땅에서 나올 날을 기다리고 있다.
( 노랗게 익어가는 먹음직한 살구의 모습 )
완전 유기농이기 때문에
작물의 단단함을 믿고
버티고는 있는데 어떤 식으로던
변덕스런 인간의 마음은
비만 오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마음을
어찌 할 수 없나보다.
첫댓글 보분자가 새카맣게 익었군요. 콩밭이 너무 가물었군요. 제가 이웃에 산다면 물이라도 주었을 텐데요. 살구 때문에 자꾸 군침이 돕니다. 아침 마실 잘 다녀 갑니다. 건강하세요.
이곳은 새벽녘에 신나게 한차례 퍼붓고 지금은 조용~, 감자랑 마늘은 수확을 하셨나요? 저 감자 캐는 거, 잘할수 있는데.........^^ 완두콩 듬뿍 넣어 고슬고슬 밥 지어먹으믄 좋겠다!!
잘 익은 살구를 보니 입안에 침이 고이네요. 사진좀 빌려갑니다.
우자님 땅이 가물 때 애가 많이 탑니다. 그러다 금방 장마로 홍수로 이어지면 더 애가 탑니다. 사람이 무언가 하는 행위는 필시 불완전하여 늘 불안한가 봅니다.
하루님 가족에게 언제나 풀천지 대문은 활짝 열어 놓은 거 아시죠 ? 마늘은 거의 캤고 감자는 장마 끝나고 여러날 볕이 쨍쨍 나야지요...
달팽이님 올해는 풀천지 과일들이 풍년인듯 합니다. 내려오실때쯤엔 살구도 다 먹고 복분자도 끝나고 자두는 아직 빠르고 ... 어쩜 좋지요 ?
수확후의 행복한 모습이 그려집니다....^^늘 행복하셔요~!!!
님의 조용한 방문 뒤에 얻어진 이 보배로운 감동을 어찌 다 감사로 전할지 모르겠네요. 제가 고민하고 갈등하는 부분들을 과감하게 실천하시는 님께 힘찬 박수로 대신 하구요 생각과 고민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제 삶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