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웨덴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의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빅토리아(32) 공주와 공주의 운동강사 출신인 다니엘 베스틀링(36)의 결혼식이 19일 스톡홀름 대성당에서 열렸다.
혼식엔 전 세계 왕족과 핀란드와 아이슬란드 대통령 등 1천여명이 참석했다.
19일(현지시간) 오후 3시30분 스웨덴의 스톡홀름 Storkyrkan성당에서 빅토리아(Victoria.32.사진 왼쪽)스웨덴 공주와
신랑 다니엘 베스틀링(Daniel Westling.37)의 전통 왕실 결혼식이 성대하게 치뤄졌다.
아래 화면은 이들 커플의 결혼식 장면이다.
아래 기사는 지난 5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서 보도한 빅토리아 스웨덴공주와 다니엘 베스틀링에 관한 내용이다.
“개구리 왕자, 공주의 키스를 받고 왕자가 되다.”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평범한 피트니스 강사 다니엘 베스틀링 씨(37)가 스웨덴 ‘왕위계승 서열 1위’ 빅토리아 공주(32)와 8년간의 연애 끝에 19일 결혼에 골인한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5일 “그간 ‘개구리 왕자’란 별명으로 불렸던 베스틀링 씨가 이날 왕가 정통 결혼식과 함께 ‘다니엘 왕자’란 공식 직함을 수여받는다”고 전했다. 여러 위기와 부침을 겪었던 ‘공주와 농촌총각의 사랑’이 드디어 열매를 맺는 것.
빅토리아와 다니엘의 사랑은 2002년 만남부터 화제였다. 당시 우울증으로 ‘섭식장애(eating disorder)’를 앓던 공주는 스톡홀름의 한 체육관에서 우연히 베스틀링 씨와 마주친다. 더부룩한 머리에 청바지, 야구 모자를 눌러쓴 사내. 그러나 빅토리아 공주가 그 평범한 남성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둘의 연애가 알려지며 왕실은 난리가 났다. 여왕이 될 공주와 시골 우편집배원 아들은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특히 다니엘의 구수한 사투리와 잦은 예절 실수는 스웨덴 귀족과 언론의 놀림감이 됐다. 심지어 공주의 아버지인 칼 구스타프 16세는 공식적으로 그들의 결합을 반대했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마음은 확고했다. “왕위보다 그를 사랑한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곧장 개구리왕자를 ‘진짜 왕자 만들기’에 들어갔다. 왕실 교육관과 홍보회사까지 동원해 그를 변신시켰다. 동생 칼 필리프 왕자와 마델레이네 공주가 연애 구설수에 오르는 동안 이들은 환경운동 등을 펼치며 성실한 모습을 보인 점도 민심을 얻었다.
스웨덴 저널리스트 스턴 헤드만 씨는 “다니엘은 이제 4개 국어에 능통하고 정장이 잘 어울리는 매끈한 귀족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텔레그래프는 “지금도 곰과 늑대가 출몰하는 벽촌 출신 왕자의 러브스토리는 스톡홀름을 ‘아름다운 동화가 이뤄지는 땅’으로 새롭게 바꿔놓았다”고 평했다.
(기사 : 로이터동아 / 사진 : 텔레그래프,163com)
예식장에서는 두 가지 음악이 연주됩니다.
신부가 입장할 때는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에 나오는 <혼례의 합창>이 연주되고,
두 사람이 퇴장할 때는 멘델스존의 <한 여름밤의 꿈>에 나오는 <결혼 행진곡>이 연주됩니다.
모두 관습처럼 이 곡들을 연주하는데...그 유래를 아는 사람은 드물죠.
1858년 영국의 빅토리아 공주가 결혼할 때 그녀는 평소 좋아했던 멘델스존과 바그너의 음악을
자신의 결혼식에 연주해 줄 것을 명령했고, 이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관습화 되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혈우병(血友病, hemophilia)이라면 일반적으로 선천성 ·유전성으로 혈액응고인자의 결핍에 의한 질환이라고 사전적 정의를 내리곤 한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 속에서 대충 알려진 딱 한마디라면 바로 피가 안 멎어서 골치 아픈 병 정도로 인식하는 정도이다. 그런데 어떻게 유럽의 역사를 바꾸었을까? 이건 유럽 중세의 흑사병도 아닌데...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왕족들의 병’이라 하여 흑사병보다도 더 무서운 것들을 남긴 인류에게 준 아이러니한 병이다. 일본애니 ‘명탐정 코난의 극장판’ 중에는 라스푸틴과 러시아황제의 달걀보물(즉 부활절 황금달걀)을 둘러싼 재미나는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소재를 가지는 작품(몇편?)이 있는데 이 소재거리를 제공한 것이 혈우병이다.
