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그것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일지라도) 많은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관계’에서 오는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자기 자신 및 다른 사람들의 성격에 대하여 좀 더 알고 싶어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성격을 설명하는 심리학의 많은 이론들 외에도 사람들 사이에는 성격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회자된다. 12간지에 따른 띠별 성격이나 12궁도의 별자리에 따른 성격론이 그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미삼아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것을 대한다. 그 중에서도 요즘에 유행하는 것은 혈액형에 따라 성격을 구별 짓는 것이다. 혈액형별 성격론은 그 역사는 짧으나 12간지나 12궁도 별자리보다도 더 애용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 혈액형별 성격구별을 진리인 것처럼 여기는 경향이 보여 문제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오늘 논하여 보자.
성격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표현하자면,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체득된 것들이다. 그렇게 체득된 특징들은 20세 정도가 되면 그의 전체적 감정적 및 행동적 경향이 되어 그를 특징지어주는 성격이 된다. 때때로 성격은 치우치고 모가 나서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 문제를 초래하기도 하며 이러한 성격의 왜곡경향이 심할 때 성격장애가 있다고 말한다.
성격이나 성격장애를 논할 때, 성격을 내향성이나 외향성 등등으로 구별하여 생각하는 것을 범주모델 즉 category model적 입장이라 하는데 이해하기 쉽고 구분하기 쉬워 많이 사용된다. 그러나 한 인간의 성격이란 일정한 틀에 찍어내듯 규격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격의 특성은 어떤 연속선상에서 어느 정도의 지점에 있는가를 논하는 것이 적절한데 이를 차원모델 dimension model적 입장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외향적 성격과 내향적 성격이라는 두 개의 극단적 성격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외향적 격이라는 이 쪽의 극단과 내향적 성격이라는 저 쪽의 극단을 연결한 선이 있고 한 사람이 그 선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가를 보며 그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실상, 한 개인의 성격을 논하는데 있어 A형 성격은 이러하다느니 B형 성격은 이러하다느니 하는 것은 개인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무시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라 볼 수도 있다.
전체주의란 전체가 있으므로 개인이 존재한다는 논리에 따라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권력사상과 국가체제 또는 그러한 체제를 실현하려는 운동을 총칭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는 특히 1920년대부터 1940년대에 걸쳐서 이탈리아·독일·일본 등에 등장한 파시즘 사상을 가리킨다. 그리고 혈액형적 성격론의 발생은 이러한 파시즘적 전체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혈액형이란 무엇인가. 혈액형이란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보이는 다양성들 가운데 하나이다. 혈액형에는 ABO, Rh 뿐만 아니라 MNSs, P, Ii, Lewis, Duffy, Kidd, Kell 등 수백 가지의 혈액형들이 있다. 유독 그 중에서 ABO와 Rh 혈액형이 잘 알려진 것은 수혈을 할 때 이 혈액형들을 맞추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1901년 병태생리학자이며 오스트리아 빈 대학의 교수였던 란트슈타이너는 사람의 혈액을 동종혈구응집반응으로 A, B, C (C는 지금의 O)의 3군으로 분리하여 혈액에 개인적인 구분이 있음을 발표하였고, 이어 1902년에는 AB형의 혈액형을 발견했다. 란트슈타이너의 혈액형 발견으로, 향후 수혈의 부작용을 제거한 안전한 수혈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후에도 란트슈타이너는 1927년에서 1928년에 P. 르윈과 공동으로 MN식 혈액형을 발표했다. 1940년에는 A.S. 위너와 함께 붉은 털 원숭이 즉 Rhesus Monkey의 혈구와 사람의 혈구에 공통항원이 있음을 발견하여, Rhesus의 첫 글자를 따서 이것을 Rh인자라고 명명하였으니, 칼 란트슈타이너는 혈액형을 발견한 업적으로 1930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혈액형별 성격론의 유래 즉 혈액형과 성격에 대한 이론이 시작된 배경은 20세기 초 유럽에서 유행하던 우생학에 새롭게 밝혀진 ABO식 혈액형 지식이 도입되면서, 백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입증하려 한 것이다. 그래서 A형이 우수하고 B형은 뒤떨어지며, 따라서 B형이 비교적 많은 아시아인들은 원래 뒤떨어진 인종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이 나왔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말하자면, 독일은 1901년 란트슈타이너에 의해 밝혀진 ABO 혈액형의 분포가 각 나라와 민족별로 약간씩 다르다는 게 알려지자 그 내용을 독일 우생학에 집어넣었다. 사실, 독일의 우생학이란 자기 민족이 다른 인종보다 뛰어나다는 독일식 정답을 만들어 놓고 여러 가지 가설을 거기에 맞추는 것이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의 에밀 폰 둥게른 박사는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혈액형에 따른 인종 우열 이론을 폈다. 더러워지지 않은 순수 유럽 민족, 즉 게르만 민족의 피가 A형이고 그 대척점에 있는 B형은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의 아시아 인종에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는데, 물론 이것은 사실과 다른 어이없는 주장인 것이다.
