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천 전어
푸른 바다를 등지고 귀향하는 어부들의 거친 손에 담겨진 ‘전어’ 라는 보물에 가을이 팔딱거린다. 참 으로 낭만적인 이름, ‘가을’ 이 오면 스쳐가는 이름 하나가 바로 전어. 파도와 춤추던 은빛비늘이 바 다를 뒤덮는 가을이면 너나할 것 없이 중독된 듯 전어 예찬 일색이다.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발길이 머무르게 하는‘가을 참맛’이 느껴지는 서천>
가을 전어 맛이 얼마나 기가 막히기에, 오죽하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고 했을까. 얼마나 맛있기에
돈이 아깝지 않다고 해 돈 전(錢)자를 이름에 붙여 전어라 했을까. 혹여 호의호식하는 미식가들이 여흥
삼아 만들어 낸 말은 아닐까. 감히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가 있다면, 백문이불여일견이니 직접
맛보시라. 아싹아싹 뼈째 씹히는 쫄깃쫄깃 전어 세꼬시에, 노릇노릇 구워져 고소하면서 달보드래한 전어
구이 맛을 본 사람이라면 “햐,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만 하군”하며 고개를 수없이 끄덕일 터
미식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다른 회들은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최고 경지에 이른 가을 전어. 두
툼하게 썰어 담은 전어 회 한 접시 놓고 소주 한잔 마셔보고 싶어지는 유혹에 못 이겨 자리를 박차고 일
어난다. 그리고 훌쩍 떠난다.
스물아홉의 필(feel)...사랑도, 여행도 강한 중독성이 있더라 |
<전어의 집산지인 마량포구, 동틀무렵 포구로 살이 토실토실 오른 전어를 실은 배가 속속 도착한다>
소슬한 가을 바람에 쓸려 자연스럽게 서해로 핸들을 돌린다. 가을은 서해로부터 온다고 했던가. 꽉 막힌
도심을 훌 털어내고 출렁거리는 바다를 허전한 옆구리에 끼고 내달리니 기분 좋은 비릿함이 코끝을 간질
인다. 참으로 그렇다. ‘가을 탄다’는 말처럼 스물아홉 번 째 가을을 맞는 기자역시, 이즈음이 되면 누
군가와 사랑하고 싶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그리고 ‘번쩍’ 섬광처럼 필(feel)이 느껴지는 이성
과의 만남이나 여행지는 쉽게 잊을 수 없을 만큼 강하게 중독된다. 너무 무드 모드로 흘렀나. 각설하고
여행길에서 만난 서천은 그런 필(feel)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 곳에는 통통배의 추억과 갈매기가
붉게 젖는 포구의 황홀한 낙조도 있고, 바람 따라 흐느적거리는 가을의 몸짓이 있었다.‘집 나간 며느리
는 아니지만 고소한 냄새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발길이 머무르게 하는 ‘가을 참맛’ 이 느껴지는 곳, 뿌
듯한 포만감으로 가을이 더욱 빛나는 곳이 또한 서천이다.
도도한 전어가 사는 마량포구의 가을, 행복이 팔딱거리다 |
| 살이 통통하게 오른 가을 전어 | 서천에서도 마량포구는 전어의 집산지다. 동틀무
렵 포구로 살이 토실토실 오른 전어를 실은 배가
도착하기가 무섭게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하듯 전어를 받아, 아니 모셔간
다. 사철 나는 고기지만 굳이 가을에 전어가 인
기 좋은 이유는 3~8월까지 산란기가 끝난 전어는
9월~11월까지 몸에 살이 오르면서 비린내가 얕아
지고 차진 맛이 살아난다. 이는 지방질이 3배 이
상 풍부해지기 때문. 그래서 가을 한철에는 돔이
나 광어 같은 값비싼 횟감 생선보다 오히려 값싼
전어를 더 쳐 주며 맛의 황태자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맛의 절정은 10월~ 11월인데 바로 지
금이 최고다. 여자라면 아무래도 전어 이 녀석의
열량에도 집중하게 될 터. 전어는 120㎉의 열량
을 내면서도 지방이 2% 정도란다. 식이요법은 물론 다이어트음식으로 탁월한 녀석이니 안심하고 먹어도
될 듯하다.