그리고 러시아가 공산화되는 지름길을 혈우병이 열어 주었는데 이 이야기는 로마노프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2세(Nikolai II, Aleksandrovich, 1868.5.18~1918.7.17)가 독일의 한 공주와 결혼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러시아 황실에 대공(Grand Duke)이며 황자인 세르게이(Serge:1857~1905)가 독일의 제후국인 헤센(Hesse and by Rhine)에서 공주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는데 이 공주의 이름은 엘리자베스(Elizabeth:1864~1918)였다. 당시 황제는 알렉산더3세(Alexander III)로서 세르게이는 황제의 친동생이었다.
러시아로 시집 온 이 독일 헤센의 공주는 심심하다고 생각해서 자신의 여동생을 시댁인 러시아로 초대했는데, 당시의 황태자였던 니콜라이 즉 뒷날 니콜라이2세(Nicholas II)가 되지만, 러시아를 첫 방문한 숙모의 여동생을 보고 첫 눈에 반하고 만다. 그리고 즉시 구혼(求婚)을 하였으나 헤센의 공주는 종교상의 이유로 거절해버리고 자기 나라로 차갑게 돌아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황태자는 상사병을 얻어버렸고(?) 이런 꼴을 보다 못한 아버지 황제는 아들을 달래지만 아들은 매정히 가버린 공주를 생각하면서 병석을 차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1894년 황제가 덜컥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다시 황태자의 결혼문제가 도마에 오르게 되었다.
새로 즉위하는 황제에게는 황후가 필요한 것이다. 새 황제는 자신이 원하는 신부를 얻기 위해 힘을 기울이고 이것을 위해 숙모인 엘리자베스는 여동생을 불러다 설득을 하는데 루터파와 정교회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자신도 시집오면서 개종을 했어도... 신은 다 같다라는 둥의 감언이설로 동생을 설득시키는데 성공하는데, 이 공주님은 언니의 설득으로 황제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 러시아로 시집을 간다.
이 헤센공주의 이름은 알릭스(Alix:1872~1918), 정교회로 개종하면서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Alexandra Feodorovna)로 이름을 개명하는 러시아 마지막 황후였다.
공주가 시집온 헤센(Hesse)은 오늘날로 보면 독일의 남부지방으로 헤센주로 불리는데 다름슈타트가 중심지인, 대공(大公)이 통치하는 독일 남부의 소국(小國)이었다.
이 소국의 군주들은 대대로 강하고 큰 나라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큰 나라의 공주들에게 장가들려고 무지 노력해왔다.
그 결과로 알릭스 자매의 증조부인 루드비히2세(Ludwig II)는 아래의 큰 나라 바덴의 공주를, 조부인 카알(Karl)은 북부의 강력한 왕국 프로이센의 공주에게, 부친인 루드비히4세(Ludwig IV:1837~1892)는 당시 세계를 제패하던 영국의 왕실에 장가들고자 했는데, 당시 영국의 군주는 빅토리아 여왕이었다.
영국과 프로이센은 인척이었는데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인 빅토리아가 프로이센의 황태자 프리드리히에게 시집갔고 프리드리히의 사촌뻘이었던 작은 나라 헤센의 군주는 이 인연으로 대영제국의 공주와의 결혼이 가능하게 되었다.
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가히 유럽왕족들의 할머니로 통했다. 외사촌이었던 독일 작센 색스코우버-고타(Saxe-Coburg and Gotha)라는 작고도 작은 나라의 왕자 앨버트와의 사이에 아홉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이 아홉 자녀가 퍼뜨린 손자 수가 40여명이 넘었고 이들이 전 유럽왕족들과 복잡한 결혼관계를 유지하면서 모든 유럽왕족의 혈통은 빅토리아로 통하게 되었다.