실제에 있어 ABO 혈액형의 분포는 국가별로 보면 한국, 일본, 프랑스에는 A형이, 그리고 중국, 미국, 영국은 O형이 가장 많은 편이다. 이런 것으로 혈액형에 따라 민족성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민족을 ABO혈액형에 따라 4가지로 단순 분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더욱이 페루인디언은 100%가 O형, 마야인은 98%가 O형인데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이 다 똑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일본에서의 혈액형별 성격론은 독일에 유학 가있던 일본인 의사 하라가 이 이론을 일본으로 가지고 들어왔으며, 그 영향으로 1927년 8월 심리학자인 다케지 후루카와가 친척, 동료, 학생 등 319명을 조사하여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을 일본심리학회지에 발표하였다. 이 논문은 혈액형과 인간의 성격을 논하여 혈액형으로 기질을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서 이 내용은 지금의 혈액형 분류와 거의 다른 점이 없다.
사실 겨우 319명을 관찰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부터가 과학적일 수 없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논리였지만, 당시 일본의 선정적 언론 보도와 라디오 프로를 통해 그의 이론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의 이론에 따라, 1930년대 처음으로 이력서에 혈액형 칸이 생겼다. 고용될 사람이 어느 정도 회사에 적응할 것인지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1937년 외무성 관련 업무를 하던 한 의사는 O형인 사람이 더 훌륭한 외교관이 될 수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심지어 2차 대전 중에는 일본 육군과 해군이 병사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는 정보를 믿고 그들을 혈액형별로 나눴다는 소문이 돌았다.
1970년대 저널리스트 노미 마사히코에 의해 이 이론은 다시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가 쓴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은 이후 200쇄를 찍으며 지금까지 수백만 부가 팔려 나갔다. 그가 1981년 강연 도중 사망한 뒤, 그 아들 노미 도시타카가 영어로 펴낸 ‘혈액형이 당신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You are your blood type)’는 책은 90년대 이후 자연치료 학계의 성서로 여겨지기도 했다. 혈액형 성격론의 붐을 거친 일본에서는 혈액형 껌, 음료수, 달력은 물론이고 콘돔까지 나왔다고 한다. 혈액형에 따라 원생들을 나눠서 가르치는 방법을 달리하는 유치원이 생겨났고 결혼 중매업체에 등록한 남녀의 가장 중요한 목록도 바로 혈액형이었다고 하니, 혹세무민하는 유언비어라고나 할, 참으로 어이없는 풍조가 아닐 수 없었다.
왜 사람들은 혈액형에 집착하는가. 국내 한 여성 잡지의 문화담당 에디터 이규창씨가 쓴 ‘나의 혈액형을 위한 변명’이라는 글이 있다. 그는 우연히 한 모임에서 만나 즐겁게 시간을 보낸 여성에게 자신이 B형이라고 말했는데, 그 여성은 갑자기 말을 하지 않더니 그를 경계하는 빛까지 띠어서 굉장히 당황했다는 것이다. 그는 “B형은 바람둥이라는 식의 분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함부로 상대방을 판단하는 도구로 삼아서는 곤란하다”고 항변한다. 이것을 보면, 처음 만난 사람을 혈액형에 의해 판단하는 이처럼 어이없는 혈액형 성격론이 우리 젊은 세대들에게 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검색엔진에서 혈액형을 치면 혈액형별 사랑법, 연예인 혈액형, 혈액형별 성격, 혈액형별 기질, 혈액형에 따른 상처, 혈액형별 무시당했을 때 하는 행동, 혈액형테스트, 혈액형별 선호하는 이상형, 혈액형별 사랑 고백법, 혈액형별 질투방법, 결혼후에 나타나는 혈액형별 장단점 (남,녀) 혈액형과 궁합...한없이 많은 혈액형에 얽힌 진실 혹은 거짓들이 떠 올라온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혈액형에 집착하는 것일까.
지금 우리보다 먼저 혈액형 붐을 맞았던 일본에서는 80년대 왜 사람들이 혈액형 분류법을 믿는지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활발했다. 일본기독여대 심리학과 안도 기요시 교수는 혈액형 인간학이 비록 과학적 기반은 없지만 나름대로 사회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 혈액형 인간학을 믿는 사람들은 ‘무리에 가입하고 복종하기를 더 원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며, 혈액형은 한 무리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쉽게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도구라는 것이다.
일본대 심리학과 오무라 마사오 교수는 사람들이 혈액형 인간학을 믿는 이유가 ‘FBI 효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F= FREE SIZE = 프리 사이즈 즉 규격화할 수 없는 것
B= BRANDED = 일단 이름이 붙여지면, 즉 브랜드가 되면
I = IMPRINTED =마음에 새겨진다.는 의미이다.
