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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 의 혼일강리도, 를 자세히 접하게 된데 대하여, 감사드림니다. | |
07/12/06 (목) 오전 1:09 [LastTrainFromGunHi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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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완전히 사대주의 사상으로 만든지도네.. 어케 세계지도가 china밖에 않보이냐.. 이러니 역사상 맨날 china눈치나 보고 남의나라 침략이나 당했지..참 한심하다..사대주의는 망국의 길이다..지금부터라도 정신차려야 할텐데.. | |
07/12/06 (목) 오전 1:11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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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화 사상은 조선 초기가 아니고 한족 정권이 명이 만주족인 청에 망하고 나서 조선만이 유교 전통을 제대로 유지하고 있는 문명국이라는 자부심에서 나온 17세기 이후의 사상으로 압니다. | |
07/12/06 (목) 오전 1:16 [coolj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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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문명국은 일본....두 말하면 잔소리지...우리는 믿음. | |
07/12/06 (목) 오전 1:22 [감사로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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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란 나라는 만들어져서는 안될나라였따!!! | |
07/12/06 (목) 오전 1:27 [이모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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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란 나라는 만들어져서는 안될나라였따!!! | |
07/12/06 (목) 오전 1:27 [이모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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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세요 사대주의사상으로 만든지도라니 저 설명하신분의 수고를 묵살하는 댓글이군요.조선과 중국을 저정도로 그릴수 있다는 자체가 그 시대기술에 비하면 정말 훌륭한겁니다.중국이 조선보다 크니까 크게 나온거고 일본 섬나라야 관심밖이었으니 어쩔수 없고 저 서쪽너머는 거기 갔다올 사람이 누가 있었겠습니까.그 시대상으론 중국이 조선에 제일 가까운 문화 경제 선진국이니.지금 현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미국등으로 유학 갑니까.미국까지 유학 한번 목선타고 또 걸어서 가 보실라우 가셔서 지도 한번 그려와 보시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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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6 (목) 오전 1:34 [나] from 211.179.8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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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란 사람은 만들어져서는 안될 사람이였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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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6 (목) 오전 1:35 [너] from 211.179.8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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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자가 넌 쨍개 넘이야 조선이 있으야 니들 중국 짱개도 들도있는겨 알것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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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6 (목) 오전 1:38 [이치로] from 203.248.23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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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치기가 가장 무서운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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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6 (목) 오전 1:55 [서든] from 125.130.243.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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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식민지 사관에서 보구 있네여... 이병도 졸개인지 모르지만 ... 쪽발이... 앞잽이.... | |
07/12/06 (목) 오전 2:07 [웃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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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런지도볼때마다놀래요~ 옛날 사람들은 진짜 어케~저런걸 만들었을까..정말 대단해요~ | |
07/12/06 (목) 오전 2:54 [seotaiji11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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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바보로군요 조선시대도 서방세계(중동,유럽)는 잘 알려져 있습니다. 훨씬이전 일예로 신라시대 고분 유물을보면 서역물품이 출토되고, 또한 "베니스의 개성상인" 그림이 있듯이 직접적으로 교역이 활발하였으며, 또한 조선시대에도 동남아 나라들이 조선왕께 조공을 바치며 교류하려 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나"당신이야 말로 china밖에 모르는 사대주의자이군요. | |
07/12/06 (목) 오전 3:13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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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큰게 아니라 우리나라를 엄청 크게 그렸구만 우리나라 3개면 중국 하나만들수 있을정도네요 내가 봤을땐 울나라 최고라고 그려놓은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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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06 (목) 오전 4:06 [어허] from 61.248.18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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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
07/12/06 (목) 오전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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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긴 하오만, 글을 쓴 필자도 사대(중화)사상이 가득하구만요. 중국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더 공감했을겁니다. | |
07/12/06 (목) 오전 6:54 [pjbn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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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얘기만 하면 다들 거부반응을 보이는 거 같은데 사실 중세 이후 통일된 중국의 강대함은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필자가 쓰신 내용은 대부분 공감하며 참고로 임란 이후 조선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파견된 신유한이 쓴 일본 견문록인 해유록을 보아도 실제로 일본에 가 보고 일본의 부강함을 보고 놀란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 |
07/12/06 (목) 오전 7:29 [s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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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노태우 대통령 당시 한일우호의 상징으로 언급되기도 했던 아메노모리 호슈 (조선어에 능통하고 조선과 일본의 선린 외교에 힘쓴 사람)와 신유한이 대담을 나눌 때 대마도에서 에도 (동경)까지의 거리, 일본 동북지방까지의 거리를 논하며 일본 땅이 큰것을 깨닫고 하찮은 작은 나라로 여겼던 일본땅이 매우 큰것을 알고 놀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 |
07/12/06 (목) 오전 7:32 [s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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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필자가 쓰신 고니시 유키나가가 경복궁의 화려함에 놀랐다는 것은 의문스럽군요. 경복궁은 일본군이 들어오기 전에 성난 백성들에게 이미 불탄 것으로 알고 있고 반대로 임란 이후이긴 하지만 조선통신사가 일본을 보고 남긴 기록에 일본의 건물을 보고 화려한 것에 놀랐다는 기록이 많습니다. | |
07/12/06 (목) 오전 7:38 [s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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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한의 해유록 발췌--오사카에 도착하여 사신들이 묵을 미도스지(御堂筋)에 있는 니시혼간사(西本願寺)를 향해 가면서 길 양쪽에 있는 집들을 보고는 "길 양쪽의 장랑(長廊)이 층계집 아닌 것이 없었으니, 이것은 백화(百貨)의 점포였다. 구경하는 사람이 (길을) 가득 메웠고 화려함이 강 언덕을 볼 때마다 배나 눈이 부셨다. 이에 이르러 정신이 또 현란하여 몇 거리와 시가를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Ⅰ-478)"고 하며, 오사카의 화려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 |
07/12/06 (목) 오전 7:40 [sp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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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한도 에도성으로 들어가는 연도의 풍경을 보고는 "길옆에 있는 장랑(長廊)은 모두 상점이었다. 시(市)에는 정(町)이 있고 정에는 문이 있고 거리는 사면으로 통하여 편편하고 곧기가 활줄과 같았다. 분칠한 다락과 아로새긴 담장은 3층과 2층이 되었고, 서로 연한 지붕은 비단을 짜놓은 것 같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