빅토리아의 자녀들을 살펴보면 첫째인 빅토리아(Victoria:1840~1901)는 프로이센의 왕이며 독일황제인 프리드리히3세(FriedrichIII)에게 시집갔고, 둘째인 후계자 에드워드7세(Edward VII:1841~1910)는 덴마크의 공주 알렉산드라(Alexandra)와 결혼했으며, 셋째인 알리스(Alice)는 헤센의 대공 루드비히4세(Ludwig IV)에게, 넷째인 알프레드(Alfred:1844~1900)는 에딘버러 공작이자 친가인 작센색스코우버-고타공작으로 러시아공주 마리아(Marie)와 결혼했으며, 다섯째 헬레나(Helena Augusta Victoria:1846~1923)는 독일 북부의 작은 공국(公國)인 슐레츠비히-홀시타인의 왕자 크리스티안(Christian)에게, 여섯째 루이즈(Louise:1848~1939)는 스코틀랜드의 대귀족 존 캠벨, 아가일 공작(John Campbell : 9th Duke of Argyle)에게, 일곱 번째 아더(Arthur:1850~1942)는 프로이센공주 루이즈 마가레트(Luise Margarete)에게 여덟 번째 레오폴드(Leopold:1853~1884)는 독일의 제후인 발데크-피에몬테(Waldeck-Pyrmont) 공작의 딸인 헬렌(Helen)에게, 막내인 비어트릭스(Beatrice:1857~1944)는 독일 바텐베르크공작의 아들 하인리히(Henry)에게 시집을 갔다.
빅토리아의 자녀들을 언급하는 이유는 바로 러시아의 황후 알릭스의 혈통을 언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알릭스는 빅토리아의 외손녀였고 이 점이 그녀를 러시아황후로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즉 헤센은 작은 소국에 불과하지만 영국여왕의 손녀라는 후광으로 인해 러시아황제 니콜라이2세는 빅토리아의 외손녀사위가 되는 것이다.
알릭스와의 결혼은 두 사람을 서로 만족시켜 주었고 결혼 이듬해부터 자녀들이 태어나면서 그 기쁨이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황후는 황자를 낳지 못하고 거듭 황녀만 내리 네 명을 낳았는데 장녀 올가(Olga:1895~1918), 차녀 타티아나(Tatiana:1897~1918), 삼녀 마리아(Maria:1899~1918), 사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1901~1918)가 그들이다.
그러나 아들을 바라는 황실의 바램으로 황후는 다시 출산을 하는데 1904년 드디어 황자를 낳았고 이가 알렉세이(Alexis)였다. 이 오랜 바램 끝에 황자를 출산한 황후의 기쁨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이 하나뿐인 황자가 태어나자마자 놀라운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병이 바로 혈우병이었다.
황자가 이 병을 가지고 태어났을 때 당시의 의료기술은 이 병에 대한 지식이 희박했다. 그래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버리는 황자의 고통에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지게 아팠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황자의 병을 고쳐야겠다는 신념으로 마치 찌푸라기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 치료하게 했는데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정교회의 사제의 신분을 가지고 있었던 바로 라스푸틴(Rasputin, Grigorii Efimovich, 1872?~1916.12.30)이었다.
라스푸틴은 개명한 이름이며, 본래 이름은 Grigory Yefimovich Novykh였고 튜멘주 토볼스크 출신의 예언자였고 의사이기도 했다. 당시 그에게 치료받은 농민들을 그를 성자라 우러러 보았다고 한다. 이런 소문을 듣고 황후는 혈우병 황자를 맡기는데 이것이 러시아황실 몰락의 전주곡이 될지는 누구도 몰랐다. 그는 황자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만으로도 총애를 얻었고 그의 영역은 종교에서 시작해서 나중에는 내정문제와 심지어 외교문제까지 간섭하기 이르렀다. 그의 사생활은 문란한 여자관계와 사치와 방종으로 이어졌고, 이런 라스푸틴의 꼴을 보고 귀족들은 몹시 분개하였고, 그를 처단할 궁리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워낙 황후의 총애가 큰 터라 손을 놓고 있었다.
가장 황실의 무너짐을 염려했던 사람은 황제 니콜라이1세의 증손녀이자 대공 알렉산더의 딸인 공주 이레네(Irene:1895~1970)의 남편이었던 공작 펠릭스 유수포프(Felix Youssoupov:1887~1967)였다. 아내로 말미암아 그는 황실의 근친으로 활약하고 있었는데 1916년 12월의 겨울밤 자신을 따르는 몇 사람을 동원해서 황실의 골치 덩어리인 그를 암살시켜버린다. 그를 죽인다고해서 러시아가 무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당시 1차대전은 러시아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었고 적대국인 독일은 끊임없이 간첩을 보내 러시아를 교란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독일에 망명 중이었던 레닌이 독일의 도움으로 돌아오면서 러시아는 혼란 속으로 이끌려갔고 결국 황제가족은 공산주의자들 손에 전부가 몰살되는 비극을 안아야했다.
