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칼 갈아주는 남편
시장을 다녀와서 김치를 써는데 아내가 뜬금없이 저를 불렀습니다.
“덕길씨! 부엌칼이 너무 안 들어! 김치 썰어야 하는데 좀 갈아줄래요?”
얼마 전에 족발을 썬다고 칼을 함부로 다루었더니 칼날이 많이 무디어졌던가 봅니다. 생각해 보니 부엌칼을 갈아 준지 벌써 3년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서둘러 숫돌을 찾아보았습니다. 다행이 싱크대 밑에 숫돌이 보이더군요.
제가 처음 숫돌을 만져본 것은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습니다. 그날은 제가 살던 정읍 이평 시골집의 벼 베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덕길아! 이리 와서 낫 좀 갈아라!”
“아버지! 제가 어떻게 해요? 전 낫 갈 줄 몰라요!”
“그러니까 내가 알려줄 테니 이리 와서 앉아봐!”
아버지께서는 숫돌 하나로 갈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작두를 갈 때였습니다. 집에 소를 키웠기 때문에 여물을 썰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작둣날을 가는 날이면 어김없이 소여물을 썰곤 했지요. 작둣날은 크기가 너무 커서 작두를 뉘어놓고 숫돌을 움직이면서 갈아야 합니다. 아버지는 잘 갈은 작두를 고정시키고 저는 작두 손잡이를 올립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짚 다발을 한주먹 잡고는 작둣날 아래로 집어넣습니다.
‘싹둑’
짚 다발은 손가락 마디만큼 가늘게 잘려서 넓게 퍼집니다.
‘싹둑’ ‘착’ ‘싹둑’ ‘착’
아버지께서 짚 다발을 미는 소리와 제가 작두를 누르는 소리가 맞물리면서 리드미컬한 소리가 이어지곤 했습니다.
그날은 벼 베기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집에 있는 열 자루의 낫을 전부 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논바닥에 삽을 엎어놓습니다. 그리고 삽의 손잡이에 숫돌을 넣은 다음 땅에 박습니다. 그 다음 삽자루를 한쪽발로 밟습니다. 그다음 왼손으로 낫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낫의 날 끝을 잡습니다.
‘쓰윽’ ‘쓰윽’
낫을 갈 때는 숫돌에 낫을 깊게 눌러서 당겨 올린다음 힘을 빼고 부드럽게 밀어내려야 합니다. 낫을 갈 때도 박자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엉덩이가 샐룩샐룩 춤을 춥니다. 낫을 당길 때 엉덩이를 한 번 흔들어야 힘이 덜 들거든요.
그렇게 십여 번을 반복 한 후에 낫을 가지고 대야에 담긴 물에 낫을 담가봅니다. 낫 날 끝에 흰색이 보이면 아직 덜 갈린 것입니다. 그럼 안 갈린 부분을 집중적으로 갈다 보면 어느새 흰줄은 사라지고 맙니다. 낫이 잘 드나 확인하는 방법은 쉽습니다. 낫을 가지고 논두렁에 있는 풀을 쓰윽 건드려 보는 것입니다. 그럼 서있던 풀들이 어느새 줄줄이 일렬횡대로 쓰러집니다.
낫은 죽은 것보다 살아있는 것이 더 잘 잘립니다. 벼도 물에 젖은 벼가 잘 잘립니다. 풀도 마른 풀보다는 싱싱한 살아있는 풀이 잘 잘립니다. 제가 어떻게 이것을 잘 아느냐면, 초등학교 때, 저는 학교에 가기 전에 항상 풀을 한 리어카씩 해 놓아야만 학교에 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풀도 아침이슬을 맞은 젖은 풀이 더 잘 잘립니다. 풀이 잘릴 때마다 숨 쉬는 풀 향기가 어찌나 싱그러운지 모릅니다. 특히 쑥을 벨 때는 그 향기가 코끝을 타고 가슴까지 밀고 들어오지요.
“뭐해요? 칼 갈아달라니깐!”
한참 옛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재촉합니다.
여러분! 혹시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부엌칼을 갈아 준적 있습니까?
아마 통계를 내 보면 부엌칼을 직접 갈아준 남편은 열 명중 두어 명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 주부들을 위해서 부엌칼을 가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일단 칼을 갈려면 숫돌이 필요합니다. 칼을 왼손으로 들고 오른손으로 칼끝을 잡습니다. 숫돌은 삽이 없으니 욕실 바닥에 뉘이세요. 숫돌을 뉘인 다음 발로 숫돌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합니다. 그리고 칼날이 바깥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지긋이 눌러줍니다. 당길 때는 가볍게 당겨주시고 밀 때는 힘을 주어 숫돌에 밀착시킨 후 밀어주세요. 칼은 최대한 숫돌방향으로 뉘어서 갈아야 합니다. 이렇게 20여번정도 한 다음 칼을 반대로 향하게 한 다음 다시 갈아줍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서 칼날을 담가봅니다. 칼 날 끝에 흰 줄이 보이지 않으면 칼이 다 갈려진 것입니다. 혹시 이것도 귀찮아서 못하겠다 하시면 철물점에 한 번 가보세요. 칼을 자동으로 갈아주는 숫돌도 나온걸로 알고있습니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칼 갈어! 칼!” 하며 돌아다니시던 아저씨들이 보였습니다만 요즘엔 잘 보이지 않더군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루 종일 부엌에게 고생하는 주부들에게 칼은 곧 생활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전부 아내를 위해 부엌칼을 갈아주는 날로 정해봅시다. 그리고 꼭 한마디 해 주세요.
“여보! 당신 칼이 안 들어 많이 힘들었지? 앞으론 내가 다 갈아줄게. 참 가위도 줘요!”
-끝-
첫댓글 ㅎㅎㅎ 시인님 이거 프린트해서 울 신랑 보여 드릴까요? 그래도 아마 칼은 못 갈겁니다. 아니 갈아 준다고 해도 맡기지 않을 겁니다. 예전에 한번 칼 갈아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갈아 준 줄 아세요. 주택 살때 수돗가 시멘트 모서리에다 칼을 데고 두어번 쓱쓱 해서 주던데요......ㅎㅎ 그런데 신기한 건 아주 잘 들었어요
지금생각해 보니 칼이 무지 무지 않들었나 봅니다. 그 이후 칼이 안 들면 나도 본 봐서 그렇게 해서 칼을 갈았습니다. 임시방편으로 하는 방법이라고 하더군요. 계곡에 놀러갔을 때 돌에다 칼을 가는 것 보았다면서 단지 뚜껑에도 가는 친구 보았습니다. 그 이후 칼이 안 들어 버리고 새로 샀습니다. 그리고 빨간 손자루가
달린 칼 갈이를 샀는데 아직 한번도 사용은 안했습니다. 오늘은 칼 갈아 달라고 칼을 슬쩍 내 밀어 볼까요? 아마도 눈 똥그래져서 뒤로 넘어지지 않을까요.....칼이 무서워서 ㅎㅎㅎ
험험.. 저는 어릴때 개도 잡았는걸요 ㅋ 칼갈이에다 칼을 대고 쓰윽 문지르길 수십회 반복하면 칼이 잘 들 겁니다. ㅎ
근데 가위는 갈지 마요. 가위날을 갈았더니 더 안드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