빛나는 물비늘에 앉아 소주 한잔 "전어 맛에 며느리도 기가 막혀" |
<한번 전어 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할 만큼 전어의 맛은 참으로 각별하다>
싱싱한 이 전어를 볼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때 늦어 후회하지 말고 시간이 된다면 가을의 맛으로
불리는 전어, 이 가을 전어의 담백한 맛에 빠져보자. 싱싱한 전어 접시에 안주삼아 갈매기 구경도 할 수
있는 마량포구는, 지금 당신을 위해 잔칫상을 차리는 중이다.
그렇다. 어디 며느리뿐이겠는가!
한번 전어 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할 만큼 전어의 맛은 참으로 각별하다. 오죽 했으면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 이라는 말을 했을까. 마량포구에 들어서면 일단 냄새부터가 입맛을
잡아끈다. 설사 맛 여행을 목적하지 않았더라도 주머니에 만 원짜리 몇 장 있으면 떡 하니 기분 좋게 내
놓을 정도. |
| 냄새까지 구수한 전어구이 | 그렇게 까다롭다는 미식가들이 가을 별미로 손꼽는 전어는 다른
생선에 비해 기름기가 많아 구울 때 나는 고소한 냄새가 1㎞ 거
리까지 퍼진다고 하니 그 치명적인 유혹을 이길 사람 얼마나 될
까.
기자 역시 창틈 속으로 스며 들어오는 그 유혹에 취해 마량포구
에 도착하자마자 집나간 며느리처럼 그 냄새의 발원지를 좇아간
다.
그리고는 마량포구가 한 눈에 보이는 자리에 앉아 첫 미팅 나갔
을 때처럼 설레이는 마음으로 전어와의 조우를 기다린다. 생각
해 보니 전어는 진정 삼색조다. 회, 무침, 구이 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입을 기쁘게 해주니 말이다.
어화 둥둥 내 사랑 전어야! 어디 구워나 볼까? 아니 무쳐나 볼까?
|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 이란 말처럼 버릴게 하나도 없는 전어구이>
삼색조 전어의 첫 번째 변신은 전어구이. 먼저 전어 몸통에 3~ 4군데씩 칼집을 어슷어슷낸 뒤 소금을 뿌
린다. 간기가 밴 전어를 석쇠에 얹어 기름을 빼 가며 굽는다. 억센 가시가 누그러져 노릇노릇 익어가는
모습 뿐만 아니라 구워지면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가 먹는 것만큼이나 일품. 다 구워진 전어는 꼬리와 머
리까지 통째로 먹어야 한다. 다른 생선 먹듯 가시 발라내고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는 진정으로 전어
맛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미식가들은 전어의 꼬리를 잡고 통째로 뜯어먹는다. 살과 잔뼈도 함께 씹어먹
으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혀끝에서 살살 녹아내린다고 한다. 결국 전어구이는 버릴게 없다는 것. ‘가
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 말" 이란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순간이다.
‘역시 최고야’ |
|
| 매콤, 새콤달콤한 전어무침 | 고소하고 담백한 전어구이 | 기름진 음식보다는 매콤한 맛을 즐기는 한국 사람들에게 무침은 빼놓을 수 없는 요리의 종류. 또한 전어
를 말하면서 결코 빼놓아서는 안되는 게 전어무침이다. 마늘, 상추, 깻잎, 오이, 양파, 당근, 배등을 갖
은 채소와 함께 넣고 초고추장과 버무리는데 매콤하면서도 새콤 달콤, 게다가 전어 자체의 고소한 맛이
잘 어우러져 시쳇말로 ‘둘이 먹다 하나 죽어’ 도 모를 묘한 맛을 낸다. 무침 역시 뼈째자른 전어가 들
어가지만 입 안에 넣으면 신기하게도 사르르 녹아 없어져 먹는데 껄끄러움이 전혀 없다. 구이나 회는 싱
싱한 생선이 좌우하지만 무침은 횟집마다 손맛과 비법이 숨겨져 있으니 잘 골라서 들어가도록. 전어무침
의 매운 맛은 싱싱한 조개로 만든 조개탕으로 달랜다.