여기서 혈우병에 대해 더 언급한다면 러시아의 몰락은 황태자의 유전질환인 혈우병으로 인해 라스푸틴을 불러들였고 그에 대한 빗나간 신임이 나라를 망쳐버린 원인이 되었는데 어떻게 이 혈우병이 러시아황실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오늘날 혈우병에 대한 지식은 상당히 발전되어 있는데 이 병이 유전병이라는 사실과 모계(母系)를 통해 유전된다는 큰 사실이 있다. 즉 어머니가 이 유전자를 가지면 아들은 이 병을 반드시 걸린다는 이른바 멘델의 법칙에 이용되는 법칙이 성립되고 있다.
즉 아버지에게서 XY를, 어머니에게서 XX를 물려받아 각각 성별 유전인자로 정해진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고등학교 때 배움). 이때 혈우병은 유전인자 중 X'가 있으면 남자는 바로 혈우병환자가, 여자는 보인자가 된다.
우리가 생물시간에 배우는 멘델의 법칙을 이용해서 혈우병의 계통을 설명해 보인다면 父니콜라이2세(XY) = 母알릭스황후(X'X) 子 알렉세이의 인자는 X'Y이다. 즉 X'가 붙어서 혈우병을 일으킨 것이다. 여자의 X'X는 보통 보인자(保因者)라 부른다. 즉 자신은 혈우병을 가지지는 않지만 유전인자를 몸 속에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황후의 혈우병 인자는 어디서 온 걸까?
황후의 부모를 살펴봐야한다. 父루트비히4세(XY) = 母알리스공주(결국 X'X라는 소리) 女 알릭스황후(X'X)의 유전자가 나오려면 바로 루트비히4세나 알리스공주 둘 중의 하나로부터 X' 유전자를 받아야 되는데 남자에게 붙으면 바로 혈우병이 되기 때문에 판별하기 쉽다. 헤센 대공의 가문에는 혈우병 걸린 남자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머니인 알리스공주로부터 X' 인자를 받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알리스공주는 X'X, 보인자란 소리다.
똑같이 알리스 공주의 부모인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왕자에게 적용시켜보자. 父앨버트 왕자(XY) = 母빅토리아 여왕(??)
그런데 앨버트 왕자의 작센 색스코우버-고타공작 가문에서 혈우병 남자가 나왔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그러면 자연히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나왔다는 소리인데....
그런데 영국왕실에서 빅토리아 여왕 이전엔 혈우병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어디서 온 걸까? 앨버트 왕자는 확실히 혈우병 환자가 아니었다. 그런 기록을 보지 못했다. 그러면 나머지 X'는 자연히 빅토리아의 것인데... 빅토리아의 아버지 켄트공작 에드워드는 혈우병 환자였다는 소리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 X'의 유전자 실체를 밝히려면 다시 빅토리아의 어머니인 작센 코부르크-잘펠트공작의 딸이었던 빅토리아로 가야한다(참고로 빅토리아 여왕에게는 형제는 물론 자매도 없다).여왕의 어머니 빅토리아는 바로 앨버트 왕자의 고모였다. 그런데 혈우병 인자를 그 가문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럼 빅토리아 여왕은 혈우병은 어디서 온 것일까? (현재 아무도 모름???)
빅토리아 여왕 이후 그녀의 자손들의 혈우병에 대한 멘델의 법칙은 무지 잘 지켜지고 있다. 자식 가운데 8자식인 레오폴드(Leopold:1853~1884)가 말에 떨어져서 피를 많이 흘러서 즉 혈우병이 도져서 죽었다고 하며, 막내인 비어트릭스(Beatrice:1857~1944)는 독일 바텐베르크 공작의 아들인 하인리히(Henry)에게 시집을 갔는데 그 사이에서 난 딸 빅토리아(Victoria Eugenia:1887~1969)가 스페인의 왕이던 알폰소13세(Alfonso XIII)에게 시집갔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첫아들인 왕태자 알폰소(Alfonso:1907~1938)가 이 혈우병에 죽었다고 하는데 이 왕자도 아마 X'Y의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물러받아 죽은 것이다.
참고로 아들 에드워드7세 가문인 현 영국왕실에는 없다고들 한다. 법칙상 XY와 X'X 사이에는 태어날 유전인자의 형태는 1. XX'(여자 : 보인자) 2. XX(여자 : 정상) 3. X'Y(남자 : 혈우병) 4. XY(남자 : 정상)
이 네 가지가 있다. 즉 아들 중 혈우병이 될 확률은 50%라는 소리다. 딸도 보인자가 될 확률이 50%이다. 한마디로 운 좋으면 비켜가고 운 나쁘면 조상 탓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조상 탓할 유럽왕족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