즉, 성격은 원래 규격화할 수 없지만, 한번 이름 붙여지고 나면, 그대로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다는 것이며, 이것이 반복되면 결국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간에) 앞에서 언급한 에디터 이규창씨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자연스럽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한국, 일본 사람들이 상대방을 해석할 수 있는 도구를 혈액형에서 찾는 것은 아닐까 추정했다.
중앙대 심리학과 김재휘 교수는 이런 현상을 “사람들은 세상을 해석하는 어떤 원리를 찾고 싶어 한다. 이때 가장 쉬운 방법이 이분법 또는 모든 것을 범주화시키는 것이다. 딱 좋은 것이 혈액형이다. 혈액형은 4가지로 분류되고 모든 사람이 거기에 속한다. 관계를 알기 쉽고 검증하기도 쉽다.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사람들은 그것에 의존하고 싶어 한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또 “블로그나 싸이월드 같은 인터넷 의사소통이 유행하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이 바로 혈액형”이라고 덧붙였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혈액형과 성격이라는 이론은 우리들의 끝없이 다양한 성격을 겨우 4가지로 나누는 지나치게 거친 방법이라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의 성격은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하고 풍부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해야 마땅하다. 겨우 4가지로 나눠 구별하고 또 무슨 직업에 맞고 무슨 형끼리 잘 어울린다는 결론들은 앞서 일본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차별>이라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일본에서도 "이런 건 외국에 없는 엉터리 이론이니 괜히 외국인에게 그런 얘기해서 망신당하지 말라"는 충고도 있고, 일본대학 명예교수이며 심리학자인 오오무라 교수는 "일본인이 원래 조그만 집단에라도 속하면 안심하는 민족성이라 그런 걸 믿는다"고도 한다. 심지어는 "한국에도 혈액형별 성격론을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너무 부끄러워말라"는 어느 일본인 개인 홈페이지도 있다고 한다.
황인종은 진화가 덜 되었다는 우생학적 관점에서 시작된 이론이 우습게도 황인종의 나라 한국과 일본에서만 아직도 남아있는 셈이다. 대한수혈학회 한규섭 회장(서울대 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 교수)은 이에 대한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 설령 맞더라도 우연의 일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상업적인 발상으로 생겨났고,
바로 그 상업성이 계속 재생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학계에서 정식으로 연구, 발표된 적이 없다.
의학적으로 혈액형 연구와 무관한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만드는 것이다.
-AB형인 사람이 A형 아기를 낳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 아기의 혈액형은 부모와는 다르지만 아기의 ‘성격은 당연히
부모로부터 유전된다’. 어떻게 성격이 유전되는지는 모르지만 복합적이다.
환경의 영향이 성격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인 판단이다.
당신은 혈액형 성격론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단지 재미삼아, 흥미로워서 잠시 잠깐 몰두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 하겠지. 그러나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 존재조차 없었던 것이 당신이 이름을 붙여주고, 그 이름을 불러주면서 당신의 마음에 각인된다. 그리고 그 무형의 것은 존재가 되고 그리고 당신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우상이다. 맞고 안 맞고를 떠나, 사람들이 그것에 의존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성격은 20세경이면 이미 형성이 완료된다. 이 성격의 기본은 그 사람의 존재양식이므로 고치기가 어렵다. 그러나 또한 성격은 평생을 두고 성숙하고 발전해 간다.
그래서 범주적 모델보다는 차원적 모델이 진실에 더 가까운 것이다.
에릭슨은 정신 사회적 위험(위기)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니까 위기를 잘 극복하는 인간이 건강한 성격을 형성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전 일생을 통해 마주치게 되는 일련의 위기들을 그 때 그 때 잘 해결하고 극복함으로써 자기정체감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 건강한 성격의 기반이 된다. 위기를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경험과 부정적인 경험이 균형을 잡아야 하며, 그 균형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포인트는 긍정적인 경험 못지않게 부정적인 경험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개인의 성장과 공동사회의 변화를 분리시킬 수 없으며, 또한 우리는 개인이 겪는 정체감의 위기와 역사의 발달 속에서 현대의 위기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자와 후자는 서로 도우며 실제로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릭슨,1968) 그래서 우리는 성격을 연구하는 것이다. 나를 알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남을 알고 이해하는 것 모두, 함께 사는 삶을 위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함께 사는 삶이란 귀를 기울여 잘 듣는 것이며,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하는 것이며 기쁨을 나누어 주변을 같은 기쁨으로 만발하게 하는 것이며 주변의 슬픔을 조금씩 나눔으로 슬픔이 점점 작아져서 견딜만한 것이 되게 만드는 것이며 이 모든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당근, 혈액형에 매달려 사람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이리저리 재단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다.