뼈째 숭덩숭덩 썰어 초장에 풍덩... "회 맛" 을 아는 당신이 진정 챔피언
|
<전어회는 뼈째 두툼하게 썰어 고소한 된장에 찍어 상추쌈을 싸먹는것이 더 맛깔스럽다>
뭐니뭐니해도 진정한 전어의 참맛은 회에 있다. 그것도 고급 호텔 주방장이 날렵한 솜씨로 떠주는 것이
아닌 그저 뼈째 두툼하게 썰어 놓는 것이 오히려 더 맛깔스럽게 보인다. 큰 전어는 생선회를 뜨 듯 포를
떠서 뼈를 발라낸 뒤 살을 저며서 먹고, 작은 전어는‘세꼬시’ 라고 불리는데 뼈째로 썰어내 회를 쳐서
먹는다. 작은 고추가 맵다 했던가. 많은 사람들은 큰 전어로 회를 뜨는 것보다 세꼬시로 먹는 것이 더욱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회를 먹는 정석은 알다시피 깻잎이나 상추위에 한 젓가락 가득 전어회를 담고 된
장, 참기름, 다진 마늘로 버무린 양념장을 올려 먹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스폿 하나! 회의 자체 맛도
중요하지만, 찍어먹는 소스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는 것. 특히나 가을 전어처럼 지방이 많은 생선은
초고추장이나 냉이고추(와사비)보다는 고소한 된장에 찍어 상추쌈을 싸 먹는 것이 고소하면서도 깊고 은
은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여기에 소주 한잔이면 더 이상 무엇을 바랄까.”
가을 바다의 황홀한 낙조, 미식가를 불러들이다 |
<고깃배를 배경으로 동백꽃이 낙화하듯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는 붉은 해가 일품인 마량포구 일몰>
마량포구는 전어로도 유명하지만, 봄이면 동백꽃이 만발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한 동백정과
수평선 위로 뜨는 해와 지는 해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것은 마량포구의 지형때문인
데 포구가 마치 휘어진 칼처럼 바다로 툭 튀어나와 있어 두 가지 절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것. |
| 가을 바다 춘장대해수욕장 | 전어로 두둑이 배를 채우고 나서 마량포구의 동
백정으로 가보자. 해 지는 시간이라면 정자에 낙
조를, 해 뜨는 시간이라면 선착장에서는 일출을
보면 된다. 일출도 물론이지만, 특히나 오력도와
고깃배를 배경으로 동백꽃이 낙화하듯 수평선 아
래로 떨어지는 붉은 해가 일품. 동백정과 그리멀
지 않는 곳에 송림이 우거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
는 춘장대도 있다. 물론 여름바다의 그것처럼 활
기는 없지만, 철지난 가을 바다는 혼자만의 사색
에 잠길 수 있기에 어찌 보면 더 운치 있다. 사
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둘만의 사랑을 속삭일수
있으니 꼭 들려서 두 손 잡고 낭만적인 밤바다를
거닐어보자.
<여행 팁>
- 마량포구 가는 방법
1) 자가 운전 시
▶ 서울(경부고속도로 1번고속도) → 대전(회덕IC : 호남고속 도로 3번고속도) → 논산(국도 68번) →
강경(지방도613번) → 서천 → 서면(마량포구)
▶ 서해안 고속도로를 이용 : 서울 → 대천IC → 춘장대IC → 서면 → 마량포구
▶ 대전 → 논산(국도68번) → 강경(지방도613번) → 한산 → 서면 → 마량포구
2) 철도
▶ 장항선 : 서천역→대천→홍성→천안→수원→용산역
▶ 경부선 : 서울∼대전∼서천(버스) 약 4시간소요
3) 고속버스 : 서천 ↔ 서울 (공주, 천안 경유), 서천 ↔ 대전 (부여 경유)
- 전어가 맛있는 집
마량포구 근처의 횟집의 전어 맛은 거의 비슷하다. 그중에서 전어 회무침의 양념 맛이 독특한 돌고래 횟
집(041-952-2388)이 맛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